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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핀란드로 갔었습니다.
저는 비행기 타는게 너무너무 싫고, 와이프는 비행기 타는걸 무지하게 좋아하고,
저는 유럽이 지긋지긋하고, 와이프는 유럽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저는 관광이 진저리나게 싫고, 와이프는 관광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딱 보기만 해도 신혼여행지 결정이 쉽지 않은 커플이었습니다.
전 사실 그냥 일본 온천여행이나 갔으면 했었습니다. 료칸을 전전하면서 맛있는거 먹고 푹 늘어지게 있다가 돌아오는거죠.
근데 와이프가 이런거 또 싫어해요..
와이프는 간만의 신혼여행인데 8박 9일동안 서유럽을 갔으면 했구요. 저는 몸서리 쳤구요. 생각만해도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혼하기 전 1년 전부터 설왕설래 서로를 포섭하기 위한 네고시에이션이 계속 됐습니다. 근데 양쪽 모두 완전 완강.
포기할 수 없다 이거죠.
그런데 어느 날 오로라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아 난 북유럽에는 간 적이 없구나.
북유럽은 참 멀게 느껴지는 곳이죠. 그리고 참 외롭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북유럽에 대한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희 아버지도 그러셨다는데요 뭐.
그래서 신혼여행지는 핀란드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핀란드 북쪽 끝의 북극권 끝자락에 자리잡은 라플란드.
순록과 썰매개, 그리고 스키어와 보더의 땅이죠.
일정자체는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헬싱키 도착 – 다음날 라플란드로 이동 – 라플란드에서 6박 – 다시 헬싱키로 이동.
이렇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헬싱키에서 라플란드까지 거리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편도 거리에요.
저 거리를 하루만에 가겠다고 덤빈건 제가 무식해서일 겁니다. 아마도..
당시 원래 렌트한 차는 포드 포커스 디젤이었습니다. 명차까지는 아니더라도 걸작 축에는 들어가는 유럽 포드의 회심작이죠.
근데 헬싱키 공항에 도착하니 차가 읎다고 하네요.
그래서 대신 받은게 BMW 1 시리즈 가솔린.
사실 받을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유럽이 디젤이랑 휘발유 가격이 크게 차이가 안 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쪼막만한 후륜차로 핀란드 종단을 떠난 뒤에는 정말 크게 뭔가 잘못됐다는걸 깨달았았죠.
일단 핀란드 도로 사정입니다.
핀란드는 굉장히 인구밀도가 낮습니다. 어딜가도 숲이 펼쳐지다가,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숲조차 없어지고 설원만 남게 되죠.
그래서 도로 건설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 남쪽까지 핀란드의 척추 역할을 하는 A1 고속도로는.. 자그마치 왕복 2차선입니다.
중간중간 대도시를 지날 때는 왕복 4차선으로 살짝 바뀌긴 합니다만, 거의 모든 구간이 왕복 2차선이죠. 근데 놀라운 점은.. 이 왕복 2차선 구불구불한 도로의 제한속도가 120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지 않은 길 + 익숙치 않은 차 + 장거리 운전의 피곤함등이 겹치면 저는 시속 60으로 기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눈이 무지막지하게 옵니다. 그런데 무지하게 건조한 눈에 엄청나게 낮은 기온(영하 20~ 30도 사이)이다보니, 도로에 눈이 쌓이질 않습니다.
조금 쌓였다손 치더라도, 차가 휑 지나가면 모두 날려가버리더라구요.
이말인즉슨.. 그 휑 하고 지나가는 차 뒤에 따라오는 차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화이트 아웃급의 눈폭풍을 계속 맞으면서 가야된다는거고요.
제가 바로 그 뒷차를 운전하고 있었죠.
핀란드 사람들은 운전을 전부 다 굉장히 잘 합니다. 자연환경도 그렇지만, 운전면허 자체가 엄청나게 엄격해요. 따는 데 1년이 걸리고, 온갖 말도 안되는 과제가 주어지죠.
그래서 저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왕복 2차선의 와인딩 로드에서도 120으로 코너진입을 합니다. 미친 것 처럼 보이지만… 정말 잘 해요.
그리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도시 내에서 제설은 정말 빨라요. 하룻밤 새에 눈이 허리까지 왔는데도, 도로는 꺠끗합니다.
하지만 도로변은 눈구덩이죠.
그리고 이런 곳에서 후륜차는 정말 아무 것도 못합니다.
하루 내내 눈구덩이에 뒷바퀴가 빠지고 꺼내고 빠지고 꺼내고만 열댓번은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빠질 때 마다 지나가는 아이들, 학생들, 아줌마들, 아저씨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도와주는데 감동했구요.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에 “여긴 이게 생활이에요. 핫핫하” 하면서 떠나가신 아주머니의 호탕한 웃음을 잊을 수 없구요.
이렇게 편도 1000키로를 갔습니다.
힘들었냐고요? 물론 힘들었죠.
하지만 제 인생에서 저 여행보다 더 완벽한 드라이빙 코스는 없었습니다.
아침 11시경에 겨우겨우 동녘이 밝아오지만, 해는 결국 지평선을 넘지 못하고 오후 2시가 되면 가라앉아 버립니다.
정오의 하늘의 반은 햇빛이 점령하고, 나머지 반은 아직 달과 별이 떠 있죠.
끝없이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역시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달리다가, 어느 샌가 끝없이 이어지는 얼어붙은 호수들 사이로, 그리고는 다른 색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차 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과 함께,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여행파트너인 마나님이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오~
테드의 시승기를 보는듯한 느낌이. !
잘 읽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