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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보더(觀光boarder) [명사]
1. 스노우 보더 이지만 정작 보딩에는 관심이 없고 술이나, 맛집, 꽃보더만 찾아 킁킁거리는 보더.
2. 엄청난 저질 체력으로 1회 보딩 후 보딩시간의 두배를 쉬어줘야 하는 아이폰 배터리 같은 체력의 보더.
3. 성우 너구리.
이런 관광보더라도 아주 가끔. 드물게 막 잡아 올린 활어마냥, 슬로프 위를 팔딱거리고 뛰어다니는 때가 있다.
앞에 꽃보더가 있거나, 뒤에 꽃보더가 있거나. 혹은 옆에 꽃보더가 있거나...=_=;;;;;
평소에는 부츠 끈도 묶지않고 돌아다니다가, 꽃보더만 발견하면 전투보더로 변신하는 이땅의 모든 관광보더에게 이글을 바친다.
"순규야!! 괜찮아? 정신들어??"
...눈을뜨니 슬로프 조명에 반사된 밤 안개가 몽롱하게 망막으로 스며든다.
3단분리되어 널부러져있는 고글과 비니. 등으로 전해져오는 차가운 눈의 한기. 그리고 어깨에 묵직한 통증.
아... 개 까였구나...=_=
여대생 학단크리로 인한 때아닌 꽃보더 홍수에 흥분하여
주위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속3회 리프트 탑승을 강행한게 원인이었나보다.
이미 다리는 풀려 후들거리고, 남은 슬로프의 길이는 일병 2호봉의 전역날짜만큼이나 까마득하다.
"패트롤 불러줘??ㅋㅋ"
거 무슨 그런 말씀을... 지금 포장육으로 내려가면 적어도 놀림감 5년짜리다. ㅡㅡ
전화기를 꺼내들어 패트롤을 부르려는 지인을 뒤로하고 어기적어기적 겨우 내려오니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의 열렬한 환호소리.
"앜ㅋㅋ 너 뭐 올라가서 후드 세탁하고 왔냨ㅋㅋ 검은후드가 흰후드가 됬엌ㅋㅋㅋ"
"으엌ㅋㅋ 야 슬로프는 괜찮냐?? 땅 갈라지지 않았어?ㅋㅋ 저질체력 주제에 오버할때부터 그럴줄 알았엌ㅋㅋ"
아 거 그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좀 말리지 그랬수 =_=
놀려대는 일행들에게 상한당근을 먹은 토끼마냥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해주고는 의무실로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여는 순간.
"실례합니ㄷ........?!?!?!?!?!?!?!"
나는 보았다. 천사를...
연 모씨가 우리에게 앗아갔던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목구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녀가 걸치고 있는 흰색 가운보다도 더 하얀 피부.
그렇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사다.
아...하느님... 난 당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이 천사라면, 나 내일부터 교회 나갈거 가타효 =_=;;
"괜찮으세요? 어떻게 다치신거예요??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아...아닙니다. 아프긴요 뭘. 그냥 잠시 눈밭에 누워서 쉬다가 내려와ㅆ....악!!! 거긴 건드리지 마시구요 ㅡ_ㅡ;;;
그 가느다란 손으로 몸 구석구석을 더듬(?)을때마다, 통증이 완화되어간다. 맞다. 천사맞다.
"인대가 늘어난거 같네요. 파스랑 붕대 감아 드릴게요. 그리고 당분간 보딩 접으세요. 절대 타시면 안되요!절대 안되요! 아시겠죠?"
"에이~ 뭘 또 그렇게 강조를 하시고..ㅎㅎ 제가 그렇게 말안듣게 생겼어요? 저 그런사람 아니예요 ㅎㅎㅎ"
하고 올려다보니, 응. 넌 그래보여. 하는 단호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그녀...
아... 이쁘고 착한데 예리하기까지 하다...ㅡ_ㅡ;;; 이러니 내가 뻑이가지.
그 후로 의무실은 내 관광보딩 일정의 한 코스가 되었다.
까여도 언제든 힐링을 해주는 천사가 있다는 생각에 보딩은 점점 과격해져갔고,
몸은 점점 걸-_-레가 되어갔다.
그렇게 의무실에서 받아오는 압박붕대와 팔걸이가 장사를 해도 될만큼 쌓여가고 있던 어느날...
이제는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을 쌓은 천사에게.
작은 마음의 표시라고 하려는 마음으로 주머니에 따듯한 캔 커피를 숨기고서는 의무실 문을 열었다.
"또 다쳤어요? 내가 못살아. 아실만한 사람이 왜 자꾸 그렇게 다쳐서 와요?"
"아 거 뭐 =_= 타다보면 다칠수도 있고, 까일수도 있고... 아 근데. 이제는 막 환자 구박하고 그러는겁니꽈?"
"아 몰라요. 또 오면 안봐드릴거예요. ^^"
하며 내 앞으로 돌아앉는 순간. 반짝인다. 무언가가.
그 가늘고 하얀 손가락에. 흡사 꽃밭에 앉아있는 곱등이와 같은 이질감으로.
작고 가는 무언가가 반짝인다.
"어...? 커플링...? 남자친구 생기셨어요.....?"
"아...ㅋ 네...*^_^*;;;"
아...그랬쿠나...그랬던거쿠나...
의무실앞에서 전활 받으며 짓던 환한 미소는 이것때문이었쿠나....
아..아..? 왜 가슴이 먹먹하지...? 아픈가...? 나 아픈건가??
파스를 뿌리는 손의 온기가. 붕대를 감아주는 그 손의 온기가.
손목을 타고, 어깨를 지나 심장을 스쳐가는 그 순간, 통증은 소리없이 가슴에 내려앉았나보다.
"자. 다 되었어요. 붕대 감았으니 심하게 움직이지 마시구요. 뭐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는데 ㅎㅎㅎㅎㅎ"
아닙니다. 저 아파요... 여기 왼쪽 가슴 여기... 뒷쩍도 안하고, 등데오도 안했는데. 아파요.
환하게 웃는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환한웃음으로 답례를 하고 나온 의무실 앞에.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커피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저 커피의 온기가 식어버리고 나면 가슴에 남아있는 통증도
함께 식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가슴먹먹해지는...
그런데 글읽다가 킁님이랑 요이땅님이 생각나는건....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