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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서, 개성이라는 게 뭘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개성이라는 게 큰 두개의 카테고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성장환경, 타고난 품성(저는 분명히 선천적인 품성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상황 하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등의 진정한 의미의 내재적인 개성이 그 첫 번째이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요약해버릴 수 있는 외재적인 개성이 두 번째 개성입니다.
오늘은 이 두 번째 개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 단순화가 가능한 두 번째 개성이란, 딱 잘라 말해서 그 사람의 소비패턴입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얼마만큼 한정된 재화를 할당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보여주는 큰 틀이 되는게 바로 포스트모던 사회니까요. 물론 한정되지 않은 재화를 가진 것 처럼 보이는 상위 1% 소득자도 있겠습니다만, 이 사람들도 1일 24시간 밖에 못 가지는건 마찬가지고, 시간 또한 한정적인 재화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식재료에 월 수입의 30%를 쓰고, 외식 비중은 굉장히 낮으며, 여행 및 겨울 스노보드를 타기 위한 저축 및 소비가 많습니다. 이걸 종합해보면 헝글에다 오늘 먹은 저녁사진을 올리고, 보드장 소식을 쓰는 뻬뻬뽀라는 회원의 대략적인 개성은 이미 틀이 잡힌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소비패턴이 개성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은 사실 100년 전에도 2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마는, 요즘(이라고 해봤자 2000년 이후가 되겠습니다만)은 개성이라고 함은 내재적인 개성보다는 외재적인 개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개성을 피로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이 제일 크지 않은가 합니다. 요즘처럼 개인의 생활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자신이 뭘 먹었는지, 뭘 했는지, 어디다 돈을 썼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릴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에게 요즘 sns에다 올리는 것 처럼 매 시간 알린다면 그 사람은 미친 놈 취급을 받았겠지요..ㅋㅋㅋ..
이런 "자기피로"의 욕구는 사실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 욕구가 극에 달한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일 뿐이지, 술자리에서 맨날 똑같은 소리를 하는 김과장도, 지하철에서 "요즘 것들은.."이라는 말로 일장연설을 시작하는 할아버지도, 큰 소리로 울어제끼는 젖먹이도 전부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좀 알아줘" 라는 표현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요.
그런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참 쉽고 빨라졌습니다. 사진 몇장 찍어서, 한 줄 멘트만 곁들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 겁니다. SNS가 폭발적인 성장을 한 건 어찌보면 당연하죠. 지금까지 없던 창구가 너무나 넓고 편하게 생긴 셈이니까요.
이런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트렌드에 매몰된 몰개성의 시대" 라느니, "쓰고 버리는 1회용 개성의 시대" 라느니, "소비만 확대 재생산하는 시대" 라는 이야기들 많이 보셨죠? 그런데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세태는 예전에는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못했을 뿐, 인간이라면 동굴에 살던 석기시대 인류도 가지고 있던 본성에 가까운 욕구니까요.
대항해시대에 SNS가 있었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제 생각에는 비싼 돈 들여서 향신료 쳐바른 저녁식사를 올리고 "오늘 저녁은 후추와 육두구를 곁들여서 향기로웠다"라고 자랑질 하고 있는 부유층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들, 저따위 요리보다 내 마누라가 만들어준 감자죽이 더 낫다라며 자기위안하는 사람들, 소득이 편중된 현 세태를 성토하는 깨시민들이 모여 지금 SNS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즉,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할 수 없어서 못했던 걸 지금은 할 수 있어서 하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예전은 요즘과 달랐다는 생각도 옛 시대에 대한 향수일 뿐, 그 이면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생각하고요. 누군가는 자랑하고, 누군가는 그를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돌을 던지는.. 이런 상황은 선악을 따질만한 일이 아닙니다. 각각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이런 상황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뿐이기 때문에 가치판단조차 필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헝글에 올라오는 장비자랑, 영상자랑 등.. 이런 것도 다 마찬가지라 봅니다. 스노보드 커뮤니티에서 장비자랑/실력자랑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를 보고는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비난하고, 누구는 맨날 똑같은 물건/자세 봐야하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10년 전 헝글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물론 장비 자랑글의 사진이 색색가지 프리덱 대신에 다 똑같이 생긴 해머덱으로 바뀌긴 했고, 데크 선택을 고민하는 글에 달리는 댓글들도 바뀌어오긴 했겠지만, 본질은 다를 바 없다는 거지요.
아침 시간이 널널해서 쓸데 없는 잡설을 길게 썼습니다만, 결론은 그렇습니다.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사람이 바뀌질 않았으니, 커뮤니티도 바뀌었을 리가 없다는 거죠.
그러니 모든 헝글유저들은 당황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시기 바랍니다!
ㅋ ㅋ ㅋ 글잘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