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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이원을 갔었습니다.

 

시즌 첫 출격이라 당당하게 궁둥이로 엣지주며 내려왔습니다.

 

감 따위 이미 다 잃어버린 터라 봉산탈춤을 접목한 과한 업다운을 주며 아폴로를 내려오고있었습니다.

 

경사가 급해지고 속도가 붙자 입으로 '다운 업 다운 업'하던 박자감은

 

토턴을 완성한 직후 엇박자가 먹혔고 순리대로 데크엔 역엣지가 먹혔습니다.

 

속도가 있어서 그런지 몸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위로 뜨더군요-_-

 

뒤로 넘어가며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헬멧을 구매결정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다가 '아 나 돈 없지'하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아무리 고글을 쓰기위해 달고다니는 머리라도 보호를 해야했기에 최대한 배꼽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등으로 안전하게 착지했습니다.

 

여분의 장갑, 마스크, 전투보딩을 달래 줄 육포 등등 잡다한 것으로 채운 백팩 덕분에 안전하게 착지 후

 

작용-반작용인지 탄성인지 모를 뭔가의 빌어먹을 법칙 때문에 몸이 한 번 더 튕겨 위로 뜨더군요-_-

 

한바퀴 깔끔하게 돌고 후룸라이드마냥 데크로 눈을 쓸며 내려가다가 데크가 감자밭에 걸려 몸만 뒤로 반바퀴 더 돌고

 

어깨로 착지를 하며 시즌 첫 자빠링을 마쳤습니다.

 

고글, 비니에 마스크까지 어디론가 없어져 생에 첫 4단분리를 경험했습니다.

 

다행히 몸은 하나도 안 아프더군요-_- 아직까지 말짱합니다;;

 

저 난리 불루스를 춘데다가 그 날 하이원이 가습기 틀어 놓은 거 마냥 안개가 심해서

 

4년 째 입고 있는 단벌바지는 젖다 못해 물이 빠져 하얀색이 누렇게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첫출격인 데다 더구나 하이원! 신경끄고 신나게 타기만 했습니다.

 

 

 

셔틀 시간이 되어 터질듯 한 허벅지를 달래며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마운틴 탑은 무슨 사일런트힐 찍는 줄 알았는데 허브부터는 안개가 걷혀있더군요.

 

무튼 그렇게 내려와서

 

새벽같이 일어나 셔틀타고 오는 버스에서도 잠도 자지 않았던 터라 피곤한 마음에 보드복 그대로 버스를 타려했는데...

 

제 보드복하의는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얀색에 누런 물빠짐이 꼭 오줌 싼 거 같았거든요.

 

그것도 레모나 3개먹고 싼 듯한...

 

 

 

 

역시 옷을 갈아입어야 겠단 생각에 사물함을 열고 옷가방을 여니 아뿔싸!

 

첫보딩에 신나 보드복으로 갈아입고 청바지를 어따 팔아먹은 모양입니다. 눈앞이 노래졌습니다.

 

 

난생처음 셔틀을 타기위해 이글 저글 미리 예습을 했던 저는 작년 하이원의 '셔틀 버스 똥사건'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딴바지로 탔다가 버스에서 조금이라도 찌리한 냄새가 난다면...

 

행여 젖은 머리를 말리지 않은 분의 시큼한 스멜이라도 퍼진다면 제가 첫빠로 용의자가 될 것이고

 

소심해서 '짜장 한 그릇만 배달해 주세요'라는 말도 잘 못하는 저는 떨리는 눈동자로 말만 더듬다가

 

갓길 한 가운데에 버려지고 이딴바지로 히치하이킹도 못 하고 민가로 내려오던 굶주린 멧돼지에게 몸통박치기를 당할 것.

 

이라는 논리정연한 전개가 떠오르자 눈앞이 노래졌습니다.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에 사물함도 열어 놓은 채로 탈의실로 달려갔습니다.

 

탈의실엔 사람이 많아서 제가 뭘 어떻게 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빠지길 기다리며 제 바지를 눈으로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스키와 보드를 탈 생각에 즐겁게 옷을 갈아입던 사람들은

 

문 옆에 서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눈만 열심히 굴리는 저를 보고 당황하며 벽으로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하신 분들껜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변태취급 받는 것이 굷주린 멧돼지를 만나는 것 보단 나았으니까요.

 

 

몇 몇 분들이 빠지고나서 남은 바지 수와 남은 사람들 수를 맞춰 보았습니다.

 

다 맞추고 남은 청바지!!

 

6시간 넘게 주인을 떠다 따신 탈의실 바닥열로 뜨끈하게 뎁혀진 청바지!! 제 청바지 였습니다.

 

키가 클 것을 예상해 넉넉한 길이로 샀다가, 그러지 못 한 짧은 다리에 짓이겨 너덜너덜해진 밑단을 가진 제 청바지였습니다.

 

빤쓰바람으로 돌아다니다가 바지를 찾은 것 마냥 기쁜 저에게

 

왼쪽 앞주머니에서 사라진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두 장이야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사물함도 천원인데 따신 탈의실에 2천원이라면 거저라는 생각에 옷 갈아입고 맘편히 버스에 올랐습니다.

 

 

 

 

 

바지에서 2천원 가져가신 분~~

 

감사합니다. 꼬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정신머리 없이 바지 내팽겨 쳐 놓은 저는 그저 감사합니다.

 

2천원만 가져가지 않고

 

'너 엿 한 번 먹어봐라'하는 생각에 바지를 발-_-기발-_-기 찢어 놓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그 2천원만 보고 바지는 고이 접어 탈의실에 놔 둬 주신 덕분에 저는 무사히 첫 출격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걸 배웠어요!! 복 받으실거에요~~~♡

 

 

 

 

 

 

 

 

모두 안전보딩하시고 개인장비 확인 잘 하시고 남의 물건은 고대로 놔 둬 주세요~~

 

엮인글 :

Expo

2010.11.28 23:04:31
*.194.123.203

왠 지 훈훈해야 할 글이군요;

이박사

2010.11.28 23:06:52
*.229.47.226

ㅋㅋㅋㅋ 좀 약간 훈훈하네요 ㅋㅋ

 

이천원만 아니었다면 ㅋㅋ

만년대리.K

2010.11.28 23:09:29
*.234.221.18

재밌네요ㅋㅋ 분실물 글일거란 예상은 했었는대

4단분리 되었던 고글도 아니고 바지라니ㅎㅎ

아마티

2010.11.28 23:09:58
*.171.51.4

글을 재미있고 고급스럽게 잘 쓰신다..^^

소담

2010.11.28 23:13:33
*.240.66.145

우왕 다행입니다~


글 잼나게 읽고가요~ ^^


매드캡슐마켓

2010.11.28 23:17:31
*.37.133.81

다행이네요.. 근데 "발-_-기발-_-기" - 갈기갈기 아닌가요?

굴려라

2010.11.28 23:40:06
*.71.248.21

우와~~글 잘쓰신다^^ 잼있게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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