초보보더들은 슬로프에서 각종 트릭을 구사하며, 사람 사이를 사이사이 잘피해서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보더를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고는 합니다. "저 사람 정말 잘 탄다"
맞습니다. 그 사람은 보드를 잘타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데크를 컨트롤하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보드의 고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을 이야기할때,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 지그재그로 차량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탁월한 드라이빙 테크닉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다지 운전을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합니다. 운전을 참 x같이 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오히려 같이 탄 사람이 그 차를 타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운전을 하는 사람을 정말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운전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 운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로프 상황에 맞추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보드를 타는 사람, 그 사람을 바라볼때 불안해 보이지 않으며, 넓은 시야와 다른보더에 대한 배려를 가지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보딩을 한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보드를 잘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슬로프에 유난히 사람이 많다면 그들보다 빠르게 진행을 한다거나 아예 한템포를 쉬어 그들이 어느정도 내려간 뒤에 진행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넓은 시야를 통해 자신이 진행하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보더가 있다면 속도의 제어 등을 통하여 충돌방지의 노력을 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보더가 슬로프에 넘어져있다면 안부를 물어보는 배려, 고난이도의 트릭을 구사하기 전에 자신의 진행방향 반경을 잘 살펴서 넘어지더라도 다른 보더와의 충돌 등의 위험이 없을때 비로소 시도를 하는 경우 등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갖추어져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보드를 잘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보드장에서의 광경을 어떠합니까?
초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고난이도의 트릭을 구사하거나, 자신의 테크닉을 과신하여 비좁은 사람들 사이를 곡예를 하듯 통과해 가는 경우, 앞에서 진행하는 보더의 방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충돌이 있는 경우 앞의 보더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눈은 앞에 달려있는 겁니다. 왜 뒤에도 눈이 달려있지 않냐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리고, 떼보딩을 하면서 슬로프 전체를 가로막다시피하여 타보더의 진행을 방해하는 경우 등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무한한 만족감 또는 우월감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얻는 만족감이나 우월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폭주족과 바이커의 차이에 비유한다면 적절할까요? 폭주족은 파괴를 통한 만족감을 추구합니다. 질서와 배려, 이해 등이 모두 무시되고 자신만의 만족감을 위해서 파괴적인 질주를 자행합니다. 반면에 바이커는 질서와 배려, 이해의 범위 안에서도 충분히 만족감을 주는 질주를 추구합니다. 물론, 단순히 바이크를 다루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폭주족이나 바이커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어쩌면 폭주족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기술적인 면 이외에 교통흐름을 읽은 시야, 노면의 상태를 고려한 주행, 다른 운전자들에 대한 배려 등을 종합해본다면 누가 더 바이크를 잘 타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보드장은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동차, 바이크와 마찬가지로 도로(슬로프)에서 주행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보다 타 보더를 배려하면서도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고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녕 슬로프가 불만이시라면 파크나 파이프에서 얼마든지 테크닉을 과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나 바이크 레이싱처럼 보드장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기량을 자랑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농구 실력만큼은 최고였던 허재가 음주, 폭행, 독단적 플레이 등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실겁니다. 새까만 후배 임달식에게 주탱이까지 맞았었죠. 그러한 허재가 진정 농구인과 팬에게 사랑받고, 후배들에게 존경받게 되고 비로소 농구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가 농구의 테크닉 이외에 게임을 읽는 시야, 선후배에 대한 배려와 이해, 자신의 희생 등이 뒤따라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보다 넓은 시야와 이해, 그리고 배려를 가지고 보드를 탈 수 있을때, 진정 당신은 보드를 잘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