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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떠밀린 휴가덕에 아무런 목적지나 계획없이 강원도 일대를 쏘다니고 왔습니다.
고속도로를 피해서 국도와 지방도 만으로 상당한 거리를 돌리고 달리고 감았네요.
박달재도 넘겨 주고, 대관령 옛길도 접어 주고. 소소한 여러 재와 자잔한 고갯길.
영월 / 태백 / 정선 / 진부.. 집 출발부터 돌아 오기까지 이천리 길.
햇빛에 구박 받다가 비도 맞았고, 더위에 시달리다 추위(? 용평 정상 한낮 19도)
도 겪고, 한시간 넘게 교행 차량 한대없는 오지도 가고 서울 근처 정체에도 쩔고.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옹아리 하듯이 혼자서 중얼중얼~.. ;;
시간되면 얼굴 보려던 사람은 총 네명. 한명은 반갑게 만나서 몇마디 주고 받았고
한명은 저녁 얻어 먹으며 자리를 함께 했고 한명은 늦은 시간까지 술잔 기울였고.
사분의 삼이니 나쁘지는 않은 성적. 30년이란 시간이 정 들기에 충분하구나...
하이원의 밤하늘에 올라와 준 음력 열엿새의 달은 참으로 커다랗게 느껴지더군요.
꿈이 많은 자는 초승달을 좋아하고, 한이 맺힌 자는 그믐달을 바라본다고 하던데.
유난히도 달이 크게 보이고 색깔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란 말인가.
사진 따위는 없습니다, 모든 추억은 마음에 묻어놓고 지나갈 뿐.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듯, 누군가가 내 가슴을 열어서 내용물을 내려 받는다면 참으로 볼만 하라라.
그 기억을 새로운 개체에 심는다면, 또 다른 어떤 객체가 생성될 수 있는 것인지.
마지막이 아쉬운 이유는, 그 마지막이 마지막인줄을 몰랐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내일 또 쉽게 반복되리라 치부하는 일상들이 어쩌면 또다른 아쉬움일수도 있는데,
어찌 이리도 고마움을 모르고 매 순간을 지내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이번에 가장 의미있는 일은 '김삿갓 문학관을' 방문해 본 경험이라죠.
'둘러 보는데 얼마 걸리냐'는 매표소 앞줄 관람객의 질문에 대한 근무자 대답이야
이삼십분이라 했건만, 원문도 읽어 보고 한글 음도 느껴 보고 해설도 감상하려니,
어느덧 마감 시간.
어찌 그리 한글자 한글자에 발음을 실어 내고 구절 구절에 운율을 맞출수 있는지.
그 아무리 천재라 해도, 담겨진 기나긴 장고의 시간이 시간을 통해 전해 오네요..
범인의 주제로는 감상하기 조차 벅찬 불멸의 작품이여~.
하늘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삿갓으로 가렸다고 하던데,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삿갓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