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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보드를 처음 배울 때였다. 


막 슬라이딩턴과 트립에 재미를 붙일 무렵이라 12월이 되어 눈이 오기 시작하면 나는 취업이고 공부고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증상을 경험하기 일쑤였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마친 나는 결국 졸업학점이 3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현실도피라도 하듯이 방학이 시작된 첫 주말에 강원도로 도망쳤다.


날은 그다지 춥지 않았지만 마음은 추웠다. 적지않은 나이. 취업걱정과 학점걱정. 

꿈을 쫒는답시고 허비했던 20대의 몇년과 그 실패로 인하여 얼마 남지않은 20대의 시간. 그 모든것을 잊기 위해서는 보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성우리조트에는 야주 작은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일요일 야간타임이라서인지 슬로프는 의외로 한산했다. 


리프트 대기줄에서 반다나에 입을 숨기고 숨을 내쉬었다. 보드를 4시간이 넘게 탔는데도 아직 내안에 어딘가에 그런 온기가 남아있다는게 신기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몸뚱이가 그나마 음식을 열량으로 바꾸는 역할정도는 할 줄 아는구나 싶어 대견했다.


앞사람이 리프트에 올라타고 내 차례가 되었다. 얼굴을 고글로 가린 여자 스키어 한명이 내 옆에 섰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움찔하면서 리프트의 왼쪽 끝으로 움직였다. 그 여자는 나를 힐끔 바라보고는 자기도 리프트의 오른쪽 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리프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우리는 리프트의 양쪽 끝에 앉아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격어보는 이 상황이 조금 우스워서 반다나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내 반대편 끝에 앉은 그녀는 검정색 바지에 하얀색과 파란색이 섞인 스키복을 입고 있었다. 


흰색 고글을 쓰고 있던 그녀는 앞쪽을 지긋이 주시하다가 고글을 이마에 올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고글안에서 힐끔거리던 것을 눈치챈 걸까? 날 쳐다보는 그녀는 생각보다 굉장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타기 어렵나요?"

"네?"

"보드요. 보드는 배우기 어렵냐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사실 얼굴과 매우 상반된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앳된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눈은 쌍커풀이 없이 길게 찢어진 눈이었다. 예쁘장한 눈은 아니었지만 왠지모르게 그 눈이 빛나보인다고 생각했다.


"아. 아니요. 아마 스키보다는 쉬울것 같은데... 운동신경 좋으신 분들은 하루이틀이면 왠만큼 타시던데요."

"그래요?"

"네..."


뭐라고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것도 없었다. 싱겁게 끝난 대화 때문인지 그녀는 내 발에 묶인 보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까 봤어요."

"네?"

"아까 보드타시는거 봤어요. 잘타시던데요."

"네? 아하하... 그럴리가요..."

"저도 배워보고 싶네요. 한번쯤 타보고 싶었어요. 보드."


그리고 나는 더이상 대화를 끊는 짓을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걸어야 할것 같았다.

리프트에서 내려서 그녀와 서로 눈인사를 하고 서로 갈길을 가는 광경이 떠오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스키는 오래타셨어요?"

"네... 사실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잘 안됐어요."

"아... 경쟁률이 쎄죠? 그..."

"네. 잘된거죠 뭐. 아마 그렇게 대학에 갔으면 즐기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구나...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보드타는거?"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그래도 되겠어요?"

"물론이죠. 저도 잘은 못타지만... 그냥 기본적인 것정도는..."


그녀가 씨익하고 웃었다.


"재미있겠네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슬로프를 몇번 내려왔다. 그녀와 함께 하는 보딩은 그날 내가 했던 보딩중에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트릭에 실패해서 눈밭에 처박힐 때마다 그녀는 깔깔대고 웃어댔다. 


스키장은 점점 추워졌고, 우리는 잠시 쉬기 위하여 스키하우스로 들어왔다. 성우리조트의 푸드코트에서 우리는 추위를 녹이면서 마주앉았다.


"시간 금방 지나네요."

"그러게요... 벌써..."


그녀는 고글과 비니를 벗었다. 짧은 숏커트의 머리가 드러났다.


"좀 출출하네요. 뭐라도 먹을까요?"

"아.. 그럴까요?"


그녀의 제안에 나는 불안해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그녀와는 달리 나는 이제 말이 학생이다뿐이지 백수나 다름없었다. 


리조트의 음식들 가격은 나에겐 과분한 것 투성이였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를수는 없었다. 남자는 여자앞에서 가난할수는 없는 법이었다.


"뭐 드시겠어요? 제.. 제가 저녁 사고 싶은데요."


내 목소리가 떨렸을까?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그녀는 살짝 올려다 보면서 웃었다.


"라면 좋아해요? 라면 먹을까요?"


"네? 그렇지만 성우리조트의 편의점에서는 컵라면을 먹기위한 온수기는 구비되어있지 않을텐데요?"


"물론 그렇지만, 리조트 내에 정수기가 하나도 없진 않아요. 조금만 가면 정수기가 있는 곳이 있다구요."


성우리조트(현 웰리힐리파크)에서는 푸드코트에서 라면등의 음식을 팔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온수기를 구비하고 있지 않으며,
이 때문에 컵라면은 콘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스키하우스의 세미나실 입구에는 냉온수기가 구비되어있어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따뜻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많은 보더들이 헝그리함을 감추고 보딩을 하는 이때 따뜻한 편의점 컵라면은 헝그리 보더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

자세한 온수기 위치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도록 하자.


http://www.hungryboarder.com/index.php?document_srl=3527412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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