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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2.11.24글·사진 = 이관범·노기섭 기자 frog72@munhwa.com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올해 연간 5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5년 전에 비하면 무려 5배로 급성장했다는 얘기다. 국내시장규모가 이제 미국(연간 11조 원 규모) 다음으로 큰 ‘아웃도어 대국’으로 뛰어 오르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국내 아웃도어 산업이 ‘알맹이(기술 자생력)’ 없이 ‘껍데기(시장)’만 비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고가 아웃도어 제품에 쓰이는 핵심소재의 70%를 미국 고어사의 ‘고어텍스’가 차지, 이미 ‘고어텍스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세계적인 섬유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안방에서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것이다. 또 고어사를 중심으로 세를 결집한 주요 아웃도어 업계의 마케팅 공세로 인해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고어텍스 공화국의 이면을 진단한다.‘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방수·방풍·투습 소재.’방수 의류의 투습(땀 배출) 기술?원조인 미국 고어사 국내법인(고어코리아)이 홈페이지에 고어텍스 소재를 소개한 문구다. 최고인지를 가리기 위한 핵심 포인트는 투습 성능. 방수 기능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구현할 수 있지만 동시에 땀을 배출하는 투습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과연 고어코리아의 주장대로 고어텍스 성능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일까.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미 육군이 비교 실험을 한 의류 소재 투습 성능 평가 결과를 보면 고어텍스는 ‘1류’가 아닌 ‘2류’에 가까웠다. 15일 문화일보가 미 육군 연구소에서 2009년 공개한 ‘보호의류 소재의 투습 성능 비교 실험’ 자료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스위스 쉘러의 ‘드라이스킨 익스트림’, 미 GE사의 ‘이벤트 라미네이트’, 일본 도레이의 ‘엔트란트 지투 엑스티 라미네이트’는 투습성 평가 항목에서 ‘고어텍스 XCR’와 ‘고어텍스 스탠더드’보다 오히려 두 배나 높은 성능을 기록했다.
실험은 24시간 동안 1㎡ 면적의 소재를 통과한 수증기 총량(g)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위는 ‘g/㎡-day‘를 쓴다. 수치(통과된 수증기량)가 높을수록 투습성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뜻이다.실험(여름철 평균습도 50% 기준) 결과, 드라이스킨과 이벤트는 ‘5000’, 엔트란트는 ‘4500’ 안팎의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고어텍스 XCR와 스탠더드는 각각 ‘2500’과 ‘2000’ 안팎의 수치를 보였다.
미 노스페이스의 ‘하이드로실’과 미 컬럼비아스포츠웨어의 ‘옴니테크 티타니움’은 고어텍스류보다 약간 모자란 ‘1500’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이 실험을 주관한 필립 깁슨 미 육군 연구소 분자공학팀 박사는 문화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방수 기능은 고어텍스나 다른 소재 모두 완벽한 수준”이라며 “반면 투습 기능의 경우에는 이벤트, 엔트란트 등이 고어텍스보다 훨씬 월등한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투습성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땀 배출을 잘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체에 편리한 최고 소재를 꼽으라고 하면 적어도 고어텍스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 “고어텍스 소재로 만든 아웃도어가 왜 (한국에서) 더 비싼지는 모르겠다”면서 “‘최고’라는 것이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을 뜻한다면 고어텍스는 역시 최고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아웃도어 제품의 시중 판매가를 높이는 데 기여한 핵심 중 하나인 고어사의 고어텍스 소재 성능이 미 육군 연구소의 비교실험을 통해 오히려 뒤지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가장 높은 가격대를 유지해온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 적정선’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 제조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은 다른 대체 소재 제품보다 50% 이상 비싸게 가격을 책정하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며 “생산 원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소재 가격도 그만큼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또 제조사가 고어텍스 제품에 가장 비싼 가격을 과감하게 매길 수 있는 것은 소비자 뇌리에 ‘고어텍스=최고 성능’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어사 관계자는 “고어사의 핵심 특허 존속기간은 지난 1993년에 만료됐다”며 “중국에는 이미 고어텍스와 동일한 성능을 지닌 모방 제품이 10개 이상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습성의 대명사이자 원조인 고어사가 과거의 영광을 앞세워 국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어코리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 육군의 비교 실험은 들어본 적은 있으나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며 “본사 입장을 확인해야 답변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투습 성능 하나만 놓고 보면 다른 소재보다 떨어질 수 있겠으나 방수와 투습 기능을 동시에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원단마다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고어코리아 관계자는 “우리는 아웃도어 제조사가 제품 가격을 정하는 데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거품 조장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 고어텍스의 방수·투습 원리 =‘멤브레인’이라고 불리는 막에 1제곱인치(2.54㎠)당 90억 개 이상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물방울은 막고 수증기만 통과하게 만든다. 구멍 크기가 물방울의 2만분의 1 크기로 작고 수증기보다는 700배 크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어사가 지난 1973년 이와 관련된 특허를 출원했다.
출처 :스노우캠프(snowcamp) 원문보기▶ 글쓴이 : 네스(구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