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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현상계의 영향없이 에피스테네의 세계를 추구할수 있을까요?
화장실에 가는 문제, 밥을 먹는문제, 옆집아저씨와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문제
집주인에게 월세가 이틀밀릴거 같다고 말해야 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뒤로 하고
어떻게 하면 에피스테네의 세계만을 추구할수 있을까요?
니체가 말한 짜라투스트 처럼 숲으로 가면 될까요?
하지만 결국 짜라투스트도 숲속에서 본인 혼자만의 세계를 추가하는것은 부질없다는걸 깨닫고 현실세계로
내려오는데 결국 에피스테에의 세계만을 추구하는건 무리일까요?
'에피스테메'가 뭔지를 찾아봤어요.
일반적 지식이 아닌 전문적 지식, 참지식이라고 하고 철학쪽으로 가까이 가니까 존재사물에 내재하는 본질 또는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사물을 현재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서 존재케 하는 원인이라고 하네요.
뭐, 종교적으로 보자면 보통 우리가 말하는 '진리' 또는 '도'라고 이해하면 될거 같아요.
냉정하게 보자면... 철학에서 법과 수학이 파생되었으니 기본적으로는 '논리를 바탕으로 이해 한다고 볼 수 있을거 같아요.
즉, '논리'를 기반으로 따지고 들어가면서 그 끝의 본질을 찾으려는 학문이라 볼 수 있을거 같네요.
종교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것으로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고 '참 나'로서 절대적이고 완벽한것에 귀의하고자 하는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어찌보면 '정신분석학'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공통점은 인간의 정신적 불행의 고통의 원인을 제거 또는 완화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것이라 볼 수 있고...
차이점은 정신분석학은 '자아'와 '나'를 같다고 보고... 현재 고통의 모든 원인을 과거의 경험으로 보고 있고...
종교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관념덩어리인 '자아'를 제거함으로써 '완벽한 나'를 발견하고 그 '나' 조차 이 세상의 일부에 불과함을 깨닫게 됨으로써 이 세상에 완벽하게 귀의함을 목표로 합니다.
간단하게 결론내리자면... 정신분석학은 고통이 되는 원인을 제거 또는 완화시키는것이고 종교는 나 자체를 이 세상에 동화시키는 것이라 보면 될거 같네요.
진리가 이 세상의 시작 전과 끝 이후에도 존재한다고 말하는것은... 나 자체에 의미를 두는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주위 어떠한 환경 어떠한 세계이든 그 자체의 완벽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라 보면 될거 같네요. (음... 어렵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일반적 지식으로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철저하게 본질적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것인가?
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있다' 이구요...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삶'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거 같아요.
왜냐면...
'본질'은 결코 나와 따로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이 '일반적 삶'과 '본질적 삶'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이 '고정관념' 자체는... 님이 '본질적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을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울 가에 살면서 바다에 대한 얘기만 듣고 마치... 나는 바닷가에 살고 있는것처럼 상상하는 삶은 '진짜'가 될 수 없는 것이죠...그저 '연기' 또는 '흉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즉, 님은 '본질적 삶'을 경험해 보신 적 이 없으시면서...그저 추측만으로 '일반적 삶'과 다른 어떤것일거라... 상상하고 계시단거죠.
단언컨데...
'본질'은 '일반'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우리 스스로가 속는것 뿐인거죠.
그렇다면... '본질'은 '일반'과 붙어있나?
이것도 거짓입니다.
붙어있지도 떨어져있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완벽함... 이것만이 진짜죠.
어렸을때 적은 씰데 없는 글인데... 도움 될 수 있길 바라며 올려볼게요.
신
누구의 머리위도 밟지않고 누구의 발도 핥지않는
완벽한 고고함 완벽한 홀로됨
인간의 팔 다리를 하나씩 뜯고 눈을 후벼파며 친절하게 묻는다
그래 너의 소원이 뭐라고
신의 이름을 이용해서 대리인을 자처하고
신의 말을 맘대로 지어내 책으로 만든 너희들에게 천국은 없다
개인의 소원을 말하고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너희는
맑은 눈과 따뜻한 가슴을 흉내내는 연기자들일뿐
티브이쇼의 주인공처럼 여기저기서 신을 부르고 외치지만
정작 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은 누구의 곁에도 머물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관심가지지 않는다
가끔 신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니
그자가 바로 평범한 인간
천국도 지옥도 관심없고
신이 준 모든것을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음... 그러니까 '신'은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속의 산물이죠.
이것에 우리가 또 스스로 속습니다. 그리고 구속당하죠 .
'신'을 믿는것은 신에게 구속당한다는 뜻이고
'신'을 부정하는것 또한 신에게 구속당한다는 뜻이 됩니다.(좀 어렵죠? 신을 부정하는것 또한 신을 여전히 의식하는것이니...이것은 곧 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행동이다...정도로 이해하심 될거같아요.)
'신' 자체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것(관념의 개입없이)
이것 뿐입니다.
그래서 님이 '본질적 삶'만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것입니다.
왜냐면... '본질'이 무엇인지 '정의'되면...
그것은 이미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단지,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완벽함을 보는것' 이것 뿐입니다.
이걸 길게... 말로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적 지식' 을 빌어... 그리고 '종교적 지식'을 빌어서... 최대한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순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정의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빗나가게 되죠.
그래서 외국 언어로 '본질'은 이렇게 표현되곤 합니다.... ' This is It'
한국말론 '이것이 이것이다' 그 외엔 다 빗나가 버리고 마는...
만약, 질문이 '진리'가 있냐 없냐 또는 깨달을 수 있냐 없냐 였다면... 대답은 명확했을거에요.
그러나 추구하며 산다는것은... '본질'과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뜻이니...
All Or Nothing 입니다. 올인하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던지... 올인 외엔 모두가 가짜입니다.
그래서 책으로 배운 철학이나 진리는... 모두가 가짜인거죠. '올인' 한 적이 없으니...
(혹시나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첨언하자면.... '올인' 이라는게 뭐 목숨을 다 바쳐 여기에 모든것을 쏟아붇는다...뭐 이런 뜻 아니구요... 자신의 '주관'과 '고정관념'자체를 모두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든것을 받아들일 각오를 한다 ...뭐 그정도 입니다.)
근데, 이거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어렵습니다.
자신의 주관이라는걸... 배제한다는게 가능하기나 할까요?
그래서 처음엔... 자신의 '자아'의 움직임... 즉, 머릿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직시'하는것을 시작합니다.
이걸 흔히 '참선' 이라고 하죠. (사실 이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리고 '자아'의 움직임이 멎기 시작하면...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죠. (이게 '정신분석학'과 다른 접근법이기도 하구요)
본문에...
/어떻게 하면 현상계의 영향없이 에피스테네의 세계를 추구할수 있을까요?/
라고 하셨는데... 대답은 명확합니다.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것이 에피스테메다...라구요.
즉, 현상계를 따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믿는것...자체가 미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에피스테메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경험할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잠깐 잠깐씩 에피스테메의 세계를 경험할수밖에 없는겁니다
지속적으로 에피스테메의 세계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영혼을 세속에 예속되게 만드는것이지요
그래서 짜라흉도 숲에서 나온겁니다...
인생에서 간헐적인 에피스테메의 세계를 느낄수 있다는것에 늘 감사한다면 그곳이 바로 에피스테메의 정점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세벽 땡보딩할때 슬로프와 나만을 느끼면 보딩을 할때.......
그리고 그 기분으로 다시 삶을 시작할때
각 종교와 철학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그것의 가치가 커지는거겠죠.
답변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가능합니다...
에피스테메의 세계에 혼자 있다면 독선일뿐...... 같이 나눔으로써 에피스테메의 세계에서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