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찡한 우리이웃들의 이야기

                    잠자는 아가에게

잠자는 아기를 등에 업은
몸빼 바지의 젊은 여자는
조심스럽게
대합실 바닥을 청소했다.

뚱뚱한 역무원은
그녀의 굼뜬 동작을
호되게 나무랐지만
바보처럼 미소지을 뿐
그녀는 말이 없다.

잠자는 아가야
어서 자라서
엄마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렴.
너의 평화로운 잠을 위해
가슴을 찌르는 말에도
웃고만 있는 네 엄마는
바보가 아니란다.
말 못하는 바보가 아니란다.



                               연탄길

          나팔꽃

사월이면 영희의 엄마는 창가에 나팔꽃을 심었다. 그리고 영희가 여덟 살 때 나팔꽃이 손가락 마디만큼 얼굴을 내밀 무렵, 엄마는 집을 나가 버렸다.
아빠는 그 해 가을, 엄마가 심어 놓은 나팔꽃에서 검정색 씨앗을 받아싿. 그렇게 여섯 해가 지나도록 매년 영희네 집 창가엔 나팔꽃이 피어났다.
  엄마가 집을 떠난 뒤, 아빠는 공장일까지 그만 두고 이곳 저곳 엄마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 해 겨울부터 아빠는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아빠는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동네 아줌마들은 그런 아빠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수군거렸다.
아빠가 끼니도 거른 채 술에 취해 누워 있으면, 영희는 울면서 아빠에게 밥을 떠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빠가 금새 죽을 것만 같았다. 아빠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영희가 떠주는 밥을 먹었다.
    "아빠 , 이제 술 좀 그만 먹어."
    "미안해, 영희야. 조금만 기다리면 아빠 괜찮을 거야.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왜, 힘든데 아빠?"
    "기다리는게 너무 힘들어서......"
  기다리는 게 힘들다는 아빠의 말을 영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로, 아빠는 늘 엄마를 그리워했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엄마는 나비처럼 꽃밭에 앉아 있었다. 낮은 대문으로 보이는 영희네 집 방문 앞에는 엄마가 신었던 검정 구두가 놓여있었다.
엄마가 그리울 때ㅣ면 아빠는 늘 엄마의 구두를 닦았다.
아빠가 닦아 놓은 엄마 구두엔 한낮에는 총총히 별이 떴다가 밤이 되면 가라졌다.


  일요일 오후, 영희는 운동회 때 신을 신발을 빨고 있었다.
    "영희야 , 이번 운동회 땐 아빠가 꼭 같이 갈게."
    "정말이지 아빠?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술 취해서 못 간다고 하면 안돼, 알았지?"
    "그래. 이번엔 꼭 갈게. 김밥도 싸고, 맛있는 것도 사 가지고 말야."

  운동회 전날,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이발소까지 다녀왔다.
  운동회 날, 아빠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다. 아빠 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길가엔 노란 장미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빠, 장미가 너무 예쁘다. 그치?"
  아빠는 영희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담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영희에게 주었다. 영희는 병아리 같은 노란 장미를 코끝에 비비며 길을 걸었다.
아빠와 함께 걷는 길이 영희는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아빠는 창백한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으며 몹시 힘겨워했다.
    "아빠, 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려?"
    "아빠는 더위를 많이 타잖아.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가 봐."

  학교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리 궁둥이 같은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도 있었고, 풍선을 파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영희는 활짝 웃으며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운동장 안에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서둘러 정문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아빠가 걸음을 멈췄다.
    "영희야, 미안한테 아빠 집으로 가면 안 될까? 몸이 너무 아파서 그래."
    "이번에도 또 나 혼자 있으란 말야? 아빠는 맨날 술만 먹으니까 그렇잖아."
    "미안해, 영희야......"
    "친구들이 엄마 아빠하고 점심 먹을 때 내가 얼마나 슬픈 줄 알아? 나는 맨날맨날 혼자서 밥 먹는단 말야."
    "아빠가 우리 영희에게 할 말이 없구나. 미안해."
    "아빠 가고 싶으면 가, 나 혼자 가도 되니까."
  영희는 눈물을 흘리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영희가 몇 번을 뒤돌아 보아도 아빠는 가지 않고 멀리서 영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영희는 쓸쓸한 운동회를 마치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든 아빠의 옆머리에 손바닥만한 하얀 거즈가 붙어 있었다.
아빠는 술 때문에 벌써 여러 번 얼굴과 머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잠든 아빠 얼굴을 바라보던 영희는 자신도 몰게 눈물이 나왔다. 영희의 울음소리에 아빠는 잠에서 깨어났다.
    "술 먹고 또 이렇게 다치시려고 운동회에도 안 온 거야?"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또 누가 밀어서 넘어졌다고 그럴 거지? 나도 다 알아. 아빠 술 먹고 맨날 길에서 쓰러지는 거."
  영희의 물음에 아빠는 끝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 밤 영희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그러나 운동회 날 아빠가 머리를 다친 건 영희 때문이었다. 그 날 영희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아빠는 창살에 머리를 다친 거였다.
여섯바늘이나 꿰멜 정도의 큰 상처였따. 아빠는 내의가 다 젖을 정도롤 피를 흘리면서도 영희가 모르게 하려고 땀을 닦는 척하며 학교 까지 바래다준 것이었다.
  기다란 벌레처럼 딱지가 내려앉은 아빠의 상처를 보면, 영희는 눈물이 났다.
     "왜, 말하지 않았어, 아빠? 그렇게나 많이 다쳤으면서."
    "운동회 날인데 너 마음 상할까 봐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아빠때문에 늘 마음 아파하는데......"
  아빠는 그렇게 말하며 영희를 꼭 끌어 안았다.
    "영희야,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오늘이 우리가 살아갈 날의 전부는 아냐. 아빠, 이제부터 술 안마실게. 그리고 일도 다시 시작할거구."
    "정말이지 아빠? 정말 술 안 마실 거지?"
    "응, 약속할게."
  아빠는 손가락까지 걸며 영희에게 약속했다.
    "아빠..... 엄마는 언제 올까?"
    "아빠도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엄마는 꼭 돌아올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얼굴은 예전처럼 슬퍼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  피어있는 나팔꽃을 바라보며 영희는 엄마 얼굴을 생각했다.
나팔꽃이 필 때면 엄마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희의 마음은 늘 설레곤 했다.
  오래 전 나팔꽃을 심으며 엄마는 영희에게 말했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나팔꽃은 힘겹게 창문 위를 기어오르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창가의 나팔꽃은 엄마 얼굴이 되어 영희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v(o)z 홀맨 김 태 경 올림.
엮인글 :

연신내

2001.12.17 22:41:09
*.217.173.147

홀맨형님..대단하십니닷..이걸 언제 다 치시남..정말..대단하십니다..저 이책 사씁니당~

김태경

2001.12.18 00:37:03
*.115.229.71

[v(o)z 출장홀맨] 내가 군시절 워드병이었다. 내가 쓴 총알가격보다 내가 뽑은A4 가격이 훨씬 많다. 너도 맞으면서 워드배우면 장문 600타 우습다. ^^

문장혁

2001.12.18 00:51:40
*.175.249.74

[양복보더]7시간 눈치 보며 친 이글에 다시 한번 숙연해진당...홀맨 넌 너무 멋진 것 같당.....

권순재

2001.12.18 10:16:50
*.115.14.37

[악재] 장혁형, 우리 73이 원래 다 그래... ㅡ,.ㅡ;

닭대가리동생

2001.12.28 10:54:41
*.176.165.152

저두 연탄길책보구 쓸라구 했는데 한 반쓰구 쉬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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