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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조기 교육에 올인할 때
개미굴 파고 흙먹는 딸래미를 방치한 우리집
초딩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나다를 익힌 저는
글자 중에 '이'자가 참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동그라미가 먼전지 작대기가 먼전지
영 헷갈렸거든요.
엄마 이름 '이영희' (가명),
선생님이 엄마 이름을 열 장 써오라고 했을 때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만만 코웃음 쳤어요.
막상 내가 적어간 건 '10영희'
일제 때도 지켜내던 엄마네 족보를
이렇게 간단히 창씨로 기만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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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이 된 어느 날 실과 시간
선생님이 일어나서 책을 읽으라하시네요.
언제나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있게 읽어가던 저는
순간 멘붕
세상에 한 번도 못본 글자가 나왔거든요.
"T스푼"
헉;;; 넌 누구냐;;;
친구들이 옆에서 소곤소곤 '티'라며 알려주지만
애초에 입력된 정보가 없으니 알아듣지 못합니다
(쟈들은 배우지도 않은 걸 어케 알았징? 우와 @@)
선 채로 얼어버린 저는 당황하다 끝내 읽지 못하고
눈치를 보니 계속해야할 것 같아 일단 어물쩡 넘기며.
휴~ 살았다
다시 나머지 부분을 자신있게 읽어가는데
또 멘붕
이번엔 "t스푼"
ㅠㅠ
엄마가 나에게 알려준 영어라곤
케이 오 알 이 에이
딱 다섯 글자였습니다
영어를 다섯 개나 아는 게 자랑이었는데
하필 이 중에 티자가 없었던 건 그냥 운이 없는 거라며
이제 여섯 개를 외우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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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찌 졸업하고 대학도 가게 됐습니다.
어느 날, 선배가 종이를 한뭉텅이 주면서
문제마다 체크된 대로 모눈 종이처럼 생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 화면에 입력하랍니다.
설문 당 일련번호를 제일 앞 줄에 매기래요.
헐;;; 노가다;;;
효율을 중요시 하는 저는
일단 설문지 앞장에 일련번호를 쭈욱 매겨두고는
컴터 화면에도 제일 앞줄에 일련번호를 입력 합니다.
1 엔터 2 엔터 3 엔터 ..... 562 엔터.....
마침 지나가고 있던 선배가 잘 돼가냐며 다가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건
저의 성실함과 체계적인 입력방식 때문이겠죠.
혹시 이거 다 네가 (엔터 치며) 입력한 거냐고 물어요.
"네, 맞아요..." (아, 나의 수고를 알아주시는 구나)
뭔 짓거리내고 버럭 화를 냅니다.
"헉;;; 왜요? 뭐 잘못 된거에요..?"
드래그 하래요.
"드... 드래그.....?"
(모눈 종이는 EXCEL)
대형 T스푼급 멘붕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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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미션에
책을 스키밍하며,
와중에 이슈를 요약 정리하며,
와중에 개발괴발 직원들의 문서를 봐주며,
와중에 업무전화를 받으며,
와중에 급한 자료를 제출하며,
와중에 난처한 일에 정서적지지가 필요한 동료의 농담에 답하며,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미션 클리어
요즘 일도 하기 싫고 너무 놀아서
성과최고등급이 부끄러웠는데
오늘은 그냥 그간 여러 개의 티스푼을 차근히 익혀온
상이라고 생각하렵니다.
ps. 낼은 스키타러 고고~! ^^
그래서 웅플시즌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