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게시판 이용안내]
야만의 시대 파괴자로, 이성의 시대 문지기로
대한민국 지성의 코페르니쿠스
첫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현실 발가벗긴 지적 충격 “좌우를 뛰어넘는 재산”
해직기자, 저항교수, 실천지식인
‘진실’을 썼다는 이유로 광주항쟁 배후 혐의로 다섯번 구속, 세번의 징역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script src="/section-homepage/news/06/news_font.js" type="text/javascript"></script> <style type="text/css">.article { FONT-SIZE: 14px; COLOR: #222222; LINE-HEIGHT: 24px } .article A { FONT-SIZE: 14px; COLOR: #222222; LINE-HEIGHT: 24px } .article A:visited { FONT-SIZE: 14px; COLOR: #222222; LINE-HEIGHT: 24px } .article P { FONT-SIZE: 14px; COLOR: #222222; LINE-HEIGHT: 24px } </style>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지난 5월 위중한 중에도 딸에게 구술한 <한겨레> 창간 22돌 격려 메시지에서 리영희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자신의 퇴임사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이 19세기 말 풍자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 말을 한 장군을 존경하진 않는다며 그는 “20여년 전의 상황과 같은 험난한 현실”이 다시 찾아왔는데도 “여러분과 동석하지 못함을 몹시 슬퍼한다”고 했다.

그가 ‘야만의 시대’라 했던 한국 현대사의 미몽을 깨운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1999년 <연세대학원신문> 조사 등)이요, 그를 두려워하고 미워한 자들에겐 ‘의식화의 주범’이었던 리영희는 마침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그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다. 이성이나 지성은커녕 상식조차 범죄로 규정됐던 대한민국에서랴.”(<대화>, 2005년)

40년 전에 리영희는 상식조차 범죄가 되는 이 땅의 현실을 ‘조건반사의 토끼’에 비유했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중공(中共)’이라는 말만 들으면 즉각적으로 ‘기아’ ‘괴뢰’ ‘피골상접’ ‘야만’ ‘무과학’ ‘반란’ ‘정권타도’ ‘침략’ ‘호전’…” 등을 떠올리도록 훈련된 조건반사의 토끼들. 1970년대 한국 사회에 강력한 지적 충격파를 가하며 리영희의 존재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첫 저작 <전환시대의 논리>(1974년)에 재수록된 ‘조건반사의 토끼’(1971년 발표)에서 그는 토끼장을 벗어나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그의 글에서 ‘중공’ 대신 ‘북한’을 넣어보라. 지금 우리는 과연 그 토끼장에서 벗어났을까. 그 글을 쓸 무렵 그는 군부독재·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에 가담했다가 언론사에서 두 번째 강제해직을 당한 터였다. 이듬해(1972년)에 박정희 유신독재체제가 시작됐고, 그 3년 뒤 <전환시대의 논리>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사실’이 아니라 ‘가설’로 발표해야 했던 코페르니쿠스처럼 역시 ‘가설의 해설서’임을 서문에 적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1977년에 나온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와 함께, 토끼장에 갇히기를 거부한 그를 반공법의 이름으로 2년간 감옥에 가두는 구실이 된다. 그리고 1980년 ‘광주소요 배후조종자’로 구속, 그해 다시 교수직에서 해직(1976년에 1차 해직), 1984년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주관 반통일적 교과서 시정연구회 지도사건으로 구속, 1989년 <한겨레> 창간기념 북한취재단 방북기획 건으로 구속 등 모두 아홉 번의 연행과 다섯 번의 기소 또는 기소유예, 1000일을 넘긴 세 번의 징역살이…. 그 후유증으로 그는 쓸개를 떼어내야 했고, 만성기관지염으로 고생했으며, 성한 이빨이 없었다. 2000년에는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마비가 돼 고생하다 최근 간 기능 악화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 이영희 선생 연표
1968년 소설가 선우휘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자마자, 외신(국제)부장을 맡고 있던 리영희를 난데없이 조사부장으로 발령냈다. 1년 뒤에는 직제에도 없던 심의부라는 걸 만들어 다시 거기로 보냈다. 나가라는 얘기였다.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그에게 선우휘는 베트남 파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부의 언론사 외신부장들 현지시찰 주선을 두 번이나 거절한 것이 ‘사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회사와 정부의 반공정책에도 어긋난다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통고했다. 이후 거듭되는 언론사·교수직 해직의 시작이었다. 그 사건 뒤에는 특별대우를 약속하며 리영희에게 베트남행을 요구한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그 4년 전인 1964년엔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비동맹그룹)가 남북한을 동시 초청해 유엔 동시가입 가능성을 토의할 것이라는 특종을 썼다가 ‘국가기밀을 누설한 이적행위’(반공법 위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61년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첫 미국 방문 수행기자로 갔다가 도중에 본국으로 조기소환당했다. 역시 특종보도 때문이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박정희-케네디 회담에서 미국이 군사원조도 하고 경제원조도 하고 쿠데타에 대한 정치적 승인도 해주기로 했다는 ‘박정희 외교의 대성과’를 선전했을 때, 리영희는 케네디 쪽이 조속한 민정이양과 군의 원대복귀, 조속한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사태 협력 등을 촉구했다는 ‘놀라운’ 내용을 타전했다. ‘특종 기자’, ‘진짜 기자’ 리영희의 특종 행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iframe marginwidth="0" marginheight="0" src="http://www.hani.co.kr/section-adv/713/culuter_590130_Middle2.html" frameborder="0" noResize width="590" scrolling="no" height="200"></iframe>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그는 자신이 해온 일을 “오랫동안 미신처럼 남한 사회에서 믿어오던 ‘허위’와 여러가지 크고 작은 정치적·사상적 우상의 가면을 벗기는 일”이라고 했고, ‘리영희 저작집’ 마지막 제12권 <21세기 아침의 사색>(2006년), 50여년에 걸친 자신의 연구와 집필 생활의 마지막 마무리이기도 했던 그 책에서도 말했다. “난 휴머니스트입니다. 인도주의자 그리고 평화주의자이고, 덧붙인다면 우상파괴자!” 그렇다. 타협을 몰랐던 선비 리영희, 그는 한국 현대사 최강의 우상 파괴자들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유일한 무기는 ‘진실’이었다. 그를 가둔 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그 자신을 일평생 고통 속에 몰아넣은 괴물은 ‘진실’이었다. 그 빛에 비춰 보면, 그의 생애를 관통했던 고난이 곧 그의 영광이었다.

리영희는 1929년 금광으로 유명했던 평안북도 운산군의 북진면이란 외진 곳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주로 자란 곳은 5살 때 영림서 직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옮겨간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이다. 김소월이 “물로 사흘 배 사흘 … 산너머 먼 육천리”(<삭주구성>)라고 노래했던 대관은 말년의 그가 “오늘까지도 해가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추억”(<역정> 1988년)이 서린 고향이었다. 거기에 남은 형과 작은누이를 그는 끝내 이승에선 다시 만나지 못했다.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초등학교(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경성공립학교 전기과에 들어갔다. 동창도 친구도 없이 살아야 했던 가난하고 외로운 그 시절, 오직 스스로를 단련하고 키워야 했던 고달픈 서울 유학생활이 연줄을 거부하고 타협을 물리쳤던 나중의 ‘외로운 호랑이’ 리영희의 탄생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1946년 그가 국립해양대학 항해과(2기)를 택한 것도 그런 간난과 무관하지 않다. 학비가 면제되고 숙식을 비롯한 경비 일체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모집공고를 보고 그는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고 했다. 재학시절 ‘여순반란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했고 백범 김구에 경도됐던 리영희는 졸업 뒤 친구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경북 안동공립중학교 영어교사가 됐으며, 전쟁이 터진 뒤 영어교사를 우대한다는 미군 상대의 연락(통역)장교 모집에 응했다. 이후 7년 백발백중의 권총 명사수였던 그는 군의 부패와 폭력, 병무행정의 난맥상, 미국의 이면을 무참하게 경험하면서 “국가관과 전쟁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살 앞으로의 나의 마음가짐 같은 것에, 말하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리영희가 언론사 기자가 된 것은 말년 통역장교 시절 부산 양정동의 8평짜리 셋집 변소에서 우연히 찾아낸 신문 밑바닥 기자모집 광고였다. 1957년 리영희는 남다른 영어 실력을 밑천 삼아 당시 한국 최대 통신사였던 <합동통신>에 입사했고, 통신사 일을 하면서 1959~61년까지 <워싱턴 포스트>의 통신원(4·19혁명 전까지는 익명)으로 활약했다. 지금도 <워싱턴 포스트>를 뒤지면 나오는 그의 기사들은 미국 사회에 당시 다른 누구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이승만 독재정권 치하의 한국 실정 제대로 알리기를 한 셈이 됐고 그것은 이승만 하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활약 덕에 1959년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신문학 연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귀로에 들른 일본 도쿄 서점에서 사들고 온 책들 중의 하나가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노래>였다.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장지락)의 생애를 담은 그 책은 리영희가 본격적인 중국 연구자가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야만의 시대’에 맞선 ‘전사’, ‘의식화의 교사’가 됐지만 리영희는 ’타고난 투사’ 또는 ‘의식화의 원흉’은 결코 아니었다. “소음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그 사람의 지적(정신적) 수준과 반비례한다”는 영국 속담까지 인용할 정도로 시끄러운 것을 못 견뎌 하고 행동의 절제를 미덕으로 안 그는 자신이 소심한 사람이라며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문익환 목사처럼 낭만주의자가 못 되고, 용기도 없는 사람이야. 다만 냉철한 현실감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니까.”(<대화>) 그는 결코 대세나 주류에 영합하지 않았다. “주류가 아무런 근본적 인식 없이 그냥 거죽만 보고 한 방향으로 쏠릴 때 나는 항상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인터뷰 때 리영희는 “미국이 장차 동북아에서 강대해지는 중국과, 과거 소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전쟁을 하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으로선 그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필요하고 남한은 거기에 ‘0.5 군사국가’로 덧붙이려 한다. 특히 강대국으로 행세했던 일본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지극히 강하다. 지금의 이런 동북아 상황은 1930년대 초와 아주 흡사하다”는 준렬한 정세인식과 함께 그들에게 동조하는 국내 기득권세력의 지배욕을 비판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정신은 쉬지 않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엮인글 :

...

2010.12.06 08:09:32
*.96.110.188

북한이 쳐내려오면 다시 태어나 그 체제 속에서 충성을 다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했던 사람, 김일성-김정일이라는 '우상 중의 우상'에 대해서는 평생 침묵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리영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좌파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005년에 나온 대담집 <대화>를 보면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그의 교만과 아집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2007년 5월 남북열차 시험운행 행사 때 방북했던 리영희는 북측 관계자들에게 "내 제자들이 남쪽 사회를 쥐고 흔든다"고 자랑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한에서의 평화만이 필요하지, 보편개념으로서의 평화는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 미국이야 말로 ‘악의제국’이다" - 2003년 한겨레 인터뷰-
.
“6·25 전쟁후 애국자들과 양심적 지도자들이 남한을 버리고 북한으로 갔다” -2007 한겨레 통일문학상 시상식-
.
“내가 길러낸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 -2007년 5월 프레시안-
.
“국가보안법 폐지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2004년 11월 민중의소리-
.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해소하고, 미군기지를 해체한 뒤 북한의 호응을 얻도록 하자.” -2005년 10월 프레시안-
.
“1976년부터 시작된 팀스피리트 훈련은 세계 최강, 최대, 최고의 핵전쟁 훈련으로 북한에 대해 엄청난 핍박과 위협을 줬다.” -2000년 7월 한국일보-
.
“김대중 정권은 살인미군에 대한 무죄평결이 대한민국의 국민적 자존을 훼손한 중대사건임을 직시하고, 불평등한 한미방위조약과 SOFA의 재개정작업을 즉각 미국에 요구하여 이를 조속히 관철하라.” -2002년 11월 오마이뉴스-
.
"수백명의 한총련 대의원들을 수배조처함으로써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수배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불합리한 상황은 없어야 할 것” -2003년 4월 프레시안-
.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며 북방한계선 남쪽이 우리 영해라는 주장도 잘못이다.” -1999년 8월 연합뉴스

freebird

2010.12.06 09:57:21
*.168.63.170

댓글 감사합니다...(악의적인것 같긴하지만)

 

그런데 어떤이들은 이런댓글보고 리영희 선생이 빨갱이라며 광분하겠지요?...

 

 그들에게도 판단력이라는게 생기기를 바랍니다....

 

 

 

리영희 선생님...이제 편히 쉬십시요....

 

 

험프티덤프티

2010.12.06 10:15:46
*.143.122.117

불합리한 것에 저항을 하고, 자신의 것을 버리고, 투옥되고 수감되는 고초를 격고...

 

자 왜 이런 짓을 하는거죠?

 

당시 영어 잘 하고, 미국과 관계된 일을 하며, 기자라는 신분 속에 있었다면

남부럽지 않게 자알 살 수 있었을 텐데요...

 

...님

 

보아하니 원글 올라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저런 답글을 단다는게

미리 준비했을리는 없고, 아침에 출근해서 누가 올리라고 정리해준 거 올리신거 같은데

(아니라면 죄송하구요. 하지만 본인이 정말 작성하신 거라면 그 악의에 찬 열의가

사뭇 무섭습니다...)

 

님이 함부로 좌빨, 친북, 반미주의자, 빨갱이 등으로 입에 올릴 인생은 아닌 듯싶습니다.

 

리영희 선생님... 옛 동지들과 해후하시길...

마셜맥루한

2010.12.06 10:41:35
*.56.241.36

"비밀글입니다."

:

2010.12.06 10:53:56
*.215.157.18

가치관 차이. 가치관이 다르면 리영희 이분을 나쁘게 볼 수도 있겠죠.

 

어찌했거나 이분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저라는사람도 있습니다.

 

 

 

freebird

2010.12.06 11:19:59
*.168.63.170

가치관이 다르다....

리영희 선생님은 통일을 지향하지만...다른 가치관은 통일을 원치 않겠죠...

그분은 독재를 혐오했지만 다른 가치관은 먹고살게헤준다면 독재도 상관없을거구요...

기득권층의 입맛대로 범죄자를 만들수있는 최악의 국가보안법도 옹호 하겠군요...

 지식인들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인 미국의 패권정치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겟네요...

 

조금 경솔했나요? 혹시윗님이 말한  다른가치관이 위에 언급한 내용과 다르다면 말씀해주세요.

요즘 반공국면을 맞아 헝글에도 창궐하고 있는 어린 보수들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 되겠습니다.

2010.12.06 11:51:11
*.215.157.18

freebird 

 

가치관이라는거 다르다는 한마디에 간단히 이분법적 사고를 보이시는군요.

아마 빨갱이라는 말을 쓰는 흔히 주변에 계신 어르신들을 못배워 먹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정도로 취급하는

자기 잘난맛에 길들여진 분이 아니신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찾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의해 

이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분들이 freebird 주변 나이가 지긋하신 친지분도 있을법 한데.......

참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신듯 합니다.

 

가스통 할배도 있지만 지극히 평범하신 분들 중에도 개성이 강한 분들은 충분히 그리 표현을 하십니다.

전 그래서 싸잡아서 무식하다는 투로 말을 했던 정동영 이사람도 싫어했지만.

Freebird님의 말도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이들은 이런댓글보고 리영희 선생이 빨갱이라며 광분하겠지요?...

 그들에게도 판단력이라는게 생기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을 남기셨는데 오히려 이글이 자신의 편협함을 들어내는 글이 아닐지?

리영희 이분을 옹호하지 않으면 문제 있다는 식의..

리영희 이분을 존경하시는 분인듯 한데

오히려  이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고 계시는군요.

 

전 리영희 이분의 역사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반대되는 부분에 있어 비난을 하는 겁니다.

딱히 이런 댓글로까지 제 가치관에 대해 하나하나 시시콜콜 들어내 가면서 설득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만 표현한것 뿐입니다.

그냥 이분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린 보수들의 생각이라...... 어떻게 제 글을 보고 그리 연관을 지으신지는 모르겠지만.

보수와 진보. 학문 하는 사람들 한테나 아니면 정치인 중에서 선동정치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정도나 필요한 말이지

일반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말장난이라고 밖엔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지?

 

실제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나 가치관의 정도가 진보와 보수에 대해 학문적으로나

아니면 관심을 가지고 구분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이상.

한마디로 일반적인 사람인 경우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조차 구분하기 쉬운 상태가 아닙니다. 

 

어린 보수라고 해 봤자.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진보냐 보수냐? 의 구분에 자신을 맞추어서 나는 이러할거 같아 수준이지

이해를 할 정도의 방향성을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뭐 제 생각이긴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라면 20대를 말하시는거 같은데....

이 친구들 생각을 이해 하는데

이 친구들의 생각을 진보 보수 나누어서 미리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는 색안경이 아니라.

아 이사람들은 이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이부분에 있어서는 어떤 정치색을 보이는구나....

하는 두리 뭉실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니 보수니 색안경부터 벗고 나면

딱히 한족으로 구분되기 어려운

두리뭉실한 가치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보일겁니다.

드림™

2010.12.06 12:18:31
*.192.163.138

사상과 양심의 자유

 

철이 들고 나선 이 분의 생각에 많은 부분을 공감 못하지만,  평생 사리사욕이 아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과 성장기 우리 사회의 양면성을 생각해볼 때 꼭 필요한 분이었다는 것엔 공감합니다.

 

치열하게 현대사를 살아오신 한 분이 또 가셨네요.

 

편안히 쉬시길...

 

알면서

2010.12.06 14:05:51
*.240.134.50

한심한 분이죠..남쪽에서만 사상의 자유,북한에 가서는 만세..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형아..

 

주사파들은 이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어렵고

그나마 가장 이성적인고 말이 좀 되는 사람들은 노회찬씨나 진보신당..

 

개인적으로 진보신당을 싫어하지만 진보신당 사람들은 그렇게 꼴통은 아닙니다..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

 

이영희 웃음만..

그만큼 역사를 뒷걸음질하게 했으면 나중에 심한 비판을 받을수도..

 

 

  

2010.12.06 15:07:44
*.247.244.160

엇... 또... fr.....한테 욕 먹을 만한 글이네요... ㅠㅠ

lebleu

2010.12.06 16:14:25
*.149.93.59

*.215.157.18 님이 말씀하신 부분 중 '비난'이라는 표현은 '비판'의 오타인듯 보이고요.

(그런데 만약 비난이 오타가 아니라면 리영희선생이 O님에게 비난까지? 받을 일은 없어 보입니다.)

 

한국의 위대한 인물은 아닐지언정 리영희 선생의 책들을 읽어 보았다면 그 사상에 대한 배움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분의 살아온 가치관들도 현대인들에게는 시사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자신과 다른 사고를 가졌다고 하여 전체를 비판하는 듯한 내용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으로 리영희 선생의 전체적인 인생을 한 뷰로만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오류겠지요.

 

그리고 리영희 비판한다. 라고 생각하면 최소 어떤 부분에서 비판하는지 알아야 o님의 댓글을 보는 사람도 이해를 하지요. 그냥 비판한다? 라면 대체 뭘 가지고 비판하는 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냥 나는 너가 싫어. 라는 수준의 리플이라면 왜 쓰나요? 별 쓸만한 것도 아닌데..

차라리 알면서님의 댓글은 이유가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펀글게시판 이용안내] [13] RukA 2017-08-17 65373 9
6061 고전이지만 웃겼던 거 [9] 간코다리 2011-10-10 1803 3
6060 전설의 명약 [2] 간코다리 2011-10-10 1136  
6059 ASKY(싱글)의 장점 [4] Izazel 2011-10-10 1207  
6058 이상하다... 분명 같은 표정인데..... file [6] Izazel 2011-10-10 1528  
6057 나는 꼼수다[군대편] [4] Izazel 2011-10-10 1610 2
6056 당신의 귤까기 등급은..?? file [6] 낙엽의 달인 2011-10-10 1444  
6055 나경원에 당한 장애우 심정 [1] 백병원 2011-10-10 1286  
6054 쇠고랑안찹니다이~ 경찰서안갑니다이ㅋ [1] 한미양 2011-10-10 1298  
6053 고의로 끼어들기 급정거 면허취소 정당 [15] 후진국 형 ... 2011-10-10 1747  
6052 집단 정신병일까? 미개함일까? [9] 반도의 추억 2011-10-10 3939  
6051 오직 국민 밖에 모르는 우리 각하.JPG [6] 더브 2011-10-10 1878  
6050 아 정말 귀요미~ file [9] 쏘쏘1218 2011-10-10 1925  
6049 이제 이차는 제껍니다 [2] 휘청보더 2011-10-10 1962 1
6048 "노 대통령은 퇴임 후 성주로 살겠다는 것이냐... [6] 이래도..30% 2011-10-10 1506  
6047 착시현상~ file [6] 뉴타입피씨 2011-10-10 1646  
6046 도가니엔 난리 친 한국 그러나 [1] 조용하네 2011-10-10 910  
6045 서울 모대학에서 환자죽이는 영상.swf [1] 아쿠 2011-10-10 1502  
6044 핫식스 좋아하시는분~ 티몬에서 행사중이네요. [3] 땅그지턴 2011-10-10 1151  
6043 착각하기 쉬운 음식... [6] 깐따삐야 BOY 2011-10-10 1870 1
6042 석기시대 사람들처럼 사는 곳 깐따삐야 BOY 2011-10-10 1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