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문화연구회,
풍산·황산동
금성분
2기 개발로 파손
문화재청,
유물 발견 안 돼
문화재
구역 해제 공사강행
(사)한성백제문화연구회(회장 한종섭)와 한국고대사연구소(소장 오순제 박사)가 미사강변도시 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풍산·황산동
백제 금성분(전방후원분) 2기가 최근 개발로 인해 무작위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종섭
회장과 오순제 박사에 따르면 풍산동 하남고 옆 야산의 ‘민둥산고분(680m)’과 황산동의 ‘황산고분(770m)’은 2005년 백제 초기의 대표적
고분인 금성분으로 밝혀져 전해오다가 지난 5월 중순 미사강변도시 개발로 파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당초 도시계획도 도로로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었으나 백제문화연구회가 지난 2012년 4월 문화재청과 2013년 5월 청와대 등 정부 각 부처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보존돼 왔다. 하지만 미사지구 개발에 따라 문화재청이 당시 하남시와 협의해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른 통보도 없이
최근 LH가 2기의 금성분을 훼손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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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사동궁

사동궁,
사동궁(寺洞宮)은 한성 중부 관훈동 196번지에 있던 궁으로 고종의 5남 의친왕의 사저이자 친왕부(親王府)이다.
의친왕의 다섯째 따님이시자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이해경 '여사께서 '나의 아버지 의친왕' 책에 소개한 사동궁의 사진입니다. 사동궁은 왼쪽편의 양관(洋館)(서양식 건물)이 대표적인 사동궁의 모습으로 알려져 왔습니다만 한개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개의 한옥이 어우러진 엄청난 권역의 궁이었습니다.
의친왕 하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의친왕의 사진을 한 장 보시겠습니다.
위 사진은 대한제국 육군부장 복장의 의친왕 모습입니다. 1906년경 사진입니다.
위치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이었고, 현재의 조계사가 있는 인근 권역이었습니다.
寺洞 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말로 하면 '절골' 인데 이는 절이 있는 동네라는 말이 됩니다.
즉, 현재의 인사동 거리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종로2가)에서 관훈동 136번지(안국동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인데 현 종로2가 시작되는 곳 바로 옆이 탑골공원입니다. 탑골공원도 사실 따지고보면 고려 흥복사터에 세조 임금때 원각사를 중건했던 곳이니 그 일대가 모두 절과 관련이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동궁의 '사동(寺洞)'과 '인사동(仁寺洞)'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한자까지도 똑같지요.
종로의 역사 자료를 보면 갑오개혁(1894)때 '관인방(寬仁坊)'에는 대사동계 = 원동(園洞), 대사동, 승동, 탑동, 철물교계 = 대사동, 승동, 탑동계 = 대사동, '견평동(堅坪洞)'에는 어물전계 =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이문동계 = 이문동의 지명이었던 것이 1914년 4월1일 경기도 고시 제7호로 방계명(坊契名)을 동(洞)으로 개칭하면서 寬仁坊의 『인(仁)』자(字)와 대사동(大寺洞)의 『사(寺)』자(字)를 조합해서 인사동(仁寺洞)이라 하였다 는 기록이 나옵니다. [참조 : 종로구청 : 종로의 역사소개 내용]
즉, 사동궁은 사동 이라는 말이 핵심이죠. 즉, 절이 있는 곳입니다.
책에 보면 사동궁이 위치했던 곳을 현재의 조계사 큰 골목에서 지금의 수도약국까지 만여평의 집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현 인사동의 길목과도 붙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만여평이라고 하는 것은 별궁과 그 사동궁의 주변 집들(궁 바로 옆에 여러 의친왕의 후실과 그 자식들 및 상궁 및 일꾼들이 머무는 집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을 포함하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동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서문. 나는 왜 대한민국을 포기했는가
1장. 피맛골 대학살
2장. 역사 강간

■대한민국 사용후기/J.스콧 버거슨 지음

바로 이 사진입니다.
사동궁을 살리기 위해 발로 뛰던 미국인 J.스콧 버거슨의 책에 나온 사진입니다.
의친왕께서 머무시던 사동궁을 주차장으로 만들기위해 포크레인으로 무참히 파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4년 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발칙한 한국학’의 저자가 새롭게 내놓은 책이다. 더욱 날카로워진 그의 시선은 한국 사회의 폐부를 여지없이 들쑤셔 놓는다. 저자에게 이제 한국은 ‘매트릭스’다 .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모르페우스가 네오에게 준 조그만 붉은 알약을 삼키는 것과 같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마치 네오가 붉은 알약을 먹고 눈을 뜬 것처럼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면 제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매트릭스의 세계로 통하는 플러그가 꽂힌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한국은 ‘아주 이상한 곳’이며, “길거리에 나서면 매력이나 예의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운, 차갑고 야만적인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한국의 문제점들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천박함을 매우 정확하게 드러낸다.
특히 자신이 직접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조선 의친왕이 기거하던 사동궁은 2004년 9월,노무현 정부가 대한민국 전역에서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한 주가 지났을 무렵, 결국 문을 닫았다. 그리고 10개월여 후 갑자기 포클레인이 들이닥쳐서는 눈 깜박할 사이에 집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그 자리엔 주차장이 들어섰다.
이 건물의 주인이 의친왕(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서울시청 문화재과까지 찾아가 그 사실을 확인했다. 1923년도 서울 중심부 지도에 문제의 건물이 실제로 의친왕의 사동궁(궁궐의 별궁)이었음이 명시돼 있었던 것.
저자는 “어떻게 종로구청이 그런 역사적인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고작 주차장 따위를 지을 수 있느냐”고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 팀장과 두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한동안 책상 위에 펼쳐놓은 커다란 지도만 들여다봤다. 여직원 한 사람이 거의 들리 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게 영어로 대답했다. “It’s shame(부끄 러운 일이야).”
저자는 이어 “만약에 어느 일본 기업이 도원을 사들여 그 부지 에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했더라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그 건축적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라고 날카롭 게 지적한다.
<아래사진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조선의 궁궐 '사동궁'의 현재모습 입니다.>

궁궐을 깔아뭉개고 주차장을 만드는 KOREA,
참 대단한 나라다.
이때의 종로구청장이 바로
그 유명한 용산참사때의 한나라당 구청장 김충용 이다.




2.미시클럽과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죽동궁
죽동궁
순조의 장녀 명온 공주가 기거하던 죽동궁은 현재 지금은 1층에 맥도널드, 지하에 ‘미시 클럽’이 자리한 14층짜리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버티고 있다),
3.주차장과 스타벅스가 되버린 수진궁

수진궁
수진궁은 조선 시대에, 칠궁(七宮) 가운데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사저였던 궁. 뒤에 어려서 죽은 대군, 왕자, 옹주, 후사가 없는 후궁의 제사를 지내는 궁이었다.
종로구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수진궁터는 또 다른 주차장과 또 다른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이런 한국인들이
숭례문이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온갖 퍼포먼스에 난리를 친다.
참 골때리는 민족이다.
숭례문을 추모하는 천제
뉴시스 | 기사입력 2008.03.29 23:30

【서울=뉴시스】
29일 숭례문 화재 49제를 맞아 숭례문 앞에서 열린 '숭례문 참 기원제'에서 백산소도의 천제제례중 천지인 삼신께 고하는 우리의 소망을 담은 기원문 낭독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유지현기자

‘숭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2.13 17:21 | 최종수정 2008.02.18 14:01
[한겨레]
숭례문이 불에 탔다.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70살 남자가 홧김에 저지른 불로, 지난 11일
새벽 숭례문은 5시간 만에 불에 타 무너져내렸다. '숭례문 화재'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졌다.


숭례문이 사라졌다고
정말 씁쓸하고 부끄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