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은 中 공산당이 자국민에 숨기는 ‘계란볶음밥의 날’
11월 25일은 ‘계란볶음밥의 날’ 또는 ‘계란볶음밥 절(節)’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공산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해 계란볶음밥을 해먹기도 한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든 이날이 알려지는 걸 막으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우상으로 숭배하는 마오쩌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 중국인을 더 많이 죽인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 탓에 자국 내에서는 비판도 할 수 없는 ‘신적 존재’다. 이런 마오의 아들은 6.25전쟁에 참전한지 한 달여 만에 계란볶음밥을 해먹다가 미공군 폭격을 받고 죽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1950년 8월 6.25전쟁에 참전했다. 마오쩌둥이 후계자 수업의 일환으로 참전 경력을 쌓게 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공산당 고위간부들이 말렸지만 마오쩌둥과 마오안잉은 참전을 고집했다고 한다.
인민해방자원군 사령관 비서 겸 러시아어 통역관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마오안잉은 그러나 상당히 거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오안잉 사망 원인도 거만함과 객기를 부린 탓으로 보인다.
1950년 11월 25일 마오안잉은 북한 평안북도 창성군 대유동에 있던 중공군 사령부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사령부 작전실에는 팔로군 출신으로 북한군 전선사령부 부사령관 박일우가 선물로 보낸 계란 10여 개가 광주리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사령관 팽덕회는 "부상병들 주라"고 했지만 사령부에는 부상병도 없었고, 사령관에게 온 귀한 선물에 손을 댈 사람도 없었기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이날 미 공군 정찰기가 뜨자 사령부 인원들은 다 방공호로 대피했다. 하지만 늦잠을 자다 일어난 마오안잉은 공습경보가 길어지자 배고픔을 못참고 사령부 작전실 난로를 사용해 계란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때 나온 연기를 포착한 미 공군 B-26 폭격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했고, 마오안잉은 즉사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마오안잉은 사령부 건물의 기밀서류를 챙겨오려다 전사했다"고 인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적잖은 중국인들이 마오쩌둥 아들이 "공습경보가 내려졌음에도 사령관 선물에 손을 대고, 그것으로 볶음밥까지 해먹다 미군에 들켜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을 싫어하는 중국인들은 11월 25일 계란볶음밥을 해먹으며 울분을 달랜다고 한다. 이 ‘계란볶음밥절’이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들 패악질 때문에 국내에도 전해진 것이다.
굳이 커뮤에 중국이야기를 쓸필요는 없을거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