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무협지 같은 거 많이 읽었나봐요...
개인적으로 박찬호 텍사스 시절 양키스랑 경기할 적에 포수 뒷자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첸졉도 직구처럼 뻥뻥..소리나면서 꽂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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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행이 보도된 20일 오후 한양대 동기생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차명주와 함께 개인훈련을 위해 서울고를 찾은 박찬호가 기자와 마주치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
기자는 사회인 야구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주말 야구 동호인이다. 6할 타율을 자랑하는 강타자다. 삼진은 단 1개도 없다.
사회인 리그에서 상대하는 투수들은 최고 시속 110km 이하의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 그런 내 야구인생에 숨막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던진 공을 타석에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어쩌면 일생에 다시 없을 소중한 순간이었다.
기자로서 취재원이던 그를 '투수'로 만난 느낌.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기자가 아닌 순수 사회인 야구팀 타자 입장에서 설명해보겠다.
모처럼 날씨가 풀렸던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고등학교. 박찬호가 한양대 시절 동기생인 전 롯데 투수 차명주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기자를 발견한 그는 놀란 표정이었다. 비공식 훈련 일정이었기 때문. 그는 "훈련 장소를 옮겨야겠네요"라며 난감해 했다. 독자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훈련을 방해할 수는 없는 터. "더 이상 사진촬영을 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훈련하시죠"라고 했다. 박찬호는 차명주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고 기자는 졸지에 할 일이 없어졌다.
멀뚱멀뚱 서서 지켜보는 구경꾼 상황. 훈련 중간 다가온 박찬호는 익살스럽게 카메라를 빼앗아 기자를 찍어주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1시간쯤 흘렀을까. 우두커니 서있는 기자에게 미안했는지 박찬호는 "몇 컷 찍으세요"라고 배려했다. 하지만 훈련을 방해하기 싫었던 탓에 "괜찮으니 계속 훈련하세요"라고 했다.
운명의 순간은 그 때 다가왔다. 캐치볼을 하던 박찬호는 느닷없이 기자를 불렀다. 차명주를 포수로 앉히고 투구 거리에 서더니 타석에 들어서 보라고 했다. 투수들은 종종 불펜 피칭시 타자를 세워놓고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차원은 아니었고 그저 심심했을 기자를 배려한 조치.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비록 배트도 없고 전력 피칭도 아니었지만 내 눈 앞에 선 상대 투수가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에 빛나는 박찬호란 사실은 믿겨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드디어 초구. 와인드업한 박찬호는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송구하듯 피칭했다. 박찬호의 손을 떠난 공은 잠시 보이는듯 하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본건 없지만 들은 건 있었다. 겨울 점퍼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 속, '쌩~'하는 바람소리가 공기를 가르더니 이내 '퍽'하는 쇳덩이같은 둔탁한 금속음이 들렸다. 공이 미트에 닿는 순간 나는 소리였다. 공포 그 자체였다. 사회인 야구를 하며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 정신을 차리고 두번째 공을 가만히 지켜봤다. 공이 아닌 쇳덩어리가 날아오는 듯한 느낌에 절로 몸이 움츠러 들었다.
욕심이 생겼다. 타이밍을 맞춰보려 타격 자세를 잡았다. 박찬호의 팔을 뚫어져라 지켜보며 왼발을 들어 스트라이드 하려는 순간 공은 순식간에 미트에 꽃혔다. 살짝 들어올린 왼발이 미쳐 땅에 닿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배트를 쥐고 있었더라도 스윙조차 하지 못했을 타이밍이었다.
압권은 마지막 공이었다. '제발 몸에 맞히지만 말아달라'는 부탁에 그의 얼굴에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흘렀다.
다시 와인드업. 이게 웬일인가. 잔뜩 주눅들어 있던 기자의 얼굴을 향해 그 무시무시한 쇳덩이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뒤로 쓰러질듯 피했다. 하지만 '나 홀로 쑈'였음이 밝혀지는데는 불과 몇초 걸리지 않았다. 공은 폭포수같은 낙차 속에 아웃코스로 흘러나갔다. 차명주가 공을 받은 위치는 바깥쪽 꽉 차는 스트라이크. 그 유명한 박찬호 표 슬러브가 눈 앞에서 춤을 추며 그려낸 착시현상이었던 것이다.
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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