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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줌마 일기를 여기다 쓰냐고 뭐라 하신다면... 저 쪽으로 가서 찌그러져 있겠습니다만...
왜!!! 제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못하는 건지,
궁금해서 헝글 제위들께 고해보고자 합니다. ('여쭤보고 싶습니다' 라고 하면 기묻으로 날려갈까봐 잔머리 약간 씀.)
저와 남편은 동갑내기 결혼 10년차 부부입니다.
맞벌이이고 둘 다 직업이 2개씩이예요.
저는 살림 하나는 정말 개판으로 하는 날나리 아줌마이고...
뭐.. 청소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정리정돈을 못해서
친구들이 이사온 지 3년도 넘은 집에 놀러와서는 '아직 짐정리 다 못했네?' 라고 말하는 수준입니다.
대신 남편 월급이 밀리거나 실직을 해도 눈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하는 마누라라고 변명을 좀..... 구차하군요...OTL
며칠 전 아침, 출근 준비 하느라 화장대 앞에서 스킨, 로션 찍어바르느라 바쁜 와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때가 오전 9시 05분을 막 넘긴 시간이었는데, 정수기 필터 교환하러 정수기 기사가 좀 있다가 올라올 거라는 거예요.
저는 지각을 하면 그 순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절대로 지각을 해서는 안되고요,
지각을 하지 않고 오전10시까지 출근을 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9시 20분 전에는 집에서 나가야 합니다.
하필 그 날 아침에 바쁘게 딸아이 머리를 감기다가
딸아이가 등이 간지럽다고 등을 밀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된 터였고,
저는 막 딸아이를 씻기고 나와 제 출근 준비에 정신이 없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 정수기 기사가 오면, 저는 파자마 바람으로 화장하며 준비하고 있다가
일단 아무거나 갈아입고 정수기 기사를 맞이해야 하고,
그 사람이 아무리 초스피드로 일을 끝낸다 해도
저는 다시 화장 마저 하고 옷 갈아 입고 9시 20분 전에 집을 나서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지금 바로 준비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 정수기 필터 교환은 안된다,
집에 없다고 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바로 끊었습니다.
원래 정수기 회사에서 필터 교환하러 올 때는 항상 며칠 전에 시간 예약을 하고 오는데
정신 없는 남편이 정수기 기사가 오늘 오전에 온다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러세요' 하고 있다가
제게 전달하는 걸 깜빡 한 거죠. 제게 사전에 이야기 했다면 시간을 옮겼을 텐데 그러질 못한 겁니다.
지난 번에도 그래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친정 어머니가 저희 집으로 급히 뛰어 오시다가
발목을 접질러서 몇 달을 고생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그런 게 짜증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시간도 급하고 해서
이번엔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정수기 기사에겐 미안하지만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제 일을 방치할 수는 없는 거고,
정수기 기사와의 일은 남편 책임인 거죠.
시간 여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가 처리해도 되는 일이지만
시간이 급박한지라 저는 무 자르듯 전화를 끊어버리고
계속해서 울려대는 남편 전화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제 출근 준비만으로도 바빴으니까요.
저는 남편이 정수기 기사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방문을 취소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초인종이 딩동딩동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기사가 집 앞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기사를 집에 들여놓는 순간, 그 기사는 어떻게든 금방 된다면서 필터를 교체하려고 할 것이고,
저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절대로 없는 상황이었고 해서
저는 그냥 집에 없는 척 조용히, 그러나 방 안에서 후다닥후다닥 옷 갈아입고 출근준비를 마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수기 기사가 한두 번도 아니고 두세 번도 아니고...
초인종을 부서져라
딩동딩동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울려대더니 급기야는 아파트 현관문을
쾅쾅쾅쾅쾅!!!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쾅쾅쾅쾅쾅!!!!!!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주먹으로 치다가 발로 치다가 하며서, 급기야는 큰 소리로 욕을 욕을 퍼부어 대는 겁니다..
초딩 3학년짜리 딸 아이는 그만 사색이 되어 안방으로 달려와 제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저는 예약까지 해놓고 왔다가 허탕 친 정수기 기사에게 미안하면서도,
제 잘못도 아닌데 아침부터 이런 황당한 일을 겪어야 하는 것에 대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솔직히 정수기 기사에게는 이건 또 뭥미 싶기도 했ㄱ,
당장 나가야 하는데 바깥에 있는 정수기 기사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서 이러고 있는게 열받기도 했고,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남편에게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잠시 후, 정수기 기사가 큰 소리로
'고객님, 예약전화 드리고 방문했는데 이러시면 안되죠~! 어쩌구 저쩌구~~~ 고래고래~~ ' 하면서 남편고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통화를 끝낸 정수기 기사는 또 한 번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어 대면서 저희 집 현관 문을 발로 쾅쾅 차더니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딸아이에게 나가자고 했더니 딸아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그 아저씨 밖에 있으며 어떡해요?' 합니다.
아저씨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셨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바쁘게 집을 나서는데
열심히 하루를 준비하여 집을 나서려던 저는, 뜻하지 않은 이 황당한 상황에
완전히 머리 뚜껑 열려서 초초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한 채 출근길에 나서게 된 것이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본론 시작입니다.
다 좋습니다.
뭐, 회사일 바빠서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집안일 깜빡 할 수도 있는 거고,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저는 너무너무 열이 받았지만 출근하자마자 얘기하하자고 들면
제가 너무 열이 받아 있어서 싸울 확률 100%이므로 점심시간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따지고 들기 싫어서 좋게좋게
"어떻게 된거야?" 하고 물었더니 이 인간 외려 자기가 성을 냅니다.
"몰라, 끊어."
전화를 끊고 나서는, 아니 끊긴 전화를 손에 들고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더군요..
깜빡 잊고 얘기를 안했다고 미안하다고 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죠..
그 날 밤, 집에 와서 분기탱천해서 씩씩거리면서도 저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남편과 살아가면서 ,
이게 남자와 여자의 특성인지, 우리 부부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서 풀어버리려는 성향이 있고,
남편은 사흘이고 나흘이고 일주일이고 지난 후에 생각이 정리되면 이야기를 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혹자는 여자는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이 들어주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고,
남자는 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생각하거나 마련한 후에 그 결과를 얘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라는 진부한 대사 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리라는 심정으로 며칠을 보낸
저는 이 황당한 아침을 준비해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들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그 일 때문에 마누라가 동토의 왕국 얼음장보다 더 냉랭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
이 인간은 당최 미안해 하지도, 미안하단 말도 없는 겁니다.
이 사태에 대해 한 친구에게 남편 뒷담화를 했더니
그 친구는 '비폭력대화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자기 동료들은 효과가 좋다고 난리라면서
저더러 그 상황을 감정 개입 없이 비디오 보는 것처럼 설명하고, 내 느낌을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욕구를 이야기하고,
그걸 잘 부탁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하고 밸이 좀 꼬였지만
왜 제 남편이 제게 사과를 하지 않는지 정말 그 이유를 알 수도 없겠고, 사과는 들어야 제 속이 풀리겠고 해서
고심 끝에 친구의 조언대로 잘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 날 나는 시간이 정말 촉박했고, 내가 지각을 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정말 황당한 아침을 맞이해야 했었고,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으니 미안하다고 말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공손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편 얼굴에는 어색하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데
정작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하루, 이틀, 일주일 후이고 간에 꼭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도
남편은 미안함과 민망함만 얼굴에 그득할 뿐, 절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별 것 아닌 일에 뭐 그리 뒤끝이 있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란 위인이 한 뒤끝 하는 성격인 것도 있거니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10년을 살아오면서 미안하다, 고맙다란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었나에 생각이 미치면
별 것 아닌 일에 이제는 울컥울컥 울화가 치밀어 오르곤 합니다.
미안한 일이 있으면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그것도 잘하지도 못하는 솜씨로 어설프게 눈치보며 하는 사람이
왜 정작 마누라가 원하는 '미안해' 소리는 한 번도 제대로 못하는 건지.
나같으면 '미안해' 한 번 하고 눈치 안보고 집안일 안하겠구만, 눈치는 눈치대로 보면서 저러고 있는 제 남편...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제 남편은 어딘가에서 남자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소리를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기라도 한 걸까요.
비슷한 교육 받을 적 있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말 안통하는 해외로 여행이라도 가서 파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