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방 사진

http://blog.naver.com/chokong6/120117355046

1. 시즌방 위치

- 성우분들이면 다 아시는 곰마트 바로옆 곰마트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시즌방 2층입니다.

-도보 가능합니다.


2. 시즌방 구조
- 사진에서 보다시피 복층입니다. 곰마트 시즌방중 유일하게 가장 큰평수입니다.

-밑에는 남성 복층에는 여성 생활합니다.

- 리모델링을 해서 상당히 깔끔합니다.


3. 모집인원
- 12명정도 생활 가능한 공간이나 여유로운 시즌생활을 위하여..

총 인원은 8-9명으로 운영할것입니다.

확정 7명(남4/여3)이며

*******************여성 1~2분 더 모집합니다.********************


4. 투자비
- 40만원

- 시즌동안 관리비, 생활비, 기본식대(쌀,김치,김,라면) 포함입니다.

-확정인원이 다 주말보더라 주말보더 우선 모집합니다.

(휴가나 월차 이용한 평일에도 사용은 가능합니다.)


5. EX...
- 적당한 음주 좋아하구요, 12~1시 이후는 실외에서 음주 합니다.
- 흡연은 자유이나, 실내 흡연은 절대 금지입니다.

-무엇보다 보딩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저희 시즌방은 동호회가 아니며 소수가 운영하는 개인 시즌방입니다.


010-7426-3223

010-3231-2664

회사에서 잘 못받을때도 있으니 못받으면 문자 부탁드려요~

카톡 : hellofeel / kongs8590

궁금한점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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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복

2011.12.10 15:15:56
*.197.151.129

한성주유출영상 한성주유출영상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클릭다운

B를 도우며 열심히 한성주 동영상을 유포한것으로 드러났어요. 한성주 동영상 유포자 B는... 준수하다는 한성주 동영상 유포자 허모씨. A양 섹스동영상은 한성주? 그 진실은 8시간전 한성주동영상의 반론과 유포자를 씹는 글을 올렸는데 게시물이 강제로 내려져서 무척 당황스럽다.다시 글을 올린다 오해없이 받아주길 바랍니다 한성주 노출 미스코리아 겸 아나운서 한성주 비디오 파문이 일고 있어요. 한성주는 묵묵부답인 상태네요. 한성주의 성품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동영상이 번지고 있습니다. MC, 전 아나운서학력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데뷔1994년 제38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수상2009년 희망 2009 따뜻한 겨울보내기 유공자 표창회 서울시장상경력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1996~2000 SBS 6기 공채 아나운서 아나운서이자 미스코리아 출신의 방송인 한성주라고 추정되는 비디오 영상이 블로그를 통해 악의적으로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 지연스러워 모여서 전흠은 엉겁결에 되물었다; "장문인의 친구분이시오?" 백t심중연인의 미소가 조금 냉랭해졌다; " 그 요석이 감히 내 친구가 될 수 있겠나?" 다시 전흠은 보기처음에는 그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었으나 이우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당신은 누구요? 무슨 일로 본파의 장문인을 만나려는 거요?" "장문인이나 불러와; 다른 녀석들과는 볼일이 없으니까;" "뭐라고?" 전흠 의 눈꼬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전흠이 화가 솟구쳐 백삼중년인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려 할 때였다; 아까부터 백삼중년인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던 전풍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백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백삼중년인은 전풍개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의외로 정중하게 포권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백동일입니다;" 전풍개의 얼굴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났다; "정말 백동일이구나; 네가 이곳에 오다니;;;" 전풍개가 격동에 찬 모 습인 반면 백동일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이 제가 못 올 곳이라도 됩니까?" "네가 본파에 등을 돌리고 초가보에 적(籍)을 두 고 있다는 말을 들었 다; 그게 사실이냐?" 백동일은 너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전풍개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동안 백동일을 응시하다가 점차로 눈가에 살기가 감돌며 전신에서 맹렬한 기운이 뿜어 나왔다; "네놈이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이곳을 찾아오어니;;; 오늘 네 사부 대신 네놈을 응징해 본파의 법도가 살아 있 다는 걸 증명하고야 말 테다;" 전풍개의 살기등등한 모습에도 백동일은 오히려 입가에 엷은 미소를 우올렸다; "종남파의 법도라;;; 그러고 보니 일전에 누군 가가 그러더군요; 종남파에 법도 따위는 없다 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법도라고 했던가?" 전풍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본파에 법도가 없다고? 어떤 놈이 그 따위 망발을 지껄였다는 게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는 이미 종남파를 떠난 사람이니 내 앞에서 종남의 법도가 어떻다느니 하 는 말은 모두 무의미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더 이상 종남의 문하가 아니란 말입니 다;" 전풍개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는 격앙된 흥분으로 가느다란 경련 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듯한 폭풍 같은 분노와 무언지 표 현 못할 야릇한 슬픔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백동일은 전 풍개의 사제인 풍뢰검 관소양의 하나뿐인 제자였다; 어려서부터 무공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사부를 존경 하고 따르던 아이였다; 종남파의 커다란 인재가 될 줄 알았던 그가 절명검이란 별호로 장성에서 이름난 살성(殺星)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고, 그가 초가보의 부하가 되어 오히려 종남파 의 고수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동중산의 말에도 설마 그러겠느냐 싶었다; 그런데 이십여 년 만에 만난 백동일의 입에서 직접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전풍개는 분노 이전 에 진한 서글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성실하고 장래가 촉망되었던 젊은 인재가 가슴속에 흉심만 가득한 중년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 게까지 꼬여 버렸단 말인가? 전풍개가 마음속의 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전흠이 백동일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이 사 숙뻘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본파에서 나갔다니 다행 이군;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사숙이라면 정말 성질나는 일이라서 말이야;" 전흠이 자신을 향해서 노골적인 적의(敵意)를 드러 내며 검을 뽑는 광경을 보고 백동일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과는 볼일이 없다니까; 어서 장문인이나 불러와라;" 전흠은 하얀 이 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파의 장문인이 당 신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나? 우선 솜씨나 한번 보자구; 장문인을 불러낼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게 말이야;" 전흠이 계속적으로 반말을 하자 백동일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데 전풍개가 오히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나 전풍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동일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담담한 시선으로 전흠을 응시했다; "애송이, 무어라고 떠들어도 상관없지만, 어른 앞에서 함부로 검을 뽑는 건 실례라는 걸 알아야지;" "본파를 배신한 주제에 어른 노릇까지 하려고? 어림 반푼 없다;" 전흠은 벼락 같은 호통을 내지르 며 출검(出劍)을 했다; 파앗; 눈앞에 섬광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전흠의 검은 어느새 백동일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고 있 었다; 그야말로 눈부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 는 무서운 쾌검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전흠, 멈춰라;" 어디선가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을 듣자 전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그의 검 은 날아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거두어지더니 이내 그의 검집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백동일의 눈에서 기광(奇光)이 번뜩였다; "큰소리칠 만한 솜씨 를 가지 긴 했군; 제법 쓸 만한 천하제탄(天河齊彈) 이었다;" 조금 전 전흠이 펼친 초식은 천하삼십육검 중의 천하제탄 일식이었다; 하나 백동일이 경탄한 것은 천하제탄을 펼친 이 러다 내가 아무래도 제 명에 못살 거 같군; 아예 귀라도 막고 다니든지 해야지, 이거야 원;" "멀쩡한 귀를 왜 막고 다녀요? 그러지 말고 이 요리를 해보는 건 어때요? 양반포어(凉 拌鮑魚 : 전복냉채)나 내유어시(?油魚翅 : 상어 지느러미 튀김) 같은 건 간단해서 하기 쉬울 거 같은데;;;" 장승표의 얼굴이 우거 지상으로 구겨졌다; 이런 한겨울에 어디가서 전복 이나 상어 지느러미를 구한단 말인가? 그녀가 다시 또 무어라고 말하려 하자 장승표는 아예 귀를 틀어막더니 앞으로 마구 달려나갔다; "으아아;;; 못살겠다;" "이봐요, 털보 아저 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그게 싫으면 낙타 요리라 든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계속 요리들을 꼽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앞서가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전흠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파 꼬락서니가 가관이군; 저런 말괄량이 를 누가 제자로 받은 거야?" 그때 누군가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바로 네놈이 제일 먼저 받자고 하지 않 았느냐?" 딱; "아이쿠;" 전흠은 머리통을 끌어안고 인상을 찡그렸다; 돌아보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전풍개말고 누가 감히 그에게 이런 짓을 하겠는가? "할아버님, 누가 그런 말을;;;" 전풍개는 눈을 부릅떴다; "노부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모르는 줄 아느냐? 저 계집아이가 노부에게 와서는 똑똑한 손자를 둬서 얼마나 좋으냐고 입에 침을 튀기며 떠 들어 대더구나;" 전흠은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 약아빠진 계집애가 벌서 할아버님까지 삶아놓은 모양이군; 이러다 문파 전체가 그 계집애 치마폭에서 놀아나게 되는 거 아 냐?' 전흠의 얼굴에 갑자기 불안한 빛이 떠올랐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표정이 원래대로 풀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 문인인 진산월은 절대로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든 것이다; '휘둘리기는커녕 그 계집애가 장문인한테는 꼼짝도 못하니 천적(天敵)이 따로 없지;' 전흠이 히죽히죽 웃을 때 전풍개가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네놈이 아무래도 요즘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 것 같다; 오늘 마침 날도 좋고 어깨의 상처도 대충 아물었으니 모처럼 제대로 수련 한 번 해보도록 하자;" "아이고, 할아버님;;;" 전 흠은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제 발로 전풍개를 따라갔다; 전풍개와의 수련은 고달 프기는 했으나, 할아버지의 부상이 완쾌된 것이 기뻐서 기꺼이 수련에 동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흠은 누군가가 산문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어? 누구지?" 두 조손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산문 앞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에 한 자루 검을 찬 채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인영은 백색 장삼을 입은 사십대 중년인이었다; 헌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 멀리서 보아도 기개가 헌앙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제136장; 수구초심(首丘 初心) 백삼중년인은 두 사람 앞까지 다가오더니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 있나?" 그의 태도가 너무도속도보다도 그것을 거두어들인 전흠의 솜씨였 다; 원래 초식이란 펼치기보다 거두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전흠은 마치 사전에 계획한 것처럼 검의 수발(收發)이 너무도 자유스러웠던 것이다; 전흠은 검 을 거두고 훌쩍 물러나더니 한곳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제길, 나타나려면 좀더 있다 나타나든지;;; 아주 적당한 시간에 나와서 방해하는구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진산월이었다; 진산월은 전흠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 고 백동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동일도 어느새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진산월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데 비해 백동일의 입가에는 여전희 희미한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언뜻 백동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네가 진 산월이냐?" "그렇소;" "요즘 들어 네 .를 많이 들었다; 네가 백 년 내 종남파에서 배출된 고수들 중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 진산월은 무심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건 잘 모르겠소;" "잘 모르겠다구? 언뜻 들 으면 겸손한 소리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오만하고 광오한 말이구나; 백 년 내 제일고수(第一高手)인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는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그걸 확실히 알게 해주 지;" 백동일의 훤칠한 신형이 한차례 휘청거 렸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어느새 허공을 압축해 진산월의 코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앗?" 진산월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짤막 한 경호성을 지르며 그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하나 그때는 이미 진산월이 피하지 않고 백동일을 향해 마주 달려가고 있었다; 팟; 백동일이 검을 뽑는 광경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 었는데 난데없이 검광이 번뜩이며 세 줄기의 검화(劍花)가 진산월의 앞가슴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진산월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신형을 날리자 세 줄기의 검화가 헛되이 허공을 가르 며 지나갔다; 하나 백동일은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주위 사방이 온통 시퍼런 검영(劍影)에 휩싸어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 투어 뒤로 물러 났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나누었다; 그들의 검세가 어찌나 빠르고 날카롭던지 금시라도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들의 치열한 격전을 지켜 보는 중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비록 문파의 배반자이지만 사문의 어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문파를 책임지는 장문인의 신분이었다; 마땅히 머리를 맞대고 문파의 부흥을 위해 일로매진해야 할 두 사람이 필생(必生)의 대적(大敵)을 만난 듯 무시무시한 격전을 벌이고 있 으니 이를 보는 종남파 문인들의 가슴은 한없이 침 통할 수밖에 없었다; 차창; 갑자기 요란한 검명(劍鳴)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떨어졌다; 흠칫 놀란 중인들이 바라보 니 두 사람은 이 장의 간격을 둔 채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몸에 별다른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진산월의 표정이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 지 않은 데 비해 백동일은 두 눈에 무시무시한 안광을 번뜩인 채로 입꼬리가 슬쩍 뒤틀려져 있었다; "흐흐;;;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는 별로로군; 소문이 잘못된 것 가, 아니면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건가?" 진산월은 조용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 담담한 음성을 내뱉었다; "본파의 무공에 이상한 걸 섞어 놨군; 이건 무어라고 하는 거요?" 백동일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려졌다; "종남의 무공이 천하에 다시없는 절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껄 이는구나; 굳이 숨길 것도 없겠지; 아무짝 에도 쓸모없는 천하삼십육검에 천랑칠절검 (天狼七絶劍)의 묘용을 섞었더니 제법 그럴듯한 무공이 되더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 귀하는 아직 천하삼 십육검의 진정한 묘용(妙用) 을 모르고 있구려;" 백동일은 냉랭하게 웃었다; "흥; 네 녀석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천하삼십육검을 익혔던 나다; 모든 변 화 와 검로(劍路)를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훤히 파악하고 있거늘 묘용을 모른다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건 몸으로 직접 느껴 보도록 하시 오;" 이번에는 진산월이 먼저 백동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백동일의 두 눈이 매섭게 번뜩이더니 얄팍한 입술 사이로 냉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종남의 무공 으로는 절대로 내 천랑십이절(天狼十二絶)을 꺾을 수 없다;" 천랑십이절은 백동일이 종남파의 무공에 천랑존자의 천랑칠절검을 융합하여 스스로 만들어 낸 절학이 었다; 천하삼십육검의 장중함과 유운검법의 변화무쌍함에 종남 파에는 없는 천랑칠절검 특유의 날카로움을 결합시킨 것이어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천랑십이절을 완성한 후 백동일은 적어도 장성 일대에서는 적수를 만 나지 못했다; 진산월의 검은 한 가닥 뇌전(雷電)처럼 곧장 백동일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 들었다 ; 그것은 천하삼십육검 중의 천하제탄이란 초식이었다; 조금 전에 백동일은 전흠이 펼친 천하제탄을 보고 감탆나 적이 있었다; 하나 지금 자신의 앞으로 날아들고 있는 천하제탄은 전흠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분명 겉으로는 똑 같은 천하제탄이었 으나, 검초가 어찌나 빠르고 맹렬하던지 검이 아닌 거대한 창(槍)이 쏘아 져 오는 듯한 착각이들 정도였다; 백동일은 피하지 않고 수중의 장검을 질풍처럼 휘둘러 정면으로 맞서 갔 다; 까깡;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두 사람의 검이 맹렬하게 부딪쳤다; '으윽;' 백동일은 손아귀에 막대한 통증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천 하제탄은 빠르고 날카롭기는 했으나 강맹한 맛은 부족한 초식이었다; 그래서 백동일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후려친 것인데, 막상 격돌하게 되자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반탄력으로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하나 백동일은 조금도 기가 죽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진산월의 앞가슴 쪽으로 뛰어들며 장검을 세차게 내뻗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다섯 줄 기의 검광이 빛살처럼 진 산월의 목덜미와 양쪽 관자놀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갔다; 쐐애액; 백동일이 펼친 것은 천랑십이절 중의 낭조오자(狼爪五刺)라는 초식으로, 지금 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설마 백동일이 이토록 무모할 정도로 살벌하게 반격해 올 줄은 몰랐는지 모두 안색이 변해 버 렸 다; 자신의 안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반드시 상대의 몸을 난도질하고야 말겠다는 악독한 마음이 없으면 이런 식의 수법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면이 훤히 노 출된 진산 월의 몸에 피보기이 뚫리려는 순간, 그의 신형이 한차례 흔들리더니 십여 개의 폭발하는 듯한 검광이 피어 올랐다; 따따땅; 폭죽이 터지는 듯한 음향이 울려 퍼지며 불똥이 사방으 로 튕겨졌다; 동시에 한 사람의 신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광경이 중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난 사람은 백동일이었다; 백동일의 안색은 조금 전의 여유 있던 모습과는 달리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백동일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재차 진산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 파파팍;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 큼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검광이 진산월의 전신을 뒤덮었다; 백동일은 검을 휘두르는 일에 심혼(心魂)을 내던진 사람처럼 . 듯이 천랑십이절 중의 절초들을 펼쳐 진산월을 압박해 갔다; 그 공격이 어찌나 세차고 맹렬했던지 중인들은 진산월이 금시라도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아 절로 가슴 이 조마조마해졌다; 백동일의 검법은 확실히 종남파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틀렸다; 분명 구석구석에 아직도 종남파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검로의 진행 방향과 그 것에서 파생되는 변화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시전하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종남파의 무공은 도가(道家)에 그 기본 바탕을 두고 있 어서 순간적인 강맹함이나 사람을 살상(殺傷)시키는 매서운 위력보다는 진중(鎭重)하 면서도 은근한 힘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종남파의 무공을 대성(大成)하기 위해서 는 은인자중(隱忍自重)할 줄 아는 끈기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이 필요했다; 하나 백동일 은 이십여 년 전에 소림사에서 커다란 좌절을 겪은 이후 심성(心性)이 달라져서 오직 상대를 신속하게 쓰러뜨리는 것만을 지상명제 로 생각했다; 일단 손을 쓰면 격식이나 외양에 신경쓰지 않고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상대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수 한수에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무자비하고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냉혹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비슷한 검 로라고 할지라도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검초는 종 남파 본래의 색깔을 거의 찾아보거 힘들었다; 지금도 진산월의 전신을 난도질할 듯이 몰아쳐 오는 백동일의 검초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전풍개는 그 검초가 천 하삼십육검 중의 천하밀밀(天河密密)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천하삼십육검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엄밀한 천하밀밀에 천 랑칠절검의 천랑색명(天 狼索命)이 결합하여 보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는 야랑횡비 (野狼橫飛)의 일식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북방의 검객들이 백동일의 이 잔인한 검초에 허무 하게 피를 뿌리며 쓰러졌는지 모른다; 진산월은 무표정한 눈으로 자신을 짓쳐오는 검광들을 보더니 수중의 장검을 몇 차례 흔들었다; 쏴아아;;; 마치 대나무 숲을 바람 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무수한 검영 (劍影)들이 나타났다; 그 검영들은 하나의 거대한 그물처럼 백동일의 전신을 뒤덮어 가더니 결국에는 백동일이 펼친 야랑횡비의 검광의 무리와 정면으로 격돌하고 말았다; 차차차창; 수백 개의 검들이 동시에 부딪친 듯한 음향과 함께 사방이 온통 폭발하는 듯한 검기의 소용돌이에 휩쓸 려 버렸다; 그 충돌의 여파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중인들이 사오 장 밖으로 허겁지겁 몸을 피해야만 했다; 자욱했던 검광과 수북이 피어오른 먼 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화살이 쏘아지는 듯한 격렬한 파공음이 거푸 터져 나왔다; 핑; 핑; 중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보니 백동일이 머리를 산발하고 웃자락이 마구 풀어 헤쳐진 채로 . 사람처럼 마구 검을 휘두르 고 있었다; 누더기처럼 여기저기가 잘려져 나간 의복 사이로 내비치는 그의 몸에는 군데군데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산발한 머리카락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언뜻 머리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어 그야말로 흉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살기등등하다 못해 광기(狂氣)마저 어린 듯한 그 모습에 종남파의 모든 문인(門人)들은 아연실색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 고, 그래도 한때 자신이 몸을 담았던 문파의 장문인을 상대로 어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좀처럼 보거 드문 처절한 격전이 계속되었다; 장내에는 살 벌한 검풍(劍風)과 거친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을 뿐, 이상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허 억;;; 허억;;;;" 백동일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가쁜 숨을 몰 아쉬면서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미 흐르는 땀과 핏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길게 풀어 헤쳐진 머 리카락이 얼굴을 뒤덮고 있어 괴기스러워 보였다; 그에 비하면 진산월은 대조적이라 할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숨결도 거칠어지지 않았고, 동작 또한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검을 휘두를 것만 같던 백동일이 갑자기 검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숨을 불어 내쉬는 것이었다; "크허허; 크헉;" 마치 고함이라도 내지르는 것처럼 큰 숨을 몇 차례나 내뱉은 백동일이 돌연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하하;;; 네가 지금 나에게 사정을 봐주는 것이냐?" 진산월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백동일은 그의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던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거야말로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로구나; 네 말대로 천하삼십육검에 나도 모르는 묘용이 있다는 걸 인정 해 주지;" 백동 일은 검을 든 채로 어깨를 몇 차례 돌리더니 바닥에 침을 뱉었다; 피 섞인 가래침을 서너 차례 뱉은 후에 신발로 그것을 짓이기더니 다시 입을 열 었다; "넌 몇 번이나 나를 벨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네 딴에는 내게 아량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너의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강호에서는 일단 검을 들었으면 자신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는 자가 누구든 서슴없이 벨 수 있어야 하며, 적어도 상대를 마음속으로 완전하게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베지도 못했고 심복(心服)시키지도 못했 으니 이게 바 로 너의 허술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백동일의 눈에서 점차로 이글거리는 듯한 신광 (神光)이 흘러나왔다; "듣기로는 네가 검으로 구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더 구나; 하지만 나는 소문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종남파가 재건되었다느니 종남파에 검귀가 나타났다느니 하는 말도 결코 믿지 않 는다;" 백동일은 검을 들어 진산월을 겨누더니 부러지는 듯한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종남파는 이미 무너졌다;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마지막 몸 부림일 뿐이다;" 백동일의 선언과도 같은 외침은 주위에 있던 종남파의 모든 고수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 말 속에 포함된 뜻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찌되었건 그 래도 한때는 종남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백동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너무도 의외였던 것이다; 처음의 놀람과 당혹감은 이내 격렬한 분노와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 켰다; "뭐라고? 몸부림 ? 뚫린 입이라고 정말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전흠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흠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남파 고수들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 어 있 었다; 하나 백동일은 그들에게는 일별조차 주지 않은 채 계속 진산월만을 응시 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무언가 깊은 상념 에 잠 겨 있는 것 같았고, 어찌 보면 마음던 최고급 더수 나어트들을 따로 빼돌렸다는 뜻이지." 레니우스가 그럴 듯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러셀런트를 죽였다는 더수 나어트들의 실력이 소문에 비해 비교적 약했습니다. 본 드러곤 하나만 뺀다면 놈은 전력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군요." "그렇지.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부터 우린 한데 뭉쳐 다니며 인간들의 주요 거점을 차례차례 박살낼 것이니까……. 가장 먼저 없앨 곳은 감히 인간과 손을 잡은 엘푸 부족이다. 놈들에게 인간과 손을 잡은 것이 예초부터 잘못된 결정이란 사술을 뼈저리게 보여 줄 생각이니까……" 베르커수는 조용히 마나를 재배열했다. 죽은 뮤시우스의 시체를 태워버릴 생각에서였다. 드러곤은 위대한 종족이다. 그러므로 죽은 시체라도 몬스터 따위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또한 뮤시우스의 시체가 본 드러곤이 되어 자신들에게 덤비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생각을 마친 베르커수는 묵묵히 파이어 볼을 전개했다. 푸학. 뮤시우스의 시체는 덧없이 불타올랐다. 드러곤 스케일에 싸여 있는 몸뚱이였지만 베르커수의 파이어 볼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세 드러곤은 동료의 시체가 타오르는 장면을 물끄 러미 쳐다보았고 있었다. 동료를 죽인 인간에 대한 복수심을 묵묵히 불태우며……. 뮤시우스의 장례를 치른 세 드러곤은 곧장 엘푸의 숲을 향해 날아갔다. 인간을 도운 엘푸 부족에 대한 응징이 그들의 어된 목적이었다. 엘푸의 숲 상공에 도착한 드러곤들은 지 체 없이 마나를 재배열했다. 드러곤의 분노를 알았는지 엘푸의 숲은 부르르 떨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베르커수의 입에서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증스러운 엘푸들이여. 이제부터 너희들의 숲에 드러곤의 분노가 작렬할 것이다. 이것은 너희들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응징일지어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르르릉.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구름 한 점 없던 쾌청한 하늘이 느닷없이 검게 물든 것이다. 잠시 후 뭔가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우것은 바러 유성의 비(雨)였다. 드러곤들은 엘푸의 숲을 목표로 미티어 스웜을 전개한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유성들이 엘푸의 숲에 사정없이 내려꽂히고 있었다. 연이은 유성의 폭격에 가지가 잘려나가고 잎이 불타올랐다. 오래 묵은 거목들도 유성우의 습격에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있었다. 미티어 스웜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드러곤들은 엘푸의 숲에 있는 나무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유성공격을 퍼부었다. 마치 숲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겠 다는 듯 한 차례 유성우가 지나가면 드러곤들은 또 다른 유성우를 소환해서 숲을 불살랐다. 꼬박 한 나절 동안 미티어 스웜을 시전한 세 드러곤은 그때서야 직성이 풀리는 듯 마법 을 거뒀다. 이미 유성공격으로 인해 엘푸의 숲 전역이 불타고 있었다. "인간들과 손을 잡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 할 것이다." 불타는 숲을 본 베르커수가 만족한 미소를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레니우스와 류시케가 얼른 뒤를 따랐다. 드러곤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엘푸의 숲은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광범위한 지역에 펼쳐져 있던 숲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멀리서 그 불길을 쳐다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의 숲이 불타고 있어." 말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는 이는 센티널들의 대장인 올리비에였다. 그의 뒤에는 엘푸들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계속해서 훔치고 있었다. 마치 생의 의미를 모두 잃은 것처럼 말이 다. [다크메이지]14장 예상 못한 반전 372회. 엘푸에게 숲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이었다. 그런 숲이 불타고 있는데 흔들리지 않을 엘푸는 없었다. 다행히 류미너스 부족은 드러곤들의 공격에 휘말리지 않았다. 카심을 비롯한 용병단원들이 재빨리 부족에 달려와 그들을 피신시켰기 때문이었다. 사술을 듣자 올리비에 대장은 재빨리 부족원들을 통솔해서 안전한 장소로 대피했다. 슈나이더 대장로가 출타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부족원을 책임져야 했다. 그들은 엘푸의 숲 바러 옆에 자리잡은 깊숙한 계곡으로 몸을 피했다. 그곳이 엘푸의 전통적인 피난처였다. 계곡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엘푸들은 타오르는 숲을 보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보다 못한 카심이 다가가서 올리비에를 위로했다.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일단 이것은 속에 솟구쳐 오르는 노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백동일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무어라고 말하려 할 때 진 산월의 굳게 닫혔 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소;" 조용하고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백동일은 더욱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당신에게 살수(殺手)를 쓰지 않은 것은 당신에게 살수를 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오;" 백동일은 묵묵히 진산 월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칼날같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하 나 그 시선을 받는 진산월의 얼굴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담담한 것이었다; "본파는 이 미 재건되었소; 당신이 무어라고 하든 그건 사실이요; 이제와서 당신 한 사람을 쓰러뜨 리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오;" 이번에는 백동일의 얼굴이 굳어 졌다; 하나 이내 백동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 과연 듣던 것처럼 말 하나는 잘 하는군; 하나 강호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어 디 나를 쓰러뜨려 보아라; 검으로 구름을 일으 키든 일검에 삼십육방을 찌르든 나를 완전히 꺾어 보아라; 그렇다면 종남파 가 재건되었다는 네 말을 믿도록 해보저;" ";;;;" "왜 아무런 대꾸가 없는 거냐?" 진산월은 고개를 내젓더니 무심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본파를 찾 아와서 이 런 시비를 벌이는지 모르겠지만, 본파는 당신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오; 그러니 어서 물러 가시오;" 모욕에 가까운 심한 말을 들었음에 도 백동일은 여전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 서툰 격장지계(激將之計)를 벌일 필요 없다; 나를 쓰러뜨리든지, 아니면 종남파가 이미 무너졌다는 걸 시인하 고 봉문(封門)을 해라;" 강압적인 그의 말 에 모두들 다시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진산월은 웃고 있는 백동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백동일은 그의 시 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두 눈에서는 기이한 광기(狂氣) 같은 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그 눈을 바라보던 진산월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다른 선택은?" 백동일은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없다;" 진산월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준 비하시오;" 백동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복잡한 의미를 지닌 미소였다; "말이 통하는 녀석이군;" 백동일은 두 팔을 활짝 벌리더니 수중의 장검을 허공으로 번쩍 치켜 올렸다; "어디 검으로 구름을 일으킨다는 네 솜씨 좀 보자;" 그는 하얀 이 를 드러내며 검을 쳐든 자세로 곧장 진산월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의 행동은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눈부신 검광 이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백동일, 장성의 절명검이다;" 세찬 검광 속에서 그의 터져 나갈 듯한 외침 소리가 너무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진산월은 자신을 향해 정면 으로 다가 오는 백동일의 얼굴을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로 응시하고 있다가 천천히 수중의 장검을 들어올렸다; 막 검을 휘두르기 직전, 그는 폭발하는 듯한 검광 속에서 백동일의 시선과 마 지막으로 눈이 마주쳤다; 검이 뽑혔다; 그리고 거대한 가나다라마바 사아자차카타그 중 한 명이 그림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확실한가?" 옆에 서 있던 갈색 머리의 중년인이 냉큼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 위치한 오쿠 부족이 약 천 명 가량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틀림없는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불과 몇 년 전 본국의 기사들이 조사해 온 내용이고 오쿠라는 종족이 여간해서는 영역을 바꾸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흠." 침음성을 내지르는 자는 자토르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테제로스 출신의 근위기사였다. 선발대로 포탈을 통해 트루베니아로 투입된 그는 이번 작전에 차출되어 습격대의 지휘를 맡 고 있었다. 갈색 머리의 참모 역시 테제로스 인이었고 습격조 역시 테제로스의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순탄한 작전수행을 위해 각각 100명씩으로 이루어진 습격조는 대부분 한 국가 출신의 기사들로 이루어졌다. 그래야만 원활한 호흡과 사기진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장의 달인이 오직 메이크업만을 이용, 180도 달라진 얼굴로 ‘화장 성형’의 진수를 보여줬다. OSEN에 따르면 5일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스타킹(이하 ’스타킹‘)’에서는 종로의 여신 김보배 씨와 마포구의 여신 박수혜 씨가 등장해 놀라운 화장의 기술을 선보였다. 이들은 첫 등장부터 모두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사진 속의 예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초췌한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등장한 것. 그러나 짤막하게 주어진 시간 동안 화장을 통해 완벽한 변신을 시도했다. 달라진 모습을 보며 연예인 게스트들은 성형을 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을 금치 못했다. 또 성형 전문가 역시 “자신의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눈 화장을 잘 한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박수혜 씨는 남성들에게 “여자의 화장에 속지 말아라. 결혼 전 화장 전체를 지워보고 결혼해라”라는 충고를 남겨 웃음을 자아냈다.한숨을 길게 내쉰 자토르만은 곧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부하들의 사기를 돋우고 그들에게 목적의식을 불어 넣어주기 위한 연설이었다. "이번 임무는 정벌군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작전이다. 이미 알고 있듯 포탈의 파괴로 말미암아 우리의 보급줄은 완전히 끊겼다. 퇴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번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혹시 이 중에서 가족이 없는 자가 있는가?" 하지만 손을 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아 출신이 아닌 다음에야 가족이 없는 자가 있을 턱이 없었다. 자토르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끝을 맺었다. "살아 돌아가서 가족을 보려면 반드시 임무를 성공시켜야 한다. 알겠나?" "옛." "그럼 작전에 돌입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죽 갑옷을 입은 데다 방패에도 가죽을 씌웠기 때문에 소리는 일체 나지 않았다. 정규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이어 서 움직임이 더할 나위 없이 민첩했다. 그들이 접근하고 있는 곳은 오쿠가 관리하는 한 노예 마을이었다. 오쿠에게 쿠이렉이라 불리는 부족의 산하에 있는 이 마을에는 300여 명의 전사들이 파견되어 인간들을 감시하 고 있었다. 지검은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녘이었고 야행성언 오쿠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기였다. 습격조들이 침투하기에는 최적의 시간대라고 할 수 있었다. 습격조들은 최대한 몸을 은폐하며 마을 외곽의 초소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외곽의 초소에서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터져 나왔다. "끄륵." "킥." 습격에 나선 기사들이 최대한 소리나지 않게 신경 써서 보초의 숨통을 끊었다. 하지만 예석하게도 오쿠의 감각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옆 초소에서 들려온 소리에 잠에 서 깨어난 보초 하나가 습격자들을 보자 지체 없이 경고성을 내질렀다. "적이다. 인간이 습격해왔다." 습격자들은 머뭇거림 없이 몸을 드러내어 돌격하기 시작했다. 종적이 발각된 이상 속전속결만이 타개책이었고 투입된 기사들은 그 사술을 잘 알고 있었다. 뿌우우. 뿔 나팔 소리가 숨가쁘게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마을을 에워싼 목책의 문이 굉음과 함께 닫혔다. 쿵. 집의 문이 열리며 오쿠 전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무랄 데 없는 대응이라 볼 수 있었지만 예석하게도 습격자들의 실력은 오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제일 앞에서 달려가던 자토르만이 불문곡직하고 검을 휘둘렀다. "켁." 목책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오쿠 전사 두 명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자토르만은 여새를 몰아 전사 하나를 더 쓰러뜨린 뒤 오러 블레이드를 끌어올린 장검을 다짜고짜 목책 문에다 꽂아버렸다. 퍽. 군데군데 쇠로 보강된 견고한 문이었지만 오러 블레이드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목책문은 허무하리 만큼 쉽게 부서져 나갔고 그곳을 통해 습격자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갔다. 뒤로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습격에 투입된 기사들은 반 이상이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고급 기사들이 100명이나 몰려들었으니 고작해야 300 남짓한 오쿠 전사들에게 막아낼 도리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구름이 장내를 뒤덮었다; ;;; 죽음 같은 침묵이 주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백동일은 검을 휘두 르던 자세 그대로 우뚝 서 있었 다; 사방을 뒤덮을 듯하던 검광은 어느새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그와 함께 그토록 찬연하게 피어올랐던 거대한 구름마저 흔적조차 보 이지 않았다; 갑자기 석상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던 백동일이 번쩍 고개를 쳐들어 진산월을 응시했다; "이것도 종남의 무공이냐?" 진산월은 묵묵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유운검법이겠군; 그렇지?" 진산월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백동일의 몸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훌륭하군; 정말 훌륭해; 유운 검법에 이런 묘미가 있었군;" 누더기처럼 변한 옷자락에서 갑자기 붉은 선혈이 여기저기 뿜 어나왔다; 그와 함께 그의 몸은 미끄러지듯 바닥에 천천히 쓰러졌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꽃잎 같은 입술이 벌어지며 모기 소리 만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네."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 만약 인간을 따라나선다면 두 번 다시 류 미너스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감수하겠어요. 어차피 미첼 기사님이 아니었다면 죽음의 숲에서 마쳤어야 할 생이니까요." 올리비에는 묵묵히 일루미나를 내려다보았다. 눈동저에 고뇌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을 잘 알겠다." 말을 마친 올리비에는 카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루미나를 데리고 가시오. 생명의 빚을 갚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그녀는 이제 류미너스 일족이 아니오." "생명의 빚이라니요?" 올리비에는 머뭇거림 없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엘푸에겐 목숨을 구해준 자에게 생명으로 보답한다는 철칙이 있소. 빚을 갚겠다고 나선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엘푸가 아니오. 류미너 그의 온몸은 이미 수많은 검흔(劍痕)으로 뒤덮여 단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난 행운아야; 그렇지?" 바 로 그때 어디선가 하나의 인영이 나타나 쏜살같 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동일;" 그 인영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백동일의 몸을 끌어안고 비통한 고함을 내질렀다; "자네;;; 자네;;;" 백동일은 고개 를 들어 자신을 안고 있는 노해광을 쳐다보았다; 항상 심술궂은 표정에 냉혹함으로 가득했던 노해광의 얼굴은 표현 못할 슬픔과 비통함으로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잔뜩 일 그러져 있었다; 백동일의 시선이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져 파란 하늘로 이동했다; 백동일은 텅 빈 허공을 향해 웃었다; "이젠 지옥에서 사부를 만나도 두렵지 않아; 이렇게 멋진 검을 보았으니;;; 이렇게 멋진 종남의 검법을;;;" 그것이 장성의 최고검객인 절명검 백동일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노해광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 백동 일의 시신을 끌어안고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때 백동일의 나이는 마흔일곱; < 종남연기(終南年紀) > 에 보면 종남파에서 배출한 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로 기 록되어 있다; 제137장; 이중계획(二重計劃) 하늘에는 햇살이 찬란하건만 장내의 분위기는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노해광의 느닷없는 출현에 당혹해했던 중인들도 착잡함이 짙 게 밴 표정으로 노해광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백동일의 시신을 안고 한참이나 흐느끼던 노해광은 돌연 진산월을 돌아보며 비통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렇게 할 수밖 에 없었느냐;;; 정녕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 진산월은 노해광의 원망 섞인 시선을 받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애초부터 그들 사이에 어떠한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백동일은 종남의 재건을 위해 몸을 던졌고, 진산월은 종남의 법도를 위해 그를 죽였을 뿐이다; 사소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로서는 각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노해광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 산월에 대한 원망이 일어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백동일은 그에게는 광활한 천지에서 단 하나 남은 사 형제였고, 그를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경쟁자 로, 때로는 벗으로 오랜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 유일한 마음속의 지기(知己)가 사라 졌으니 노해광의 허탈함과 야속한 심정이야 더 말 해서 무엇하겠는가? 노해광이 슬픔과 고통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반시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진산월만이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해광은 손짓해 그를 불렀다; "이리 오너라;" 진산월이 다가오자 노해광은 백동일의 시 신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산발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백동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 주고 피가 묻어 있는 입 주변도 소맷자락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드러난 백동일의 얼 굴은 어딘지 모르게 평온해 보였다; 노해광은 한동안 백동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중의 행적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이 사람도 한 때는 누구 못지 않은 종남파의 충실한 제자였고, 장래가 촉망받는 인재였다; 더구나 그는 너에게 사숙뻘이 된다; 그를 종남산에 묻어 줄 수 있겠느냐?" 진산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노해광은 나직하게 탄식했다; "그도 틀림없이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진산월은 다시 침 묵을 지켰다; 지금의 그로서는 노해광에게 특별히 할말이 없 었다; 노해광이 종남파에서 강탈해 가다시피 한 대왕령 일대의 주루 네 곳에서 상당한 부(富)를 축적하고 있다는 소문은 진산월도 들은 적이 있었다; 종남파가 운영할 때보다 더한 성황을 누려서 서안 전체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커다란 규모로 발전했다고도 했다; 하나 지금까지 진산월은 그에 대해서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노해광 은 이미 종남파를 떠난 사람이었고, 주루를 가져갈 때의 약조(約條) 대로 두 번 다 시 종남파를 찾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종남파에게는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출 현은 그가 아직 잊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노해광은 진산월의 선사인 임장홍의 하나뿐인 사제였다; 어찌 생각하면 전풍개보다 더욱 가까 운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해광은 호북성(湖北省) 파동(巴東) 출신이었다; 날 때부터 인근에서는 기재(奇才)로 소문이 났고, 나름대로 인망(人望)도 두터워서 따르는 사람 들도 적지 않았다; 하나 십칠 세 때 우연한 사 고로 사람을 죽인 후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섬서성까지 흘러들어온 노해광은 당시의 종남파 장문인이 었던 하원지의 눈에 띄어 그의 세 번째 제자로 종남파에 입문했다; 그보다 먼저 들어온 두 사람은 강일비(姜一飛)와 임장홍이었다; 대사형인 강일비는 상당한 무골(武骨)이어서 종 남파 고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둘째인 임장홍은 차분한 성격에 온순한 심성을 지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 비해 노해광은 어정쩡한 위치였다; 무공에 대 한 재질은 강일비보다 떨어지는 편이었고, 성격 또한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어서 남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 년 후에 백동일이 입문하자 그의 위치는 더욱 애매해졌다; 백동일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무재(武才)여서 오히려 강일비보다 더한 관심과 애정을 받았다; 하나 노해광은 그들에게 없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다; 우선 그는 눈치가 비상하고 심기가 뛰어나서 좀처럼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해타산이 빨라 이재(理財)에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하원지의 사제들 중에는 그를 종남파의 내 부 일을 담당하는 집 사 (執事)로 임명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마 기산취악으로 종남파가 뿌리째 흔들리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노해광은 정말로 종 남파의 집사가 되어 자신의 재능 을 십분 발휘했을지도 몰랐다; 하나 이십 년 전에 벌어진 기산취악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장문인인 하원지와 종남파의 실질적인 기둥이었던 종남삼검은 참담한 패배의 후유 증을 견디지 못하고 각기 세상을 떠나거나 종남파를 등지고 말았으며, 남아 있는 제자들은 우왕좌왕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 하원지의 뒤를 이어 장문인이 되어야 할 강일비는 자 신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야밤에 몰래 종적을 감추었으며, 그 뒤를 이어 많은 제자 들이 종남파를 떠났다; 촉망받는 기재였던 백동일은 사부를 따라 장 성으로 갔고, 결국 임장홍이 차기 장문인으로 지목되었다; 노해광의 위치는 더욱 어정쩡해졌다; 종 남파의 문하제자들 수가 급감하여 따로 문파의 살림을 꾸려 나갈 집사를 둘 필요 가 없어졌고, 윗대의 고수들이 모두 사라져 당장 문파를 끌어 나갈 사람의 수가 절대적 으로 부족했다; 노해광은 장문인이 될 수도 없고 집사가 될 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가 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노해광은 꿋꿋하게 종남파에 남아 있었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고, 위기에 처한 종남파를 등지고 떠날 만큼 야박한 성격도 아니어서 임장 홍을 도와 종남파의 궂은 일을 모맡아 처리했다; 하나 그러던 그 도 결국 오 년도 되지 않아 종남파를 등지고 말았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발생한 임장홍과의 불화(不和) 때문이었 다; 당시 종남파의 장문인은 임장홍이었으나, 실질적 으로 종남파의 내부 살림을 이끌어 나간 사람은 노해광이었다; 그것은 노해광이 이재에 밝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임장홍의 처( 妻)인 두란향이 몸이 좋지 않아 자주 병 상에 누워 있던 탓도 있었다; 외부로 나가 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임장홍을 안에서 도와줘야 할 두란향이 앓아 누워 있으니 자연히 그녀 의 몫까지 노해광이 감당해야 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병수발을 들며 문파를 꾸며 나가던 노해광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연정(戀情)을 품게 되었다; 두란향은 비단 보거 드문 미녀일 뿐 아 니라 그 심성이나 자태가 여느 여인과는 틀려서 사람을 매혹게 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유난히 병약(病弱)한 몸은 남자의 보호본능까지 자극하여 노해광이 아닌 누구라 할지라도 그녀를 보면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노해광의 경우에는 그런 호감이 좀더 발전한 형태였을 뿐이다; 일단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되자 노해광 은 그녀의 남편인 임장홍의 모든 것이 안 좋게 생각되었다; 병상에만 누워 있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문파를 재건하겠다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도 못마땅했고, 능력도 없으 면서 사람 만 좋은 그의 행태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연히 그는 임장홍이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때마다 임장홍은 특유의 느긋한 웃음으로 사태 를 해결하려 했으나 그럴수록 노해광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그러다 결국 두란향이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자 노해광은 임장 홍을 향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해냈다; 임장홍은 아무 말도 없이 노해광의 욕설을 듣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노해광을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당신 이 죽인 거요; 이 한심한 인간; 한 여자의 남편이 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책임졌어야지;" 노해광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질렀다; 그래도 임장홍이 아 무런 대꾸가 없자 노해광은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당신이 장 문인이 되어서 제대로 한 일이 하나라도 있었소? 당신은 그녀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조만간에 본파까지 말아먹고 말 거요;" 그때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던 임장홍의 쓸쓸한 모습을 노해광은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노해광은 자신을 파문(破門)시켜 달 라며 임장홍을 강요했고, 임장홍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자 스스로 종남파를 떠나고 말았다; "네 사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지; 차라리 나쁜 놈이 었다면 욕을 퍼붓고 칼부림이라도 했을 텐데 네 사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싫어질 수 없는 인간이었지;" ";;;" "그 래서 나는 떠나야만 했다;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은데, 그의 곁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거든;" 노해광은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너는 그런 놈이 되지 마라; 너무 좋 기만 해서는 안 돼; 좋은 사람보다는 강한 사람이 돼라; 그게 우두머리의 숙명(宿命)이다;" 진산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자신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것인 지, 아니면 무심결에 한 행동인지 노해광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한동안 진산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 섞인 음성을 토해냈다; "너는 네 사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네 모습을 보니 그동안 네가 어떠한 길을 겪어 왔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구나; 하지만 앞으로 걸어야 하는 길은 절대 로 지나온 길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 "내일 초가보에서 총공격을 해올 것이다;" 노해광은 지나 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산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 하나 이내 그의 말을 알아듣고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우선 당장은 내일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결코 순탄한 길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 무 힘든 선택을 한 거야;" 이어서 노해광은 백동일이 어젯밤에 자신 을 찾아온 .를 했다; 노해광이 말을 마칠 때까지 진산월은 한마디로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노해광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진산월의 비쩍 마른 얼굴에 고정되었 다; "이제 어쩔 셈이냐? 그래도 초가보에 맞서 싸울 생각이냐?" 진산월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물론입니다 ;" "그들은 강하 다; 일전에 너희들이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경시한 탓도 있었 지만, 정말 운(運)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력(戰力)은 결코 화산파에 뒤지지 않는다; 이번에 그들은 먼젓번과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인간이 숭리하게 된다면 반드시 엘푸의 숲을 복원시켜 드리겠습니다." "………." "혹시 부족원들이 피해 있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올리비에는 묵묵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엘푸는 숲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종족이었으므로 숲이 사라진 이상 갈 만한 곳이 있을 턱이 없었다. 카심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 다. "가실 만한 곳이 없다면 일단 저희 군대에 합류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희들이 책임지고 부족원들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올리비에는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간들과 섞이는 것은 고고한 엘푸에겐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출타 중이신 대장로님께서 돌아오신 뒤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곳의 위치를 알고 계시니 반드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카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사술 엘푸와 인간이 섞이다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합류를 권유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데어문에 대한 걱정이 태산같았다. '도대체 어찌 되었을까? 무사하실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슈렉하이머가 데어문으로 변장한 채 지크레이트를 타고 날아오르던 장면뿐이었다. 베르커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데어문은 즉각 그들에게 그 자리를 벗어날 것을 명했다. "너희들은 즉시 류미너스 부족으로 가라. 숲에 들어가면 센티널들이 너희들을 안내해 줄 것이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그곳으로 가서 올리비에 대장에게 전해라. 머지 않아 드러곤이 보복하러 올지 모르니 부족원들을 피신시키라고……." 카심은 데어문의 명령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포탈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많은 병사들을 두고 어떻게……." "어차피 포탈이 파괴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병사들의 희생이 마음 아프긴 하지만 우리로썬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둘러라." 결국 카심은 미첼을 위시한 대원들을 데리고 그것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숲에 들어간 그들은 오래지 않아 센티널들과 조우했고 그들의 안내를 받은 끝에 마침내 올리비에 대장 을 만날 수 있었다. 때문에 현재로써는 카심이 데어문의 안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벌군 본영으로 가 봐야겠군.' 생각을 마친 카심이 올리비에 대장에게 다가갔다. "저희들은 이만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본영에 가서 포탈을 잃었다는 사술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올리비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저희들은 대장로님께서 오시는 대로 거취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목례를 한 카심이 신호를 했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미첼의 옆에 전혀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바러 일루미나였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부족에 남아있어야 할 그녀가 활과 화살을 소지한 채 미첼을 따라나서려 하고 있었다. 카심이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니 일루미나." 일루미나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서려 있었다. 단단히 각오를 한 모양이었다. "지켜야 할 숲을 잃었으니 센티널의 임무 역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할 일이 없어졌으니 당신들과 동행하겠어요." "그, 그것은……." 카심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쩔쩔 맸다. 이것은 그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올리비에에게 문제의 해결을 넘겼다. 카심의 눈빛을 받은 올리비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올리비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일루미나에게 다가갔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생명의 빚을 갚을 생각인가?" 우물쭈물하던 일루미나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꽃잎 같은 입술이 벌어지며 모기 소리 만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네."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 만약 인간을 따라나선다면 같은 방심을 하지도 않을 것이며, 전력을 기울여 너희들을 뿌리째 뽑으려 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너희들의 수를 모두 합쳐 도 열 명 남짓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인원 으로는 네가 천하에 다시없는 고수라 할지라도 초가보를 감당해 낼 수 없다; 차라리 일단 그들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후일( 後日)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지 않 겠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노해광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나친 자신감은 만용(蠻勇)일 뿐이다; 옛 말에도 지나가는 소나기는 피하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너는 무사할 자신이 있을지 몰라도 몇 명 남지도 않은 제자들이 몽땅 죽는다면 종남파의 재건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진산월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노해광이 언뜻 고개를 돌려 보니 진산월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강퍅한 얼굴에 떠올라 있는 희미 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드는 마력이 있었다; 노해광은 한동안 멍하니 그 얼굴 에 떠오른 미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언뜻 정신이 들어 고개를 돌 렸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의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편하고 차분한 심정이 되었다; 노해광은 왜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 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진산월의 미소는 자신감에 차 있거나 용기를 북돋는 그런 미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담담 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하나 그 미소 속에는 당 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담겨 있었다; 진산월에게 있어 초가보와의 싸움은 당연히 거쳐야 할 관 문(關門)이었고, 오래 전부터 그 일을 마음속으로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시기가 내일로 닥쳐왔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노해광은 갑자기 목 이 메어 와서 황급히 엉뚱 한 곳을 쳐다보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던 것이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사람은 의외로 진산월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잘해 낼 수 있을 겁니다;" 노해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백 동일을 묻을 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노해광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하려 했으나 어느새 진산월은 휑하니 몸을 돌려 성큼성 큼 걸어가고 있었다; 노해광은 멍하니 그 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백동일의 시신을 안고 그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덤은 작고 초라했다; 하나 전 망이 아주 좋아서 종남산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 특히 종남파의 구석구석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노해광은 백동일의 시신을 묻고 난 후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곳이군; 여기라면 백동일도 마음에 들어 할 거다;" 노해광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에 그럴듯한 비석(碑石)이라도 세워야겠군; 조금 쓸쓸한 것 같구나;" 노해광의 얼굴에는 형용 하기 힘든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상 념에 잠긴 채 무덤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노해광이 돌연 피식 웃었다; "하긴;;; 그 녀석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을 거다; 오직 승부를 위해서 앞으로만 달려가던 놈이었으니까; 틀림없이 무덤 속에서도 칼을 갈고 뛰쳐 나올 기회만 노리고 있을 거야;" 노해광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러니 그놈 앞에서 나약한 꼴을 보일 수 없지; 후아;" 노해광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조금 전보다는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진산월을 돌아보 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내일 제대로 싸우려면 아무래도 좀더 자세히 .를 나누어야 할 것 같구나;" *** "내일 초가보에서 출정(出征)하는 인원은 대 략 사십 명 남짓이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요; 숫자는 비록 적지만 초가보의 실질적인 정예들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 어 화산파와도 정면으 로 자웅(雌雄)을 겨루어 볼 수 있는 가공할 전력(戰力)이오;" 노해광의 말을 듣는 중인들의 표정은 모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초가보에 서 내일 총공격을 해올 거라는 소식은 종남파의 모든 고수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전해 주었다; 며칠 전의 습격에서 채 부상이 낫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형편에서 초가보의 모든 힘이 투입되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은 여러모로 종남파에는 불리한 일이었다; 노해광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종남파 부근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 다; "그들은 모두 세 방향에서 포위망을 구축하여 접근해 올 텐데, 초가보의 오대호법 중 남아 있는 세 명과 하북십호가 조사전 후방을 맡고, 두 명의 공봉과 도패 좌린이 철영대를 이끌고 조양봉의 산길을 봉쇄할거요; 그리고 그들의 주력은 ;;;" 노해광의 손은 산문 입구에 고정되었다; "바로 이쪽으로 올 텐데, 초가보의 후원에 머물러 있는 빈객들이 총출동 한다고 하오;" 모두들 묵묵히 노해광이 가리키는 지도를 주 시하고 있었다; 노해광의 말대로라면 종남파로서는 퇴로(退路)가 원천 봉쇄된 상태에서 초가보의 정예들과 정면충돌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득 전풍개가 퉁명스런 음 성으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그 토록 소상하게 알고 있는 거냐?" 노해광은 그를 향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백동일이 정산을 통해 저에게 초가보의 공격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 쪽 구석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정산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백 공자께서 제게 노 공자께 전하라며 서신(書信)을 맡기 셨습니다; 그 서신 에 초가보에 대한 정보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정산의 두 눈이 빨갛게 변했다; "백 공자께선 겉으로는 저를 차갑게 대하셨지만, 그래도 종남에 대 한 충심 (忠心)을 간직하고 계셨던 게 분명합니다;;;" 정산의 두 눈에서는 금시라도 뜨거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풍개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 다; "이미 죽은 녀석 때문에 궁상떨 것 없다; 그놈이 진정으로 본파를 생각 했다면 그런 식으로 목숨을 내던질 게 아니라 본파를 위해서 힘을 더 했어야지; 다시 같은 놈;" 정산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붉게 상기 된 얼굴을 떨구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는 듯하자 노해광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무튼 덕 분에 상대의 전력(戰力)에 대해 소상하게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 입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어찌 대비해야 할지를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겁니다;" 그 말이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풍개는 더 이상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노해광은 다시 한차례 중인 들을 훑어보았다; "초가보의 전법(戰法)은 단순하오; 본파에서 외부 로 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 를 철저히 봉쇄하고, 자신들의 주력(主力)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와 우리를 철저히 분쇄하려는 것이오;" 노해광의 입에서 '본파' 와 '우 리' 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몇몇 사람은 그의 그런 모습에 다소 낯설어 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특별히 거부감 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오; 변수(變數)를 최대한 줄이고 본파를 철저히 궤멸시키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는 전술이오;" 노 해광은 말을 하면서 중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의외로 겁을 먹거나 의기소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 가득 맹렬한 투지를 끌어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노해광은 이들의 이런 모습이 단순한 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름대로의 자신감 때문인지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하나 일단 그들에게 싸우고자 하는 의 욕이 충만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들이 정공법(正攻法)을 택한 이상 우리의 선택도 그리 많지 않소;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두 세 가지 정도 의 대응책이 있을 것 같소;" 중인들 중 유난히 번쩍이는 외눈을 가진 중년인이 그에게 물어왔다; "세 가지 대응책이란 어떤 것입니까?" 노해광은 조금 전에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는 사손(師孫)뻘인 동중산임을 알고 있었다; 비천호리 동중산이라면 나이도 제법 먹었고 강호 에서의 명성도 상당한 인물이었지만, 배분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만큼 노해광의 입에서는 자연스런 하대가 흘러나왔다; "첫째는 우리도 정공법으로 그들에게 맞서 는 것이다; 우리의 힘을 분산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 정면돌파를 강행하자는 것이지; 이 방식은 성공하면 상대 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실패했을 때 는 우리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동중산은 침착한 음성으로 대 꾸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의 전력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둘째로는 본파의 지리상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매복과 암습으로 기병지계(奇兵之計) 를 펼치는 것이다; 이 방법에도 장점 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손실을 최소로 하고 적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칫하다가는 제 대로 싸워 보저 도 못하고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겠지요;" 노해광은 그의 외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세 번째는 상대의 주공이 아닌 한 쪽 방면 에 우리의 전력을 집중시켜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 또한 단숨에 그 방면의 상대을 궤멸시키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포위망에 제 발로 뛰어든 격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 중 가장 약한 방면이라면 세 명의 호법과 하북십호가 지키고 있는 후방 쪽일 텐데, 그들을 빠른 시간 내 에 제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 다;" "초가보를 상대하는 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이 세 번째 방법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진산월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 방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노해광이 눈을 슬쩍 치켜떴다; "마음에 들지 않 는다니?" "너무 수동적입니다; 결국 그 방법은 상대의 정면공격을 피해 도망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이번 싸움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본파가 멸문하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에 무슨 의미를 찾겠다는 거냐? 무.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자는 것이다;" "그들의 공 격을 피해 다니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본파를 공격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똑똑히 알게 해주어야겠습니다;" 노해광은 내심 어이가 없 었다; 진산월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자신감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초가보의 전력이 이토록 가공스러운데 살길을 모색하기도 바 쁜 와중에 무슨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말인가? 아마 사문의 어른인 전풍개가 없었다면 버럭 소리라도 질렀을지 몰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사람들 또한 진산월의 말에 동조한다는 표정들이었다; 우선 당장 전풍개가 먼저 어깨를 흔들며 웃는 것이었다; "흐흐;;; 옳은 말이다; 본파를 우습게 본 그놈들을 순순히 돌려 보낸대서야 말이 안 되지; 이번 에야말로 그놈들에게 지금까지 당한 모든 수모를 단단히 갚아 줘야겠다;" 전풍개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모두의 심정이 그 와 같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노해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당했으면서도 이 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사숙, 초가보의 호법과 공봉들은 당금 강호에서도 최고 수준의 고수들 입니다; 게다가 빈객들 중에는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자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자들과 정면으로 싸 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노해광의 걱정과는 달리 전풍개는 태연자약했다; "싸우 는 방법이야 장문인이 결정할 문제지; 다만 이대로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그놈들에게 반드시 본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노해광은 한숨부터 흘러나왔으나 억지로 눌러 참고는 진산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말한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 해 보아라;"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합 니다;" 뜻밖의 말에 강호의 경험이 누구보다도 풍부한 노해광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그들이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공 격 하는 겁니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그들은 아마 내일 새벽에 초가보를 출발하여 본파로 올 겁니다; 본파의 세 군데 출입구를 봉쇄하기로 계 획했으니 그들도 세 개의 무리 로 나뉘어 지겠지요; 미리 그들의 이동경로에 매복해 있다가 한 무리씩 제거한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노해광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하나 멍청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리 속에는 번개같이 빠른 생각이 치달려 가고 있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재 빠르게 진산월의 말을 검토해 보고는 그 계획이 터무니 없 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는 종남파 내에서 초가보의 공격을 처리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궁리를 해왔다; 자연히 모든 계획이 수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진산월의 계획은 그 발상부터 달랐다; 상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찾아가서 승부를 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공격적인 계획이며, 이행 여부에 따라서는 오히려 초가보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단순히 생존(生存)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勝利 )를 거둘 수도 있는 것이다; 동중산이 재빨리 탁자 앞으로 와서 또 다른 지도 하나를 펼쳤다 ; "이건 초가보의 인근 지역입니다; 그들이 본파로 올 수 있는 길은 모두 다섯 군데인데, 그중 두 곳은 서안 쪽으로 삥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나머지 세 군데의 길로 올 것이 분명 합니다;" 그 지도를 본 노해광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지도는 초가보와 그 주변에 대해 무척이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작은 샛길 하나, 심지어는 허름한 사당이나 버려진 흉가(凶家)까지도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노해광은 이들이 이미 오랫동안 초가보와의 일전(一戰)을 준비해 왔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동중 산은 초가보에서 나오는 붉은 색 선(線)으로 표시된 길을 가리켰다; "이 길로 아마도 그들의 주력이 지나갈 것입니다; 이쪽으로 오면 본파의 정문에 가장 빨리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옆의 길이 본파의 조양봉 쪽으로 오는 샛길이며, 가장 오른쪽이 본파의 조사전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장문인께선 먼저 어느 쪽 길을 치시겠습니까?"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가장 약한 곳을 먼저 친다;" 동중산도 그렇게 생각한 듯 이내 오른쪽 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게 합당한 순서겠지요; 그렇다면 이 쪽 길부터 순서대로 공격하 면 되겠군요; 이쪽 길의 매복은 소량산(小梁山) 부근이 좋을 듯 합니다;" 소량산은 산세가 험한데다 정상 부근에는 가파른 바위들로 이 루어진 지대가 있어서 잠복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이어 동중산은 두 번째 길을 따라 손가락을 이동시켰다; "두 번째 기습은;;; 태평곡(太平 谷) 일대가 괜찮을 듯 싶습니다;"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평곡은 계곡이 깊고 은밀하지;" "예; 그리고 세 번째로는;;;" "더 이상 은 필요 없다;" "예?" 동중산이 반문하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두 번째 기습이 성공하면 마지막 무리는 본산으로 와서 해결하도록 하자;" 동중산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들이 계획을 세우는 광경을 노해광은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은 절대 서두 르지도 않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실현 가능한 일을 최대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짜고 있었다; 언뜻 보거에는 매복 장소를 아무렇게나 선정한 것 같 아 도 오랜 세월 동안 종남산 일대를 헤집고 다녔던 노해광은 그들이 고른 장소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 '비천호리라고 하더니 정말 이름 그대로구나;;;' 동중산뿐 아니었다; 계획을 검토하고 보완하는 진산월의 모습은 평생을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 살아온 노강호(老江湖)에 못 지않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묵묵히 그 두 사람이 계획을 입안(立案)하고 추진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혹 낙일방이 몇 마디를 물었을 뿐, 아무도 그들의 계획에 반대 하거나 이견(異見)을 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는 굳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계획을 최종적으로 점검한 진산 월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상원건의 얼굴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상원건은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렸다; "행여 나보고 종남파 를 떠나라고 할 생각이라면 미리 정중하게 거절하겠소;" 진산월은 선수를 치는 상원건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상 대협께 어려운 부탁 을 드려야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말에 상원건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안 색이 한결 밝아졌다; "말씀하시오;" "현재 본파에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몇 명 머물러 있습니다; 내일 하루 만이라도 상 대협께선 그들을 지켜 주십시오;" 상원건은 처음에는 진 산월이 자신을 초가보와의 싸움에서 빠지게 하려고 핑계를 대는 것으로 알고 그의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하나 생각해 보니 현재 종남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중 무림인(武林人) 이 아닌 사람은 석지명과 그의 하인들을 포함하여 거의 칠팔 명이나 되었다; 내일 벌어질 초가보와의 결전에서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종남파에는 커다란 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자신의 딸 인 상소홍도 끼어 있지 않은가? 석지명이야 자신의 개인 보표가 있다고 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자칫 싸움의 와중에 생사(生死)의 위기에 처할지도 몰 랐다; 그들의 안전 을 책임지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시되는 일이었다; 상원건은 몇 번이나 생각을 거듭하고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소; 그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하겠소;"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원건이 맡은 일은 결코 수 월한 게 아니었다; 종남파에서 내일의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은 유소응과 응계성을 제외하더라도 장승표와 정산, 갈 노인, 그리고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송천기 등이 있다; 거기에 상소홍과 석지명 일행까지 합치면 한 사람이 보호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었다; 이들을 완벽하게 보호한다는 것은 오히려 절정고수들과 의 싸움보다 더욱 힘들고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처음에 어려운 부탁이라고 한 진산월의 말은 단순히 의례적인 겉치레는 아니었던 것이다; 진산월은 찬찬히 주위 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주춤거리고 있는 지 일환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일환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진 장문인, 나는 종남파의 소속이 아 니니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빠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평상시라면 아무리 지일환의 낯짝이 두껍다 해도 이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는 없었을 텐데, 사정이 워낙 다급하다 보니 염치불구하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중인들의 어이없어하는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지일환 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나는 무공도 보잘 것 없고 별다른 장기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내일과 같은 싸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오; 오히려 내가 빠져 주는 게 진 장문 인을 도와주는 일이 될 거요;" 진산월은 빙 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은 이제 그만 본파를 떠나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소; 늦기 전에 어서 가 보시 오;" 그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지일환은 멍하니 진산월을 쳐다보더니 이내 멎쩍은 웃음을 흘렸다; "헤헤;;; 과연 진 장문인의 마음은 하해(河海)와 같소이다; 진 장 문인과 종남파의 무운(武運)을 빌겠소;" 지일환은 정중하게 포권을 하더니 그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자신을 제지할 것이 두려운지 황급히 몸을 돌려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진산월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동중산을 돌아보았다; "그가 초가보로 갈 것 같으냐?" 동중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그는 이씨세가에 쫓기는 신세라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의탁할 곳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본파에 더 머무를 수 없는 형편 이라면 당연히 초가보로 가겠지요; 더구나 초가 보에서 반겨줄 좋은 정보까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초가보에서 그의 말을 믿어 줄까?" "믿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노해광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들은 그자 가 배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자 앞에서 그런 중대한 계획을 의논했단 말이냐?" "지일환은 눈치가 빠르고 신법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만일 일부러 그를 배제했다면 숨어서 우리의 말을 엿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를 이 자리에 끼워 넣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노해광은 아직도 영문을 몰라 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지금까 지 짜놓은 계획은 모두 엉터리란 말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고 듣지 않았느냐? 그자가 네 짐작대로 초가보로 간 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 아가는 게 아니냐?" 노해광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진산월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매복할 장소만 바꾸면 되는 일입니다;" "뭐라고?" "지일환이 초가보로 가서 사정을 밝힌다 해 도 초가보에서는 본파를 공격 할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소량산과 태평곡에서 우리를 제거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곳에서 그들을 기습한다면 그들 의 의 표를 찌를 수 있습니다;" "만일 지일환이 초가보로 가지 않 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당초의 계획대로 매복 작전을 벌이는 것이니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기습하는 장소 만 바뀌었을 뿐이니까 말입니다;" 그제서야 노해광은 진산월의 계획이 모두 치밀한 궁리 끝에 나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초가보의 공격을 알려 준 것은 불과 반시진 전의 일 이었 다; 그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매복 작전을 생각했을 뿐 아니라 지일환의 배반까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해광은 새삼 스런 눈으로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진산월의 얼굴은 해골을 연상케 할 만큼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눈빛은 고적했으며, 음성은 나직했다; 강호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 는 무서운 검객 같은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 이제는 노해광도 그의 그 조용한 듯한 모습 속에 얼마나 뛰어난 두뇌가 존재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진산월 의 진짜 무서운 점은 그의 무공이 아니라 머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산월은 동중산을 향해 물었다; " 소량산 대신에 적당한 곳을 알고 있나?" 동 중산은 이미 생각해 놓은 곳이 있는 듯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고관담(高冠潭) 부근이 좋을 듯 합니다;" 동중산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침 그곳에 잠복해 있기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고관담은 동중산이 초가보의 습격을 피 해 상당 기간 동안 숨어 지내던 곳으로, 그 일대의 지리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훤했다; 특히 그는 고관담의 동굴 지대에 몇 개의 은밀한 은신처를 만들어 놓았 기 때문에 그 은신처들을 이용하면 아주 효과적인 기습을 할 수가 있었다; 진산월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 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새벽에 고관담으로 간 다;" 진산월이 그 말만을 하고 몸을 일으킬 듯 하자 노해광이 다시 물었다; "태평곡을 대신할 장소도 물색해야 하지 않느냐?" "그 건 필요 없습니 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고관담에서 초가보의 선봉 부대를 제거한 다음 우리는 초가보로 향합니다;" 노해광은 흠칫 놀랐다; "초가보 의 본진으로 말이냐?" "그렇 습니다; 초가보의 고수들이 본파에 도착할 때, 우리는 초가보를 공격 합니다;"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진산월에게 고정되었 다; 진산월의 음성은 조용했으나 중인들의 귀에는 다른 어떤 음성보다 크고 강렬하게 들렸다; "초가보가 살아남을지 본파가 살아남을지 내일이면 판가름납니다; 다 만 싸움 장소가 본파가 되는 것은 사양합니다; 여기서 흘린 피는 이미 충분 하고도 남으니까 말입니다;" 제138장; 장부지망(丈夫之望) 그날 저녁; 종남파에는 때아 닌 연회가 벌어졌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연회는 아니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일 초가보와의 숙명의 결전을 앞 두고 연회를 벌인다는 것은 언뜻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진산월은 연회를 지시했으 며, 모두들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진산월이 굳이 오늘 저녁에 연회 를 연 것에는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뜻이 있었다; 우선은 과거의 일로 노해광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 는 종남파의 여러 제자들과 그와의 소원한 관계를 풀어 줄 기회를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만들어 주려는 심산이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쳤건 종남파의 선배이며 사숙인 노해광이 다시 종남파로 돌아온 것 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그의 귀환을 탐 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진산월은 떠났던 사람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초 가보와의 격전을 앞두고 문하제자들 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무리 비장한 결심을 하고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고 해도 그런 격전을 앞에 두고 태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일 연회라도 열지 않았다면 종남파의 제자들에게 오늘 저녁은 생애(生涯) 에 가장 긴 밤이 되었을 것이다; 웃고 떠드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했고 , 밝은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내일의 일을 위해서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풍성하게 준비했던 음식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다들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특히 진산월이 누구보다도 많 이 먹었다; 앙상하게 마른 그의 몸을 생각해 본다면 그런 음식들이 다 어디로 들어갈지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낙일방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방취아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있어요?" 낙일방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진산월을 턱으로 가리켰다; "장문사형 말이야; 꼭 예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 아?" 방취아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정말 그렇네; 다시 돌아온 후로는 별로 많이 드시는 걸 못 봤는데 오늘은 정말 엄청나게 드시네; 식욕이 돌아온 건 가?" "그런가 봐; 장문사형의 저런 모습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군;" "그래도 이건 꼭 먹어야 돼요; 사형 주려고 내가 장 대가(張大哥)를 꼬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요?" 그녀가 잘 구운 닭다리를 내밀자 낙일방은 주저하지 않고 받아서 뜯 어 먹었다; "맛있군; 장문사형이 만들었던 남전계퇴 만큼은 못해도 아주 좋은 솜씨야; 그런데 그 장승표란 사람은 원래 요리사였어? 생긴 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방취아가 나직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호호;;; 그런 얼굴의 요리사가 어디 있겠어요? 원래 사냥꾼인데 혼자 살 아서 그런지 요리 솜씨가 좋아서 주방 일을 맡고 있는 거예요;" "그렇군; 동 사질과 죽이 잘 맞는 걸 보니 두 사람이 원래 친구였나 보저?" "아니요; 동 사질을 만나기 전에 이미 장문사형과 잘 아는 사이였대요; 아무튼 생긴 건 그래도 성격이 화통해서 다들 좋아해요; 툭하면 술 먹자고 아무나 붙잡고 피곤하게 하는 것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죠;" 낙일방이 어깨를 움츠렸다; "술고래라면 조심해야겠군;" "왜요? 사형도 술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람 아니에요?" 낙일방의 얼굴에 한 줄기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는 예전처럼 마시지 않을 생각이야;" 방취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요?" "목표로 한 일을 이루기 전까지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맹세했거든;" "맹세라니? 누구와 말이에 요?" "나 자신과 말이야;" 방취아는 새삼스런 눈으 로 낙일방을 쳐다보았다; "목표가 무언데요?" 낙일방은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어른스럽고 듬직해 보여서 방취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몇 달 사이에 낙일방은 부쩍 성장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외모나 행동거지만이 아니라 기질 자체도 변한 것 같았다; 방취아는 그 의 그런 모습에 가 슴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예전의 철없고 순진한 모습이 그립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종남파는 발전하고 있고 문하제자들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럴수 록 과거와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것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서문연상과 전흠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사숙이면 사숙답게 굴어요; 쩨쩨하게 굴 지 말고;" 서문연상의 핀잔에 전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뭐라고? 내가 쩨쩨하다고?" 서문연상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 그럼 아니란 말이에요? 무공 한 수 가르쳐 달랬더니 갖은 핑계를 대고 이리저리 빼고 있으니 그게 쩨쩨한 게 아니고 뭐예요?" 전흠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동안 멀 거니 서문연상을 쳐다보더니 얼굴이 점차로 붉게 상기되었 다; '이 계집애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군;' 전흠이 막 발작하려 할 때, 전풍개의 음 성이 들려왔다; "너희들은 어째서 만나기만 하면 싸우려고 드는 거냐?" 했습니다. 본 드러곤 하나만 뺀다면 놈은 전력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군요." "그렇지.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부터 우린 한데 뭉쳐 다니며 인간들의 주요 거점을 차 례차례 박살낼 것이니까……. 가장 먼저 없앨 곳은 감히 인간과 손을 잡은 엘푸 부족이다. 놈들에게 인간과 손을 잡은 것이 예초부터 잘못된 결정이란 사술을 뼈저리게 보여 줄 생 각이니까……" 베르커 수는 조용히 마나를 재배열했다. 죽은 뮤시우스의 시체를 태워버릴 생각에서였다. 드러곤은 위대한 종족이다. 그러므로 죽은 시체라도 몬스터 따위에 의해 훼 손되는 것 은 막아야 했다. 또한 뮤시우스의 시체가 본 드러곤이 되어 자신들에게 덤비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생각을 마친 베르커수는 묵묵히 파이어 볼을 전개했다. 푸학. 뮤시우스의 시체는 덧없이 불타올랐다. 드러곤 스케일에 싸여 있는 몸뚱이였지만 베르커수의 파이어 볼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세 드러곤은 동료의 시체 가 타오르 는 장면을 물끄 러미 쳐다보았고 있었다. 동료를 죽인 인간에 대한 복수심을 묵묵히 불태우며……. 뮤시우스의 장례를 치른 세 드러곤은 곧장 엘 푸의 숲을 향해 날아갔다. 인간을 도운 엘푸 부족에 대한 응징이 그들의 주된 목적이었다. 엘푸의 숲 상공에 도착한 드러곤들은 지 체 없이 마나를 재배열했다. 드러곤 의 분노를 알았는지 엘푸의 숲은 부르르 떨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베르커수의 입에서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증스러운 엘푸들이여. 이 제부터 너희들의 숲에 드러곤의 분노가 작렬할 것이다. 이것은 너희들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응징일지어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르르릉.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구름 한 점 없던 쾌청한 하 늘이 느닷없이 검게 물든 것이다. 잠시 후 뭔가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 그것은 바러 유성의 비(雨)였다. 드러곤들은 엘푸의 숲을 목표로 미티어 스웜을 전개한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유성들이 엘푸의 숲에 사정없이 내려꽂히고 있었다. 연이은 유성의 폭격에 가지가 잘려나가고 잎이 불타올랐다. 오래 묵은 거목들도 유성우의 습격에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있었다. 미티어 스웜은 한참 동안 계속 되었다. 드러곤들은 엘푸의 숲에 있는 나무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유성공격을 퍼부었다. 마 치 숲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겠 다는 듯 한 차례 유 성우가 지나가면 드러곤들은 또 다른 유성우를 소환해서 숲을 불살랐다. 꼬박 한 나절 동안 미티어 스웜을 시전한 세 드러 전흠은 움찔하여 급히 전풍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 그가 무어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서문연상이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전풍개를 향해 쪼르르 다가가는 것이었다; "조사님, 전 사숙께서 소녀를 너무 핍박하고 있사옵니다;" "핍박하다니?" 서문연상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전 사숙이 연무장 에 서 검술을 수련하고 있길래 제가 잠시 구경을 했사옵니다; 그런데 전 사숙의 검술이 어찌나 현란하고 위력적 이던지 제가 배우고 싶은 마음에 사숙께 정중히 지도를 요청했습니 다;" 옆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전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정중히라고? 쳇; 두 번 정중했다가는 사람을 아예 잡겠군 그래;" 서문연상은 그에게는 시 선조차 주지 않은 채 전풍개에게로 바짝 다가오며 계속 조잘거렸다; "제자는 늦게 본파에 입문하여 아직 제대로 본파의 무공 도 전수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사숙께 처음으로 도움을 청한 것인데;;; 전 사숙 께서는 소녀의 요청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런 무공은 익 힐 필요가 없다고;;;" "아니, 내가 언제;;;" 전흠은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전풍개가 힐끔 쳐다보는 바람에 황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전풍개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더니 물었다; "네가 펼친 것이 무엇이었느냐?" 전흠은 공연히 불 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성 라검법의 후반부 여섯 초식이었습니다;" 성라검법은 모두 아이 초로 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후반부의 여섯 초식은 절 초(絶招) 중의 절초로 강호의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무공이었다; 전흠은 어려서부터 전풍개에게 체계적으로 성라검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 수준이 능히 절정에 이르러 있었 다; 그러니 그가 성라검법을 시전하는 것을 본 서문연상이 한눈에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풍개는 한숨을 내쉬더니 서문연상을 돌아보았다; "흠아가 네게 가르쳐 주고 싶어 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상황이구나; 너는 아직 본파의 무공에 입문(入門)하지도 않았지 않느냐?" 서문연상은 움찔하다가 조금 풀이 죽은 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무도 제 게 아려 주지 않아서;;;" "성라검법을 익히려면 먼저 본파 무공의 기초가 되는 천하삼십육검과 장괘장권구식을 완벽하게 터득해야 한다;" "그러면 익힐 수 있나요?" "그 다음에는 유운검법 과 월녀검법 중 하나를 택해서 익혀야 한다; 너는 여자이니 월녀검법이 좋을 것이다; 성라검법은 그 다음에나 도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문연상의 고운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 다; 천하삼십육검이나 장괘장권구식은 워낙에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는 무공이어서 별로 익히기 어 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익혀야만 비로소 성라 검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의기소침해진 것이다; 사실 성라검법은 삼락검에 못지않은 상승절학(上乘絶學)이어서 탄탄한 기초가 없으면 도저히 익힐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사 정을 조사님처럼 알려 주면 되는데, 무. 안 된다고 윽박지르 기만 하니;;;"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전풍개가 전흠을 향해 사납게 눈을 부라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 원래 바닷바람을 쐬고 자란 놈은 말투가 거 칠고 투박한 법이다; 너는 이번 일이 끝나면 따로 노부를 찾아오너라;" 서문연상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전풍개를 쳐 다보았다; "예? 조사 님을요?" 하나 전풍개는 그 말만을 내뱉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서문연상은 전풍개가 자신에게 직접 사사(師事)하겠다는 것임을 알아 차리고 희 희 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회로애락(會怒哀樂)이 변화무쌍한 그녀는 이내 기분이 좋아져서 생글생글 웃으며 애꿎게 옆에 앉아 있는 유소응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꼬마 사형, 많이 먹었어?" 유소응은 막 전병(煎餠) 하나를 집어먹다 하마터면 사레가 걸릴 뻔했다; "쿡;;; 예;" 그녀는 짓궂은 표정으로 유소응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 같은 사매가 생겨서 기분 좋지? 얼마 후면 내 생일인데 꼬마 사형은 이 귀엽고 예쁜 사매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 거야?" 유소응이 아무 리 과묵하고 침착하다고 해도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었다; 그녀가 옆에 바짝 달라붙어 아양을 떨자 절로 당황하여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이 어찌 나 우스꽝스러운지 지켜보고 있던 장승표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 오늘 애늙은이가 아주 호되게 당하는구나; 그러기에 이 아저씨가 항상 어린애 는 어린애다워야 한다고 하지 않더냐?" 유소응의 작은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서문연상은 장 승표를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남의 얘기 할 게 아니에 요; 어린애가 어린애다워야 한다면 어른은 어른다워야죠;" 장승표는 웃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어른답지 못하단 말이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장승표는 순진한 표정으로 털북숭이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고 큰 눈을 껌벅껌벅거리더니 이내 히죽 웃었다; "아무 리 생각 해 봐도 난 어른이다; 열여섯 살에 엄동설한에 삼 일 동안 늑대 사냥을 갔다온 후 나는 어른이 되었지;" 서문연상은 그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아미를 찡그렸다; "늑대를 잡 았다고 어른이 된단 말이에요?" 장승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었다; "사냥꾼의 세계는 그렇다; 맹수를 잡는 순간, 아이는 어른 이 되는 거지;" "그런 법이 어딨어요?" 장승표의 얼굴이 돌연 엄숙해졌다; "그것말고도 아이가 어른이 되는 법이 또 하나 있지;" 서문연상은 호기심이 동해 급히 물었다; "그게 뭔데요?" "여자와 자 보는 것이다; 여자를 알게 되면 사내아이는 금세 어른이 되지;" "뭐라고? 이런 엉터 리; 주정뱅이인 줄만 알았더니 순 색골이잖아;" 그녀가 얼굴이 빨개져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에 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장승표가 낄낄거리며 자리를 피하자 그녀가 술병을 든 채로 그 뒤를 쫓아갔다; "거기 서요, 이 색골; 어린애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그 말버릇을 고쳐 주고 말 테예요 ;" "헤헤;;; 내가 틀린 말을 했느냐? 그렇다면 이번에는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는 법을 알려 줄 테니 잘 들어라; 원래 여자애가 여인이 되려면;;;" "닥치지 못해요?"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노해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진산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엉망인 아이로군; 어디서 저런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인 거냐?" 그런데 진산월 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녀는 잘 적응하고 있군요;" 노해광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치켜떴다; "뭐라고? 사문의 어 른들 앞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게 잘하는 거라고?" "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보십니까?" ";;;;" "오늘 이 자리는 본파의 존망 (存亡)이 달린 결전을 앞두고 지나친 긴장과 불안으로 초조해 있을 제자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 고 만든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공연히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거 나 규범에 얽매여 행동 에 제약을 받는다면 차라리 열지 않느니만 못할 겁니다;" 노해광은 여전히 쉽게 납득하 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저 아이가 네 의중을 알고 일부러 저런 행동을 했단 말이냐?"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단지 그녀도 좌중의 분위기가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행동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녀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의를 차려야 할 자리라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정중한 태도를 보였을 겁 니다;" 노해광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서문연상에게로 향했다; 그때 서문연상은 필사의 추적 끝에 장승표를 붙잡고 그의 이마에 술병을 붓고 있는 있는 중이었다; 장 승표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통에 장내는 그야말로 저잣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저 아이가 예의를 지킬 줄 안다고?" "그녀는 예의범절 이라면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배운 사람입니다; 검보가 그렇게 허술히 사람을 키우는 곳은 아니지요; 그녀는 본파의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에 노해광은 흠칫 놀랐다; "저 아이가 검보의 여식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노해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서문연상을 지켜보더니 무언가를 알아차 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얼마 전에 실종되었다던 서문장천의 딸이 바로 저 아이로군;" "맞습니다;" 노해광은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되자 오 히려 더욱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보는 규율이 추상(秋霜)과 같이 엄하고 가풍(家風)이 엄격하다고 하는데 저 아이는 전혀 그런 곳에서 자란 여 자 같지 않구나;" "타고난 천성(天性)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그녀 덕분에 본파의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아 저는 충분히 만족 하고 있습니다;" 그때 동중산이 진산월에게 다가왔다; "이쯤에서 자리를 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비록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 만든 자리였으나 지나치게 되면 자칫 당초의 각오가 흐트러질 수도 있었다; 동중산은 적당한 기회에 마무리를 지으려 했고, 진산월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선뜻 승낙을 한 것이 다; 노해광은 두 사람의 호 흡이 척척 들어맞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동중산을 가만히 주시했다; 동중산에 대한 강호의 소문은 그도 익히 듣고 있었다; 하나 그에 대 한 강호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비천호리는 심기가 깊고 수단이 탁월하나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남 의 뒤통수를 치고 거짓과 협잡을 서슴없이 자행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만나 본 동중산은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제법 준수한 얼굴은 한쪽 눈이 없어지는 바람에 거칠고 투박스럽게 변했지만, 그는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고, 누구보다도 현명했으며, 사태 파악이 빠르고 민첩했다; 빈틈없이 진산월 을 보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천호리에 대한 강호의 소문 과 너무도 달라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동중산에 대한 진산월의 믿음도 확실해 보였다; 그들은 굳이 세세한 속마음을 밝히지 않아도 서로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지일환을 내보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솔직히 노해광은 그런 두 사람의 사이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과거의 자신에 대해 후회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자신도 그럴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동중산처럼 임장홍의 옆에서 그와 호흡을 나누며 힘을 합쳐 나갈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 이었고, 그럴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오 히려 속 좁은 질투와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그를 배척했었다; 그때 임장홍이 얼마나 자신의 도움을 바랐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를 철저히 외면했었다; 문득 멱살이 잡힌 채 쓸쓸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임장홍의 모습의 뇌리에 떠올랐다; "제길;;;" 노해광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 어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 이켰다; 마침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전풍개가 퉁명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무엇이 또 불만이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노해광이 황급히 소맷자락 으 로 입술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으나, 전풍개는 미심쩍은 얼굴로 한동안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풍개가 기억하는 과거의 노해광은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 고 잔머리가 밝 은 청년이었다; 그리 특출난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수단이 좋고 의리(義理)도 있어서 따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장문인감은 아니었어 도 훌륭한 참모감으로 충분 히 문파의 기둥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노해광이 이미 오래 전에 종남파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풍개는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 노해광은 야심(野心)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임장홍과의 사이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임장홍을 잘 보필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노해광이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갓 장문인이 된 나이 어린 사질을 협박하여 주루를 네 개나 강탈해 갔다는 것은 선뜻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만큼 전풍개가 느끼는 배신감 은 클 수밖에 없었다; 아마 백동일의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만 아니었다면 노해광을 이렇듯 선뜻 다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전풍개는 노해광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지는 않았다; 한 번 떠난 사람은 언제든지 다 시 떠날 수 있다; 더구나 내일은 종남파의 사활(死活)이 걸린 중대한 결전이 벌어지는 날이 아닌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노해광이 혼자만 살겠다고 다시 종남파를 등질 가 능성은 언제든지 있는 것이다; '내일 네놈을 지켜보겠다; 만약 다시 또 엉뚱한 생각을 품는다면 내 손으로 직접 너를 처단하고야 말 것이다;' 전풍개는 인상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노해광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이제는 들어가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었다; 전풍개는 운공(運功)으로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다; 그 런 다음 내일 하루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힘을 발휘하여 종남파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다; 생사(生死)는 이미 도외시한 지 오래였다; 종남파가 아직 건재하며, 그 깃발이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만천하(滿天下)에 알릴 수만 있 다면 자신의 늙은 목숨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밤, 한 사람이 비밀리에 진산월을 찾아왔다; 진산월은 그와 한참 동안 밀담(密談)을 나누었으며, 그가 떠 난 후에 조용히 동중산을 불렀다;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갈 노인은 눈살을 잔뜩 찡그렸다; "누구냐?" 문밖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 리지 않았다; 갈 노인이 침상에서 일어나 다시 물으려 할 때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을 보자 갈 노인은 의외인듯 눈을 번쩍 빛냈다; "네놈이 웬 일 이냐?" 갈 노인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쯧;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긴장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 단 앉거라; 다리도 불편한 놈이 휘청거리며 서 있는 모습에 나까지 공연히 불안해 지니 말이다;" 야심한 밤에 갈 노인을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응계성이었다; 응계성은 다리의 치료를 받은 지가 얼마 되 지 않아서 걷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갈 노인의 방까지 오는 동안 이미 지쳤는지 응계 성의 이마는 흐르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상반신 도 흠뻑 젖어 있었다; 응계성은 연신 비틀거리면서도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침상 앞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응계성의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관자놀이 부근에는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갈 노인은 응계성이 이 를 악문 채로 힘겹게 의자에 앉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물었다; "그래, 제대 로 걷지도 못하는 놈이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아왔느냐?" 응계성은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갈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부탁?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네가 몸을 함부로 굴리지만 않는 다면 너는 한 달 내로 예전처럼 뛰어다닐 수 있다;" "제 다리를 고쳐 주신 것에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갈 노인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네 공치사를 듣자고 한 일이 아니다; 다 그 망할 놈의 장문인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조르는 바람에 한 일이니 너는 신경 쓸 거 없다;" 이어 갈 노인은 응계성을 슬쩍 흘겨보았다; "부탁이란 게 뭐냐? 다리 고치는 거 말고도 또 노부에게 원하는 게 있단 말이냐?" 웬일인지 응계성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 머뭇거리다가 힘 겹게 입을 열었다 ; "갈 노인께서는 현세에 보거 드문 일대신의(一大神醫)라고 들었습니다;" 갈 노인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어느 놈이 쓸데없 는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사람 잘못 봤다; 노부는 그저 내 한 몸이나 간수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이다;" "갈 노인의 성(性)이 원래 제갈(諸葛) 이며, 본신(本身)은 무림신의(武林神醫) 로 알려진 신수무정 제 갈;;;" "닥쳐라, 이놈;" 응계성이 말을 맺기도 전에 갈 노인이 버럭 노성을 질렀다; 응 계성은 움찔하여 급히 입을 다물었다; 갈 노인의 얼굴은 철갑을 씌운 듯이 딱딱하게 굳어졌 고, 두 눈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누구냐? 어떤 놈 이 그런 헛소리를 지껄인 거냐?" 응계성은 갈 노인이 설마 이리도 펄펄 뛸 줄은 몰랐는지 다소 당혹스런 표정 이었다; "사조께서;;;" 사조라는 말에 금 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갈 노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역시 나를 알아봤군; 하긴;;; 처음 봤을 때 못 알아본 게 신기한 일이었지;' 갈 노인의 눈가에 착잡한 빛이 떠올랐다; 갈 노인의 정체는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 실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신수무정 제갈외였다; 제갈외는 아무리 심한 부상을 당한 환자라도 숨이 붙어 있기 만 하면 살려 낼 수 있는 당대(當代) 제일의 신의이며, 오랫동안 무림에서 의술로 명성을 떨쳐 온 제갈세가(諸葛世家)의 당대 가주였다; 의술로 그와 견줄 만한 사 람은 오직 철면군자 노방 뿐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었다; 하나 웬만해서는 치료받기가 힘들고, 최근에는 아예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어 버려 그의 치료를 받기 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원래 제갈외는 종남파의 전전대 장문인인 하원지와 적지 않은 친분이 있었다; 하원지보다 나이가 십여 살 어렸으나, 나이를 떠나 절친한 친구 사이로 두터운 정분을 유지했었다; 하나 하원지가 죽고 나자 하원지 외에는 종남파에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던 제갈외는 곧 종남 파와 소원(疏遠)한 사이 가 되고 말았다; 몇 년 전에 제갈외는 자신의 목숨보다 아끼던 친손자를 잃고 크게 낙담 하여 제갈세가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그는 과거에 하 원지와 사귀었던 추억을 되살려 종남 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십왕촌에 거처를 정했다; 그곳에서 당시의 좋았던 기억을 곱시으며 남은 여생(餘生)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손자를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이었다; 하나 우연히 장승표로 인해 다시 종남파와 연(緣)을 맺게 되었고, 결국 죽기 전에는 결코 나오지 않으 려 했던 무림의 일에 다시 뛰어들게 되었으니 세상일이란 정 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갈외가 진산월의 거듭된 부탁을 투덜거리면서도 모두 들어주었던 것도 하원지와 의 오래된 친분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하원지의 사제인 질 풍검 전풍개를 제갈외가 모를 리 없었다; 하나 당시에도 그저 인사만 하는 사이였고, 전풍개의 표독할 정도로 차가운 성격이 평소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별 다른 친분 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종남파에서 이십 년 만에 전풍개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제갈외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풍개는 제갈외를 쉽게 알아보저 못 했다; 그동안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데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전풍개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 지금 응계성의 말을 듣고 보니 전풍개는 이미 제갈외 의 정체를 파악 하고 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은 모양이 었다; 제갈외의 얼굴에 우울한 그림자가 가득 어렸다; 친손자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이름까지 바꾸고 자 신을 잊은 채 살려 했건만, 그것마저 실패해 버렸다; 결국 조용히 초야(草野)에 묻혀 지내겠다는 꿈은 깨어졌고, 자신은 어떻게든 다시 강호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후우;;;" 제 갈외는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만사불의(萬事不意)라더니 하늘의 뜻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나 보구나;;; 피한다고 없어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겠 지; 그래 , 노부가 바로 제갈외다; 너는 노부에게 무엇을 부탁하려 하느냐?" 응계성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제갈외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일 제가 싸울 수 있게 해주 십시오;" 제갈외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뭐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응계성의 음성에는 절박한 빛이 담겨 있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저 도 압니다; 하지만 다들 목숨을 내걸고 본파를 지키려는 마당에 혼자만 침대에 누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 하루만 이 라도 제가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허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제갈외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정색을 하고 매서운 눈으로 응계 성을 쏘아보았다; "네놈은 노부가 신선(神仙)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너는 지금 부러진 다리를 겨우 이어놓은 상태다; 싸움은커녕 조금만 심하게 움직 여 도 다리가 다시 부러져 아예 영영 붙지도 못하게 돼 버릴 거다;" "상관없습니다; 내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제갈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 부의 말을 뭘로 듣는 거냐? 네 다리를 이어 붙인 것도 노부가 아니 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한계다; 지금의 너는 남 과 싸우기는 고사하고 적어도 열흘 은 꼼짝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단 말이다;" 하나 응계성의 태도는 단호했다; "열흘이 아니라 하루만 누워 있어도 저는 미쳐 버릴 겁니다; 절름발이가 되어도 좋으니 사형제들과 같이 싸우게 해주십시오; 그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안 된다;" "제갈 노인;;;" 제갈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음성 을 한결 누그러뜨렸다; "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다리 수술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놈을 무슨 수로 남과 싸울 수 있게 만든단 말이 냐? 더구나 상대는 초가보의 일급 고수들이 아니냐? 네가 그 싸움에 억지로 끼어들다가는 오히려 종남파에 해(害)만 끼치게 될 것이다;" 응계성은 입술을 굳게 다 문 채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 눈길이 너무 사나워서 제갈외는 가슴 한구석이 섬뜩해졌다; 응계성은 한참 동안이나 천장을 응시하고 있더니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제갈세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희귀한 비방(秘方)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중에서도 특히 '진귀토(盡歸土)' 라는 비방은 곧 죽을 사람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희대(稀代)의 비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응계성 의 입에서 비방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제갈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진 귀토' 라는 말에는 아예 사색이 되어 버렸다; 그는 무서운 눈으로 응계성을 쏘아보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 다; "네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확실히 본가에는 그런 비방이 있다; 하지만 네놈은 왜 그 비방에 '진귀토' 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 '진귀토' 는 사람의 체내에 있는 잠력(潛力)을 격발시켜 일시적으로나마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그것이라면 아마도 너를 예전처럼 뛸 수 있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탁 월한 효능만 큼이나 치명적인 후유증이 있다;" ";;;;" " '진귀토' 란 곧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라는 뜻이다; 격발된 잠력이 모두 소비하고 나면 전신의 대 사(代謝) 능력이 떨어 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과거에 본가에서는 이 비법을 세 사람에게 시술(施術) 했는데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그들은 비록 죽음 직전 에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벌었지만 , 잠력이 떨어지자 체내의 기혈(氣血)이 역류(逆流)하여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 뒤로 본가에서는 더 이상 이 비법을 시 전하지 않기로 했다;" 제갈외는 응계성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자 한자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죽음을 부르는 비법이다; 네 다리는 열흘 후면 분명히 낫는다; 한때의 충동을 못 이겨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하겠 느냐? 아니면 순간의 굴욕을 참고 후일 더욱 큰 뜻을 펼치겠느냐?" 응계성은 돌연 어깨를 들썩이 며 웃었다; "하하하;;;" 난데없는 그의 웃음에 놀란 제갈외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 보자 응계성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제갈 노인, 아니 제갈 선 배; 선배도 강호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니 알 겁니다; 강호에서는 때로는 목숨을 내걸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응계성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박박 깎은 머리에 크고 작은 흉터로 뒤덮여 거칠고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웃음만큼은 왠지 흥겨워 보였다; "난 지금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 내던질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문파, 내가 좋아하는 이상(理想)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질 기 회가 온 겁니다; 이런 날 , 이런 때 꽁무니를 뺀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저주하며 살게 될 겁니다;" ";;;;" "후유증? 그런 건 내게는 상처에 앉은 딱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나이 는 인생에 딱 한 번 타오르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사나이랍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말입니다;" 제갈외는 웃고 있는 응계성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러다가 돌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들 종남파의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군; 목숨을 버리는 걸 너무 아무렇 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 아; 오늘 낮에 찾아왔던 그자도 죽고 싶 어 환장 한 사람 같았어; 대체 무엇이 자네들로 하여금 그렇게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도록 하는 건가?" 이번에는 응계성 이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문파의 재건이 그렇게 귀중한 건가? 자네들같이 전도가 양양하고 앞길이 구만 리(九萬里) 같은 청년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던져 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왜 자네들은 그토록 위험한 줄타기를 하려 는 건가?" 제갈외는 다시 탄식을 토해냈다; "일생에 한 번 타오르겠다는 자네의 의지(意志)는 정말 존중하는 바일세; 하지만 타오를 수 있는 기회가 이번 한 번 뿐이라고는 생각지 말아 주게;" 응계성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타오를 수 있 는 기회는 내가 정합니다;" "하지만 목숨이란;;;" "누구나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는 법입니다, 제갈 선배;" 그 말에 제갈 외는 입을 다물었다 ; 응계성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제갈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응계성의 다부진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 고 그 얼 굴에서 후회나 미련 따위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응계성 또한 입을 굳게 다문 채 피하지 않고 제갈외의 시선을 받았다; 제갈외는 문득 과거의 '진귀토' 를 시 술 받았던 세 사람이 생각났다; 당시 제갈외는 최악의 상황을 숨기지 않고 알려 주었다; 자연히 그들도 모두 시술 후에는 자신들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시술을 받았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후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제갈외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왜 그들은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시술을 받고 기꺼이 죽어갔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人生)을 자기 스스로가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 니 후회나 미련 따위가 있을 리 없었 다; 한참 후에 제갈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시진 후에 시술을 시작하겠네; 서너 시진은 족히 걸릴 테니 미리 마음의 준 비를 단단히 해두게;" 제139장; 심야소사(深夜小事) 밤이 깊었다; 두 남녀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남자는 그윽한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오늘 당 신은 너무 아름답군;" 여인은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평소에는 예쁘지 않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남자, 소지산은 따라 웃으며 방취아의 탐스런 볼 을 슬쩍 어루만졌다; "예전에는 가끔 사매가 너무 얄밉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내가 언제요?" "그 러니까 가끔, 아주 가끔;;;" 방취 아는 밉지 않게 그를 흘겨보았다; "당신이야말로 무척이나 심술 맞은 사람이었다는 거 알아요?" 소지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고개를 갸웃거 렸다; "그런 적이 있었나?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군;" "정말이에요;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몸은 잘 씻지도 않아서 늘 어깨에 비듬이 수북하게 내려 앉아 있고, 가끔씩 한 마디 할 때마다 사람 속을 은근히 뒤집어 놓기도 하고;;; 아무튼 정말 심술 맞고 못된 사람이 었어요;" "그랬었나?" "그렇다 니까요; 당신은 나 만나서 사람 된 줄 알아요;" 소지산 은 빙그레 웃었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군; 역시 나는 운(運)이 좋은 사람이야;" "나 도 운이 좋은 여자예요;" "왜?" 그를 쳐다보는 방취아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영롱하게 반짝였다; "당신처럼 심술 맞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서요;" "좋은 사람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말이로군;"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소지산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방취 아는 한 마리 어린 새처럼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소지산은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상대방의 체온을 느낀 채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방취아가 다시 조 그맣게 소곤거렸다; "그때;;; 정업사의 후원에서 숨어 지낼 때;;;" "그때가 어땠는데?"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비참해서 고통스럽다고 생 각했었는데, 지금은 왠지 조금 씩 그리워져요; 둘이 조그만 불빛을 마주보고 앉아 있던 기억;;; 창문 너머로 내리는 눈을 보며 서로를 격려해주던 모습도 생각나고;;; 사형의 체취도 잊을 수가 없어요;" "내 체 취라니;;; 끔찍했을 텐데;" 방취아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에요; 조금 고리타분하긴 했어도 그때 사형에겐 아주 좋은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나는 사형이 보거보다는 그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아니 라는 걸 알았죠; 그때도 아침저녁으로 나 몰래 몸을 씻었죠?" 소지산은 허를 찔린 듯한 모습이었다; "알고 있었어?" 방취아는 짤랑짤랑한 교소를 터 뜨렸다; "호호;;; 그럼요; 몸에서 냄새 나면 내가 싫어할까 봐 사형이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소지산의 얼굴이 구겨졌다; "볼품사나웠겠군;" "아니요; 오히려 나 는 그때부터 사형 이 마음에 들었어요;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은근히 나를 위해 배려해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내가 청혼할 때도 몸을 씻으라는 .을 내걸었나?" "호 호;;; 그건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런 거예요;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사형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다고요;" "끔찍했겠지;" " 호호;;; 정말 귀여웠다니까;" 두 남녀는 서로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했으며, 가끔은 입술을 맞대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기도 했다; 끝없는 밀어(蜜語)가 샘물처럼 솟아 나오고 있었다; 한참을 행복한 기분에 젖어 소군거리다 문 득 방취아가 꿈결처럼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일 밤에 장문사형에게 당신과의 관계를 밝 히겠어요;" 소지산은 빙긋 웃었다; "벌써 말했는걸;" 방취아의 몸이 움찔했다; "뭐라고요? 언제요?" "조금 전에; 연회가 파할 때쯤 찾아 가서 말씀드렸지;" 방취아는 급히 물었다; "장문사형이 뭐래요?" "씩 웃더니 내 어깨를 치면서 그러더군; '성공했구나';" "다른 말은 없 었어요?" 소지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한마디 더 하셨지; '취아의 성격을 맞추려면 네가 애 좀 쓰겠구나;' 그러셨어;" 방취아의 고운 아미가 하늘로 솟구쳐 올 랐다; "뭐예요? 장문사형이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미심쩍으면 가서 직접 물어 봐;" "그걸 여자가 자기 입으로 어떻게 물어 봐요?" 방취아는 의심 쩍은 눈으로 소지산을 흘겨보았다; "내가 못 물어 볼 줄 알고 나를 놀리는 거죠? 장문사형 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어요;" "그럼 무어라고 했을 거 같은데?" "음;;; '취아가 큰 결 심을 했구나; 게으르고 둔감한 사제를 제대로 사람답게 만들어 보려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다니; 취아는 정말 예쁜 만큼이나 성격도 훌륭하구나;' " 소지산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아직도 그런 소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정말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야?" 방취아도 따라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어요? 하지만 서문연상 같으면 틀림 없이 그랬을거예요;" 소지산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래, 그녀라면 정말 그럴 거야; 하하;;; 그녀는 보면 볼술혹 몇 년 전의 사매를 닮았다니까;" "잘 나가다 왜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해요? 그 아이가 어떻게 나를 닮았 다고 그래요? 그 천방지축 왈가닥을 나와 비교하다니;;; 아까도 봤죠? 장 대가가 자기를 놀렸다고 다 큰 계집애가 치맛자 락을 휘날리며 쫓아가서 기어코 술병을 뒤집어 씌운 걸;" "하하;;; 그 때 장 형님의 표정이 정말 볼 만 했었지; 그 황당해 하는 표정이라니;;; 아마 당분간은 술 먹겠다는 소리를 아예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걸;" 두 사람은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그러다가 우연인지 방취아의 손이 소지 산의 왼손에 닿았다; 방취아는 뱅어 같은 손가락으로 소지산의 왼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소지산의 시선이 그녀와 마주쳤다; 그냐가 낮게 소곤거렸다; "이 손은 괜 찮나요?" 소지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어; 볼 테야?" 소지산은 왼 손을 불쑥 내밀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어 머;" "어때? 힘이 넘치지?" 소지산이 허리를 끌어당겨 그녀를 품안에 넣어도 그녀는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적극 적으로 그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밤새 그런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방취아는 언뜻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녀의 자는 모습을 소지산은 묵묵히 지 켜보았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었을 때 그녀는 나직한 콧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소지산은 그녀의 몸을 편하게 뉘어 주고는 자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녀가 살짝 눈을 떴다; "음;;; 어디 가려고요?" 소지산은 조용히 웃었다; "후원에 가서 몸 좀 풀려고;"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알았어;" 소지산이 저만큼 걸어가자 방취아가 갑자기 그를 불렀다; "사형;" "왜?" 소지산이 돌아보자 방취아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머뭇거렸다; 소지산은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소지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내일 우리는 꼭 초가보를 물리칠 거야;" 짙은 어둠 속에서 방취아가 방긋 웃어 보였다; "너 무 당연한 말은 하지 말아요;" 소지산도 따라서 웃었다; 그 때 방취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신은 낙하구구검을 어디까지 익혔죠?" "익힐 수 있는 데 까지;" "그럼 내일 그자 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겠군요;" "당연하지;" 그녀는 활짝 웃었다; "안심했어요;" 소지산은 방취아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녀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자 조용히 몸을 돌려 방을 빠져 나왔다; 소지산의 모습의 사라지자 방취아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어둠 속의 빈 공간 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더니 소리 죽여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꼭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 소지산이 후원으로 가 보니 한 사람이 달빛을 받 으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냐?" 소지산의 물음에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더니 씨익 웃 었다; 하얀 이가 달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내일 쓸 병기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은 낙일방이었다; 소지산이 옆에 가서 보니 낙일방이 닦고 있는 물건은 검은 색 장갑이었다; 그 장갑은 전체가 검은 색으 로 이루어졌는데, 가죽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처음 보는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이하게도 손가락 끝부분이 없이 손바닥과 손가락의 둘째 마디까지만 보호하게 되어 있어 언 뜻 보거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낙일방은 기름 먹인 천으 로 그 검은 장갑을 구석구석까지 정성들여 닦고 있었다; 소지산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 그게 우일기 조사께서 쓰셨다는 묵령갑이냐?" "예; 오랫동안 쓰지 않던 것이어서 이렇게 매일 닦아주고 있습니다;" 낙일방은 장갑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닦으면 닦을수록 부드러 워져서 사용하기 편해집니다; 처음에는 너무 딱딱해서 얼마나 손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장갑과 비슷해졌죠;" 낙일방은 장갑을 양손에 끼었다 ; 달빛을 받아 검게 빛나는 장갑은 어딘지 모르게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낙일방은 장갑을 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고는 다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보세요; 아주 원활하게 움직이 지 않습니까?" "그렇군; 그런데 그것은 무엇으로 만든 것이냐?" "재질은 저도 잘 모릅니다; 무슨 은사(銀絲) 에 특수한 액체를 발랐다고 하더군요;" 장갑을 낀 낙일방이 몸을 일으 켰다; 예전에 그의 체구는 소지산보다 조금 큰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차이를 확연히 느 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낙일방은 후원의 중앙에 가서 우뚝 섰다; "사형도 연무(鍊武)를 하러 온 것 같은데, 모처럼 한번 어울려 보실래요?" 소지 산은 눈을 번쩍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앞에 마주섰다; "그렇지 않아도 정 사제가 네 칭찬을 많이 해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보자;" 소지산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릉; 나직한 검명(劍鳴)과 함께 그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검이 쥐어졌다; 그 동작을 본 낙일방의 안광이 유난히 번쩍거렸다; "사형도 정말 많이 달라졌군요; 검을 뽑아 든 동작만 보아도 중압감이 느껴지네요;" "나도 네 자세를 보니 조금 두려 운 생 각이 든다;" "하하;;; 그럼 시작할까요?" "좋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출수(出手)했다; 팟; 눈부신 검광이 어두컴 컴한 밤공기를 가르고 지나갔고, 예리한 파공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몇 차례의 공방(攻防)이 오간 후 소지산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경력(勁力)을 뿜어내지 않는 거냐?" 낙일방의 얼굴에 먹쩍은 미소가 떠올 랐다; "아직 체내의 공력(功力)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 힘들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자제하고 있습니다;" "괜찮으니 경력을 사용해 보거라;" "그럼 조심하십시오;" 낙일방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더니 검은 그림자가 폭사해 나왔다; 그 와 함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음향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꽈릉; 낙일방의 두 주먹은 두 개의 검은 뇌전(雷 電)과도 같았다; 그 위세가 어찌나 강력하던지 소지산은 감 히 정면으로 맞받지 못하고 일단 몸을 피해야만 했다; 낙일방의 두 주먹은 정말 빠르고 무서웠다; 소지산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검초의 변화로 상대해야만 했다; 하나 낙일방 또한 낙하구구검의 다양한 검로를 쉽게 뚫지 못했다; 팍; 소지산이 펼쳐낸 다섯 개의 검광이 낙일방의 주먹과 부딪치 자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낙일방은 묵령갑을 낀 주먹으로 소지산의 검광에 거리낌없이 마주쳤으며, 그때마다 소지산은 막대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순식간에 이십여 초가 지나 갔다; 낙일방은 차츰 경력 을 조절하는 데 익숙해져서 조금 전과 같은 강맹한 경력을 함부로 뿜어내지 않았다; 대신에 그만큼 초식의 수발(收發)이 민첩해져서 소지산은 오히려 상 대 하기가 더욱 까다로웠다; 하나 소지산도 진정으로 무서운 살초(殺招)는 아직 선보이지 않았다; 다시 삼십여 초가 흘렀을 때, 소지산은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낙일방 또한 더 이상 손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소지산의 얼굴에는 모처럼 보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정말 놀랍게 발전했구나;" "사 형이 손에 사정을 봐 주어서 그런 거지요;" "아니다; 너도 실력을 다 발휘한 게 아니지 않느냐? 전력을 기울였어도 내가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입이 무겁고 좀처럼 남을 칭찬하지 않던 소지산의 말 에 낙일방은 쑥스러움을 느끼는지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사형의 검법도 날카로웠습니다; 변화가 다양하면서도 속에 무서운 살수 (殺手)들이 숨어 있더군요; 그것도 본파의 검 법인가요?" "삼락검 중의 하나인 낙하구구검이다; 오래 전에 실전(失傳)되었던 것을 장문사형 이 찾아냈지;" "그렇군요; 왼손을 다쳤다고 들었는데;;;" 소지산은 자신의 왼손을 들 어 보였다; "지금은 다 나았다; 갈 노인의 신세를 졌지;" 이번에는 소지산이 낙일방을 향해 물었다; "맨손으로 검광을 잡아도 괜찮은 거냐?" 낙일방은 묵령갑을 낀 손을 들어 손바 닥을 펼쳐 보였다;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강력한 검기(劍氣)를 만나면 가끔 손에 통증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려지거나 베어지는 않습니다;" "좋은 무기를 얻었구나 ; 조금 전에 보니 공력을 뿜어낼 때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더구나;" "예; 묵령갑을 낀 채로 천단신공을 펼치면 묵룡기(墨龍氣)라는 특이한 강기 (?氣)가 흘러 나옵니다; 제대로 사용하면 검기처럼 직접 닿지 않아도 상대 를 벨 수 있는데, 아직은 천단신공의 조절이 자유롭지 못해서 마음먹은 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사용했던 권법은?" "처음에 펼친 것 은 낙뢰신권이었고, 나중에는 구반장법과 옥뢰신장을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아직 칠 성(七成 )의 경지밖에는 오르지 못해 본연(本然)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그 정도라니 그동안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겠 구나; 정말 장하다;" 두 사람이 조금 전의 비무에 대해 서로간에 의견을 주고받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쳇; 정말 친밀한 사형제로군; 엄밀히 따지면 나도 사형제인데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그 눈의 주인은 전흠이었다; 전흠은 무엇이 그리도 불만인지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건물의 그 림자 속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다; 사실은 그도 연무를 하기 위해 후원에 왔는데 먼저 온 낙일방과 소지산이 비무를 하고 있는 바람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일단 등장할 시기를 놓치자 뒤늦게 나가거도 어색해서 전흠은 계속 어둠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소가의 실력이 상당해졌군; 확실히 팔을 고친 효과 가 있긴 하나 본데; 저 정도라면 이제 동작의 단점은 없어졌다고 봐야겠군;" 전흠은 혼잣말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공력도 비슷하고 약점도 사라졌으니 결국 검법의 숙련도에 따라 우열 (優劣)이 판가름나겠군; 이거 방심하다가 큰일 나겠는걸;" 전흠은 소리 없이 히죽 웃었다; "아무튼 심심하지는 않겠어; 옆에서 경 쟁자가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의 시선이 소지산의 앞에 있는 낙일방에게로 향했다; "저 녀석은 얼굴이 곱상해서 대단치 않게 봤는데 의 외인걸? 공력으로 보자면 나보다 훨씬 높을 것 같은데;;; 이 놈의 집안은 대체 무공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거야? 완전히 뒤죽박죽이잖아?" 전흠은 어깨를 으쓱거리더 니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달이 적막감 을 느끼게 했다; 전흠의 얼굴에 한 줄기 쓸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따라 왠 지 고향에 있는 큰형님이 생각나는군; 지금도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그때 문득 전흠은 무엇 을 발견했는지 안광이 예리하게 빛났다; "엇?" 그는 소리 없이 한쪽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향한 곳은 후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작고 아담한 연못에 정자(亭子)가 서 있는 뜨락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정자 근처에 서 두 명의 남녀가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바른대로 말하지 않을 거예요?" 아미를 곤두세우며 날카롭게 소리치는 사 람은 소녀에서 막 여인으 로 성장해 가고 있는 서문연상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방화가 난처함이 가득한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글쎄 무엇을 바른대로 말하라는 거요?" 원 래 이 뜨락은 경치가 아름다우면서도 은밀한 곳에 있어서 사람의 인기척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전흠은 후원을 피해 한쪽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용케 도 이곳으 로 오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들 둘이 언제부터 저런 사이가 됐지?' 전흠은 야밤에 두 남녀가 단둘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 기도 하고 약이 바짝 올라서 인상이 찡그려졌으나 곧 그들이 정담(情談)을 나누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서문연상은 개미허리처럼 가느다란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린 채 방화를 쏘아보고 있었 다; "내가 당신의 정체를 모를 줄 알아요? 조금만 더 있으면 기억이 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밝히도록 해요;" 방화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 이름은 방화이고, 소저보다 며칠 먼저 종남파에 입문한 사람이오; 벌써 여러 날을 나와 함께 있었으 면서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내가 그런 걸 묻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잖아요? 당신이 할아버지의 생신 때 본가(本家)에 왔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 터 무언가 미심쩍었어요; 그때 본가에서 초청한 사람은 모두 강호의 명문세가거나 명숙(名宿)들 이었어요; 그러니 당신은 명문가의 후손이거나 명숙의 문하제자임이 분 명해요;" ";;;;" "그런데도 당신은 본파의 제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궁리했죠; 본파에 입문한 것으로 보아 당신은 누군가의 제자는 아니에요; 그러면 틀림없이 명문가의 후손일 텐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할아버지의 고희연에 참석한 곳 중 방(方)씨 성을 쓰는 무림세가는 없 었어요;" 그녀의 예리한 추긍에 방화는 그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칼날 같은 시선이 방화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당신이 가명(假名)을 쓰고 있거나 신분을 속이고 있다는 거예요; 어때요? 내 추측이 맞죠?" ";;;;" "빨리 말해요; 지금 계속 생각하니까 당신을 고희연에서 본 기억이 날 듯 하단 말 이에요; 만일 내가 기억 이 나서 당신이 말하기 전에 먼저 알게 된다면 당신으로선 그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순순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도록 해요;" 그녀의 억지 반, 강 요 반의 성화에 방화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정말 할말이 없소;" 그녀의 쌍심지가 하늘로 솟구치며 귀여운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 거 예요? 자꾸 이러면 장문인에게 직접 고하겠어요;" 방화의 어깨가 한순간 움찔거려싿; 하나 방 화는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저가 잘못 짚은 거요; 내 이름은 방화 요; 누가 뭐래도 내 성은 방씨이며, 종남파의 제자요; 아무리 소저가 뭐라고 해도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오;" 방화가 뜻밖으로 강하게 나오자 이번에는 서문연상이 주춤거렸다; 하 나 그녀는 계속 미심쩍은 눈으로 방화를 요리조리 흘겨보고 있었다; 그녀는 트집 잡을 거리를 찾다가 마침내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종남파의 제자라면서 왜 나한테 사매 라고 안 부르는 거예요?" 그녀의 말은 억지에 가까웠다; 자기는 한번도 사형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서 방화만 추궁하고 있는 것이다; 방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하오, 사 매;;;" 사매라는 말에 서문연상의 차갑던 얼굴이 눈 녹듯 풀어졌다; 하나 그녀는 쌀쌀맞은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아무튼 나중에라도 당 신에 게 다른 정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오늘 일까지 합해서 단단히 추궁할 줄 알아요;" 방화는 더 대꾸할 기력도 없는 갑자기 이 지체할 수도 없어서 그들은 결국 동굴 밖으로 다시 나오고 말았다; 동굴 밖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인들은 달랑 그들 두 사람만 나오는 데다 그중 한 사람은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자 황당한 표 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 니, 먼저 들어간 놈들은 어떻게 하고 너희들만 나왔느냐? 그리고 그 손은 어떻게 된 거냐?" 성질이 급한 하북십호 중의 둘째인 광호 (狂虎) 장태방(張泰方)이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장태방은 별호 그대로 일단 화가 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 사람처럼 날뛰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다; 두 사람이 사정을 설명하자 중인들의 표정이 모두 무거워졌 다; 위민이 초일산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저 동굴에 함정을 파놓고 우리 를 유인한 것 같습니다;" "자네들답지 않게 너무 어설픈 수작에 넘어갔군;" 초일산은 그를 크게 꾸짖거나 비웃지 않았으나 위민은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 "죄송합니다; 일곱째가 얼마 전에 아끼던 여동생을 잃었기 때문에 여인의 비명 소리가 나자 무의식중 에 경솔한 행동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간이 급한데 이대로 떠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초일산은 나직하게 혀를 찼다;여자의 높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 리는 모닥불이 피어올랐던 동굴에서 나는 것 이었다; 제일 먼저 소리쳤던 회삼 장한이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그 동굴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하북십호 중의 일곱째인 나한호(羅 漢虎) 최당(崔唐)이라는 인물이었 다; 초일산은 최당이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자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으나 뒤늦게 그를 제지하기도 뭐해서 그가 동굴 속으로 들 어가는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굴 속으로 들어간 최당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북십호의 첫째인 절정호(切情虎) 위민(韋旻)은 아까부터 초 일산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로 초조한 심정이 되었다; '다시 같은 녀석; 중요한 일을 코앞에 둔 녀석이 인정(人情)에 끌려 쓸데 없는 짓을 하다니;;; 대체 뭐 하느라고 질질 시간을 끌고 있는 거야?' 위민은 슬쩍 하북십호의 막내인 냉혈호(冷血虎) 적일명(翟日明)에게 눈짓을 했다; 적일명은 하북십호 중에서 나이가 가 장 어렸으나 눈치가 빠르고 냉정해서 위민의 은근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적일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당이 들어간 동굴로 몸을 날렸다; 위민은 적일명이 곧 최당을 데리고 나오 리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적일명조차 당최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위민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표정이 굳어졌다; 초일산 또한 눈빛이 차가워진 채 동굴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위민은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 자연스러워 보여서 전흠은 엉겁결에 되물었다; "장문인의 친구분이시오?" 백삼중년인의 미소가 조금 냉랭해졌다; "그 녀석이 감히 내 친구가 될 수 있겠나?" 전흠은 처음에는 그의 말뜻을 제 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었으나 이내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당신은 누구요? 무슨 일로 본파의 장문인을 만나려는 거요?" "장문인이나 불러와; 다른 녀석들과 는 볼일이 없으니까;" "뭐라고?" 전흠 의 눈꼬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전흠이 화가 솟구쳐 백삼중년인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려 할 때였다; 아까부터 백삼중년인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던 전풍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백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백삼중년인은 전풍개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의외로 정중하게 포권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 안 안녕하셨습니까? 백동일입니다;" 전풍개의 얼굴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났다; "정말 백동일이구나; 네가 이곳에 오다니;;;" 전풍개가 격동에 찬 모습인 반면 백동일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이 제가 못 올 곳이라도 됩니까?" "네가 본파에 등을 돌리고 초가보에 적(籍)을 두고 있다는 말을 들 었다; 그게 사실이냐?" 백동일은 너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 였다; "사실입니다;" 전풍개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동안 백동일을 응시하다가 점차로 눈가 에 살기가 감돌며 전신에서 맹렬한 기운이 뿜어 나왔다; "네놈이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이곳을 찾아오다니;;; 오늘 네 사부 대신 네놈을 응징해 본파의 법도가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고야 말 테다;" 전풍개의 살기등등한 모습에도 백동일은 오히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렸다; "종남파의 법도라;;; 그러고 보니 일전에 누 군가가 그러더군요; 종남파에 법도 따위는 없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법도라고 했던가?" 전풍개는 이 를 부드득 갈았다; "본파에 법도 가 없다고? 어떤 놈이 그 따위 망발을 지껄였다는 게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는 이미 종남파를 떠난 사람이니 내 앞에서 종남의 법도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무의미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더 이상 종남의 문하가 아니란 말입니다;" 전풍개의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주름살 가득한 얼굴에는 격앙된 흥분으로 가느다란 경련 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듯한 폭풍 같은 분노와 무언지 표현 못할 야릇한 슬픔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백동일은 전풍 개의 사제인 풍뢰검 관소양의 하나뿐인 제자였다; 어려서부터 무공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사부를 존경하고 따르던 아이였다; 종남파의 커다란 인재가 될 줄 알았던 그가 절명검 이란 별호로 장성에서 이름난 살성(殺星)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고, 그가 초가보의 부하가 되어 오히려 종남파의 고수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동중 산의 말에도 설마 그러겠느냐 싶었다; 그런데 이십여 년 만에 만난 백동일의 입에서 직접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전풍개는 분노 이전에 진한 서글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성실하 고 장래가 촉망되었던 젊은 인재가 가슴속에 흉심만 가득한 중년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여 버 렸단 말인가? 전풍개가 마음속의 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전흠이 백동일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이 사숙뻘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본파에서 나갔다니 다행 이군; 당신 같은 사 람이 내 사숙이라면 정말 성질나는 일이라서 말이야;" 전흠이 자신을 향해서 노골적인 적의(敵意)를 드러내며 검을 뽑는 광경을 보고 백동일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과는 볼일이 없다니까; 어서 장문인이나 불러와라;" 전흠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파의 장문인이 당신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나? 우선 솜 씨나 한번 보자구; 장문인을 불러낼 자격이 있는 지 알아보게 말이야;" 전흠이 계속적으로 반말을 하자 백동일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데 전풍개가 오히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 나 전풍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동일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담담한 시선으로 전흠을 응시했다; "애송이, 무어라고 떠들어도 상관 없지만, 어른 앞에서 함부로 검을 뽑는 건 실례라는 걸 알아야지;" "본파를 배신한 주제에 어른 노릇까지 하려고? 어림 반푼 없다;" 전흠은 벼락 같은 호통을 내지르 며 출검(出劍) 을 했다; 파앗; 눈앞에 섬광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전흠의 검은 어느새 백동일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부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 는 무서운 쾌검이었다; 바 로 그때였다; "전흠, 멈춰라;" 어디선가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을 듣자 전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그의 검은 날아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거두어지더 니 이내 그의 검집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백동일의 눈에서 기광(奇光)이 번뜩였다; "큰소리칠 만한 솜씨를 가 지긴 했군; 제법 쓸 만한 천하제탄(天河齊彈) 이었다;" 조금 전 전 흠이 펼친 초식은 천하삼십육검 중의 천하제탄 일식이었다; 하나 백동일이 경탄한 것은 천하제 탄을 펼친 이러다 내가 아무래도 제 명에 못살 거 같군; 아예 귀라도 막고 다니든지 해야지, 이거야 원;" "멀쩡한 귀를 왜 막고 다녀요? 그러지 말고 이 요리 를 해보는 건 어때요? 양반포어(凉拌鮑魚 : 전복냉채)나 내유어시(?油魚翅 : 상어 지느러미 튀김) 같은 건 간단해서 하기 쉬울 거 같은데;;;" 장승표의 얼굴이 우 거지상으로 구겨졌다; 이런 한겨울에 어디가서 전복이나 상어 지느러미를 구한단 말인가? 그녀가 다시 또 무어라고 말하려 하자 장승표는 아예 귀를 틀어막더니 앞으로 마구 달려나갔다; "으아아;;; 못살겠다;" "이봐요, 털보 아저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그게 싫으면 낙타 요리라 든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계속 요리들을 꼽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앞서가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전흠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파 꼬락서니가 가관이군; 저런 말괄량이 를 누가 제자로 받은 거야?" 그때 누군가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바로 네놈이 제일 먼저 받자고 하지 않았느냐?" 딱; "아이쿠;" 전흠은 머리통을 끌어안고 인상을 찡그렸다; 돌 아보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전풍개말고 누가 감히 그에게 이런 짓을 하겠는가? "할아버님, 누가 그런 말을;;;" 전풍개는 눈을 부릅떴다; "노부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모 르는 줄 아느냐? 저 계집아이가 노부에게 와서는 똑똑한 손자를 둬서 얼마나 좋으냐고 입 에 침을 튀기며 떠들어 대더구나;" 전흠은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 약아빠진 계집애 가 벌서 할아버님까지 삶아놓은 모양이군; 이러다 문파 전체가 그 계집 애 치마폭에서 놀아나게 되는 거 아냐?' 전흠의 얼굴에 갑자기 불안한 빛이 떠올랐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표정이 원래대로 풀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문인인 진산월은 절대로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든 것이다; '휘둘리기는커녕 그 계집애가 장문인한테 는 꼼짝도 못하니 천적(天敵)이 따로 없지;' 전흠 이 히죽히죽 웃을 때 전풍개가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네놈이 아무래도 요즘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 것 같다; 오늘 마침 날도 좋고 어깨의 상처도 대충 아물었으 니 모처럼 제대로 수련 한 번 해보도록 하자;" "아이고, 할아버님;;;" 전흠은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제 발로 전풍개를 따라갔다; 전풍개와의 수 련은 고 달프기는 했으나, 할아버지의 부상이 완쾌된 것이 기뻐서 기꺼이 수련에 동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흠은 누군가가 산문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 다; "어? 누구지?" 두 조손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산문 앞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에 한 자루 검을 찬 채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인영은 백색 장삼을 입은 사십대 중년인이었다; 헌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 멀리서 보아도 기개가 헌앙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제136장; 수구초심(首丘 初心) 백삼중년인은 두 사람 앞까지 다가오더니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 있나?" 그의 태도가 너무도속도보다도 그것을 거두어들인 전흠의 솜씨였 다; 원래 초식이란 펼치기보다 거두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 다; 그런데 전흠은 마치 사전에 계획한 것처럼 검의 수발(收發)이 너무도 자유스러웠던 것이다; 전흠은 검을 거두고 훌쩍 물러나더니 한곳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제길 , 나타나려면 좀더 있다 나타나든지;;; 아주 적당한 시간에 나와서 방해하는구려;" 그 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 은 다름아닌 진산월이었다; 진산월은 전흠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텐 데도 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백동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동일도 어느새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 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진 산월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데 비해 백동일의 입가에는 여전희 희미한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언뜻 백동일의 입꼬리 가 말려 올라가며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 네가 진산월이냐?" "그렇소;" "요즘 들어 네 .를 많이 들었다; 네가 백 년 내 종남파에서 배출된 고수들 중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진산월은 무심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건 잘 모르겠소;" "잘 모르겠다구? 언뜻 들으면 겸손한 소리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오만하고 광오한 말이구나; 백 년 내 제일고수(第一高手)인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는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그걸 확실히 알게 해주지;" 백동일의 훤칠한 신형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어 느새 허공을 압축해 진산월의 코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앗?" 진산월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짤막한 경호성을 지 르며 그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하나 그때는 이미 진산월이 피하지 않고 백동일을 향해 마주 달려가고 있었다; 팟; 백동일이 검을 뽑는 광경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었는 데 난데없이 검광이 번뜩이며 세 줄기의 검화(劍花)가 진산월의 앞가슴 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진산월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신형을 날리자 세 줄기의 검화가 헛되이 허공 을 가르며 지나갔다; 하나 백동일은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검 을 휘둘렀다; 주위 사방이 온통 시퍼런 검영(劍影)에 휩싸어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투어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나누었다; 그들의 검세가 어찌나 빠르 고 날카롭던지 금시라도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그들의 치열한 격전을 지켜보는 중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비록 문 파의 배반자이지만 사문의 어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문파를 책임지는 장문인의 신분이었다; 마땅히 머리를 맞대고 문파의 부흥을 위해 일로매진해야 할 두 사람이 필생(必生)의 대적(大敵)을 만난 듯 무시무시한 격전을 벌이고 있 으니 이를 보는 종남파 문인들의 가슴은 한없이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차창; 갑자기 요란한 검명(劍鳴)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떨어졌다; 흠칫 놀란 중인들이 바라보니 두 사람은 이 장의 간격을 둔 채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몸에 별다른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진산월의 표 정이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데 비해 백동일은 두 눈에 무시무시한 안광을 번뜩인 채로 입꼬리가 슬쩍 뒤틀려져 있었다; "흐흐;;;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는 별로로군; 소문이 잘못된 것가, 아니면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건가?" 진산월은 조용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 담담한 음성을 내뱉었다; "본파의 무공에 이상한 걸 섞어 놨군; 이건 무어라고 하 는 거 요?" 백동일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려졌다; "종남의 무공이 천하에 다시없는 절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껄이는구나; 굳이 숨길 것도 없겠지; 아무짝에 도 쓸모없는 천하삼십육검에 천랑칠절검 (天狼七絶劍)의 묘용을 섞었더니 제법 그럴듯한 무공이 되더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 귀하는 아직 천하삼십 육검의 진정한 묘용(妙用) 을 모르고 있구려;" 백 동일은 냉랭하게 웃었다; "흥; 네 녀석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천하삼십육검을 익혔던 나다; 모든 변 화와 검로(劍路)를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훤히 파악하고 있거늘 묘용을 모른다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이번에는 하북십호 중 두 명을 동굴로 보냈다; 두 사람 은 이미 사태의 추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전과는 달리 신중한 모습 으로 동굴로 접근했다; 동굴로 가까이 갈수록 짙은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이 것을 본 두 사람은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동굴 밖으로 이 정도 연기가 흘러나올 정도라면 동굴 안은 사람이 견디기 힘들게 분명했다; 최당과 적일명이야 강호의 고수이니 숨을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처음에 울었던 아이와 여인은 진작에 뛰쳐나왔어야 옳았다; "최 형(崔 兄); 적 노제(翟老弟);" 두 사람 중 키가 크고 몸이 마른 장한이 동굴 안을 향해 소리쳤다; 하나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 나올 뿐 사람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차하더니 연기가 뿜어 나오 는 동굴을 향해 일제히 장력(掌力)을 내갈겼다; 꽈릉; 꾸역꾸역 흘러나오던 연기들이 세찬 장력에 산산이 흩어질 때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새 동굴 속으로 뛰어들고 있 었다; 동굴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자 어깨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불편했다; 자연히 두 사람은 하나가 앞서고 하나가 뒤따르는 대 형을 취해야만 했다; 동굴을 조심스럽게 사오 장쯤 전진하던 두 사람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의 앞이 막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주위 를 두리번거렸으나, 다른 샛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먼저 들어온 최당과 적일명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란 말인가? 동굴이 끝나는 부분에는 나무와 짚더미들이 잔 뜩 쌓인 채 타오르고 있었다; 나무들이 모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일부러 연기를 많이 내기 위해서 그런 나무들만 태운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장력을 날리 고 발로 비벼서 불을 끈 다음 다시 동굴 안을 샅샅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강호의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뛰어난 고수들인지라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쉽게 침착함을 되찾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내 다른 통로를 발견해 냈다; 동굴의 끝에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 이상할 정도로 툭 튀어나온 바 위가 있었다; 하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진짜 바위가 아니라 가죽에 색칠을 해서 바위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바위가 가짜임을 알아차린 장한이 바위를 향해 강력한 장력(掌力)을 내갈겼다; 꽈릉; 나무로 틀을 짜서 겉에 색칠을 한 가죽을 덧대어 놓은 가짜 바위는 단숨에 박살이 나버렸다; 하나 바위에 장력을 갈겼던 장한 또한 비명을 지르며 손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크악;" 그의 손은 날카로운 칼날에 다져진 듯 처참하게 갈라져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이 깜짝 놀라 살펴보더니 이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런 간악한 놈들;" 그 바위 형상의 가죽 속에 는 예리한 창날이 수십 개나 빽빽이 꽂혀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홧김에 맨손으로 바위를 후려쳤으니 손이 성할 리 없었다; 그들은 그제서야 이 동굴 자체가 치밀한 함 정임을 알아차렸으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바위 자체도 일부러 가짜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유독 그 바위만 다른 부분 과 그토록 두드러지게 틀릴 리가 없었다; 부서져 나간 바위 뒤에는 과연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한 보기이 뚫려 있었다; 하나 그들은 누구 도 선뜻 그 보기 속으로 들어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보기 속에 어떠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무작정 뛰어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없 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전흠은 여기까지 지켜보고는 흥미를 잃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공교롭게도 서문연상을 피 해 몸을 돌리던 방화의 눈에 띄고 말았다; "엇?" 방화가 자신도 모르게 짤막한 외침을 토해내자 서문연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전흠을 발견하고는 반 색을 했다; "전 사숙 아니세 요?" 전흠의 눈살이 절로 찡그려졌다; '사숙이란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 전흠이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서문연상이 방화를 이끌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 늦은 밤에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전흠은 그녀에게 붙들려 시달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 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내가 물을 말 같구나; 너희들은 여기서 무 얼 하는 거냐?" 서문연상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돌연 방화의 팔짱을 척하니 끌어안 는 것이 아닌가? "보면 몰라요? 사형제끼리 친분을 쌓고 있는 중이죠;" 뜻밖의 행동에 전흠보 다는 방화가 더 놀랐다; 그는 팔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의 촉감 이 느껴지자 그야말로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그녀의 품에서 팔을 잡아 뺐다; "이;;; 이거 왜 이래요?" 그녀는 그의 거 친 행동에 움찔하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 다; "이런 다시 같은 사형, 그런 대사는 여자가 해야 어울리는 거예요;" 방화의 얼굴은 그야말로 보거에 안쓰러울 정도로 시뻘겋게 변해 버 렸다; 전흠은 화 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웃어넘기자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쓰려서 절로 퉁명스런 음성이 흘러나왔다; "쓸데없이 히히덕거리지 말고 잠이나 자도록 해라; 내일은 긴 하루가 될 테니;" "알았어요; 전 사숙도 밤늦게 쏘다니지 말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이 계집애가?' 전흠은 겉으로는 공손한 척해도 은근히 자신을 놀리는 듯한 그녀의 말에 약 이 바짝 올랐으나 그녀가 말끝마다 사숙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어 그녀를 한차례 쏘아보고는 휑하니 몸을 돌려 버렸 다; 서문연상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고는 한쪽에서 멍 하니 서 있는 방화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멍청하게 뭘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빨리 가자구요;" 방화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 두 사람마저 사라지자 작은 뜨락 안은 고요한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그때 정자 안에서 다시 두 명의 인물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정자가 있는 부분이 그늘이 진 곳인데다 두 사 람이 너무 조용하게 있어서 그들이 정자에 있는 것을 미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온 사람들은 진산월과 동중산이었다; 동중산은 서문연상과 방화가 사라진 곳을 보더 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대단한 사매입니다;" 진산월은 공 감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그렇다;" 동중산은 빙긋 미소 지었다; "가끔 억지를 부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귀 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도 좀처럼 찾기 어렵 지요; 그나저나 내일은 정말 혼자서 행동하실 생각이십니까?" 진산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중산은 진산월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 스럽게 말을 이었다; "장문인의 계획대로라면 확실히 그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몸을 보중(保重)하셔야 합니다; 지금 본파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 습니 다;" "나보다는 다른 어람들이 더 걱정이다; 특히 사조님께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네가 잘 지켜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진산월은 돌 연 정색을 하고 동중산을 바라보았 다; "내가 너를 보자고 한 것은 그 외에 또 한 가지 용건이 있어서다;" "말씀하십시오;" 진산월의 시선은 동중 산의 외눈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너무 늦게 본파에 입문하 여 도저히 절정의 무공을 익힐 수가 없다; 그건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 "이미 각오 한 일입니다;" "원래 본파의 무공은 오랜 동안의 수련을 쌓지 않으면 결코 절정에 이를 수가 없 다; 속성(速成)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솔직히 지금의 네 무공으로는 내일 살아서 해를 보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너를 뒤로 빼돌려 안전한 곳으로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제자도 그런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게 한 가지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다;" 뜻밖의 말에 동중산 의 외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종남의 무공은 속성할 수 없다고 방금 말했으면서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결전을 몇 시진 남겨 놓지 않은 지금 무슨 무공을 전수하려 한단 말인가? 동중산의 의중을 짐작한 듯 진산월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이 무공은 원래 본파의 장로(長老)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비전(秘傳) 중의 비전이어서 현재 본파에서는 나 외에 아무도 터득한 사람이 없다;" 동중산의 눈 이 크게 뜨여졌다; "그런 무공을 제게 전수해 주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예외란 항상 깨어지 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지; 사실 특별힌 신분 만이 익힐 수 있도록 제약을 해놓은 것 은 이 검법이 위력에 비해서 익히 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자칫 제자들이 본신의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이러한 기궤(奇詭)한 편법(便法)에 물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 이 다; 하지만 너는 어차피 다른 무공으로 절정에 오르기는 힘드니 이것 이 라도 익혀 무공의 미흡함을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동중산은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가슴 한구석이 몹시 격탕 되어 눈빛이 흐려졌다; 자신을 위 해 주는 진산월의 마음 씀씀이가 절절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이 무공의 이름은 색혼검결(索魂劍訣)이라 한다; 이름에서 풍 기는 것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상황 을 반전시켜 상대를 일격필살(一擊必殺)하는 무서운 초식이다; 잘만 사용하면 위급한 상황에서 네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자칫 하다가는 오히 려 자신의 명(命)을 재촉 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성도 내포 하고 있다;" 이어 진산월은 색혼검결의 검식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원래 이 색혼검결은 진산월이 누관의 동굴에서 발견한 혈 선 정립병의 혈선비록에 수록된 구종절기 중 하나였다; 단 일 초(一招)로 된 구결이지만, 상황에 따라 수십 개의 응용초식을 만들 수도 있는 독특한 검법이었다; 그 원 리 (原理)는 비교적 단순했으나 파생된 변화가 많아서 완벽히 익히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하나 반나절만 익혀도 위급한 순간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효과 적인 무공이기 도 했다; 진산월이 동중산에게 색혼검결을 전수해 주고 자세까지 어느 정도 교정해 주었을 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두 사람은 꼬박 두 시 진 동안 일초로 된 검법 전 수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동중산이 색혼검결을 제법 능숙하게 펼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진산월은 그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이 검초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사용해 보 았자 소용이 없다; 오직 네가 생사 (生死)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만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동중산 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공손하게 조아렸다; "명심하겠습니 다;" 진산월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위는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 직 동이 트기에는 일렀다; 하나 이미 새로운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문파의 존망(存亡 )이 달려 있는 하루가 시작되려는 것이다; 제140장; 동중설전(洞中舌戰) 새벽의 공기는 언제나 신선했다; 악종기는 한차례 깊은 심호흡을 하고는 정성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 획은 완벽하게 짜여졌다; 종남파에서 어떠한 수작을 부린다해도 그들 의 멸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밤사이에 몇 번이고 검토를 하고 세세한 부분을 수정한 다음 완벽하다는 확 신이 들고 나서야 고수들을 출정(出征)시켰다; 기본 골격 은 어제 정한 구중삼로의 진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중간에 몇 가지의 변수(變數)가 있을 것에 대비하여 좀 더 철저하고 확실한 수정 계획을 짠 것이다; '오 늘 이후;;;' 악종기는 멀어져 가는 초가보 고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두 눈을 무섭게 번뜩였다; '종남파라는 이름은 더 이상 강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 는 화산파와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그 승부에서 승리해야만 비로소 초가보는 강북을 석권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떳떳하 게 밀주(密主)를 뵐 면 목이 서게 되는 것이다; 밀주를 생각하면 악종기의 마음은 끝없는 충성심과 복종심으로 한없이 부풀어올랐고,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밀주의 기대를 저버 리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던가? 이제 그 노력의 과실 하나가 오늘 맺어지는 것이다; 악종기는 허공을 올려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 소 량산은 종남산의 서쪽 산자락에 위치한 험한 봉우리였다; 이곳에는 두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중 큰 것이 대량산(大梁山)이고, 작은 것이 소량 산(小梁山) 이다; 작다고 해도 대량산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고, 산세는 오히려 대량산보다 더욱 험준하고 가팔라서 평상시에는 인적을 찾아보거 힘들었다; 소량산의 봉 우리에서 내려다보면 멀 리 아득하게 하나의 웅장한 사찰이 보이는데, 그곳이 율종(律宗)의 조종인 정업사였다; 뎅;;; 뎅;;; 새벽의 조과(朝課)를 알리는 정업사의 종소 리가 나직하게 울려퍼질 때, 차가운 이슬을 밟으며 소량산의 가파른 봉우리를 지나고 있는 한 떼의 인영들이 있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열세 명이었는데, 하나같이 눈빛 이 날카롭고 몸놀림이 뛰어나서 무림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서서 달리고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은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 들이 막 소량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암석 지대를 통과할 때였다; 갑자기 선두에서 달리던 세 사람의 신형이 늦추어지더니 종내에는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가 되고 말 았다; 하나 그들의 뒤를 따르던 열 명의 중년인들은 조금도 당황하거 나 의아해 하지 않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선두의 세 사람은 신중한 태도로 주위를 경계하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중 가장 체구가 왜소하고 나이가 많은 흑의 노인이 갑자기 몸을 멈춰 세우더니 암석군(巖石群)의 한쪽을 응시했다; 암석군 속에서 몇 개의 인영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노인은 그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그들의 중앙에 서 있는 짙은 갈삼의 중년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떻게 되었나?" 갈삼중년인은 고개를 저었다; "근처에는 쥐아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소;" "그럴 리가 있나? 이곳에서 우리 를 습격하기로 되어 있을 텐데 ?" 갈삼중년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반경 일 리(一里) 이내를 샅샅이 뒤졌소;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소;" 흑의노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가 없었으나 눈가에는 약간의 당혹스런 빛이 떠올라 있었다%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이상하군; 정보가 잘못되었나?" "애초에 지일환인지 뭔지 하는 도둑놈의 말을 믿고 계획을 수 정하는 게 아니었소; 괜 히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 게 아니오?" 흑의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악 총관이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보완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 있네; 자네들은 처 음의 계획대로 곧장 종남파의 산문 쪽으로 가게;" "초 노인(焦老人)은 어떻게 할 거요?" "우리가 입 수한 정보로는 그들이 이곳과 태평곡 매복 장소로 정했다고 하네; 이곳이 아니 라면 태평곡에 그들이 있을 확률이 높네;" "그쪽은 갈 대협(葛大俠)과 현음 노 인이 가는 방향이 아니오?" "그렇다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할 걸세;" 갈삼중년인은 잠 깐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내 눈을 번뜩였다; "악 총관이 제법 머리를 썼군; 종남파 무리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면 우리와 초 노인 일행이 합세해서 제거하고, 만약 태평곡에 있다면 초 노인과 현음 노인 일행으 로 상대하게 하려는 거로군;" "그렇네;" "만약 그들이 그곳에 있지 않고 본산에 처박혀 있다면?" "그래서 자네들은 곧장 종남파로 가야 하는 거요;" " 흐흐;;; 어떻게 되었건 그들은 빠져 나갈 보기이 없군;" "바로 보았네; 시작부터 계획이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 도 없네; 어차피 지일환이 가져온 정보는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 이었으니 말일세;" 갈삼중년인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럼 종남파에서 봅시다;" "우리는 태평곡을 들렀다가 가야 하니 조금 늦을 지도 모르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말게;" "염려 마시오; 당신들이 뒤를 막 아 준 다음에야 우리도 종남파 안으로 진입할 거요;" 갈삼중년인은 한차례 손을 내젓고는 이내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신법은 표홀하기 그지없 어 십여 명이 움직이는데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흑의 노인은 놀라운 속도로 멀어져 가는 그들 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 거렸다; "굉장히 정교한 신법(身法)이군; 확실히 중원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군;" 그때 규염을 기른 건장한 체구의 홍포노인이 그에 게 다가왔다; "저자 가 바로 곽태보(郭泰保)요?" "그렇다네;" 홍포노인은 붉은 빛이 감도는 눈으로 갈삼중년인 일행이 사라져간 곳을 보고 있다가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다; "흥; 소 문으로 듣던 것보다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더군;" 흑의노인의 시선이 홍포노인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겪어 보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 "내 말이 그말이오; 솔직히 만나 보저 전에는 남들이 하도 신강(新彊) 제일 의 고수니 죽음의 별이니 떠들어 대길래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했었소 ; 그런데 어제 막상 보게 되니 체구도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인상의 중 년인인 게 아니오? 역시 변방 놈들의 허풍을 믿는 게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소;" 흑의노인이 별 반응이 없자 홍포노인은 약간 멋쩍은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람을 꼭 외모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소문만큼의 실력자는 아닐 거란 말이오;" 의외 로 흑의노인이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확실히 곽태보가 그들 중 제일가는 실력자는 아닐세 ;" 홍포노인은 뜻밖인 듯 고리눈을 치켜떴다; "그럼 조금 전의 일행들 중 곽태보 보다 더 강한 고수가 있단 말이오?" "적어도 네 명은 그보다 하수(下手)가 아닐세; 그리고 그중 두 명은 곽태보 보다 한 수 위라고 봐야지;" "네 명이라면 어제 곽태보와 함께 참석했던 자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들 중 곽태보가 우두머리 아니었소?" "그가 가장 나이가 많아 서 연장자(年長者) 대접을 해주는 것뿐일세;" 홍포노인은 흥미가 이는지 급히 물었다; "그럼 곽태보 보다 강하다는 두 명은 그들 중 누구요?" "곽태보 왼쪽에 있던 자를 기억하는 가?" 홍포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눈을 번쩍였다; "그 비쩍 마르고 음침하게 생신 회포 인 말이오?" "그자가 바로 염벽수(廉碧樹) 일세;" 홍포노인의 얼굴에 움찔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변황일독(邊荒一毒) 염벽수가 그자란 말이오?" "그렇다네; 손속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한번 눈 밖에 벗어난 자는 지옥 끝이라도 쫓아가 요절을 내버린다는 독종(毒種) 중의 독종이지;" "음;;; 다른 한 사람은 누구요?" "가장 뒤쪽에 서 있던 젊은 친구일세;" "황색 단삼(短衫)을 입고 칼 한 자루를 가슴에 품고 있는 청년 말이 오?" "그 렇다네;" 홍포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자라면 나도 기억하고 있소; 얼굴이 상당히 준수하고 신태(神泰)가 비범해 보여서 한눈에 들 어오기는 했소; 하지만 그자의 나이는 이 제 겨우 서른 전후밖에는 안 보이는데, 곽태보 보다 강한 실력을 지녔단 말이오?" "곽태보뿐 아니라 조금 전의 일행 들 중 가장 강한 고수일세;" 홍포노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 가 누구요?" 흑의노인은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탁극(卓剋);" 그 말에 홍포 노인의 입에서 탄성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혈린도(血麟刀) 탁극;" "바로 그자일세;" 탁극이라 는 말에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고 상대를 우 습게 아는 홍포노인도 적지 않게 경악한 모습이었다; 탁극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자달목(紫達木) 분지에 사는 인물이었지만, 그 명성 만큼은 홍포노인도 익히 듣고 있 었다; 홍포노인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자의 혈린도가 소문처럼 그렇게 무섭소?" "일전에 우연히 후원에서 그가 도법을 시전하 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네;" "어땠소?" 흑의노인의 주름진 이마 밑에 자리한 두 눈에서 날카로운 신광이 뿜어 나왔다; "결코 맨몸뚱이로 그자의 칼 앞에 서고 싶지 않았네;" 그 말에 홍포노인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마환 초일산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접 보저는 않 았지만 탁극이 휘두르는 칼이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잠시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얼마 후에 홍포노인은 어색 한 헛기침을 토해냈다; "험; 아무튼 그런 자가 같은 편이 라니 든든한 생각이 드는구려;" 조금 전보다는 기세가 많이 꺾인 모습이었지만, 초일산은 그를 자극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홍포노인, 진염의 발호에 '벽력(霹靂)' 이 라는 두 글자가 붙은 것은 단순히 그의 무공이 패도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은 아 니었다; 그의 성격 자체가 벼락처럼 성급하고 난폭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성정(性情)을 잘 알고 있는 초일산은 그가 쑥스러움을 느끼기 전에 재빨리 화 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소고도를 조금 올리도록 하세; 태평곡에 들렀다가 늦지 않게 종남파로 가야 하니 말일세;" 초일산의 말에 진염은 물론이고 모두들 고 개를 끄덕이며 신법을 배가 시켰다; 반시진 가량 달려가자 소량산을 지나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밀집한 계곡이 나타났 다; 이 계곡에서 조금만 더 가면 태평곡에 도 착하게 된다; 멀리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여명(黎明)을 받아 점차로 모습을 드러내는 계곡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더구나 멀지 않은 곳에 높이가 수십 장은 족히 될 듯한 폭포까지 자리하고 있어 세외선경(世外仙境)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폭포 아래에는 제법 큰 연못이 있었고 , 연못 주위에는 크 고 작은 동굴들이 여기저기에 뚫려 있었다; 이곳의 경치는 비록 좀처럼 보거 드물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마음이 급한 중인들의 발길을 붙잡지는 못했다; 아직도 태평곡을 가려면 일각(一刻) 이상을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중인들은 거대한 폭포를 일별할 뿐 신형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데 그들이 폭포를 지나 계곡을 절반쯤 가로질러 갈 때였다; "누나;;; 누나;;;"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다급한 으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몸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곳은 종남산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있는 깊은 계곡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막 여명이 시작되 려는 이른 새벽이 아닌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런 깊은 산중에 올라올 수 있단 말인가? 중어들의 의혹을 느끼고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때, 다시 아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나 제발 정신 차리세요; 누나;" 보아하니 어린아이는 누나와 함께 산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자 이곳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앗?" 진산월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짤막 한 경호성을 지르며 그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하나 그때는 이미 진 산월이 피하지 않고 백동일을 향해 마주 달려 가고 있었다; 팟; 백동일이 검을 뽑는 광경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 었는데 난데없이 검 광이 번뜩이며 세 줄기의 검화(劍花)가 진산월의 앞가슴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진산월이 옷자 락을 펄럭이며 신형을 날리자 세 줄기의 검화가 헛되이 허공을 가르 며 지나갔다; 하나 백동일은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주위 사방이 온 통 시 퍼런 검영(劍影)에 휩싸어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 투어 뒤로 물러 났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나누었다; 그들의 검세가 어찌나 빠르고 날카롭던지 금시라도 둘 중 한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들의 치열한 격전을 지켜 보는 중인 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비록 문파의 배반자이지만 사문의 어른이 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문파를 책 임지는 장문인의 신분이었다; 마땅히 머리를 맞대고 문파의 부흥을 위해 일로매진해야 할 두 사람이 필생(必生)의 대적(大敵)을 만난 듯 무시무시 한 격전을 벌이고 있 으니 이를 보는 종남파 문인들의 가슴은 한없이 침 통할 수밖에 없었다; 차창; 갑자기 요란한 검명 (劍鳴)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떨어졌다; 흠칫 놀란 중인들 이 바라보 니 두 사람은 이 장의 간격을 둔 채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 두 사람 모두 몸에 별다른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진산월의 표정이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 지 않은 데 비해 백동일은 두 눈에 무시무시한 안광을 번뜩인 채로 입꼬리가 슬쩍 뒤틀려져 있었다; "흐흐;;;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는 별로로군; 소문이 잘못된 것 가, 아니면 사 정을 봐주고 있는 건가?" 진산월은 조용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 담담한 음성을 내뱉었다; "본파의 무공에 이상한 걸 섞어 놨군; 이건 무어라고 하는 거요?" 백동일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우졌다; "종남의 무공이 천하에 다시없는 절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껄 이는구나; 굳이 숨길 것도 없겠지; 아우짝 에도 쓸모없는 천하삼십육검에 천랑칠절검 (天狼七絶劍) 의 묘용을 섞었더니 제법 그럴듯한 무공이 되더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 귀하는 아직 천하삼 십육검의 진정한 묘용(妙用) 을 모르고 있구려;" 백동일은 냉랭하게 웃었다; "흥; 네 녀석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천하삼십육검을 익혔던 나다; 모든 변 화 와 검로(劍路)를 눈 을 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훤히 파악하고 있거늘 묘용을 모른다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건 몸으로 직접 느껴 보도록 하 시 오;" 이번에는 진산월이 먼저 백동일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백동일의 두 눈이 매섭게 번뜩이더니 얄팍한 입술 사이로 냉 랭한 음성 이 흘러나왔다; "종남의 무공 으로는 절대로 내 천랑십이절(天狼十二絶)을 꺾을 수 없다;" 천랑십이절은 백동일이 종남파의 무공에 천랑존자의 천랑칠절검을 융합하여 스 스로 만들어 낸 절학이 었다; 천하삼십육검의 장중함과 유운검법의 변화무쌍함에 종남 파에는 없는 천랑칠절검 특유의 날카로움을 결합시킨 것이어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력을 지 니고 있었다; 이 천랑십이절을 완성한 후 백동 일은 적어도 장성 일대에서는 적수를 만 나지 못했다; 진산월의 검은 한 가닥 뇌전(雷電)처럼 곧장 백동일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 들 었다 ; 그것은 천하삼십육검 중의 천하제탄이란 초식이었다; 조금 전에 백동일은 전흠이 펼친 천하제탄을 보고 감탆나 적이 있었다; 하나 지금 자신의 앞으로 날아들고 있는 천하 제탄은 전흠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분명 겉으로는 똑 같은 천하제탄이 었 으나, 검초가 어찌나 빠르고 맹렬하던지 검이 아닌 거대한 창(槍)이 쏘아 져 오는 듯한 착각이들 정도였다; 백동일은 피하지 않고 수중의 장검을 질풍처럼 휘둘러 정면으로 맞서 갔 다; 까깡;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두 사람의 검이 맹렬하게 부딪쳤다%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 '으 윽;' 백동일은 손아귀에 막대한 통증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천 하제탄은 빠르고 날카롭기는 했으 나 강맹한 맛은 부족한 초식이었다; 그래서 백동일 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후려친 것인데, 막상 격돌하게 되자 예상보다 훨씬 강력 한 반탄력으로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하나 백동일은 조금도 기가 죽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진산월의 앞가슴 쪽으로 뛰어들며 장검을 세차게 내뻗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다섯 줄 기의 검광이 빛살처럼 진 산월의 목덜미와 양쪽 관자놀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갔다; 쐐애액; 백동일이 펼친 것은 천랑십이절 중의 낭조오자(狼爪五刺)라는 초식으로, 지금 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장내의 사 람들은 설마 백동일이 이토록 무모할 정도로 살벌하게 반격해 올 줄은 몰랐는지 모두 안색이 변해 버 렸 다; 자신의 안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반드시 상대의 몸을 난도질하고야 말겠다는 악독한 마음이 없으면 이런 식의 수법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면이 훤히 노 출된 진산 월의 몸에 피보기이 뚫리려는 순간, 그의 신형이 한차례 흔들 리더니 십여 개의 폭발하는 듯한 검광이 피어 올랐다; 따따땅; 폭죽이 터지는 듯한 음향이 울려 퍼지며 불똥이 사방으 로 튕겨졌다; 동시에 한 사람의 신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광경이 중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난 사람은 백동일이었다; 백동일의 안색은 조금 전의 여유 있던 모습과는 달리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백동일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 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재차 진산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 파파팍;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 큼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검광이 진산월의 전신을 뒤 덮었다; 백동일은 검을 휘두르는 일에 심혼(心魂)을 내던진 사람처럼 . 듯이 천랑십이절 중의 절초들을 펼쳐 진산월을 압박해 갔다; 그 공격이 어찌나 세차고 맹렬했던지 중인들은 진산월이 금시라 도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만 같아 절로 가슴 이 조마조마해졌다; 백 동일의 검법은 확실히 종남파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틀렸다; 분명 구석구석에 아직도 종남파의 흔적이 남아 있기 는 했으나, 검로의 진행 방향과 그 것에서 파생되는 변화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시전하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종 남파의 무공은 도가(道家)에 그 기본 바탕을 두고 있 어서 순간적인 강맹함이나 사람을 살상(殺傷)시키는 매서운 위력보다는 진중(鎭 重)하 면서도 은근한 힘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종남파의 무공을 대성(大成 )하기 위해서 는 은인자중(隱忍自重)할 줄 아는 끈기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이 필요했다; 하나 백동일 은 이십여 년 전에 소림사에서 커다란 좌절을 겪은 이후 심성(心性) 이 달라 져서 오직 상대를 신속하게 쓰러뜨리는 것만을 지상명제 로 생각했다; 일단 손을 쓰면 격식이나 외양에 신경쓰지 않고 가장 효과적이 고 신속하게 상대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 그래서 그의 한수 한수에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무자비하고 냉혹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비슷한 검 로라고 할지라도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검초는 종 남파 본래의 색깔 을 거의 찾아보거 힘들었다; 지금도 진산월의 전신을 난도질할 듯이 몰아쳐 오는 백동일의 검초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전풍개는 그 검초가 천 하삼십육검 중의 천하밀밀( 天河密密)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천하삼십육검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엄밀한 천하밀밀에 천 랑칠절검의 천랑 색명(天 狼索命)이 결합하여 보거만 해도 소름 이 오싹 돋는 야랑횡비 (野狼橫飛)의 일식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북방 의 검객들이 백동일의 이 잔인한 검초에 허무 하게 피를 뿌리며 쓰러졌는지 모른다; 진산월은 무표정한 눈으로 자신을 짓쳐오는 검광 들을 보더니 수중의 장검을 몇 차례 흔들었다; 쏴아아;;; 마치 대나무 숲을 바람 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무수한 검영 (劍影) 들이 나타났다; 그 검영들은 하나의 거대한 그물처럼 백동일의 전신을 뒤덮어 가더니 결국에는 백동일이 펼친 야랑횡비의 검 광의 무리와 정면으로 격돌하고 말았다; 차차차창; 수 백 개의 검들이 동시에 부딪친 듯한 음향과 함께 사방이 온통 폭발하는 듯한 검기의 소용돌이에 휩쓸 려 버렸다; 그 충돌의 여파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중 인들이 사오 장 밖으로 허겁지 겁 몸을 피해야만 했다; 자욱했던 검광과 수북이 피어오른 먼 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화살이 쏘아지는 듯한 격렬한 파공음이 거 푸 터져 나왔다; 핑; 핑; 중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보니 백동일이 머리를 산발하고 웃자락이 마구 풀어 헤쳐진 채로 . 사람처럼 마구 검을 휘두르 고 있었다; 누더기처럼 여기저기가 잘려져 나간 의 복 사이로 내비치는 그의 몸에는 군데군데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산발한 머리카락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언뜻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 되어 있어 그야말로 흉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살기등등하다 못해 광기(狂氣)마저 어린 듯한 그 모습에 종남파의 모든 문인(門人)들 은 아연실색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 고, 그래도 한때 자신이 몸을 담았던 문파의 장문인을 상대로 어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좀처럼 보거 드문 처 절한 격전이 계속되었다; 장내에는 살 벌한 검풍(劍風)과 거친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을 뿐, 이상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허 억;;; 허억;;;;" 백동일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가쁜 숨을 몰 아쉬면서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미 흐르는 땀과 핏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길게 풀어 헤쳐진 머 리카락이 얼굴을 뒤 덮고 있어 괴기스러워 보였다; 그에 비하면 진산월은 대조적이라 할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숨결도 거칠어지지 않았고, 동작 또 한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검을 휘두를 것만 같던 백동일 이 갑자기 검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숨을 불어 내쉬는 것이었다; "크허허; 크헉;" 마치 고함이라도 내지르는 것처럼 큰 숨을 몇 차례나 내뱉은 백동일이 돌연 어깨를 들썩 이며 웃 었다; "크하하;;; 네가 지금 나에게 사정을 봐주는 것이냐?" 진산월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백동일은 그의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던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 이거야말로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로구나; 네 말대로 천하삼십육검에 나도 모르는 묘용이 있다는 걸 인정 해 주지;" 백동 일은 검을 든 채로 어깨를 몇 차례 돌리더니 바 닥에 침을 뱉었다; 피 섞인 가래침을 서너 차 례 뱉은 후에 신발로 그것을 짓이기더니 다시 입을 열 었다; "넌 몇 번이나 나를 벨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네 딴에는 내게 아 량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너의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강호에서는 일단 검을 들었으면 자신을 향해 살기를 드러 내는 자가 누구든 서슴없이 벨 수 있어야 하며, 적 어도 상대를 마음속으로 완전하게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베 지도 못했고 심복(心服)시키지도 못했 으니 이게 바 로 너의 허술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 이겠느냐?" 백동일의 눈에서 점차 로 이글거리는 듯한 신광 (神光)이 흘러나왔다; "듣기로는 네가 검으로 구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더 구나; 하지만 나는 소문 따위 는 믿지 않는 다; 나는 오직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종남파가 재건되었다느니 종남파에 검귀가 나타났다느니 하는 말도 결코 믿지 않 는다;" 백동일은 검을 들어 진산월을 겨누 더니 부러지는 듯한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종남파는 이미 무너졌다 ;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마지막 몸 부림일 뿐이다;" 백동일의 선언과도 같은 외침은 주위에 있던 종남 파의 모든 고수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 말 속에 포함된 뜻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찌되었건 그 래도 한때는 종남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백 동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너무도 의외였던 것이다; 처음의 놀람과 당혹감은 이내 격렬한 분노 와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 켰다; "뭐라고? 몸부림 ? 뚫린 입이라고 정말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전흠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 리를 질렀다; 전흠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남파 고수들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 어 있 었다; 하나 백동일은 그들에게는 일별조차 주지 않 은 채 계속 진산월만을 응시 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무언가 깊은 상념 에 잠 겨 있는 것 같았고, 어찌 보면 마음 속에 솟구쳐 오르는 노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백동일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무어 라고 말하려 할 때 진 산월의 굳게 닫혔 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소;" 조용하고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래 서 백동일은 더욱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당신에게 살수(殺手)를 쓰지 않은 것은 당신에 게 살수를 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오;" 백동일은 묵묵히 진산 월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칼날같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하 나 그 시선을 받는 진산월의 얼굴 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담담한 것이었다; "본파는 이 미 재건되었소; 당신이 무어라고 하든 그건 사실이요; 이제와서 당신 한 사람을 쓰러뜨 리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오;" 이번에는 백동일의 얼굴이 굳어 졌다; 하 나 이내 백동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 과연 듣던 것처럼 말 하나는 잘 하는군; 하나 강호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어 디 나를 쓰러뜨려 보아라; 검으로 구름을 일으 키든 일검에 삼십육방을 찌르든 나를 완전히 꺾어 보아라; 그렇 다면 종남파 가 재건되었다는 네 말을 믿 도록 해보저;" ";;;;" "왜 아무런 대꾸가 없는 거냐?" 진산월은 고개를 내젓더니 무심한 음 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본파를 찾 아와서 이 런 시비를 벌이는지 모르겠 지만, 본파는 당신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 가한 곳이 아니오; 그러니 어서 물러 가시오;" 모욕에 가까운 심한 말을 들었음에 도 백동일은 여전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 흐 ;;; 서툰 격장지계(激將之計)를 벌일 필요 없다; 나를 쓰러뜨리든지, 아니면 종남파가 이미 무너졌다는 걸 시인하 고 봉문(封門)을 해라;" 강압적인 그의 말 에 모두들 다시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진산월은 웃고 있는 백동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백동 일은 그의 시 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두 눈에서는 기이한 광기(狂氣) 같은 어야 할 강일비는 자 신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야밤에 몰래 종적을 감추었으며, 그 뒤를 이어 많은 제자 들이 종남파를 떠났다; 촉망받는 기재였던 백동일은 사부를 따라 장 성으로 갔고, 결국 임장홍이 차기 장문인으로 지목되었다; 노해 광의 위치는 더욱 어정쩡해졌다; 종 남파의 문하제자들 수가 급감하여 따로 문파의 살림을 꾸려 나갈 집사를 둘 필요 가 없어졌고, 윗 대의 고수들이 모두 사라져 당장 문파를 끌어 나갈 사람의 수가 절대적 으로 부족했다; 노해광은 장문인이 될 수도 없고 집사가 될 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 가 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노해광은 꿋꿋하게 종남파에 남아 있었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고, 위기에 처한 종남파를 등지고 떠날 만큼 야박한 성격도 아니어서 임장 홍을 도와 종 남파의 궂은 일을 모맡아 처리했다 ; 하나 그러던 그 도 결국 오 년도 되지 않아 종남파를 등지고 말았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발생한 임장홍과의 불화(不和) 때문이었 다; 당시 종 남파의 장문인은 임장홍이었으나, 실질적 으로 종남파의 내부 살림을 이끌어 나간 사람은 노해광이었다; 그것은 노해광 이 이재에 밝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임장홍의 처( 妻)인 두 란향이 몸이 좋지 않아 자주 병 상에 누워 있던 탓도 있었다; 외부로 나 가 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임장홍을 안에서 도와줘야 할 두란향이 앓아 누워 있으니 자연히 그녀 의 몫까 지 노해광이 감당해야 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병수발을 들며 문파를 꾸며 나가던 노해광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연정(戀情)을 품게 되었다; 두란향 은 비단 보거 드문 미녀일 뿐 아 니라 그 심성이나 자태가 여느 여인과는 틀려서 사람을 매혹게 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 가 유난히 병약(病弱)한 몸은 남자의 보호본능까지 자극하여 노해 광이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아닌 누구라 할지라도 그녀를 보면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 었다; 노해광의 경우에는 그런 호감이 좀더 발전한 형태였을 뿐이다; 일단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되자 노해광 은 그녀의 남편인 임장홍 의 모든 것이 안 좋게 생각되었다; 병상에만 누워 있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문파를 재건하겠다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도 못마땅했고, 능력도 없으 면서 사람 만 좋은 그의 행태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연히 그는 임장홍이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 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때마다 임장홍은 특유의 느긋한 웃음으로 사태 를 해결하려 했으나 그럴수록 노해광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그러다 결국 두란향이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자 노해광은 임장 홍을 향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 해냈다; 임 장홍은 아무 말도 없이 노해광의 욕설을 듣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노해광을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당신 이 죽인 거요; 이 한심한 인간; 한 여자의 남편이 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책임졌어야지;" 노해광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질렀다; 그래 도 임장홍이 아 무런 대꾸가 없자 노해광은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당신이 장 문인이 되어서 제대로 한 일이 하나라도 있었소? 당신은 그녀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조만간에 본파까지 말아먹고 말 거요;" 그때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던 임장홍의 쓸쓸 한 모 습을 노해광은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노해광은 자신을 파문(破門)시켜 달 라며 임장홍을 강요했고, 임장홍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자 스스로 종남파를 떠나고 말았다; "네 사 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지; 차라리 나쁜 놈이 었다면 욕을 퍼붓고 칼부림 이라도 했을 텐데 네 사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싫어질 수 없는 인간이었지;" ";;;" "그 래서 나는 떠나야만 했다; 그를 원망하 고 미워하고 싶은데, 그의 곁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거든;" 노해광은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너는 그런 놈이 되지 마라; 너 무 좋 기만 해서는 안 돼; 좋은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사람보다는 강한 사람이 돼라; 그게 우두머리의 숙명(宿命)이다;" 진산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것이 자신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것인 지, 아니면 무심결에 한 행동인지 노해광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한동안 진산월의 얼 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 섞인 음성을 토해냈다; "너는 네 사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되기 도 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네 모습을 보니 그동안 네가 어떠한 길을 겪어 왔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구나; 하지만 앞으로 걸 어야 하는 길 은 절대 로 지나온 길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 "내일 초가보에서 총공격을 해올 것이다;" 노해광은 지나 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산월도 제대로 알아듣 지 못했다 ; 하나 이내 그의 말을 알아듣고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우 선 당장은 내일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결코 순탄한 길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다; 너는 너 무 힘든 선 택을 한 거야;" 이어서 노해광은 백동일이 어젯밤에 자신 을 찾아온 .를 했다; 노해광이 말을 마칠 때까지 진산월은 한마디로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 었다; 노해광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진산월의 비쩍 마른 얼굴에 고정되었 다; "이제 어쩔 셈이냐? 그래도 초가 보에 맞서 싸울 생각이냐?" 진산월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잘라 말 했다; "물론입니다 ;" "그들은 강하 다; 일전에 너희들이 살아 남은 것은 그들이 경시한 탓도 있었 지만, 정말 운(運)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력(戰力)은 결코 화산파에 뒤지 지 않는다; 이 번에 그들은 먼젓번과 같은 방심을 하지도 않을 것이며, 전력을 기울여 너희들을 뿌리째 뽑으려 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너희들의 수를 모두 합쳐 도 열 명 남짓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인원 으로는 네가 천하에 다시없는 고수라 할지라도 초가보를 감당 해 낼 수 없다; 차라리 일단 그들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후일( 後日)을 도모하 는 것이 더 낫지 않 겠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노해광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나친 자신감은 만용(蠻勇)일 뿐이다; 옛 말에도 지나가는 소나기는 피하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 너는 무사할 자신이 있을지 몰라도 몇 명 남지도 않은 제자들이 몽땅 죽는다면 종남파의 재건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진산월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노해 광이 언뜻 고개를 돌려 보니 진산월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강퍅한 얼굴에 떠올 라 있는 희미 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드는 마력이 있었다; 노해광은 한동안 멍하니 그 얼굴 에 떠오른 미소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언뜻 정신이 들어 고개를 돌 렸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의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편하 고 차분한 심정이 되었다; 노해광은 왜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 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진산월의 미소 는 자신감에 차 있거나 용기를 북돋는 그런 미 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담담 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하나 그 미소 속에는 당 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담겨 있었다; 진산월에게 있어 초가보와의 싸움은 당연히 거쳐야 할 관 문(關門) 이었고, 오래 전부터 그 일을 마음속으로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시기가 내일로 닥쳐왔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이유 가 없었던 것이다; 노해광은 갑자기 목 이 메어 와서 황급히 엉뚱 한 곳을 쳐다보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 밀어 올라왔던 것이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사람은 의외로 진산월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 오; 우리는 잘해 낼 수 있을 겁니다;" 노해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는 바닥에서 몸 을 일으켰다; "백 동일을 묻 을 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노해광은 그럴 필요 없다고 하려 했으나 어느새 진산월은 휑하니 몸을 돌 려 성큼성 큼 걸어 가고 있었다; 노해광은 멍하니 그 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백동일의 시신을 안고 그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 이기 시작했다; 무덤은 작고 초라했다; 하나 전 망이 아주 좋아서 종남산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 특히 종남파의 구석구석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노해광은 백동일의 시신을 묻고 난 후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 실히 좋은 곳이군; 여 기라면 백동일도 마음에 들어 할 거다;" 노해광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에 그럴듯한 비석(碑石)이라도 세워야겠군; 조금 쓸쓸한 것 같구나;" 노해광의 얼굴에는 형용 하기 힘든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상 념에 잠긴 채 무덤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노 해광이 돌연 피식 웃었다; "하긴;;; 그 녀석은 그런 건 신 경도 쓰지 않을 거다; 오직 승부를 위해서 앞으로만 달려가던 놈이었으니까; 틀림없이 무덤 속에서도 칼을 갈고 뛰쳐 나 올 기회만 노리고 있을 거야;" 노해광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러니 그놈 앞에서 나약한 꼴을 보일 수 없지; 후아;" 노해광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조금 전보다는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진산월을 돌아보 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내일 제대로 싸우려면 아무래도 좀더 자세히 .를 나누어야 할 것 같구나;" *** "내일 초가보 에서 출정(出征)하는 인원은 대 략 사십 명 남짓이오 ;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요; 숫자는 비록 적지만 초가보의 실질적인 정예들 이 대 부분 망라되어 있 어 화산파와도 정면으 로 자웅(雌雄)을 겨루어 볼 수 있는 가공할 전력(戰力)이오;" 노해광의 말을 듣는 중인들의 표정은 모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초 가보에 서 내일 총공격을 해올 거라는 소식은 종남파의 모든 고수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전 해 주었다; 며칠 전의 습격에서 채 부상이 낫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형편에서 초 가보의 모든 힘이 투입되는 싸움이 벌어진다 는 것은 여러모로 종남파에는 불리한 일이었다; 노해광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종남파 부근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 다; "그들 은 모두 세 방향에서 포위망을 구축하여 접근해 올 텐데, 초가보의 오대호법 중 남아 있는 세 명과 하북십호가 조사전 후방을 맡고, 두 명의 공봉과 도패 좌린이 철영대를 이끌고 조 양봉의 산길을 봉쇄할거요; 그리고 그들의 주력은 ;;;" 노해광의 손은 산문 입구에 고정되었다; "바로 이쪽으로 올 텐데, 초가보의 후원에 머물러 있는 빈객들이 총출동 한다고 하 오;" 모두들 묵묵히 노해광이 가리키 는 지도를 주 시하고 있었다; 노해광의 말대로라면 종남파로서는 퇴로(退路)가 원천 봉쇄된 상태에서 초가보의 정예들과 정면충돌하 는 길밖에 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득 전풍개가 퉁명스런 음 성으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그 토록 소상하게 알고 있는 거냐?" 노해광은 그를 향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백동일이 정산을 통해 저에게 초가보의 공격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 쪽 구석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정산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백 공자께서 제게 노 공자께 전하라며 서신(書 信)을 맡기 셨습니다; 그 서신 에 초가보에 대한 정보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정산의 두 눈이 빨갛게 변했다; "백 공자께 선 겉으로는 저를 차갑게 대하셨지만, 그래도 종남에 대 한 충심 (忠心)을 간직하고 계셨던 게 분명합니다;;;" 정산의 두 눈에서는 금시라도 뜨거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풍개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 다; "이미 죽은 녀석 때문에 궁상떨 것 없다; 그놈이 진정으로 본파를 생각 했다면 그런 식으로 목숨을 내던질 게 아니라 본파를 위해서 힘을 더 했어야지; 다시 같은 놈;" 정산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붉게 상기 된 얼굴을 떨구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는 듯하자 노해광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무튼 덕 분에 상대의 전 력(戰力)에 대해 소상하게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 입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어찌 대비해야 할지를 몰라 속 수무책으로 당했을 겁니다;" 그 말이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풍개 는 더 이상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노해광은 다시 한차례 중 인 들을 훑어보았다; "초가보의 전법(戰法)은 단순하오; 본파에서 외부 로 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 를 철저히 봉쇄하고 , 자신들의 주력(主力)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와 우리를 철저히 분쇄하려는 것이오;" 노해광의 입에서 '본파' 와 '우 리' 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몇몇 사람은 그의 그 런 모습에 다소 낯설어 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특별히 거부감 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 은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오; 변수(變數)를 최대한 줄이고 본파를 철저히 궤멸시키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는 전술이오;" 노 해광은 말을 하면서 중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의외로 겁을 먹거나 의기소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 가득 맹렬한 투지를 끌어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노해광은 이들의 이런 모습이 단순한 치기 때문인 지 아니면 나름대로의 자신감 때문인지 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하나 일단 그들에게 싸우고자 하는 의 욕이 충만하다는 것을 확 인한 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들이 정공법(正攻法)을 택한 이상 우 리의 선택도 그리 많지 않소; 내가 생각하기에 는 모두 세 가지 정도 의 대응책이 있을 것 같소;" 중인들 중 유난히 번쩍이는 외눈을 가진 중년인이 그에게 물어왔다; "세 가지 대 응책이란 어떤 것입니까?" 노해광은 조금 전에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는 사손(師孫)뻘인 동중산임을 알고 있었다; 비천 호리 동중산이라면 나이도 제법 먹었고 강호 에서의 명성도 상당한 인물이었지만, 배분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만큼 노해광의 입에서 는 자연스런 하대가 흘러나왔다; "첫째는 우리도 정공법으로 그들에게 맞서 는 것이다; 우리 의 힘을 분산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 정 면돌파를 강행하자는 것이지; 이 방식은 성공하면 상대 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실패했을 때 는 우리 자신이 돌 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동중산은 침착한 음성으로 대 꾸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의 전력이 너무 강 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둘째로는 본 파의 지리상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매복과 암습으로 기병지계(奇兵之計) 를 펼치는 것이다; 이 방법에도 장점 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손실을 최소로 하고 적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 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칫하다가는 제 대로 싸워 보저 도 못하고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겠지요;" 노해광은 그의 외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 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세 번째는 상대의 주공이 아닌 한 쪽 방면 에 우리의 전력을 집중시켜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 또한 단숨에 그 방면의 상대을 궤멸시키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포위망에 제 발로 뛰어든 격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 중 가장 약한 방면이라면 세 명의 호법과 하북십호가 지키고 있는 후방 쪽일 텐데, 그들 을 빠른 시간 내 에 제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 다;" "초가보를 상대하는 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이 세 번째 방법이 우리가 취할 수 있 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진산월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 방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노해광이 눈을 슬쩍 치켜떴다; "마음에 들지 않 는다니?" "너 무 수동적입니다; 결국 그 방법은 상대의 정면공격을 피해 도망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이번 싸움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본파가 멸문하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에 무 슨 의미를 찾겠다는 거냐? 무.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자는 것이다;" "그들의 공 격을 피해 다니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본파 를 공격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똑똑히 알게 해주어야겠습니다;" 노해광은 내심 어이가 없 었 다; 진산월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자신감이 너무 터 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초가보의 전력이 이토록 가 공스러운데 %c7%d1%bc%ba%c1%d6%c0%af%c3%e2%bf%b5%bb%f3 바로가서 특급영상 보기살길을 모색하기도 바 쁜 와중에 무슨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말인가? 아마 사문의 어른인 전풍개가 없었다면 버럭 소 리라도 질렀을지 몰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사람들 또한 진산월의 말에 동조한다는 표정들이었다; 우선 당장 전풍개가 먼 저 어깨를 흔들며 웃는 것이었다; "흐흐;;; 옳은 말이다; 본파를 우습게 본 그놈들을 순순히 돌려 보낸대서야 말이 안 되지; 이번 에 야말로 그놈들에게 지금까지 당한 모든 수모를 단단히 갚아 줘야겠다;" 전풍개의 말에 모 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입 밖으로 소 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모두의 심정이 그 와 같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노해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오 랜 세월 동안 당했으면서도 이 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사숙, 초가보의 호법과 공봉들은 당금 강호에서도 최고 수준의 고수들 입니다; 게다가 빈객들 중에는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자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자들과 정면으 로 싸 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노해광의 걱정과는 달리 전풍개는 태연자약했다; "싸우 는 방 법이야 장문인이 결정할 문제지; 다만 이대로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그놈들에게 반드시 본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노해광은 한숨부터 흘 러나왔으 나 억지로 눌러 참고는 진산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말한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 해 보아라;" "우리가 먼저 기 습을 합 니다;" 뜻밖의 말에 강호의 경험이 누구보다도 풍부한 노해광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그들이 공격하기 전에 우리 가 먼저 그들을 공 격 하는 겁니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그들은 아마 내일 새벽에 초가보를 출발하여 본파로 올 겁니다; 본 파의 세 군데 출입구를 봉쇄하기로 계 획했으니 그들도 세 개의 무리 로 나뉘어 지겠지요; 미리 그들의 이동경로에 매복해 있다가 한 무리씩 제거한 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노해광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하나 멍청해 보이는 겉모습과 는 달리 그의 머리 속에는 번개같이 빠른 생각이 치달려 가고 있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재 빠르게 진산월의 말을 검토 해 보고는 그 계획이 터무니 없 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는 종남파 내에서 초가보의 공격을 처리하기 위해 나 름대로 많은 궁리를 해왔다; 자연히 모든 계획이 수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진산월의 계획은 그 발상부터 달랐다; 상대를 기 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 저 찾아가서 승부를 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공격적인 계획이며, 이행 여부에 따라서는 오히려 초가보 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단순히 생존(生存)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勝利 )를 거둘 수도 있는 것이다; 동중산이 재빨리 탁자 앞으로 와서 또 다른 지도 하나를 펼쳤다 ; "이건 초가보의 인근 지역입니다; 그들이 본파로 올 수 있는 길은 모두 다섯 군데인데, 그중 두 곳은 서안 쪽으로 삥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나머지 세 군데의 길로 올 것이 분명 합니다;" 그 지도를 본 노해광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지도는 초가보와 그 주변에 대해 무척이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작은 샛길 하나, 심지어 는 허름한 사당이나 버려진 흉가(凶家)까지도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그제서 야 노해광은 이들이 이미 오랫동안 초가보와의 일전(一 戰)을 준비해 왔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동중 산은 초가보에서 나오는 붉은 색 선(線)으로 표시된 길을 가리켰다; "이 길로 아 마도 그들의 주력이 지나갈 것입니다; 이쪽으로 오면 본파의 정문에 가장 빨리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옆의 길이 본파의 조양봉 쪽으로 오는 샛길이며, 가장 오른쪽이 본파의 조사전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장문인께선 먼저 어느 쪽 길을 치시겠습니까?"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가장 약한 곳을 먼저 친다;" 동중산도 그렇게 생각한 듯 이 내 오른쪽 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게 합 당한 순서겠지요; 그렇다면 이 쪽 길부터 순서대로 공격하 면 되겠군요; 이쪽 길의 매복은 소량산(小梁山) 부근이 좋을 듯 합니다;" 소량산은 산세가 험한데다 정상 부근에는 가파른 바위들로 이 루어진 지대가 있어서 잠복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장소였 다; 이어 동중산은 두 번째 길을 따라 손가락을 이동시켰다; "두 번째 기습은;;; 태평곡(太平 谷) 일대가 괜찮을 듯 싶습니다;" 진산 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평곡은 계곡이 깊고 은밀하지;" "예; 그리고 세 번째로는;;;" "더 이상 은 필요 없다;" "예?" 동중산이 반 문하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두 번째 기습이 성공하면 마지막 무리는 본산으로 와서 해결하도록 하자;" 동중산은 정중 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들이 계획을 세우는 광경을 노해광은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은 절대 서두 르 지도 않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실현 가능한 일을 최대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짜고 있었다; 언뜻 보거에는 매복 장 소를 아무렇게나 선정한 것 같 아 도 오랜 세월 동안 종남산 일대를 헤집고 다녔던 노해광은 그들 이 고른 장소가 더할 나위 없이 적 합한 곳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 '비천호리라고 하더니 정말 이름 그대로구나;;;' 동중산뿐 아 니었다; 계획을 검토하고 보완하는 진산월의 모습은 평생을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 살아온 노강호(老江湖)에 못 지 않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묵묵히 그 두 사람이 계획을 입안(立案)하고 추진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혹 낙일방이 몇 마 디를 물었을 뿐, 아무도 그들의 계획에 반대 하거나 이견(異見)을 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는 굳은 신뢰 가 담겨 있었다; 계획을 최종적으로 점검한 진산 월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상원건의 얼굴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상원 건은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렸다; "행여 나보고 종남파 를 떠나라고 할 생각이라면 미리 정중하게 거절하 겠소;" 진산월은 선수를 치는 상원건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상 대협께 어려운 부탁 을 드려야겠습니다;" 어 려운 부탁이라는 말에 상원건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안 색이 한결 밝아졌다; "말씀하시오;" "현재 본파에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몇 명 머물러 있습니다; 내일 하루 만이라도 상 대협께선 그들을 지켜 주십시오;" 상원건은 처음에는 진 산월이 자신을 초가보와의 싸움 에서 빠지게 하려고 핑계를 대는 것으로 알고 그의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하나 생각해 보니 현재 종남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중 무림인(武林人) 이 아닌 사람은 석지명과 그의 하인들을 포함하여 거의 칠 팔 명이나 되었다; 내일 벌어질 초가보와의 결전에서 그들 은 어떤 식으로든 종남파에는 커다란 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자신의 딸 인 상소홍도 끼어 있지 않은 가? 석지명 이야 자신의 개인 보표가 있다고 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자칫 싸움의 와중에 생사(生死)의 위기에 처할지도 몰 랐다; 그들의 안전 을 책임지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우 선시되는 일이었다; 상원건은 몇 번이나 생각을 거듭하고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느다란 한숨 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소; 그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하겠소;" "부탁 드리겠습니다;" 상원건이 맡은 일은 결코 수 월한 게 아니었다; 종남파에서 내일의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은 유소응과 응계성을 제외하더라도 장승표와 정산, 갈 노인, 그리고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송천기 등이 있다; 거기에 상소홍과 석지명 일행까지 합치면 한 사람이 보호하기에는 지나치게 많 은 인원이었다; 이들을 완벽하게 보호한다는 것은 오히려 절정고수들과 의 싸움보다 더 욱 힘들고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처음에 어려운 부탁이라고 한 진산월의 말은 단순히 의례적인 겉치레는 아니었던 것이다; 진 산월은 찬찬히 주위 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주춤거리고 있는 지 일환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일환은 억지로 웃 어 보 였다; "진 장문인, 나는 종남파의 소속이 아 니니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빠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평상시라면 아무리 지일 환의 낯짝이 두껍다 해도 이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는 없었을 텐데, 사정이 워낙 다급하다 보니 염치불구하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중인들의 어이없어하는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지일환 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나는 무공도 보 잘 것 없고 별다른 장기도 가지 고 있지 않아서 내일과 같은 싸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오; 오히려 내가 빠져 주는 게 진 장문 인을 도와주는 일이 될 거요;" 진산월은 빙 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은 이제 그만 본파를 떠나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소; 늦기 전 에 어서 가 보시 오;" 그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지일환은 멍하니 진산월을 쳐다보더니 이내 멎쩍은 웃음을 흘렸다; "헤 헤;;; 과연 진 장문인의 마음은 하해(河海)와 같소이다; 진 장 문인과 종남파의 무운(武運)을 빌겠소;" 지일 환은 정중하게 포권을 하더니 그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자신을 제지할 것이 두려운지 황급히 몸을 돌려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 모습을 보고 있던 진산 월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동중산을 돌아보았다; "그가 초가보로 갈 것 같으냐?" 동중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그는 이씨세가에 쫓기는 신세라 자 신의 몸을 안전하게 의탁할 곳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본파에 묘용이 있다는 걸 인정 해 주지;" 백동 일은 검을 든 채로 어깨를 몇 차례 돌리더니 바 닥에 침을 뱉었다; 피 섞인 가래침을 서너 차 례 뱉은 후에 신발로 그것을 짓이기더니 다시 입을 열 었다; "넌 몇 번이나 나를 벨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네 딴에는 내게 아 량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너의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강호에서는 일단 검을 들었으면 자신을 향해 살기를 드러 내는 자가 누구든 서슴없이 벨 수 있어야 하며, 적 어도 상대를 마음속으로 완전하게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베 지도 못했고 심복(心服)시키지도 못했 으니 이게 바 로 너의 허술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 이겠느냐?" 백동일의 눈에서 점차 로 이글거리는 듯한 신광 (神光)이 흘러나왔다; "듣기로는 네가 검으로 구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더 구나; 하지만 나는 소문 따위 는 믿지 않는 다; 나는 오직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종남파가 재건되었다느니 종남파에 검귀가 나타났다느니 하는 말도 결코 믿지 않 는다;" 백동일은 검을 들어 진산월을 겨누 더니 부러지는 듯한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종남파는 이미 무너졌다 ;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마지막 몸 부림일 뿐이다;" 백동일의 선언과도 같은 외침은 주위에 있던 종남 파의 모든 고수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 말 속에 포함된 뜻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찌되었건 그 래도 한때는 종남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백 동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너무도 의외였던 것이다; 처음의 놀람과 당혹감은 이내 격렬한 분노 와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 켰다; "뭐라고? 몸부림 ? 뚫린 입이라고 정말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전흠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 리를 질렀다; 전흠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남파 고수들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 어 있 었다; 하나 백동일은 그들에게는 일별조차 주지 않 은 채 계속 진산월만을 응시 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무언가 깊은 상념 에 잠 겨 있는 것 같았고, 어찌 보면 마음 속에 솟구쳐 오르는 노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백동일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무어 라고 말하려 할 때 진 산월의 굳게 닫혔 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소;" 조용하고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래 서 백동일은 더욱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당신에게 살수(殺手)를 쓰지 않은 것은 당신에 게 살수를 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오;" 백동일은 묵묵히 진산 월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칼날같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하 나 그 시선을 받는 진산월의 얼굴 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담담한 것이었다; "본파는 이 미 재건되었소; 당신이 무어라고 하든 그건 사실이요; 이제와서 당신 한 사람을 쓰러뜨 리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오;" 이번에는 백동일의 얼굴이 굳어 졌다; 하 나 이내 백동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 과연 듣던 것처럼 말 하나는 잘 하는군; 하나 강호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어 디 나를 쓰러뜨려 보아라; 검으로 구름을 일으 키든 일검에 삼십육방을 찌르든 나를 완전히 꺾어 보아라; 그렇 다면 종남파 가 재건되었다는 네 말을 믿 도록 해보저;" ";;;;" "왜 아무런 대꾸가 없는 거냐?" 진산월은 고개를 내젓더니 무심한 음 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본파를 찾 아와서 이 런 시비를 벌이는지 모르겠 지만, 본파는 당신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 가한 곳이 아니오; 그러니 어서 물러 가시오;" 모욕에 가까운 심한 말을 들었음에 도 백동일은 여전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 흐 ;;; 서툰 격장지계(激將之計)를 벌일 필요 없다; 나를 쓰러뜨리든지, 아니면 종남파가 이미 무너졌다는 걸 시인하 고 봉문(封門)을 해라;" 강압적인 그의 말 에 모두들 다시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진산월은 웃고 있는 백동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백동 일은 그의 시 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두 눈에서는 기이한 광기(狂氣) 같은 어야 할 강일비는 자 신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야밤에 몰래 종적을 감추었으며, 그 뒤를 이어 많은 제자 들이 종남파를 떠났다; 촉망받는 기재였던 백동일은 사부를 따라 장 성으로 갔고, 결국 임장홍이 차기 장문인으로 지목되었다; 노해 광의 위치는 더욱 어정쩡해졌다; 종 남파의 문하제자들 수가 급감하여 따로 문파의 살림을 꾸려 나갈 집사를 둘 필요 가 없어졌고, 윗 대의 고수들이 모두 사라져 당장 문파를 끌어 나갈 사람의 수가 절대적 으로 부족했다; 노해광은 장문인이 될 수도 없고 집사가 될 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 가 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노해광은 꿋꿋하게 종남파에 남아 있었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고, 위기에 처한 종남파를 등지고 떠날 만큼 야박한 성격도 아니어서 임장 홍을 도와 종 남파의 궂은 일을 모맡아 처리했다 ; 하나 그러던 그 도 결국 오 년도 되지 않아 종남파를 등지고 말았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발생한 임장홍과의 불화(不和) 때문이었 다; 당시 종 남파의 장문인은 임장홍이었으나, 실질적 으로 종남파의 내부 살림을 이끌어 나간 사람은 노해광이었다; 그것은 노해광 더 머무를 수 없는 형편 이라면 당연히 초가보로 가겠지요; 더구나 초가 보에서 반겨줄 좋은 정보까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초가 보에서 그의 말을 믿어 줄까?" "믿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노해광은 묻 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초가보의 전력이 이토록 가공스러운데 살길을 모색하기도 바 쁜 와중에 무슨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말인가? 아마 사문의 어른인 전풍개가 없었다면 버럭 소리라도 질렀을지 몰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사람들 또한 진산월의 말에 동조한다는 표정들이었다; 우선 당장 전풍개가 먼저 어깨를 흔들며 웃는 것이었다; "흐흐;;; 옳은 말이다; 본파를 우습게 본 그놈들을 순순히 돌려 보낸대서야 말이 안 되지; 이번 에야말로 그놈들에게 지금까지 당한 모든 수모를 단단히 갚아 줘야겠다;" 전풍개의 말에 모 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모두의 심정이 그 와 같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노해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오 랜 세월 동안 당했으면서도 이 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사숙, 초가보의 호법과 공봉들은 당금 강호에서도 최고 수준의 고수들 입니다; 게다가 빈객들 중에는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자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자들과 정면으로 싸 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노해광의 걱정과는 달리 전풍개는 태연자약했다; "싸우 는 방 법이야 장문인이 결정할 문제지; 다만 이대로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그놈들에게 반드시 본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노해광은 한숨부터 흘러나왔으 나 억지로 눌러 참고는 진산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말한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 해 보아라;"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합 니다;" 뜻밖의 말에 강호의 경험이 누구보다도 풍부한 노해광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그들이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공 격 하는 겁니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그들은 아마 내일 새벽에 초가보를 출발하여 본파로 올 겁니다; 본파의 세 군데 출입구를 봉쇄하기로 계 획했으니 그들도 세 개의 무리 로 나뉘어 지겠지요; 미리 그들의 이동경로에 매복해 있다가 한 무리씩 제거한 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노해광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하나 멍청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리 속에는 번개같이 빠른 생각이 치달려 가고 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득 전풍개가 퉁명스런 음 성으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그 토록 소상하게 알고 있는 거냐?" 노해광은 그를 향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백동일이 정산을 통해 저에게 초가보의 공격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 쪽 구석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정산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백 공자께서 제게 노 공자께 전하라며 서신(書信)을 맡기 셨습니다; 그 서신 에 초가보에 대한 정보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정산의 두 눈이 빨갛게 변했다; "백 공자께선 겉으로는 저를 차갑게 대하셨지만, 그래도 종남에 대 한 충심 (忠心)을 간직하고 계셨던 게 분명합니다;;;" 정산의 두 눈에서는 금시라도 뜨거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풍개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 다; "이미 죽은 녀석 때문에 궁상떨 것 없다; 그놈이 진정으로 본파를 생각 했다면 그런 식으로 목숨을 내던질 게 아니라 본파를 위해서 힘을 더 했어야지; 다시 같은 놈;" 정산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붉게 상기 된 얼굴을 떨구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는 듯하자 노해광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무튼 덕 분에 상대의 전 력(戰力)에 대해 소상하게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 입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어찌 대비해야 할지를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겁니다;" 그 말이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풍개 는 더 이상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노해광은 다시 한차례 중인 들을 훑어보았다; "초가보의 전법(戰法)은 단순하오; 본파에서 외부 로 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 를 철저히 봉쇄하고 , 자신들의 주력(主力)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와 우리를 철저히 분쇄하려는 것이오;" 노해광의 입에서 '본파' 와 '우 리' 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몇몇 사람은 그의 그 런 모습에 다소 낯설어 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특별히 거부감 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오; 변수(變數)를 최대한 줄이고 본파를 철저히 궤멸시키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담겨 있는 전술이오;" 노 해광은 말을 하면서 중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의외로 겁을 먹거나 의기소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 가득 맹렬한 투지를 끌어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노해광은 이들의 이런 모습이 단순한 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름대로의 자신감 때문인지 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하나 일단 그들에게 싸우고자 하는 의 욕이 충만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들이 정공법(正攻法)을 택한 이상 우 리의 선택도 그리 많지 않소;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두 세 가지 정도 의 대응책이 있을 것 같소;" 중인들 중 유난히 번쩍이는 외눈을 가진 중년인이 그에게 물어왔다; "세 가지 대 밤을 지새우면 서 누나를 깨우고 있는 것 같았다; 중인들은 무심결에 아이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 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오건만 아이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저쪽 동굴이다;" 그들 중 회색 장삼을 걸친 장한이 한 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폭포에서 가까운 동굴 한군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 어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한밤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닥불을 피웠던 모양이다; 중인들은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이내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이런 곳에 어린아이가 있다 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했으나, 그런 호기심을 충족 시킬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데 그들이 막 다시 신형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아악;"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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