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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나그네가 없다
그런데 박그네는 있다
혹시 박그네가 "나? 그네ㅋㅋ" 라고 말할 수 있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나그네가 아니다
여행좀 한다는 치들두 존나 치밀한 계획 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진정한 나그네라고 할 수 없다
나도 자전거 여행을 해 봤지만 좃가튼 스마트폰 때문에 단 한번 헤매는 일도 없이 목적지를 한큐에 찍어서 과정은 없고 목적만 있는 밍
숭맹숭한 여행을 하고 말았다
쉬발 길 잘못들어서 자동차 전용도로 한복판에 떨어졌는데 무서워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솔직히 내가 여행을 망친 것두 세상이 전부다
이모양으로 시스템화 돼 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이천삼 이천이 이천일 그래 2년 전이다
나는 오늘 문득 2년 전 여행을 망친 것을 곱씹다가 21세기형 나그네가 되어 보기로 마음을 집어먹고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우선 난 알콜 중독자이기 때문에 본분에 맞게 술부터 찾기 시작했다
조금 진귀한 술이 마시고 싶어서 집근처 마트를 들쑤셔 한병에 만원정도 하는 술을 집어들고 그자리에서 벌컥벌컥 반병정도 들이켰다
술맛이 괜찮았기 때문에 기분이 막 좋아지려는 찰나 매장 직원이 달려와서 계산하고 먹으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기분이 삼보 전진 하기 위해 일보 후퇴 했다가 그자리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에 나는 새침하게 갈궈대는 점원을 향해 "아... 써그랄 안 도
망간다고" 하고 진상을 놓고 몸매가 조금 좋은 그녀를 0.5초 동안 위아래로 37362528번쯤 광속 스캔 후 자리를 옮겼다
오렌지가 먹고싶어졌기 때문에 과일 코너를 찾았으나 오렌지들은 모두 규격화된 봉투에 꽁꽁 묶여 나는 그것을 윤창중 아저씨가 옷 위
로 유학생 엉덩이 매만지듯 냄새를 맡으며 포장지 위로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울적해진 채로 매장을 둘러보자 오렌지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포장되고 둘러 싸이고 몇그램 얼마 얼마 쓔ㅣ박 공상과학 영화처럼 한때
생명체였던 것들에 끔찍하게도 바코드를 팍팍 밖아넣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자본주의의 21세기에서 우리 인간의 내면 또한 이렇게 필요한 부분만을 포장해서 상품처럼 진열 되어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서로의 비린내를 맡을 수도 무게를 느낄 수도 없이 박제품처럼 비닐 안에 꽁꽁 규격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순간 나는 또다시 그곳에 진열된 모든 상품들을 자본주의로부터 구출해야한다는 성스러운 충동의 시녀가 되었고 다섯 카트 분량의
상품을 무작위로 쓸어담아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의 아줌마는 인상을 존나 찡그리면서도 교육받은 대로만 말하고 교육받은대로만 움직였다
"373626183920원 입니다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포인트카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빡쳤다
과일 코너의 가련한 오렌지처럼 나를 생명력이 없는 자본쥬의의 부산품으로 전락시키려는 심산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자본 노예는 자본으로 짓밟아야 제맛이기 때문에 나는 오만원짜리 현금 다발을 한뭉치 꺼내 옛다 다 가지라며 그 아줌마의 낯바대기에
그 돈을 뿌렸다
그리고는 그윽한 눈동자를 능글맞게 흰자 위로 굴려대며 "좀 담아주지 그래?" 하고 갈궜다
그러자 아줌마는 또 기계처럼 읊조렸다
"종이봉투에 드릴까요 종량제 봉투에 드릴까요"
담아달라면 담아주는거지 종량제고 종이고가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종이고 종량제고 담아 달라고! 으아악!!! 뿌에악!!!"
나는 모가 맞지 않는 틀에 끼워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바보처럼 괴상하게 울며 마트 밖으로 뛰쳐 나오자 해가 떨어지고 노을이 걷히고 희미하게 누릿거묻한 하늘 멀리서 달이 차오르고 있었
다
나는 태초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태초부터 지구를 비춰왔을 그 빛을 향해 구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다
나를 이 시대로부터 구원해주렴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