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새벽 5시 서울 출발.
휘팍에 도착해서 두번의 두번의 보딩을 끝내고 파노라마에 들었을 때 였습니다.
상단에는 보드가 아닌 스케이트를 타야 될 정도의 얼음이 얼어 있어 보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최대 엣징을 가해 기본 자세로만 중심을 잡고 겨우 겨우 내려왔습니다. 상단을 지나 중간 부분까지
오니 슬롭 상태가 좋와지더군요. 대충 자세 잡고 턴을 하면서 슬슬 속도좀 붙었을 때 였습니다.
토우턴을 끝내고 힐턴을 들어가 큰 원을 그렸을때 세상이 뒤집어 지더군요.
카키색이 들어간 회색 자켓과 쥐색 바지를 입은 스키어 한명이 저를 뒤에서 제 보드 앞부분을 후려치고
직활강을 하시더군요. 턴이 조금도 없는 직활강이었습니다. 초보분으로 보였는데 엄청난 직활강을
하시더군요. 하늘이 회전하고 땅이 올라오는 그런 정신 상태에서도 엄청난 분노와 함께 그 직활강 하는
스키어를 잡아 쥑여뿐다라는 생각이 그 순간에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로 슬로프와
저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저넘을 잡자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다시 슬롭과 만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집 침대에 누워있더군요. ㅎㅎㅎ
하루에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쓰러지기 전까지의 기억은 10년된 기억처럼 희미하고, 넘어진 후부터는
완전히 사라진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더군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전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 충격에서도 현재 허리가 약간 결린 것 빼고는 멀쩡합니다. 그전 기억 다 있고 구구단 잘 외워지고
친구들 얼굴 다 기억하고.. 등등
그 스키어는 잘 먹고 잘 살겠지요. 일단 제 생애 하루를 지워주신데 심심한 감사의 저주를 내리고,
그나마 이정도로 괜찮은 이유는 헬맷에 있었습니다. 예전 곰마을에서 알리친다고 까불다가 머리로
착지한 후 마련한 헬맷은 스키장에서 저를 몇번이나 살려줬느지 이제는 하나하나 새기도 힘들 정도
입니다. 매 순간 순간 엄청난 충돌에서도 제 머리속 두부를 포근히 감싸 앉아준 헬맷에 감사를 하며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모두 헬맷을 사서 쓰세요~ 아마 어제 같은 상황에 헬맷이 없었다면 지금 이글
이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희한한 경험이내요. 하루가 사라지다니.. 머리속이 무슨 디스켓도 아니고 사고 후
포멧을 한 것처럼 전혀 기억이 없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