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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의 영웅

조회 수 3686 추천 수 2 2016.08.20 13:31:06


▲ 6ㆍ25전쟁 때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1957년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 세워졌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고지휘관에 걸맞은 판단력 갖춘 적 없었다

그는 수십만의 사병들과 수백만 민간인의 '생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고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영웅적 지휘관이란 호칭에 어울릴 법한 판단력을 갖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는 일본의 남방침략이 본격화되던 1941년께 극동군 사령관으로 군에 복귀했다. 맥아더는 이 때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현재 극동에 배치 해놓고 있는 병력의 절반만 가지고도 일본을 갖고 놀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맥아더와 미군은 일본군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맥아더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나는 지금 가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호주로 도망쳤다.


당시 극동지역 미군은 거의 대부분 필리핀에 집결해 있었음에도 맥아더는 일본군에 참패했던 것이다. 또한 태평양 지역 공군 전력의 대부분이 집결해있던 클라크 공군기지가 일본공군의 공격을 받아 반수 이상의 전투기가 날개 한 번 못 펴고 박살난 것도 그의 우유부단함 덕분이었다.
최고사령관의 무딘 예지력은 이로부터 10년도 채 안 돼 서울을 공황 상태에 빠트렸다. 상대를 가벼이 여기고 아군의 능력을 과장하는 그만의 비법이 한국전쟁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북한군의 38선 침범소식을 접한 그는 "미군 몇 명과 제1기갑사단만 보내면 북한인들은 만주까지 허겁지겁 도망치고 말 것"이라고 큰소리치면서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미군은 전쟁 초반 3개월 간 꽁무니에서 연기나도록 도망쳐야 했고 미군 병사들은 고향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 번의 크리스마스를 더 보내야 했다.


 

 

 

자기 뒷돈은 챙기면서 퇴직금 달라는 부하들에게는 발포

군사전략가로서의 능력이 떨어진 맥아더는 다른 훌륭한 덕목을 갖추고 있었을까? 부하를 자기 몸처럼 아낀다든지, 도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든지 하는 미담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비관적이다. 맥아더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는 성적으로 가학적 취미를 가졌다고 한다. 또한 필리핀 군사고문관 시절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케손 대통령에게서 50만 달러 정도의 뒷돈을 챙기는 등 금전적으로도 깨끗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1932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정부가 약속한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이른바 '보너스 행진')를 벌였을 때 "크렘린의 사주를 받은 붉은 무리를 향해 겨눠 총!"을 외쳤다. 발포 명령으로 퇴역 군인 2명이 살해된 이 시위 참여자들이 원한 것은 1000달러였다.


이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맥아더의 신기(神技)에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역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는 것일 게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5000분의 1 이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은 천우신조의 신화로 격상돼야 할 만큼 성공가능성도 거의 없었거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전은 아니었다.
인천은 상륙이 예견되던 항구 세 곳(원산, 군산, 인천) 가운데 하나였으며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미국 국방성이 SL-17이라 명명했던 '전쟁시나리오'에 상륙을 감행할 지역으로 이미 예정된 곳이었다.


북한 또한 인천에 대한 미군의 상륙작전 가능성을 우려했을 정도로 충분히 예상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마치 남한이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예측했음에도 개전 직후 몇 달간 허무하게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북한도 알면서 당한 측면이 많았다.
어떤 사기도박꾼을 그린 만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도박"이라고. 전쟁이나 도박이나 그런 점에서 비슷비슷하다. 다만 도박을 하려거든 자기 목숨 걸어놓고 하는 게 정상이고, 패가망신을 해도 저 한 몸 패가망신을 해야지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확전에 이르기까지 타인들의 삶과 목숨을 함부로 다뤘던 남한, 북한, 미국, 중국의 모든 '군사적 모험주의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맥아더는 그러한 군사적 모험주의자의 대표격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입니다. 현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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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본토로 진격해야 한다"... 동아시아 전면전 꿈꾼 맥아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개입의 진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극동 공산주의자들의 씨(그는 종종 공산주의자들을 '세균'과 동일시했다)를 말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가 특히 괘씸하게 여긴 곳은 신생 중국이었다. 북한의 남침을 "전쟁의 신이 늙은 나에게 선사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맥아더는 '떡본 김에 제사지내는' 격으로 예전의 중국본토 침략계획을 밀어붙이려 했다.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란 없으며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도래하게끔 만드는 능력일 것이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그와 같은 권능을 손아귀에 넣었고 이를 이용해 그의 인생 최후의 도박판을 벌였다. 동아시아, 아니 어쩌면 세계의 미래가 바뀔지도 모를 도박이었으며 판돈도 어마어마했다.


1950년 9월 29일, 워싱턴은 38선 돌파를 거듭 요구한 맥아더의 주장을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유엔군의 38선 돌파가 선제공격행위에 대한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조-중 국경선을 위협하는 행위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들었다.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반대와 상부의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맥아더의 공군은 만주상공을 수시로 침범했다.맥아더는 압록강 연안은 물론이고 중국 내부의 군사기지에 대한 공격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을 공공연하게 했고 이는 모택동과 워싱턴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 더 나아가 맥아더가 "장개석과 대만군을 이용해서 중국본토로 진격해야 한다"며 중국내전의 재개를 공공연히 주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참전은 '형제국가에 대한 의리'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도 적지 않다.
맥아더 후임으로 연합군사령관에 임명됐던 리지웨이는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이전부터 "모택동이 대만을 침공해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이 도박판에서 맥아더가 정말 상대하고 싶었던 것은 중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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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맥아더의 원자폭탄 공격이 실현되었다면

 

맥아더가 트루먼에 의해 해임된 사건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매우 애석해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모신 것도 그를 최영 장군, 남이 장군 또는 관우 장군처럼 큰 한을 품은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1951년에 트루먼이 맥아더의 주장대로 만주를 폭격했더라면 통일은 그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64년 맥아더가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는 추도 사설에서 한국통일의 절호의 찬스가 맥아더의 해임으로 유실되었다면서, 그의 주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다시 애달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1996년에는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러나 만주폭격의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원자폭탄의 사용을 전제로 한 맥아더의 만주폭격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즉각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일이었다. 더구나 맥아더는 당시 합동참모본부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목표지점으로 한두곳이 아니라 무려 26곳을 선정하여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도 1차로!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한 맥아더를 해임한 것은 한반도를 위해서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나 천만다행인 조치였다. 맥아더가 이렇게 강력한 주장을 한 것은 전쟁 수행과정에서의 자신의 판단착오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끊임없는 정보보고에도 불구하고 이북군의 공격 가능성을 무시했으며,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을 묵살하고 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단행했다. 더구나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중국군이 개입하자 미군은 미군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장진호 패배를 당하는 등 중국군에 크게 밀린 상황이었다.

 

맥아더는 1960년 자신이 원자폭탄의 사용을 주장했다는 트루먼의 주장은 완전한 허위라고 말했지만, 뒤에 간행된 회고록에서는 30∼50발의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계획했다고 기록했다.한반도의 북부를 코발트로 가득 채워 방사능 장벽을 친 다음, 만주의 주요 군사산업시설을 50여기의 원자폭탄으로 무자비하게 공습해야 한다는 맥아더만의 환상적인 전쟁 구상은 절정에 올랐다. 그 구상이 실현됐더라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는 향후 백년 이상 '생태학적 진공지대'가 될 운명이었다.

 

 

맥아더 해임은 실로 천만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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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국전쟁 당시 인천에 상륙하는맥아더. 그의 만주폭격 주장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맥아더 해임은 트루먼의 멍청함 때문 아니다


큰 도박꾼답게 몸집이 큰 상대를 원했던 것일까? 맥아더는 전쟁을 확대하고자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이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기 직전 상황까지 갔지만 미군이 쫓기듯 다시 후퇴하면서 일단 전장은 한반도로 국한되고 있었다.
워싱턴에서는 상황이 악화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조심스럽게 협상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순간 욕망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맥아더 특유의 착란현상이 일어난다. 이와 관련, 맥아더의 전기를 집필한 마이클 샬러는 "맥아더는 상상 속의 전투에서 이룬 승리를 거듭해서 발표했다"고 전장에서 종종 출현했던 그의 착란증상을 비꼬았다.


중국과의 전면전에 대한 갈망이 너무도 컸던 맥아더의 눈에는 자신의 상관이던 대통령의 존재도 하찮게 보였다. 그는 중국본토에 대한 군사작전계획, 국민당 군대의 참전 그리고 원자탄 사용 같은 극비 사항을 태연스럽게 기자들을 상대로 늘어놓았다. 군인이 목숨보다 중하게 여겨야 할 '군기'와 '보안'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셈이다.
워싱턴은 맥아더가 도무지 최고지휘관에 어울리는 판단력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해 그를 결국 해임했다. 그러나 일각의 주장과 달리 그의 해임은 트루먼의 '멍청함'에서 빚어진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너무 늦게 해임됐다.


스팬서

2016.08.20 19:46:27
*.212.156.197

맥아더는 중국 장개석과 모택동의 내전으로 다져진 중국인민해방군을 우습게 봤죠. 특히 장족들의 전투력은 훌륭했다고 합니다. 맥아더의 허세 가득한 중국 폭격위협으로 인해 한반도 통일이 무산된건 사실 입니다.
중국도 내치를 다질 시기라서 어지간 했으면 한국전쟁에 개입 안할려고 했을 겁니다.
38선에서 멈추고 다시 내실을 다지고 한국군을 잘 훈련시키고 병신같은 장군과 고급간부들 잘라내고
광복군들 등용시킨후 전쟁물자 풍족하게 대주면서 서서히 밀고 올라갔으면 1년안에 국군에 의해 통일 되었을거라 믿습니다.


주은래가 26만명의 대군을 북한국경선에 전진배치해놓고 유엔군에게 38선을 넘으면 개입하겠다고 계속 협박을 하면서
북한군에게는 허수아비처럼 패퇴해서 맥아더에게 미끼를 콱 물어서 북한 국경지역까지 오게 만들고 겨울에 역공해서
섬멸하자는 계획을 하달했습니다. 주은래는 똑똑했고 맥아더는 동계전투 준비도 없이 도망가는 북한군이 일부러
그러는줄도 모르고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다가 주은래의 지략에 KO 패 당한거죠.
맥아더 덕택에 중국군 개입에 대한 명분도 가지게 된거죠.

맥아더는 절대 지장도 덕장도 아닙니다. 군대쪽 다이아몬드 수저 집안 덕택에 ㅂ ㄱ 혜 처럼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한국전쟁때 거하게 말아드시고 내려온 사람인거죠.

그냥.....

2016.08.20 20:06:25
*.178.185.76

잘 모르던 역사를 많이 배웠네요.. 연평해전 영화처럼 인천상륙작전 영화에 언플이 좀 심하다 싶어 뭔가 구린네가 나는것 같았는데... 이렇게 미화된 역사가 사실인지 알았다니...

맨탈리스트

2016.08.21 06:50:27
*.224.114.2

맥아더.... 허세 가득한 정치군인이죠.

곰팅이™

2016.08.21 09:23:33
*.161.248.179

맥아더 집안이 금수저 집안은 맞죠....
예전부터 너무 미화된 감이 있어요..ㅎㅎ

王토야

2016.08.21 14:29:27
*.36.131.242

발암니슨ㅋㅋ

견공

2016.08.21 15:05:53
*.165.42.63

쩝..김씨 왕족 밑에서 강냉이 죽으로 연명하면서 스노보드는
커녕 포대자루 조차 탈 수 없을 뻔 했던 사람들을 구해
놓았더니 후손들은 거품이니 졸장이니 하면서 욕을 하네;;

이미 1차 대전 때부터 장군이었고 50세에는 미육군
최단기간으로 대장을 달며 참모총장이 된 사람입니다.
미국이 무능하더라도 비비기만 잘 하면 5성 장군까지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세요.

개개인이 역사에 대해 여러가지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수긍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받았던 이에 대해서 까지
이렇게 비난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일본군의 필리핀 침략 후에 아시아에 남아있던
연합국 중 어느 나라가 가장 늦게 까지 항전했는지..

왜 맥아더가 호주로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그 후에 태평양 전쟁에서 맥아더가 어떤 식으로 전쟁을
이끌었고 얼만큼의 교전비로 일본 본토로 가는 루트를
획득했는지..

중공군이 최초 1차 공세 때에는 18개 사단 26만 만으로
성공적인 전투를 치러냈지만 70만의 5차 공세 때는 왜
패퇴하고 한반도 적화통일을 포기했는지..를 먼저 좀
알아보셨으면 좋겠고..

맥아더가 제대로 사단간 전선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고
급히 북진한 것도, 중공이 팽덕회의 우려를 무시하고
남진하여 대패를 당한 것도 다 상대를 얕보고 서둘러
전쟁을 마무리 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년을 기다렸다
북진했으면 어땠을 거라는 둥 하는 얘긴 그냥 망상이죠.

중공군은 5차 공세 후, 3개 병단의 57개 사단 중 절반
이상인 30여개 사단이 괴멸 상태여서 연합군 지휘부가
결심을 했다면 단기간 내에 국경선까지 진격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내 여론이 너무 좋질 않았죠.
그래서 소련의 유럽침공이 우려된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휴전협상을 시작하게 된 거고요.

맥아더의 원자폭탄 얘긴 괜한 허언이 아닙니다. 전쟁을
길게 끌 수 없다는 걸 알고 태평양 전쟁 말기 이오지마
에서 고생했던 걸 원자폭탄 두 방으로 해결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글이 좀 두서가 없는데..좌우지간..

금수저라고, 정치에 더 관심이 많은 군인이었다고
맥아더가 5성 장군까지 된 거 아닙니다. 심지어 미국
역사에 두 명 뿐인 6성 장군에 추서될 뻔 했지만
스스로 거절했죠.

생각하고살자

2016.08.21 18:03:19
*.13.49.223

맥아더가 중공을 자극하여 중공을 불안에 떨게 안했다면
중공은 참전을 안했고 1 4 후퇴는 없고 통일이였죠.
맥아더의 계속된 중공 폭격 자극 때문에 중공은 결국 참전
결국 1 4 후퇴
결국 분단 되었죠.

그리고 이후
맥아더의 한반도 원자폭탄 1차에 26곳 투하가 결정되었다면
한반도는 생태학적 진공상태....
일본은 2곳 원자폭탄 투하에 어떻게 되었죠?
26곳에 원자탄이 투하되었다면? 그것도 1차에만 이라니...

견공

2016.08.21 23:42:40
*.165.42.63

비로긴은 그렇다쳐도 대화명은 본인한테 하는 말인지..참..
생각 좀 하고 사세요..

1.4 후퇴의 빌미를 마련한 급격한 전진은 분명 맥아더의
실책이 맞습니다. 하지만 1.4 후퇴 후에 바로 휴전됐나요?

지리한 공방전이 2년간 더 이어졌죠. 트루먼과 마샬의
휴전 결정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 때문이 아니고요.

물론 15000명의 미군 사상자를 낸 이유로 미국 내 반전
여론에 의한 것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생각님이 가정으로 얘기하니 저도 가정을 하자면 내전을
끝낸지 얼마 안된 신생국을 상대하는데 신중했을 미군
지휘관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분단의 원인을 마샬의 대만에 대한 지원 중단과
트루먼의 휴전 결정에서 찾지 못하고 엉뚱한 맥아더 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물질을 중공군 후방에 살포하여 퇴로와 보급을 막은 뒤
한반도 내에서 섬멸 후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몇 발
떨궈서 북경까지 진격하여 장개석을 중국 수장으로 앉히자는
주장을 했던 거죠. 한반도 땅덩이가 얼마나 된다고 원자폭탄을
26발이나 떨구나요;;; 잠깐만 생각해도 답 안나오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부산에서 다 죽을 뻔 한 거 살려 줬더니..
정말 너무 하네요..

트루먼 때문에 통일을 못했네. 미국이 잘못했네. 이러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는데 영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냥 보드나 열심히 타세요

생각하고 살랬죠?

2016.08.28 15:36:03
*.195.96.96

지리한 공방전 2년 ...맥아더의 멍청한 중공군 자극 1 4 후퇴 야기만 없었어도 없는 겁니다.

1 4 후퇴 자체만 없었으면 님이 투덜대는 그거 자체가 없었습니다.

맥아더는 정말 통일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테고...
중국과의 전면전을 원한 맥아더 때문에 통일은 물건너갔고 ,,,지리한 2년 얻었고...분단 얻었고....
그리고 원자탄 26발 덤으로 방사능 전멸 당할뻔했습니다. 그리고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물질을 중공군 후방에 살포하여 퇴로와 보급을 막은 뒤
한반도 내에서 섬멸 후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몇 발
떨궈서 북경까지 진격하여 장개석을 중국 수장으로 앉히자는
주장을 했던 거죠.> 라고요? 확실해요?출처가 어디요?

원자탄 1차만 26발요.
그리고 중공에 원자탄공격하는데 소련은 가만있는 답니까?
한반도로 진격이고 한반도 한복판이 세계 3차 대전이죠.
뭐요?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몇 발 떨궈서 북경까지 진격하여 장개석을 중국 수장으로 앉히자는? 참
생각좀 하고 삽시다

견공

2016.08.29 14:08:48
*.9.88.15

장개석// Weintraub, Stanley, MacArthur's War(A Touchstone Book, 2001)

중공군// 한국전쟁기 38선 북진과 냉전의 고착화, Office of the Assistant Chiefs of Staff, G-2, DA, “Indication of Enemy Intentions”(Sep. 25, 1950), 171/319, NA.

원자폭탄//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United States, 1950, VII: Korea(Washington, D.C.: USGPO, 1976)


이외에도 기타 논문 등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어디 블로그 같은 데서 긁어다가
생각없이 붙여놓고는 남한테는 근거 대라며 핏대
세우는 경우 없는 짓이 보기가 좋지는 않네요.

그리고 기왕 본문을 저리 작정하고 가방끈님 본인
아이디로 작성을 하셨으면 댓글도 본인 것으로
하시지 굳이 로그아웃 후에 댓글을 다셨는지..참..

가방끈님께서 생각하고 살라는 말을 남기셨으니
저도 한 마디 올리자면..

남의 블로그 글 긁어다가 확인도 안해보고 퍼뜨리고
그러지 마시고요. 최소한 문헌 하나라도 살펴
보시고 사실 관계를 본인이 직접 확인해 보신
후에 남의 생각이 아닌 본인 생각을 달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즌까지 이제 백일도 안남은 듯 한데 준비 잘
하시고요. 이후로 이 글에 대한 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건승하세요.

생각 왜 안할까

2016.09.01 18:22:27
*.99.238.212

근데 이상하네요.

그런데 왜 정작 멕아더의 조국인 미국에선 맥아더는 평가절하 되는 취급받는 군인일까요?

한국에선 영웅이고 동상도 있는데...한국에선 무속신까지 될 정도로 영웅인 맥아더가 한국에서의 그 명성에 비해

미국에서 어떤 취급받는지는 잘 아시죠? 왜 그럴까요? 미국 역사학계와 정치계 지식계가 잘 몰라서 그런걸까요?



고생하셧습니다.

근거랍시고 퍼온거,논문도 많다고요?

저런 임나일본부 주장하는, 동북공정 주장하는듯한 책들 말고요...

그거 아세요? 중국 사회과학원 가면 동북공정 논문 엄청 많은거...일본가면 임나일본부 논문 도 많아요.

일본서기 랑 광개토 대왕비 들이대며 " 봐라 증거 여기 있지 않냐"며 ,,, 임나일본부 사실이래요.

댁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맥아더는 수백년 전 사람이라서 오로지 기록을 찾아야만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백년도 안된 불과 두세대 전 사람이예요. 맥아더를 경험했던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을 정도로,.,,

맥아더에 관한 평가는 이미 옛날에 끝났어요. 이미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그에 대한 그를 증명할 것들은 그를 경험했던 사람들에 의해 이미 세상에 다 까발려 졌고...
그를 증명할 그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불과 백년 도 안된 최근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최근의 시대예요.
이승만을 영웅으로 재평가 하자 박정희를 영웅으로 재평가 하자며 떠드는 논문 과 역사책들,,,도 있어요.

그리고 님은

원자폭탄의 사용을 전제로 한 맥아더의 만주폭격 구상, 당시 합동참모본부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목표지점으로 한두곳이 아니라 무려 26곳을 선정하여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 그것도 1차로!

30∼50발의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계획.한반도의 북부를 코발트로 가득 채워 방사능 장벽을 친 다음, 만주의 주요 군사산업시설을 50여기의 원자폭탄으로 무자비하게 공습해야 한다는 맥아더만의 환상적인 전쟁 구상....이라는 이게 거짓말이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리고


<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물질을 중공군 후방에 살포하여 퇴로와 보급을 막은 뒤
한반도 내에서 섬멸 후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몇 발 떨궈서 북경까지 진격하여 장개석을 중국 수장으로 앉히자는
주장을 했던 거죠. 한반도 땅덩이가 얼마나 된다고 원자폭탄을 26발이나 떨구나요;;; 잠깐만 생각해도 답 안나오나;;;>



이게 사실이라는 거죠?

과연 누구말이 맞을까요?



미안한데요

본문은 어디 블로그 같은 데서 긁어다가 생각없이 붙여놓은게 아니고요.
한홍구 교수(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역사학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 석사, 서울대학교 국사학 학사) 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의 글입니다.

그리고

30∼50발의 원자탄을 투하 계획은요 회고록에 나온거예요.

그리고 님이 틀렸다는 ,,,맥아더를 증명해줄 근거는요. 미 국방부 보고서, 각종 공식 기록 문서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 보관소 에 가면 더 있어요.

한국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당시 맥아더가 묵인했다는것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 보관소 에서 나왔어요.



그리고

떨군다는 게 뭔가요? 뭐 그냥 북경땅에 얌전히 가져다 놓는 다는 건가요? ^^

전쟁중인데 설마 적국에 그럴리는 없겠죠?

그리고요...

태평양 전쟁 말기 이오지마에서 고생했던 걸 원자폭탄 두 방으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듯이....

원자탄을 북경에 몇발 떨어트리면 중공이 일본처럼 항복이라도 한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맥아더는 완전 멍청한 지휘관이군요. 소련이 가만있는답니까?,,,

이거 완전히 초등생 사탕빠는 소리죠?

님이 생각해도 그래요? 중공이 무조건 항복 하고 소련은 가만있고



어디서 임나일본부 주장하는 듯한 근거들로 동북공정 주장하는 듯한 소리 하지 마시고

최소한 문헌 하나라도 믿을만한 거 살펴 보시고 사실 관계 정확하다고 판단될 수있는 근거로 근거삼은신 후에
임나일본부 주장하는듯한 생각이 아닌

518때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 수백명 침투했었다는 듯한 소리 가 아닌 ,,,,

정확한 사실을 달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건승하죠.

생각은 어렵지않아

2016.09.03 15:16:03
*.88.56.230

덧붙여서

중공군이 최초 1차 공세 때에는 18개 사단 26만 만으로
성공적인 전투를 치러냈지만 70만의 5차 공세 때는 왜
패퇴하고 한반도 적화통일을 포기했는지..를 먼저 좀
알아보셨으면 좋겠고..



====중공군이 왜 남의 나라 전쟁 에 통일까지 해줘야 하죠?
남의 나라가 왜 남의 나라 통일까지 해주어야 하죠?
전쟁이란 철저히 자국의 국익때문에 하는 겁니다. 순수하게 도와주려 하는 참전은 없습니다.
모택동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의리때문에 625에 참전했는지 아십니까?
의리 때문에 참전하고 남 도와주려고 세계최강 국가를 상대로 자국의 젊은이들 피흘려가면서까지 남의 나라 를 위해 전쟁해주고 통일까지 해준다고요?
세상에 그런건 없습니다. 전쟁이란 철저히 자국의 이익 계산입니다.세상에 단순히 우방이라고 해서 의리때문에 남의 나라 통일까지 시켜줄려고 세계최강과 전쟁까지 해주고 통일까지 시켜주는 나라 그런나라가 있답니까?
그런나라는 없습니다. 중공군은 맥아더의 만주폭격에 대한 위협때문에 참전한거고 그로인해 얻은건 대한민국의 분단의 시초인 1 4 후퇴 입니다.



맥아더가 제대로 사단간 전선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고
급히 북진한 것도, 중공이 팽덕회의 우려를 무시하고
남진하여 대패를 당한 것도 다 상대를 얕보고 서둘러
전쟁을 마무리 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년을 기다렸다
북진했으면 어땠을 거라는 둥 하는 얘긴 그냥 망상이죠.

=== 장수의 능력은 승리 아니면 패배 입니다.
패배했으면 그것도 대패,,,,할말이 없는 겁니다. 승리자의 말은 옳은소리요. 패배자의 말은 그저 핑계 헛소리일 뿐입니다.




중공군은 5차 공세 후, 3개 병단의 57개 사단 중 절반
이상인 30여개 사단이 괴멸 상태여서 연합군 지휘부가
결심을 했다면 단기간 내에 국경선까지 진격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내 여론이 너무 좋질 않았죠.
그래서 소련의 유럽침공이 우려된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휴전협상을 시작하게 된 거고요.


=== 아 그럼 진격하지 왜 안했데요. 그럼 통일인데...
이제 와서 투덜댄들 무슨 소용이예요. 그저 패배자의 넋두리 일뿐입니다.
진격할 수 있을때 진격하고 승리자 되지 왜 안하고 이제 와서 넋두리 레요.
패배했으면 실행안해서 아무것도 얻은게 없으면 그저 실패자의 헛소리 넋두리 일뿐입니다.


한반도를 분단으로 이끈 원인인 중공군의 참전
종공이 남의 나라 전쟁에 왜 참전했나 그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님 말대로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물질을 중공군 후방에 살포하여 퇴로와 보급을 막은 뒤
한반도 내에서 섬멸 후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몇 발 떨궈서...>

라면 그럼 한반도에서 방사능은 어떻게 되며, 중국 본토에 원자탄 몇발 떨구면 어떻게 될까요?
중공은 일본처럼 항복, 소련은 구경만,, ?
그리고 2016년에 이땅의 후손들은 겨울에 보드타고 있을까요?

그래서 생각 좀 하고 살자는 겁니다.

o뒤꼽이o

2016.08.22 11:04:17
*.7.231.35

맥아더는 군에 몸담았지만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한 각도에서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도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수도 있다....라는 것을....
사실과 관점을 분별하여 읽어볼만한 글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가 우리에게 도움을 준 부분도, 정치적인 야망이 커서 실책한 부분도 다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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