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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메로의 포스터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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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주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저를 죽일 때
저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가 흘린 피는 자유의 씨앗이 되고
희망이 곧 실현되리라고 신호가 될 것입니다.
사제는 죽을 지라도
하느님의 교회인 민중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각자가 모두 우리입니다.
우리는 동족입니다.
여러분이 죽이는 노동자 농민은 여러분의 형제자매입니다.
때리라는 명령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때리지 말라'
어떤 군인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이름과 비탄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억눌린 백성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호소합니다.
명령합니다.
억압을 중단하십시오
Oscar Romero(1917~1980, El Salvador)
1942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사제로 서품된 뒤 귀국해서
산 미구엘 교구의 교구장 비서로 임명돼
이후 23년 동안 교구 신문의 편집장, 주교좌 성당의 주임 신부,
소신학교 교장 등의 소임을 받아 활동했다.
1967년에 주교로 서품되어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사무총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중앙 아메리카 주교회의 사무국의 상임이사로 선출,
1970년에는 산 살바도르의 보좌주교가 됐고,
1974년에는 산티아고 데 마리아 교구의 교구장 주교가 됐다.
그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당초 그의 성향은 결코 진보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았다.
그는 보수적이었으며 이른바 현실 참여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평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적 사목방침을 염려하는 전통주의자였으며,
1968년에 열린 메데인 주교회의의 '민중의 교회로 가자'는 슬로건에 반대하고,
해방신학을 ‘증오에 가득찬 그리스도론’이라고 비난했던 사람이다.
로메로신부가 대주교로 취암할 무렵 살바도르의 정국은 .
군부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로 통해 권력을 다시 잡으려 하자
민중의 저항이 발생하였으며
군부는 그들을 공산주의자들이라 선전하며 무자비한 탄압을 했으며.
가톨릭 사제라고 하여 예외는 아닌 최악의 상태까지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로메로 대주교의 착좌식을 바라보면서
엘살바도르 민중은 이를 치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지만,
군부와 부유한 지주들은 마음을 놓았다.
Rutilio Grande ( 1928- 1977 )
그러나 착좌식이 있은 지 3주만에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로메로주교와 오랜 동안 우정을 나누던 예수회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아길라레스 성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가다가
군부의 사주를 받은 우익민병대에 의해 피살된 것이다.
그란데 신부는 군부의 폭정은 성경에도 위반되는 행위로
군부의 억압에 저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실천했던 전형적인 해방신학 노선의 신부로
권력자들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란데신부의 추모미사
그란데 신부의 추모미사를 집전하면서
로메로신부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미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아길라레스 농부들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란데 신부처럼 당신도 우리 편에 서 주실 건가요?”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이른바 ‘전향’의 계기를 맞게 된다.
두 달 뒤에 나바로 신부가 암살되고, 아길라레스 성당이 군용막사가 되고,
1980년부터 1981년 중반까지 게릴라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2만5천여 명이 살해되었다.
군부와 지주들에 반대하는 교원노조와 인권운동 단체들은 물론이고
여성과 어린이도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런상황에도 미국 레이건 정부는 엘살바도르 정부군에
3천5백만 달러상당의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하였다.
그 동안 12명의 사제가 살해되었고,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던 YSAX라디오방송국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군사정권의 조직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 와중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신자들에게 선언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예언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기름 부어 뽑아 세우신 예언자로서
하느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선한 일들을 자랑하고
성심을 다해 악을 고발해야 합니다.”
그는 성령의 활동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면서
시민단체들을 후원하고 그들과 연대했다.
‘실종자 어머니 모임'를 만들고,
‘엘살바도르 시민 인권위원회'를 설립해
민중을 억압하는 폭력사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고발했다.
사회적 폭력이 증가하자 주일 미사 때마다 그 주에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무력을 지닌 이들로부터 격렬한 반감을 불러왔다.
그의 복음적이고 사목적인 활동은 공의회 정신과 각종 사회 문헌들,
그리고 특별히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을
복음적 가르침과 실천으로 해석한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구원을 추구함에 있어 우리는
현세적 임무를 성덕 및 성화에서 분리시키는
이원론을 피해야 합니다”
“죽음 저편뿐만 아니라
여기 땅위에서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교회여야 합니다”
19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병원에 있는
천주의 섭리 소성당에서 거행된 미사를 거행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폭력이 숨쉬기처럼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의 불의에 대항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그떄 미사에 난입한 괴한 4명이 M-16자동소총을 갈겨댔다.
성배를 들려던 순간 총탄을 맞은 로메로 대주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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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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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朴대통령 사퇴하라”
▲ 천주교 전주교구 사제들은 22일 전북 군산에서 신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
"교황청에 고발해야"…천주교내 강경 목소리도
2013.11.26 20:00
【 앵커멘트 】
시국 미사 발언 파문과 관련해 천주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황청에 고발해야 한다는 한 원로 신부의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보도에 박통일
기자입니다.
그것을 계승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함
그당시에는 종교때문에 항상 전쟁이 있었고... 또 왕으로 인정받을려면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함
지금이랑 상황이 많은다른시대에서 나온 구시대적 유물인 정교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