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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카페에서,,

조회 수 1131 추천 수 3 2015.03.23 15:25:45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놓고 주변을 흘끔거리는 중이다

 

 

오늘 아침 나의 정신은 오랜만에 예민해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동안 억눌려 있었던 병원성 바이러스들이 육체 피로의 틈을 타 반란을 꾀한 것이다

 

 

놈들은 삐죽 삐죽한  결합 수용체를 뇌세포에 박아 넣고 나의 생각을 강제로 조종하는 중이다

 

 

이렇게 혼자 농을 던지고 혼자 비죽비죽 웃을 수 있어 행복하다 

 

는 개뿔 ㅇㅇ

 

 

나는 간만에 찾아 온 이 정신분열적 심리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고 싶다

 

 

사물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 오고 나는 그것에 화답하고...

 

 

하지만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관계가 틀어지고 만다

 

 

언제나 '자의식 과잉' 을 경계해야 한다

 

 

아까 택시 안에서 자칫 이러한 지리멸렬의 상태에 빠질 뻔 했다

 

 

왼쪽 발목이 공연히 시큰거리는 순간 나는 항문 괄약근에 힘을 주고 내가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리고 내 속을 들킬세라 성대를 바짝 긴장시키며 또렷한 목소리로 기사에게 명령했다

 

 

'교보문고 앞에 세워주세요'

 

 

애초에 책방에 갈 생각은 없었다

 

 

길거리는 안정을 되찾아 이제 출근자들 사이에 섞인 퇴근자의 우월감이란 것도 희미해졌다

 

 

비웃기를 즐기는 놈들은 대개 갈 곳이 없는 놈들이다

 

 

날씨가 몹씨 추웠지만 옷을 든든히 챙겨 입고 나온 덕분에 길거리를 배회할 수 있었다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기분으로 내 마음에 줄을 묶고 놈을 산책시켰다

 

 

고삐를 바투 쥐고 놈이 오물에 코를 대거나 행인을 공격하거나 차도로 뛰어 나가지 않도록 주의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번화가를 한바퀴 돌며 상쾌하게 배변을 시키니 모든 것이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강아지의 얼굴을 하고 강아지처럼 털로 몸을 뒤덮은 채 강아지를 위한 강아지의 영업장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 문을 연 곳이 좀처럼 없었다

 

 

영화관은 예외였다

 

 

재미있는 영화를 준비해 준 강아지들에세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요즘 한창 인기 있다는 전쟁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다

 

 

팝콘의 냄새가 매우 유혹적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분명 보다 가치있는 일로 하루를 보내리라 결심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지나가는 여자에게 느닷없이 고백을 함으로써 수치심의 황홀경에 빠진다든지,

 

 

훌륭한 전시회를 찾아 신경과민 상태를 최대한 활용한다든지 하는 그런 활동 말이다

 

 

극과 대극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와 예술이 각각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무 애매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나의 구체적인 행적이 그 의미를 잃으려 한다

 

 

뇌척수액을 떠도는 바이러스 때문에 뇌가 부어서 그렇다

 

 

어리석은 이야기는 다시 커피와 베이글로 틀어막아야겠다

 

 

그런데 결국 나는 여자에게 수작을 걸지도, 전시회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너무 추워서 마음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밤을 새다시피 해서 매우 피곤했지 때문에 가벼운 자극만을 맛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다시 주저앉은 것이다

 

 

나는 배가 고플 때까지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가상 소비의 쾌감을 맛보았다

 

 

눈에 띄는 곳이 장사하는 곳 뿐이었으므로 그렇게 되었다

 

 

어느 잡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뻔 하였으나 다시 생각이 나면 그 때 사기로 마음을 먹고는 돌아섰다

 

 

잡화점이 이해되지 않는 점은 질릴 정도로 너무나 많은 종류의 물건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건을 고르는 일은 옷이나 신발을 사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여자를 하나 골라 결혼하는 일이 연상될 정도이다

 

 

다 써보는 것이 불가능하니 대충 보고 한 줌 안에서 결정하는 수밖에...

 

 

왜 그렇게 가격이 비싼지도 이해되지 않고,

 

 

에누리의 폭이 왜 그리 널뛰는지도 모르겠고,

 

 

뭘 골라야 잘 고르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곳이 아닌가

 

 

참으로 알 수 없는 곳에는 대부분 사기꾼들이 있을 가능성이 많긴 하지만 또 모른다

 

 

누가 알겠나

 

 

아무도 모른다

 

 

눈이 침침해져 온다

 

 

피로가 점점 심해져서 지금은 머릿속이 멍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잠을 자러 집으로 향하고 싶지가 않다

 

 

익숙한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도저히 못 버틸 지경이 된다면 모텔에라도 들어가서 오늘 하루를 온전한 모험으로 내어 몰고 싶다

 

 

창녀를 사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지만 오늘은 그것도 괜찮을 듯 싶다

 

 

새 신을 한번 신어 보는 것이다

 

 

거울 속에서 나 자신에게 싱긋 웃어 보이는 것이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 모습이 기대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엮인글 :

에메넴

2015.03.23 15:35:12
*.215.237.158

베이글에 크림치즈 발랐긔 안발랐긔?


EpicLog7

2015.03.23 15:36:15
*.78.97.195

porpoly

2015.03.23 15:37:26
*.7.52.5

이분 조금만 다듬으면 한국의 무라카미하루키가 되실듯 ㅋㅋㅋ

트럼펫터

2015.03.23 15:39:47
*.61.13.98

그렇게 따지면 한국엔 무라카미 하루끼가 한 이천만 될꺼에요..

초보도이런초보없다

2015.03.23 15:44:54
*.32.170.64

하루끼는 하루 한끼? ㅈㅅ

베이비코딱지

2015.03.23 15:58:39
*.70.52.56

약 좀 제때 챙겨먹자.

낙엽학개론

2015.03.23 16:03:14
*.164.167.251

추천
1
비추천
0

그 어렵다는...의식의 흐름 기법??....

근데...뭔가 좀 빠진 느낌?

이상의 <날개>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추천할게요...

도레미파♪

2015.03.23 16:44:34
*.62.229.234

정자다

(━.━━ㆀ)rightfe

2015.03.23 17:06:16
*.52.0.190

매번 정자님 글을 다 읽어봐야 하는 이 곤욕스러움...ㅡ,.ㅡ... 그리곤 갈등......아...

에메넴

2015.03.23 17:16:34
*.215.237.158

"비밀글입니다."

:

조조맹덕

2015.03.23 17:12:46
*.156.88.233

스크롤이 길어서 3줄만 읽었다 

라이츄

2015.03.23 23:41:49
*.32.33.11

아....자의식 과잉....정말 멋진말이며...동감하는 자의식입니다..

겸손~ 겸손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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