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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년쯤
어느 여름날 우연히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의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진도 안갈래?'
그리 친하지는 않았거니와, 고등학교 선배라는 위치는 편하게 대할 수 있는것도 아니였기에 고민했지만
딱히 스케쥴이 없는 모태솔로의 전형이기도 했고
'진도에 홍주라는 멋진 술이 있다더라~ 사러가자' 라는 말에 좀 혹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때 부터 각종 남성잡지를 보면서 여러가지 술을 맛보고 공부하기를 즐겼던 탓이였어요
아무튼
무더운 한여름 휴가로 울산에 내려와 있던 제게
같은 남쪽이라 가까울 줄 알았던 진도는 참 멀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허름한 집. (기와집이긴 했지만..)
그 앞에 '진도 홍주 명인의 집'이라는 낡은 나무 게시판과 홍주에 대한 설명이 쓸쓸히 서있었지요
들어가보니 뭔가 썩어가는듯한 시큼한 냄새(누룩이 숙성되는 냄새)와 함께 넓은 마당이 나왔습니다.
인기척이 없는 집에 '계십니까~' 하니 아주아주 나이가 드신 할머니 한분이 방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거동도 힘들어보이시는 할머니는 반갑게 우리를 반겨주시며 ' 술사러 왔어?' 라고 물으셨지요
실제로 몸이 불편하셨던 할머니 대신에
선배와 저는 누룩도 한번 저어주고
포장과 병뚜껑을 가져다가, 미리 만들어져 있던 술들을 담았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며 홍주에 관한 이야기를 마루에 앉아서 해주셨지요
살 만큼의 술을 담고 포장하고, 돈도 내고
할머니가 '이거 몇일전에 만든건데, 맛이 영 못해, 이거라도 한잔혀' 라며 공짜 홍주 큰 잔에 한잔 받아 마셨습니다.
한여름 땡볕에 40~50도 (할머니도 만들때마다 바뀌어서 몇도인지 모르신다고 ㅡㅡ;;;) 되는 술을 들이키니 머리가 띵 하면서
붉은 색을 내는 지초의 향인지? 아니면 향긋한 소주의 향인지 모를 향이 코안쪽부터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에게 큰절도 한번 올리고 나왔지요
나오면서 잘은 몰랐지만, 분명히 느꼈습니다.
할머니가 만드신 술은 이제 다시는 어디에서도 못 살것이고, 할머니는 다시는 못뵐거라는 것을요.
2013년 결국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저도 나름 4병이나 샀지만 이제는 얼마안남은 이 1병만 남았네요
아마도 이 술을 영원히 다 마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p.s 사진이 안돌아가요...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번쯤 먹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