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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째에서 멈출까

조회 수 890 추천 수 0 2012.04.06 16:19:44

 

쌍용 22번째 죽음 “빨갱이라며…취업 너무 힘들어”

한겨레 | 입력2012.04.06 15:30 | 수정2012.04.06 15:40

 

[한겨레]흑백 프린트 영정으로 모셔진 36살 이윤형씨
투쟁 의지 강했던 정리해고자로선 첫 죽음
"23, 24번째 산 사람도 죽을 것 같아 고통스러워"


 "살려주십시오. 더 이상은 못살겠습니다."


벌써 22번째 죽음이다. 마이크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슬픔이 한순간 턱밑까지 밀려왔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은 결국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공장 앞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로 서른여섯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이윤형씨의 노제는 그의 죽음만큼 쓸쓸하기만 했다. 



 공장을 등지고 녹색 천막으로 세운 간이 분향소에는 양초 두개, 쌀, 향이 전부였다. 검은 얼굴 그림이 죽은 이의 사진 대신 영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떠난 자의 쓸쓸함이 그 안에 어른거렸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네댓 명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검은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분향소를 지킬 뿐이다. 덤프트럭만 드나드는 공장 정문 삼거리는 상여곡 소리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 얼굴 없는 영정 사진, 그가 세상에 남긴 건 부서진 몸이 전부 

 

 이윤형(36)씨는 지난 3월30일 혼자 살던 김포의 한 임대아파트 3층 집에서 2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던졌다. 김포 고려병원으로 후송됐을 때는 응급실이 아니라 안치실이었다. 그의 주검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2일 화장터로 옮겨졌다. 유서는 따로 없었다. 그가 세상에 남긴 흔적은 부서진 몸이 전부였다.

  1995년에 입사한 이씨는 쌍용자동차 부품품질관리팀에서 근무했다. 평범하게 직장생활 잘하던 그였지만, 2009년 여름의 쌍용차 사태를 피해갈 수 없었다. 2646명 대규모 정리해고자 명단에 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악몽과 같은 77일간의 옥쇄파업 투쟁에 그도 끝까지 참여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해 결국 해고자 신분이 됐다. 당시 이씨의 나이 겨우 서른세살. 파업이 끝나고 그는 "평택이 지긋지긋하다. 떠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동료들에게 말을 했다. 이씨는 인천, 김포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전전했으나 지난 3월 초까지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했다. 당진으로 취업 면접을 보러 간다는 말이 동료들이 들은 마지막 소식이었다.

 

 # "평택이 싫다." 떠나는 노동자들

 

  "덩치도 크고 성격도 밝았던 친구였는데, 처음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제발 아니길 바랐는데…." 

  노제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김아무개씨가 상기된 얼굴로 분향소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김씨는 이씨와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였다. 김씨에게 이씨에 대해 묻자 말을 잊지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물이 먼저 뚝 떨어졌다. "자신도 해고 대상자였지만, 다른 동료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니까 그게 마음 아파서 끝까지 싸웠던 친구였어요. 평택에 함께 있었으면 동료들과 얼굴도 보고, 같이 살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못 다한 말이 허공을 갈랐다. 김씨는 "해고된 뒤 평택이 싫어서 떠난 동료들이 많다"며 "자꾸 죽어나가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울음을 삼켰다. 김씨는 얼굴도 없는 영정사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 "잘 살라 말도 못하고, 술 한잔 못 마셨는데…"

 

 노제를 지내던 4일 오전엔 햇빛이 났다. 바람이 불면 공장 앞 분향소 천막이 흐느적거렸다. 그 앞에서 말없이 영정을 껴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동료들 사이에서 서석문(정리해고자)씨가 이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웃는 얼굴만 생각나요. 파업 때 77일 동안 있을 때도 저한테 '형이 산자(정리해고에서 제외된 사람)로 같이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했던 동생이에요. 3월에 지부에 찾아왔었는데, 그 땐 다들 서울 광장에서 희망텐트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잘 살아라고 말도 못했네요. 술도 한잔 같이 못 마셨어요."

 서씨도 말을 잊지 못했다. 노조에서 분향소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소주랑 라면을 끓여왔다. 서씨는 숟가락을 뜨지 못했다. "이러고 3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이 파탄을 만든 경영진들은 두 다리 쭉 뻗고 살고 있는데, 진짜 잘못한 게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데. 우리 고통은 모르는 채 사람들은 죽음만 기억해요. 저도 제가 어떤 정신으로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조합 김정우 지부장은 이씨가 정리해고자 신분으로 사망한 첫 번째 사례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해고자는 여태 한명도 안 죽었어요.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스스로 해고자 신분이 된 사람들은 그만큼 투쟁 의지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목표가 보다 분명한 정리 해고자가 목숨 줄을 놓는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들하고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겁니다. 23번째, 24번째 계속 나오면 산 사람도 죽을 것 같아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 이씨 "옛 생각이 너무나 난다. 마음이 아프다"

 

 서른여섯 쓸쓸한 죽음. 이씨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김득중 쌍용차노조 수석부지부장은 이씨가 죽기 전 마지막 알려온 집 주소를 인천 서구 마전동의 한 빌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저희 77일 파업을 기록한 다큐영화가 있어요. <당신과 나의 전쟁> 그 영화가 보고 싶다고 작년 10월에 윤형이에게 문자가 왔어요. 제가 그 인천 주소로 택배를 보냈거든요." 그때 이씨는 "옛 생각이 너무나 난다. 마음이 아프다"고 김 부지부장에게 말했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 부지부장은 이씨에 대한 기억을 좀더 더듬어 내려갔다. "지난해 말 늦은 밤에도, 새벽에도 자꾸 술에 취한 윤형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형, 주위에서 나를 빨갱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취업하기가 너무 힘들다. 떠나고 싶은데,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때 알았어요. 윤형이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이복형이 있지만 상당기간 왕래가 서로 없고, 설에도 술을 마시며 혼자 보낸다는 걸요."

 노조 사무실 벽에는 노제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씨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에이포(A4)지에 복사된 흑백 사진 속에서 이씨는 밝게 웃고 있었다. 가족이 없는 쓸쓸함도 해고자의 힘겨움도, 직장을 찾아 헤매는 구직자의 서러움도 웃고 있는 그 사진 속엔 없었다.

 

 # 술에 취해 와락센터에 전화 "미안하다 잘못 걸었다"

 

 "제가 평택에 내려오라고 했어요. 생판 모르는 곳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그래도 여기서 한달에 한번이라도 같이 얘기하면 풀리잖아요. 와락센터에서 상담 치유도 하고 있으니 내려오라고…. 그때마다 웃으면서 '형 나 아무 문제없어. 내 걱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더 생각해'하고 전화를 끊더라고요." 김 부지부장의 회상에는 이씨를 더 챙기지 못한 자책이 묻어났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쌍용차 파업 사태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돕는 와락센터가 있다. 그곳에도 이씨는 두어 차례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물어보다 말없이 끊었고, 두번째는 술에 취한 채 "미안하다. 잘못 걸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의 전화를 받았다는 와락센터 상담 교사와 통화를 했을 때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만 들렸다. "죄송합니다. 지금 말할 상태가 못 됩니다. 죄송합니다." 센터에서 일하는 상담 교사들도 역시 해고자들 가족이다.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와락센터에도 퍼지고 있었다.

 

 # 그나마 노조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몰랐을 죽음

 

 "똑같은 고통 속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커요."

 노제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 고통스런 독백이 흘러나왔다. 노조에서 파악한 사람만 22명이다. 노조와 연락이 닿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씨와 같은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이씨도 동료들과 멀게나마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몰랐을 죽음이었다.  

 글·영상 조소영 피디azur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엮인글 :

ROCK ★

2012.04.06 17:26:04
*.132.61.245

ㅠㅠ

외면하는 오만한 정부....그리고 쌍용...

더이상 다음은 없길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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