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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회영 일가 망명 100주년과 ‘형님예산’
한겨레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경술국치 100년을 보내면서 기억할 일이 있다. 일제를 새 상전으로 모신 매국노·친일파들만 살판이 나서 떠들고, 백성들은 나라 망한 통한에 호곡도 잊은 채 경술년을 보내고 있던 1910년 12월30일.

남부여대한 한 무리가 수십대의 썰매를 타고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 50대 중년에서 젖먹이까지 섞인 기묘한 행렬이었다. 무리는 국경을 지키는 일본 감시병들을 피해 한밤중에 도강을 했다. 우당 이회영(1867~1932) 일가였다. 삼한갑족의 명문가이던 우당 6형제와 가족 40명, 집안일을 돕던 가솔들까지 60명이 목숨을 걸고 만주로 망명했다.

10대조 백사 이항복 이래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조선 최대의 명문 거족이었다. 이들은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명신족으로 책임을 다하려고 6형제의 재산을 판 돈 40만원을 갖고 망명길에 올랐다. 현재의 소값으로 환산하면 600억원, 쌀로 치면 3만섬, 땅값으로는 2조원에 달한다는 재산이었다. 이 거액은 오롯이 만주에 세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에 투자됐다. 그리고 일가는 독립운동 전선에서 얼어죽거나 굶어죽은 이가 적지 않았다. ‘집단망명’의 주역 우당은 안중근·신채호가 순국한 뤼순(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숨지고 이들의 아들·조카 대부분이 항일투사가 됐다.

우당 형제와 그의 동지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10년 동안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향후 의열단·독립군·광복군 등 무장독립운동의 전위가 됐다. 의열단장 김원봉, 님 웨일스 <아리랑>의 주인공 장지락도 여기 출신이다.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과연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항일무장투쟁의 주역이 된 군관들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허위, 이상룡 일가도 고국을 떠나 이역에서 신산한 삶을 살며 독립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다. 매국노·민족반역자들이 일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친일 잡귀 노릇을 할 때 이들은 기득권을 버리고 산 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나치 독일과 싸우다가 망명하여 18년간 망명객이 된 미국의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망명자는 그 시대 인민의 전위”라 불렀다. 일제는 한국을 병탄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불령선인’은 천민 출신들이고 양반 계층은 모두 협력한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우당과 허위, 이상룡 등 명문가는 기득권의 책임을 다하고자 ‘전위’가 됐다.

우당은 대단한 선각자였다. 일찍이 양명학을 탐구하여 지행합일의 실천 논리를 중시하고 가노를 해방했으며 신민회를 발족하여 공화정체의 씨앗을 뿌렸다. 이상설·전덕기와 헤이그 특사 주청, 고종황제 베이징 망명 추진, 중국 혁명작가 루쉰과 러시아 맹인 무정부주의자 예로셴코, 신채호, 유자명 등과 국제아나키스트 연대, 재중국조선아나키스트연맹 주도, 나석주 의거, 다물단·흑색공포단 등을 주도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그는 독립된 조국의 미래상으로 ‘자유협동체론’을 구상한 경륜가였다.

오늘 우당이 생각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 때문이다. 국가에서 온갖 특혜를 받고 특권을 누린 자들이 국가위난기에 어떤 일을 했던가. 또 지금은 어떤가.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군 미필 또는 기피자이고 위장전입·부동산투기·세금탈루·논문표절자라는 사실과 ‘형님예산’으로 상징되는 권력자들의 전횡 앞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실종되고 만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대군부마불사원칙’(大君駙馬不仕原則)이라 하여 왕의 형제나 사위·왕자들은 공직을 맡지 않았다. 기회주의자·부패분자들의 농간을 차단하려는 배려였다. 6·25 전쟁이나 천안함 사건 때 만만한 서민 자식들만 죽었고, 특권층은 없었다. 권력과 지위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 이것이 공정사회의 요체가 아닐까.

새해 6월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이다. 우당 정신을 기리면서 100주년을 맞고 싶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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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고고고

2010.12.31 11:37:47
*.92.140.17

이 글 쓰신분도 감찰 당할 듯...마지막 단락때문에...

호잇

2010.12.31 17:12:46
*.137.123.102

간만에 한겨레신문을 구독했었는데 저도 이 칼럼 봤습니다.

친일파 욕만 할줄 알았지 독립운동하신 애국자분들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고

그분들의 고생과 희생을 제대로 기억하는지에 대해 반성하는 칼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존경하는 리더들이 많았고 앞으로 더욱더 많이 생기길 기대하고 기원합니다.

헝글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 잔뜩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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