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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묻에 덧글 달다가, 문득 생각나서.. 사실 소설로 써도 될만한 소재인데..
문득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해방둥이 입니다.
10남매의 장남 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기대는 실로 대단했었고요.
또, 엄청 똑똑했었고요, 그 어려웠던 그 오랫적 시절 당시 지역의 명문고, 서울 명문대를 나오고 대학원까지 나왔으니까요.
할아버지는 한의사로서 당시 많은 재력을 가지고 계셨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어렵던 시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요.
또, 아버지는 엄청 미남이십니다. 당시 별명이 율브린너.. 고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보니 정말 잘생겼습니다.
(근데 전 왜 이러는지.. -_-)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2살이 어리십니다.
어머니 집도 엄청 잘 사셨습니다. 당시 외할아버지께서 미군부대에 어떠한 품목을 독점 공급/납품 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은행원이었고, 아버지와 연애를 하고 있었죠
아버지가 군대에 있을때 면화 갔다가 첫째 누나가 생겼죠. 두 사람은 서로 좋아 결혼을 했습니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굉장히 마음에 안드십니다.
내 잘난 아들을 홀린 여자로 보입니다.
어머니는 시집와서 엄청난 시집살이를 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버지 밑의 7남매(2명은 사회인)의 도시락을 매일 새벽에 싸셨습니다.
두분이 사랑해서 결혼했기에, 어머니는 행복했습니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는 그저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도 있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둘째 아이도 낳고, 셋째인 저도 낳으시고 힘들지만, 잘 살아 가십니다.
아버지는 이후 승승장구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던 곳에서 엄청 빠른 승진을 하셨습니다만,
개인적인 사업도 같이 병행하셨었습니다. 그 당시 비쌌던 모피 관련 사업을..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요? 여기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을 많이 까먹게 됩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물려주신 어머니가 숨기고 있던 많은 돈을 많이 드린듯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하는 희대의 실수는 여기서 아버지가 사업을 못하게 말렸어야 했고, 돈을 주지 말았어야 했었습니다.
(아. 외할아버지/외할머니는 전 한번도 뵌적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전 다 돌아 가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외동딸임에도
불구하고 재산 전액을 다 받지 못하고, 사촌들에게 빼앗기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욕심없는 어머니는 그저 괜찮다고, 돈은 안 중요 하다고...)
아버지는 제가 8살이 되던해에 희안한 결심을 합니다.
자기 전공을 살려서 해외로 가겠노라고.. 어머니는 많이 우셨지만, 결국 하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일은 이때 부터 벌어 집니다.
장남에게 돌아갈 재산이 아까웠던 9남매들은 본인의 어머니와 작당을 시작합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당시 살던 집이 엄청 비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층구조의 건물이었는데, 건물 2층이 집이었고, 2층에 넓은 거실이 2개, 방은 11개,
1층에 전부 가게인데, 가게가 아마 15개는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월세액수는 엄청났었고, 그 돈으로만 10남매를 다 키우신 것이고요.
어머니가 저희를 붙잡고 얘기하십니다. 우리 이사가야 한다고,
잘은몰랐지만 전 그저 싫었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났고, 친구도 많고, 이 큰집도 좋고, 옥상도 넓고,
1층 가게 아주머니/아저씨들이 잘해주고... 이 집이 좋은데..
아무튼 그렇게 이사를 갑니다. 어느 다세대 주택 반지하로 이사갑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뭐 알았더라도 어떻게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극진한 효자, 고부갈등 사이에서 그저 부모편만 드는 부모바라기 바보였으니까요..
아무튼 3남매는 아버지 없이 잘 커갑니다.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며 3남매를 뒷바라지 합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고 나서 어머니에게 한번도 돈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3남매가 자란 것은 어머니의 피땀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 1년에 2회는 꼬박 들어 옵니다.
어릴때는 그래도 가족이 보고 싶어 들어오나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이조차도 나라에서 불러서 돈대주니 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와서 잘 자란 누이2을 보고 흐뭇해 합니다.
다만 할아버지의 기대를 받고 자란 아들.. 본인만큼 아들인 제가 자라지 못한것이 굉장히 못마땅 합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지금에 와 있습니다.
전 머리가 커진 후 어머니에게 이혼하시라고 얘기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를 항상 혼내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절 혼낸 이유는,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혼한 집안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차마 듣게하기
싫어서 였습니다.
큰누나, 작은누나 모두 좋은 집안에 시집을 잘갔고,
전 어머니에게 이제 이혼하셔도 되니 괜찮다고, 하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 때문에 여전히 저를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저도 떠나갔죠.
할머니/할아버지는 돌아 가셨고,
(전 당시 장례식장에도 안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 장손이라는 명분으로, 또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상가집을 계속지켰습니다.)
9남매 모두 늙었고, 이제와 어머니에를 붙자고 오열하며 사과하는 고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그저 악어의 눈물로 보이는..
아버지도 이제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 입니다.
여전히 몸은 건강하나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 그런지 센티해지고 갈 때가 되니 혈육이 땡기긴 하나 봅니다.
아버지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십니다.
3남매는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절.대 오지마시라고.. 당신이 한국에 와도 당신이 있을 곳은 없다고..
한국에 1년에 2번 오는 것도 아버지를 반가워하지 않은지 한 10년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쓸 수 있는것은 대단한 어머니와 누이2이 집안을 일으켜 저도 지금 잘 살고 있으니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기묻에 덧글 달다 보니 내 입장이었으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어떻게 행동했을지 궁금하기도해서
부끄럽지만, 지금 잘 살고 있어 부끄럽지 않은 얘기 익명이라는 이름을 빌려 온라인 게시판에 써봅니다.
저도 종종 생각하는거중에 하나인데, 아버지들 역시 기성세대 마인드의 피해자가 아닐까합니다.
물론 저역시도 나이먹으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겟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