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Lunatrix입니다.
헝글 토론방의 그물 팬스에 대한 글을 보다 보니 저희들은 안전을 포기하고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이런 안전에 대한 명확한 잣대를 가지지 못한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글을 써봅니다.
물론 명확하고 객관적인 잣대라는 것이 정해질 수는 없겠지요.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잣대가 다른 것과 아예 없는 것은 큰 차이이겠지요.
조잡하지만 제 글을 통해 우리가 스포츠를 즐길 때 어디까지 안전을 추구해야 하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 지에 대해, 즉 어떤 잣대를 들이대야 할지에 대해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래 내용의 대부분은 KSIA 웹사이트의 ‘은승표의 스포츠 메디슨 <스키 부상의 역사 -원초적 위험->’ 시리즈를 참고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래 링크의 원문을 보시면 더 쉽고 자세하고 재미있게 스포츠 안전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보실수 있습니다.
http://www.ksia.co.kr/builder/bbs/board.php?bo_table=kosmed&page=0
1. 원초적 위험
스포츠에서 원초적 위험이란 그 스포츠를 행할때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근본적인 위험을 말합니다.
스노보드라면 손목또는 머리 부상, 달리기라면 다리부상, 스쿠버라면 심한 경우 익사와 같은 위험들이죠.
비단 스포츠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생활 대부분이 이런 원초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걷거나 뛸때, 음식을 먹을때, 하다못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우리의 유기적인 신체는 이러한 위험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원초적 위험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안하면 됩니다.
보드를 안타면 머리나 손목을 다칠일이 없고 스쿠버는 땅에서 하면 익사할 일도 없습니다.
운전을 안하면 교통사고로 죽을 일이 없고 밖으로 안 나가면 다칠 일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집에 틀어박혀 누워만 있으면 됩니다.
심장마비나 협심증, 욕창이 걱정되신다면? 간단하죠.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됩니다.
말장난 같지만 그만큼 이런 원초적 위험은 상존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원초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로를 정비하고, 인도를 구분 하고, 태풍에 대비해 간판을 보수하고, 건강 검진을 하고, 공공시설에 자동 제세동기를 설치하고 교육을 통해 응급 상황에 대비합니다.
이렇게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다시 스포츠의 세계로 돌아와 보죠. 스포츠의 원초적 위험을 어떻게 줄일까요.
스포츠엔 이런 원초적 위험이 일상생활보다 훨씬 큽니다. 게다가 스포츠가 격렬할수록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 위험이 존재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위험들이 스스로 기꺼이 감내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겁니다.
스포츠 활동은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야구를 하기로 정했다면 그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데드볼이 맞기 싫으면 야구를 안 하면 됩니다. 반대로 야구를 하고 싶으면 데드볼은 각오를 해야 합니다.
스포츠가 위험하다고 해서 이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제한 사항을 두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제한 사항이 스포츠 활동의 핵심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즐기기 위해 선택한 스포츠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데드볼이 위험하니 타자 대신 방망이 휘두르는 기계를 새우고 타자는 버튼만 누르기로 합시다. 그게 과연 내가 하기로 한 야구일까요? (물론 그게 더 재미있는 사람도 있겠죠)
스포츠의 원초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원초적 위험 자체가 스포츠를 규정하는 한 부분이기에 깊은 이해가 없는 규제 일변도의 노력은 안전한 스포츠가 아니라 즐길 가치가 없는 스포츠, 스포츠가 아닌 스포츠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마치 아까 말한 것처럼 심장마비로 죽을 위험을 줄이려면 미리 죽어있으면 된다는 말장난 처럼요.
‘....어디 까지를 ‘원초적 위험’의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스포츠 의학’의 역할을 규정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결론을 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원초적 위험’을 잘 못 해석하여 건드리면 스포츠의 본질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권투 시합 중 얼굴을 많이 다친다고 해서 얼굴을 못 때리게 한다면, 마라톤 하다가 일 년에 몇 명씩 죽으니까 거리를 반으로 줄여버린다면, 이미 권투와 마라톤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학교 체력장 시간에 가끔 발생하는 돌연사 사고의 대책으로, 체육 시간을 줄이고 체력장 제도를 없애는 정책을 택한다면,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은승표의 스포츠 메디슨 <스키 부상의 역사 -원초적 위험- (1)>
물론 ‘즐길 가치가 있는 스포츠’에 대한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입니다.
버튼으로 즐기는 야구가 실제 야구보다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시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기준이 대중과 부합한다고 해서 남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풍조가 만연한다면 익스트림 스포츠, 그리고 새로운 스포츠의 태동은 먼 나라 이야기겠지요. 10여년전 보더에 대한 멸시, 작금의 게임 규제 역시 이런 비슷한 논리에서 출발하고 있죠.
단지 즐기는 방법이 다른 것을 ‘사회적 비용’이니 ‘중독’이니 ‘안전’이니 도덕적 명제를 들이대며 규제하려 하죠.
그런 논리는 밥 먹는 것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쌀밥의 유해성은 이미 충분하게 검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당장 내일부터 쌀밥을 못 먹게 되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2. 원초적 위험을 줄이는 방법
그렇다고 우리가 맨몸으로 세상아 덤벼라 할 수는 없겠죠. 데드볼을 얼굴로 받아낼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초적 위험이 스포츠의 본질 이라지만, 그 위험으로 인해 더 이상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늘상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비정하게도 그런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게 스포츠란 것도 알았습니다. 어째서? 바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안타면 됩니다. 안타면..)
그럼 이런 위험천만한 스포츠를 즐기기로 각오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대범한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그 위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면 각오도 할 수 없고 예방도 할 수가 없죠.
‘위험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
어떤 위험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를 알고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게 시작이자 끝입니다.
헬멧은 왜 쓰고 보호대는 왜 할까요. 남들이 하라니깐?
아닙니다. 머리 부상이라는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 위험을 내가 고스란히 감당할 것인지 예방할 것인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따라 어떤 방법(헬멧 착용)을 취할지 선택을 했기에 쓰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수록 그 위험은 예방 가능해 집니다. 당연히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위험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되죠.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은 스포츠 부상을 완전히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몰라서 다치는 억울한 부상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발달한 스포츠 의학은 과거에는 ‘원초적 위험’에 해당되었던 부상의 상당 부분을, 미리 잘 알고 대처만 하면 피할 수 있는 ‘인재(人災)’로 바꾸어 놓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의사들이 공부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할 과제이다...’
은승표의 스포츠 메디슨 <스키 부상의 역사 -원초적 위험- (1)>
그리고 그 알려진 위험에 대해서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역시 존중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전을 위한 거니까 ‘닥치고 해’ 또는 ‘하지마’는 스포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드를 탑니다. 누가 시켜서 타는거 아닙니다. 제가 즐거워서 시간과 돈과 체력을 들여 다칠 위험, 동상에 걸릴 위험을 감수하며 보드를 즐깁니다.
저는 킥커를 안탑니다. 누가 금지해서 안타는거 아닙니다. 제가 감당할만한 위험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재미있어 보이지만 타지 않습니다.
저처럼 킥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 킥커를 금지해도 될까요?
나중에 사람들이 보드가 위험하다고 금지하자고 하면 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스포츠 활동 자체가 선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스포츠 안전은 강압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소홀하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본인의 각오에 따른 선택에 제한들 두거나 금지를 하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며, 오히려 그러한 일괄적인 제제로 인해 개개인의 안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 형성을 방해하여 더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과정을 통해 충실히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관에 의존하여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결국 안 하는 것 보다 못 한 결과가 나오곤 한다. 이미 여러 종목에서 뼈 아픈 시행 착오를 겪은 바 있다. 예를 들자면 스키장에서 헬멧 착용 문제가 그렇다. 안전을 위하여 스키장에서 헬멧을 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이런 취지에서 스키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헬멧을 의무적으로 씌운다면, 두부 손상으로 인한 사망률이 떨어져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망자가 더 늘어난다. 왜 그럴까?....우리 주변에는 '상식'과 '실제 상황'간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안전 기구의 사용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 이유를 'false sense of security'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안전 불감증'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문제는 헬멧 착용 이후, 마음 가짐에서 발생한다.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빈도는 늘어나는 것이다. 마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고개도 못 들던 병사가, 철모 하나 씌워주자 혼자 '돌격 앞으로' 하는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까...안전을 위해서는 '하드웨어(헬멧)' 보다 '소프트웨어(마음가짐)'가 훨씬 더 중요하며, 기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은승표의 스포츠 메디슨 <스키 부상의 역사 -원초적 위험- (3)>
물론 안전이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름이 없죠.
이 중요도가 너무나 크다보니 ‘이게 더 안전하다’라는 핑계를 들이밀면 누구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게 돼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까짓 판때기 안타면 그만입니다. 그딴거 안타고 성실하게 (다치지 않고) 본업에 매진하는 게 소위 말하는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이겠지요.
하지만 스포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면, 원초적 위험이 결국 스포츠 활동의 본질 그 자체임을 인정한다면 안전이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게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안전이 중요하다면
정말로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남에게 알리세요. 무지한 동료와 친구들을 일깨워 주세요.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기로 선택했다면 더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세요.
하지만 강요는 하지 마세요.
서로의 차이를 안전이라는 도구로 비난하지 마세요.
그 화살은 너무나 쉽게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만...
‘...생각해보면 좀 웃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 나와 벌벌 떨면서, 안 올라가면 될 높은 산에 비싼 돈 내고 올라가고,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며 내려 오다가 다치고, 그것을 치료한다고 난리 치고, 예방한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은승표의 스포츠 메디슨 <스키 부상의 역사 -원초적 위험- (1)>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숨에 읽었습니다. 추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