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저는 보드에 'ㅂ'자도 모르지요.
평생 보드 위에 딱 한번 올라가 봤는데
무섭고 어려웠단 기억만 남아있어서....
무언가에 매니아적으로 빠진다는게 뭔지 잘 몰랐어요.
이른바 '보드 타는 남자'를 만나면
공유할 수 없는 취미 때문에
사소한...그렇지만 사소하니까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연애를 시작하고
일년 가까이 흘렀을 때야 알았지요.^^;;
겨울이 되면 이 남자는 주말내내
보드장으로 갈려 갑니다-
주중에도 회사 끝나면 보드장에 가요.
운동도 따로 하고 운동 안하는 날엔
보드타러 가고, 주말에도 가고-
(난 이 사람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많이 서운했어요.
토요일 하루는 나랑 놀아주지...
어떻게 이틀내내 가 있냐-
제 일의 특성상 우린 주중엔 만나기가 힘들거든요.
여러 번 속상해서 삐지기도 했고
싫은 내색도 했어요.
그럼 이 남자 무지 서운해 해요.
똑소리 나는 논리로,
본인이 어떤 심정인지,
그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
그러니까 이해해줄 수 없냐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쏟아내요.
이 곳 커뮤니티에 그 동안 남자 친구가 쓴 글들을 보니
역시나...대단 하더라구요..-_-;;
그러니 제가 어찌 이기겠어요.
12월, 1월 한 주 씩 비워 함께 여행도 가고...
연휴엔 같이 시간 보내다 휘팍 보내고..
이 사람은 그게 최선이었을 거에요.
저는 그래도 아쉬웠지만요.
그러다 눈치 챈 것이 하나 있어요.
이 남자... 힘들어도 내색을 잘 안하는 사람이라는거.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밤을 새기도 하고 새벽 늦게 끝나는 일도 많았고..
특별히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느껴졌어요. 많이 힘들다는거.
함께 있는데 내 남자가 이렇게 불안정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태연한 목소리로 말해요.
아무렇지도 않은척-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게 속상해서..
그렇게 말 했더니,
" 그러니까 보드타러 가잖아." 하더군요.
그만큼 좋은가봐요. 보드가-
속마음을 잘 비치지 않고 거의 대부분 맞춰주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다정한걸 아는데.
딱 보드 타러 가는 일에 대해서만..
그토록 열정적으로-
서운하다.. 이해해달라 했던 거더라구요.
어젯밤에도 늦은 시간 퇴근하는 저를 기다리며 ,
스벅에서 동영상 편집을 하셨데요.
(지난 주에 난닝구 입고 보드타신 분!
그거 동영상 봤어요^^ 진짜 잼나더라구요~ ㅎㅎㅎㅎ)
휘팍에서 보드타고 신나게 달릴 때
이 사람 목소리가 살아있어요.
너무너무 신난게 느껴져요.
나는 그렇게 만들어줄 수 없을거 같아
사실 보드가 밉기도해요.
아니 미워요-
그래도.. 3월까지 눈이 안 녹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즌만큼은요.
우리 오빠가.. 좀 더 신나게 놀다와야 할 거 같아요.
난 그렇게 신나게 해줄 수가 없으니까.
이 글도... 보고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쓰고 있어요.
아마 나는 앞으로도 보드를 질투할 거에요.
'보드타는 남자'와 연애 시작한다는
여동생이 있다면 말릴거구요.
그치만 내 남자가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는데
그걸 풀어줄 수 있는게 보드 뿐이라면 고마워요.
신나게 놀다 오세요..^^
얌전하고 예쁘게 기다리고 있을께요.
3월까지 눈이..녹지 않을거에요.
전보드타는여자구
남친이랑 같이 탑니다
겨울시즌만큼은 안싸워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