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전,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슈퍼 주인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 당하는 것을 같은 동네 주민이 목격해 신고했다는 한국 뉴스를 보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희롱 문제에 경악하면서도, 한 가지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가 계속해서 같은 가게를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철저한 성교육이 선행되었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사건인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교육에 소극적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본격적인 성교육을 받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본 독일의 성교육은 충격적이다.

아무 것도 숨기려 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성에 대한 아이들의 의혹을 풀어준다.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짚고 넘어간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이 정도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적나라한 부분이 많다.

아래 복사물은 우리 아들이 첫 성교육 시간에 받았다며 상기된 얼굴로 내 놓은 것이다.

성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은 물론 성폭력에 대한 언급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보여준 부분은 놀랍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하기로 했다.

근친간의 성폭력 솔직히 드러내

아래 보이는 두 장의 프린트물은 기초적인 교육이 모두 끝나고 마무리 단계에서 받아 온 것들이다.

각각의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내고 만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스로의 생각을 써 보는 숙제였다.

하나 하나의 예문을 보기로 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번역해 보았다.

아기를 갖는 사람의 마음 자세와 책임

아래 보이는 두 번째 프린트는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성교육의 마지막 부분인 아기를 갖는 사람의 마음 자세와 책임에 대해 설명한 부분만 요약해서 번역해 보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성교육을 시작할 때는 너무 충격적이고 나 스스로가 소화하기 힘들어서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된 아이와 그렇게 적나라한 내용들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그 부분에 많이 세련되어져서(?) 최근에 둘째가 시험을 볼 때는 질문을 주고 받는 수준이 되었다.

6학년 때 콘돔 사용법 배워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림이나 일반적일 설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인 차이와 성적인 지식을 배우지만 5학년이 되면 막연한 이론뿐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큰아이가 6학년 때 피임법을 배우는 것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아니... 벌써?

더 재미있는 것은 ‘콘돔 사용법에 대해 조사해 올 팀은 손들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자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부터 성에 대한 수치심 없이 개방적으로 자란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녀들은 며칠 동안 시시덕거리고 몰려다니며 무엇인가 열심히 조사하고 준비하는 것 같더니 발표시간에 콘돔 한 상자와 커다란 당근들을 하나씩 들고 왔단다. 당근을 이용해서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하며 시범을 보여주고 준비해온 다양한 정보들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 말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남자 녀석들은 저건 네 꺼니 내 꺼니 킥킥거리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가 직접 학교 방문

이 정도는 6학년 단계의 성교육이고 학년이 올라가면 성인영화나 적나라한 출산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활용하는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이 진행된다. 때로는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 교육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애가는 것은 물론 각종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운다. 우리 보다 열려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작은 아이 말로는 이곳 아이들도 처음에는 섹스의 S자만 나와도 모두들 얼굴이 빨개져서 킥킥거리는 바람에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성교육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애는 연습

‘성’을 천박한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 속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 받지 못 한 까닭에 우리나라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해도 신고할 생각은 커녕 수치스러워 알리기조차 꺼려하는 것 같다. ‘여자가 얼마나 정숙하지 못하면......’이란 말이 여성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이상 위험에 올바르게 대처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중국 칭화대 여대생들이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알리는 에이즈 예방 행사에서 남성의 성기 모형에 콘돔을 씌우는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성교육이 갈 길은 멀고도 험한 듯하다.

콘돔 사용법은 독일 학교의 중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당연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장면이다. 에이즈 예방 포스터나 정치, 사회풍자 플래카드에 흔히 등장하므로 큰 관심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일이다.

독일 학교의 성교육은 구체적인 성 지식과 성폭력 및 성희롱에 대처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물론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앨 수 있게 도와준다.

성교육이야말로 우리 학교에서 하루 빨리 정규 수업에 도입해 할 시급한 제도다. 어른들이 쉬쉬하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씻지 못한 상처를 입을 수도, 혹은 잘못된 성정보를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1분 1초가 아깝기만 하다.

글쓴이 박성숙(무터킨더) 님은
독일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국 엄마입니다.
독일 온지 12년차. 한국에서는 잡지사 기자로 일했고 독일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로 독일 교육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경쟁없는 교육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을 기록한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출간했습니다."

http://blog.daum.net/pssy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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