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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매사에 뭔가 이해할 수 없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있다.
언뜻 보기에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궁지에 몰리면 잠재적 피해의식을 드러낸다.
식민지 시대를 비롯하여 고난의 역사를 보내온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인들은 자신의 안위에 약간의 위해만 가해져도
감정을 격하게 폭발시키며 견딜 수 없는 위기감을 표출한다.
그들의 마음은 항상 위축되어 있고 보상 심리로 가득하며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조급함에 찌들어 있다.
땅도 좁아, 돈도 없어, 자원도 없어, 뭐 하나 내세울게 없으니 당연히 매사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껍데기(외모지상주의를 비롯한 군대식 주먹구구 행정)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세울 것이 없다 하는 것은 바로 정체성이 불분명 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의식의 개선과 발전이다.
허나 한국에서는 의식의 변화에 따르는 삶의 변화 보다
삶의 변화에 따르는 의식이 변화가 더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극복하지 않으면 앞서 말한 것들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삶이 변하지 않으면 의식을 변화시킬 능력이 결여된 것이 바로 한국인의 맹점이다.
누군가 삶을 변화시켜 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의지로 의식을 개선할 능력이 결여됐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이것을 가르켜 속칭 '천민 근성' 이라 칭하며 한국의 인간들이 이것의 무서움을 발견하고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불철주야로 노력해 왔다.
미디어법이 언론 장악을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며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지만
이미 그들의 눈과 귀는 기존 방송사의 무개념한 방송 편성만으로도 충분히 마비되어 있다.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미디어법을 최대로 이용해 약간이나마 여론의 다양화를 도모하는 편이 낫다.
천민 근성 퇴치사로 부임한지 어언 일년이 되어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혹 좌절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들의 천민 근성은 결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마이며 그것 앞에서 나는 무력할 수 밖에 없으니까.
허나 이제는 다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천민 근성의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성질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천민 근성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기생충을 잡아내기 위해선 기생충의 숙주를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천민 근성도 이와 같다.
천민 근성은 그 숙주인 '천민' 을 '퇴치' 함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수천만 천민들을 퇴치하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헤아릴 수 없는 천민들과 장렬하게 맞서다가 쓰러질 것이며
이것은 오뒤세우스의 위대한 의지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지금 이 말을 왜 너희한테 지껄이고 있는지 그 이유는 바로바로바로바로 다음편에 계속
^^V
다음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