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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서적을 읽으시면 됩니다. 일반인 읽게 나온 말랑한 책들 말고... 심리학 관련된 논문 추천드려요.
재밌는 책을 읽지 않는게 포인트에요~ 저도 책읽기를 좋아해서 소설같은거 붙들면 잠 못잡니다 ㅎㅎ 일단 영어로 된 논문을 구해보세요 효과 직빵 ㅋㅋㅋ
저도 한참 고생했는데...
그냥 안 잡니다.
잠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다른 일을 해버리죠.
그래서 이틀에 한번 자면서 회사를 한 6개월 다녔나봐요.
좀 피곤하긴 해도 괜찮더군요.
'불면증'이라는 이름에 신경쓰며 잘 자려고 노력할 때에는 그 노력이 정말 피곤했는데 그걸 놓고 나니
안 졸리면 안 자고 배 안 고프면 밥 안 먹는 삶이 참 즐거웠습니다.
회사에서 졸릴 땐 좀 난감하지만 움직이면 또 금방 깨니까요. ㅎㅎㅎㅎ
그렇게 몇달 지나다보니 또 자연스레 잠이 오더라고요. 극복이라는 거창한 글자는 안 어울리는 케이스지만 경험담 한번 적어 봤습니다.
술을 끊어보세요.(최소 1개월 만이라도)
그리고 누우면 온갖 잡생각이 들때... 굳이 회피하려 하거나 몰입해서 상처받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객관화'해서 보려 해보세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하얀 토끼가 나타나서 폴짝 뛰면 거기에 의미를 붙이지 마시고...
'하얀 토끼가 팔짝 뛴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금방 장면이 바뀌어 바닷가 풍경이 보여서 이쁘단 생각이 들면...
'바닷가 풍경이 이쁘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라고 또 받아들입니다.
이게 계속 반복되면... 나 자신의 '자아'의 움직임이 점점 '객관화'됩니다.
떠오르는 생각과 내가 겹치는게 아니라... 한 발 떨어져서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편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상황에 떠오르는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관조'함으로써 ...내 주관에 의한 '인위적 의미 부여'가 사라지죠.
(이것은 최면이나 세뇌 같은게 아닙니다. 그저 '객관화'죠..)
이것은 잘 때만이 아니라 평소 일을하면서 또는 걸으면서 또는 요리를 하면서 다 가능합니다.
너무 당연한것이 나의 주관(자아)의 움직임을 내가 지켜보기만 할 뿐... 평소 생활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객관화'되면서... 판단이 매우 논리적으로 변하고 남에게 상처를 받거나 주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남이 주는 상처마저도 나의 가슴에 닿지 않아요. (상처란 내가 그것을 허용할때만 성립하게 되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꿈도 꾸지 않게 되죠.
(꿈이란 나의 상처나 욕망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나타나는것인데... '객관화' 이후로는 더이상 욕망이나 상처는 받지 않게되요)
욕망 자체도 '객관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도덕적 룰에 의해 피하려 할 필요가 없어서 '무의식'에 저장되지 않아요.
(나의 '욕망' 역시 나의 것이니...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의미 부여'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객관화'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거기엔 어떤 설명이나 주관의 개입도 필요없습니다..)
점점 상처는 사라집니다. 있는 모든것을 받아들임으로서 ... '의미'와 '분별'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상처는 나 자신에 의해 생기는 거에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더이상 상처를 주지도 그리고 받지도 않게 됩니다.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인위적 노력'도 의미 없습니다. 그저 당시 현장에서 나의 판단에 의해 해야 할 것을 하면 됩니다.)
결국, 잠을 매우 편하게 잘 자게 되죠.
아무런 욕망도 상처도 없이... 그저 태어난 그대로 아기처럼 아무런 '인위적 방향성' 없이 그저 생물학적인 생명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워하는것은 무의미한 짓이죠...
모든 '두려움'이 없어져요. 인위적으로 가야 할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으로 해서... 나의 '자아'의 활동은 점차 줄어듭니다.
그리고 '나'만 남게되죠.
요까지만 오면... 매일 매일이 참 행복한 나날이 반복되실겁니다.
인간이 상처받는것은 ...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또 남에게 상처주기 위해 자신을 또 정당화하며 계속 반복해서 상처받게 되죠.
그리고 피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의해 '자아'는 나의 '더러움'을 무의식으로 보내버려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상처주지 않게 하지만... 실제론 그것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잠을 자고 싶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모든것을 먼저 받아들일 용기를 가져야 할 듯 합니다.
인간이 더러우면 얼마나 더럽고 도덕적으로 완벽하면 얼마나 완벽할까요?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에요.
즉, 나 자신이 더 완벽한 사람이 되려 할수록... 그 '인위성'이 날 더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완벽'... 인간은 애초부터 불완전한 존재, 그러나 나는 나의 '인위적 생각'으로 완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러나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완벽' 그 자체다... 꽃도 나무도 바위도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가장 불완전한것은 오직 나의 '인위적 의미부여'일 뿐이다.
가짜가 '진짜'를 알 수 있을까?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가짜는 가짜... 진짜는 진짜다...
그러나 가짜는 '가짜로서' 그 자신의 오지리널리티를 가진다.
애초부터 진짜도 옳고, 가짜도 옳았던거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옳다. 완벽하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그것 자체로 이미 완벽한거다.
10원 짜리가 옳은가?
100원 짜리가 옳은가?
아니면, 그 사이에 있는 50원 짜리가 옳은가?
애초부터 모든것은 옳았다. 잘못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잘못된것은 오직 나의 '인위적 관념' ... 이것만이 잘못되었으니 이것만 잠시 제껴놓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든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필요한 것은... 오직 이게 다다...
더이상 아무곳도 갈 필요가 없으며 인위적으로 아무런것도 만들 필요가 없다.)
('자유로우려는 의미없는 몸짓' ...
인간은 처음부터 자유 그 자체였으나... 그것을 막은것은 오직 나의 '인위적 의미부여' 이었다.
자유로우려는 '인위적 방향성'이 나를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거다.
당신은 정말로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곳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사과'를 본 적 없는 사람이 '사과'를 논할 수 없듯... 당신은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저 나는 나이면 된다... 그것으로 모든것은 충분하다.
자유로우려는 몸짓은 무의미하다.)
그냥, 나는 나에요.
못나도 나, 잘나도 나...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니크한 그러면서 평범한 하나의 인간일 뿐이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생명은 사그라 듭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든것을 받아들일 ...약간의 용기만 가지면 돼요.
햇빛은 여전히 따스하고 바람은 여전히 풍요롭죠.
그저 손을 벌려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사라집니다.
가까운 집 앞에 나가서 걷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인위적 의미'를 버림으로써 ... 진짜 '나'로서 살게 될 수 있어요.
내가 만드는 '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그저 편하게 걷고 숨쉬고 사랑하고 잠들 수 있게 되죠.
어떻게?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요.
더이상 아무런 곳도 갈 필요가 없어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어떤 책에도 없는 '사랑의 정의'를 알게 될지도 몰라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랑'이란 그저 일시적인 호르몬에 의한 현상일 뿐, 곧 사라지게 될 신기루일 뿐이라고...
그러나
(앗, '스윗 소로우'의 '사랑이야'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