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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십여 년 전이다.
내가 동영상 게시판으로 내려가 살 때다.
사진첩에 사진 올리고 동영상 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리기 위해
우선 파일들을 모아야 했다.
동영상 게시판 구석에 앉아서 동영상을 편집해 파는 노인이 있었다.
동영상을 올리려면 편집을 해야 해서 편집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3-4분 짜리 동영상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어태키튠(ATTACKEY TUNE)한테 가서 하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편집이나 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자르고 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과감하게 빨리 자르고 붙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디졸브를 넣어 보고, 페이드아웃을 시켜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콘트라스트를 만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동영상 빨리 올리고 싶으니 어서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동영상 게시판에 다른 영상들의 추천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효과를 더 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자르고 붙일 만큼 편집해야 영상이 되지, 오징어가 재촉한다고 그린데이즈처럼 나오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동영상 올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집어 넣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다른 사람들 추천수가 올라가고 있다니까."
노인은 갑자기 베가스를 멈추더니
"다른 데 가 편집하우. 난 안 하겠소."
하며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이번 동영상 페이지는 어차피 현득환 감독의 그린데이즈 영상이 이미 추천수 폭발이니,
될 대로 되라고 체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편집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어지고 늦어진다니까. 동영상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이펙트 주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편집하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더니 숫제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태연스럽게
유투브에서 음악을 찾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렌더링을 시작한다. 벌써 같은 영상만 스무 개가 넘었다.
저러다가는 똑같은 동영상으로 외장하드 하나가 가득 찰 것만 같다.
또 얼마 후에 렌더링이 끝난 동영상을 이리저리 앞뒤로 돌려가며 보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영상이다.
동영상 게시판 페이지를 놓치고 다음 페이지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편집을 해 가지고 뭐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완전 자기 마음대로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뻘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어딘지 모르게 헝글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에 같은 보더로서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에 USB를 꽂았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영상미가 훌륭하다고 야단이다.
집에서 무비메이커로 만든 영상들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동영상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한 장면이 너무 길면 영상을 보는 사람이 지루해 해서 중간에 나가 버릴 수가 있고, 추천이 없으며,
너무 지나친 인트로 효과들로 현란하면 주제가 돋보이지 않아서 역시 추천이 없을거라며, 이렇게 꼭 알맞은 영상은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스키장 정상 카페테리아에서 아메리카노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 헝그리보더에 접속하는 대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노인은 와 있지 않았다.
나는 헝그리보더 메인 화면에 멍하니 눈을 고정하고 앉아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을 사과 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자유게시판을 들어가 보았다.
닉네임으로 검색을 해서 노인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 그 노인은 이런 뻘글을 쓰며 지냈구나.
열심히 동영상 편집을 하다가 우연히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동영상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새롭게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남들 흉내 내기에 급급했던 내 영상들이 생각이 났다.
동영상을 편집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스마트폰 앱으로 다 되는 세상이니......
렌더링 오류가 났다고 울리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십여 년 전, 동영상 편집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득 Virtua dub이 생각 났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