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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둔해서 그런지...
매번 적자라서 선물을 못줘서 미안하다는 카드만 한 장 달랑 남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저는 중학교 1학년때까지 믿었었어요.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는 부모님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흥, 지들이 착한 일 안해서 선물 못받는 걸 가지고..' 라고 생각했었더랬습니다.
제 딸아이가 현재 4학년인데...
1학년 때는 딸아이가 원하는 선물이 진짜 영화처럼 'sold out' 되는 바람에
원하는 선물을 사던지, 아프리카의 가족들에게 염소 한 마리를 기부하던지 하라는 편지와 용돈을
산타의 미명 하에 딸아이 베개 밑에 넣었었죠.
2학년 때에는 어차피 사주려던 거, 산타 할아버지가 성탄절 바쁜 시즌을 피해
2주일쯤 일찍 디지털 피아노를 보내 주었다고 했죠.
딸아이는 1학년 때 자기가 염소 기부한 것 때문에 산타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준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어요.
3학년 때에는 해마다 산타 선물 갖고 저만 신경 쓰는 게 짜증 나서
남편에게 당신 마음대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냐고 몇 번을 되물어 보면서 다짐을 받던 남편이
산타 할아버지 선물로 마련한 건 3D 닌텐도였죠.
딸아이는 닌텐도를 받고 정말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더욱 철썩같이 믿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라면, 닌텐도 같은 걸 절대 엄마가 사줄 리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거든요.
한동안 도대체 무슨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에게 3D 닌텐도를 받을 수 있느냐는
이웃 아이들의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딸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믿고 있어서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 -;;;
언젠가 무슨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MC들이 산타 할아버지 얘기를 막 하는데
그걸 본 딸아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더라고요. 저는 정말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그 날은 고맙게도 게스트인 성시경씨가 잘 마무리를 해줬습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거라고요.
문제는.... 그 말이 저학년 때 산타가 없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딸아이에게
제가 반 위협조로 해왔던 이야기라는 거죠.
산타는 자기를 믿는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고, 산타가 있다는 걸 안믿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산타에게 선물을 못받는 아이들에게 할 수 없이 엄마, 아빠가 선물을 대신 주는 거다..
그래서 산타를 안믿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산타인 척 하고 주는 선물을 받는 거고,
산타를 믿고 착한 일을 하는 아이들은 산타가 주는 선물을 받는 거다....
이 얼마나 완벽한 논리입니까....
딸아이는 더욱 철썩같이 산타의 존재를, 마치 신앙처럼, 교회도 안다니는데, 우린 종교도 없는데
믿게 된 겁니다.....
최근에는 산타는 엄마 아빠라는 사촌 언니의 말을 제게 전하며
자기가 착한 일을 안해서 산타에게 선물 못받게 된 것을 갖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고
어이 없어 하더라고요...
저는, 아니 산타는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어떻게 해야 충격 받지 않고 현실을 보게 할 수 있을지, 이제는 정말 슬슬 겁이 납니다.
올해 산타에게는 엄마 차 한 대 뽑아 달라고 편지 써보라고 하고 있는데
얜 산타가 정말 엄마 차 뽑아 줄지도 모른다고 믿는 분위기에요........
저는 이 연극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연극을 끝내야 할까요.
충격 받지 않고 모두 해피하게 잘 넘어갈 방법은 없을까요?
이 거짓말쟁이 나쁜 엄마에게 여러분의 지혜를 빌려 주세요...
그냥 아이가 현실을 알게될때까지 지켜주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요즘 그렇게 순수한 아이가 어디있나요
아직은 저학년이니 좀더 산타가 되어주시는것이...
가정이 굉장히 아름답네요.
부럽습니다.
참. 그리고 그 논리. 정말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