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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즌 시작한 헝글답게 북적북적 하네요.
제일 핫한 문제가 초보자의 장비랑 사고와의 관계가 될 텐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초보자의 장비 선택은?
당연히 자기가 원하는 걸 사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자기 장비가 자기가 보기에 이쁘고, 맘에 들어야 한 번이라도 더 타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여유가 있는 분들은 맘에 드는 데크가 100만원짜리든 300만원짜리든 쉽게 구입할 수 있는거고,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고 해도 돈 열심히 모아서 자기가 원하는 걸 살 수 있는거니까요.
어떤 분들은 초보자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장비에 비용을 들이는 것 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슬로프에 나가는게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당연히 옳으신 말씀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10대에서 20대, 30대가 되면 될 수록 많은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를 잃는 대신에 금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더 생기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취미생활용 장비에 더 눈이 가게 마련이고요.
이러다보니 20만원짜리 익스트루디드 베이스 데크 타는 20대 여러분들이 주말에 한번 스키장 올까말까한 오가사카 타는 직장인보다 잘 타는건 당연한 겁니다. 너무 눈꼴시게 보지 마세요. 어차피 20대 여러분들도 시간 지나면 배 나오고 오전만 타도 기절할 것 같이 힘들어지는 때가 오긴 올 겁니다.
그리고 해머덱이 컨트롤이 힘들어서 초보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래디우스 반경이 크고, 유효엣지가 길고 딱딱한 만큼 컨트롤 방법이 프리덱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게 꼭 힘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덱을 타다가 해머덱으로 바꾸신 분들은 원래 프리덱을 타던 습관 떄문에 해머덱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뿐이지, 유효엣지가 길다는것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의미도 되거든요. 오히려 첨부터 해머덱 타기 시작하면 원래 보드가 이런거라고 생각하고 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제가 가진 덱 중에서 제일 위험한 덱은 해머덱이 아니라 로시뇰 미니입니다. 120cm남짓한 길이의 성인용 미니데크인데, 익스트루디드 베이스에 유효엣지는 당연히 1미터 남짓한 데크입니다. 휙휙 돌아가고 컨트롤이 굉장히 쉽고 재미있죠. 그렇다고 이 데크가 안전한 데크는 아닙니다. 짧은만큼 설면과 닿는 길이가 짧아서 그 어떤 신터드 베이스보다 활강속도가 빠르고, 유효엣지가 짧다보니 제동시에도 무지하게 불안정해요.
다만 아쉬운 것은, 요즘 핫한 해머덱이라는 장비 자체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앞으로 어떤 쪽이 자신의 취향이 될 지 알 수 없는 첫 데크 구입한 초보가, 무겁고 딱딱하고 긴 데크를 가지고는 트릭이나 파크 등의 다양한 재미를 경험하기는 좀 힘들 수 있다는게 아쉬운 점이지, 이렇다고 해서 초보에게 무조건 라운드 프리덱을 구입하라고 설득하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장비는 무조건 맘에 드는걸 사는게 맞거든요.
즉, 장비의 위험도는 그게 해머덱이냐, 라운드 프리덱이냐 하는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2. 그렇다면 사고가 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마는, 사람이 몇 주간 드러누워야 되는 큰 사고에는 완전 썡초보는 가해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낙엽도 제대로 못치면서 직활강하는 간덩이 부은 젊은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초보들은 속도 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요. 애초에 처음에 턴을 하기 힘든 이유도 폴라인으로 떨어지는 순간 데크의 체감속도가 엄청나기 때문인건데, 이런 초보들이 삐끗하면 역엣지나는 직활강을 맘놓고 때릴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리고 움직임 자체가 느릿느릿 제한적인 초보자들은 뒤에서 오는 다른 사람이 피해가기도 쉽습니다. 움직임이 그래도 예상이 가거든요.
큰 사고가 나는 경우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중급자 이상의 보더/스키어가 시즌 초에 폼이 덜 올라온 상태에서 자신의 절정의 폼을 상정하고 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와, 앞 사람의 움직임을 섣불리 예측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유형이 헝글에서 최근 핫한 사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날 첫 라이딩이 틀림없는 사람이 슬롭 상태, 자기 몸상태 체크도 하지 않고 무조건 날 세우고 드러눕다가 엣지 터지면서 누워버리는 경우를 정말로 많이 봤는데, 8개월만에 열린 슬롭에서 흥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런 분들이 사고의 원인을 초보에게 돌리면 안 되겠죠.
이런 상태에서 앞 사람을 최고속으로 피해가려고 하다가 엣지가 터져버리면? 당연히 큰 사고가 납니다.
뒤에 쫓아오던 사람 입장에서 슬롭 썰면서 가던 앞 사람이 저렇게 드러누워 버리면? 당연히 사고가 나겠죠.
즉 컨트롤이 안되는 상태에서 더 위험한건 초보보다 중급자 이상인 경우라는 겁니다. 고속도로 사고가 국도사고보다 더 치명적인 이유와 똑같은거죠.
개인적인 사고 경험입니다만, 제가 선행자였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좀 녹은 눈 + 사람들이 몇번 긁고 지나가서 생긴 범프인 슬롭 상태에서, 슬롭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토 엣지를 박다가 노즈가 설면을 파고 들면서 날았습니다.
산쪽을 보고 무릎꿇은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바로 뒤따라오던 사람이 힐엣지로 제동을 걸다가 제동거리가 안 나와서 힐엣지로 제 허벅지를 찍고 지나갔습니다.
보드복이 찢어지고, 엣지에 찍힌 양 다리 허벅지가 손가락 두께로 부어올랐는데, 전 보드복 수선비도 안 받았습니다.
물론 과실을 따지자면 뒷쪽에서 안전거리 유지 안한 분도 잘못이 더 크지만, 슬롭상태 고려안하고 내달리다가 자빠진 제게도 잘못이 있거든요. 귀찮은거 싫어하는 제 성격 탓에, 너무 미안해하던 그 분의 모습에 마음이 풀린 게 더 크겠습니다만...
이게 바로 대부분의 사고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실력/슬롭 상태를 고려안하다가 자빠진 선행자 + 섣불리 앞사람 동선을 판단한 후행자의 경우가 되겠습니다.
초보들이 이런 사고에 얽힐 가능성은? 당연히 적겠죠.
요약하자면, 사고의 원인이 되는건 결국 장비가 아니라 사람 탓이라는 겁니다. 해머덱 타고 사고 낸 사람이 프리덱 탄다고 사고 안 낼까요? 아니거든요. 포르쉐 911 타고 국도 80km 정속주행 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아방 타고 칼치기 하는 놈들도 있잖아요?
온갖 안전장치와 운전자를 보조해줄 장치들이 가득한 자동차도 안전규정을 지키면서 운전을 해야하는걸 생각해 보시면, 고작 그 판떼기 한장에 플라스틱 쪼가리 붙인 장비가 얼마나 허접하고 위험한지를 꺠닫는 거 부터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건 중급자 이상에게서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이제 갓 슬롭에 나온 아기새같은 분들도, 한창 재미 붙이신 중급자 분들도, 이제는 보드 자체가 시들해지신 관광보더 분들도 안전하고 즐거운 시즌 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