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보더닷컴 이용안내]

2000년 1월초의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23살이던 저는 성우(현 웰리힐리 파크) 리조트에서 아침부터 리프트 종료를

 알리는 아리랑 음악이 나올때 까지 지치지 않고 보드를 타던 때였죠.


제가 몸담고 있던 PC통신 천리안 스노보드 동호회에

예비 대학생인 하얗고 작은 꼬맹이가 들어왔습니다.

웃을 때 양쪽 눈이 올라가고, 보조개가 이쁘고 생글생글 잘 웃던 아이었죠.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안지냈지만 나름 꾸민다고 머리에 블리치도 하고

언니 오빠들에게 어울리냐고 자랑하던 꼬맹이.

(혹시 당시 천보동 이었던 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니 이름을 가명으로 혜주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장비도 아버지와 함께 동대문까지 가서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혜주는 집이 염창동, 저는 목동

집도 가까워서 동네 막내 삼촌같은 인상의 아버지께서는 우리 딸아이 잘 가르쳐 달라고 한우 소고기도 사주셨죠.

그때부터 저는 불문율이 강습 = 한우가 되었던거 같아요.


제가 강습을 3일 정도 해줬는데, 처음 반나절에는 너무 넘어져서 몸이

아파도 벌떡벌떡 일어났고,,,,,,아픈 표정을 짓다가도 제가 손잡아 일으켜주면

누구보다도 예쁘게 웃던 아이었죠.


하루만에 팬듈럼을 하고, 이틀만에 베이직 턴을 하고, 삼일째 베이직 카빙을 하고,

5일 정도때 어설픈 알리도 하는 혜주(가명)가 왜그리 이뻐보였는지........


그러다가 제가 파크도 델고다니면서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셔틀을 타고 올때 제 어깨에 기대어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제가 파이프 시합 연습을 하느라.....Quick Selver 짝퉁 장갑이 다 헤졌는데

용돈을 아껴서 드롭 파이프 장갑을 사주고,

대학 오티도 안가고 제가 나갔던 협회 하프파이프 시합에는 항상 관전과

골판지로 플랭 카드를 만들어서 화이팅 해주던....

.........제가 에어를 하면 손을 활짝 펴고 팔짝팔짝 뛰면서 환호를 해줬지요.


3월 초가 되어 시즌 쫑파티때..........그 아이는처음으로 시즌방 사람들과 소주란 걸 먹어보고,

소주 다섯잔에 취해서 앵앵 거리는 모습에 철부지였던 저도 이성적으로 조금 흔들렸네요.

하얗고 쪼그만한게 앵두같은 입술을 뾰족거리면서 심통부리는 표정이 너무 이뻤거든요.


그리고, 다음날 그 아이의 아버지께서 직접 자가용 끌고 오셔서 시즌방 짐을

빼셨는데.....저도 그차에 타고 왔죠.


여주 정도까지 오다가 저와 그아이 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잠이 깨고 보니....그 아이가 제 팔짱을 끼고 잠을 자고 있더군요.

다소 당황해서 그 아이를 슬그머니 팔을 떼고 반대쪽으로 밀고있는데.........


"혜주(가명) 의 첫짝지가 자네가 될거 같구나. 허허~  사이좋게 지내라. 너무 늦지말고....."


아버지께서도 절 맘에 드셨나봅니다.

근데 전 한달 반후에 군대를 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혜주(가명)가 그것 때문에 요즘 좀 투정을 부리던데.....자네랑 좀 가까운 대학교 합격해서 좋아했던데,

근데 오빠야는 봄에 군대간다고......혜주 언니도 남자친구 군대 보내고 헤어져서 혜주가 불안한가봐."


아버님의 화이팅?후..........

대학생들이 플래널 스커트를 입기시작하는

계절이 되어 그 이후로 그 아이와 데이트를 종종 했습니다.

동네가 가까우니 일주일에 5일은 만난거 같아요.

그 아이의 언니,친구들과 제 친구들도 친해졌고.......

술게임에서 그 아이의 첫 뽀뽀도 제가 당첨 되었습니다.


벌칙이었지만 입술이 한번 포개어 지더니.....주위에서 막 화이팅 해줍니다.

근데, 몇주후 군대간다고 이야기 하면 다들 난색의 표정이 나옵니다.

아주 이쁘진 않아도 주위에서 이쁘고 사랑받고 귀하게 큰 착한 아이가 맞나 봅니다.

군대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절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옆에서 꼭 부둥켜 안습니다.


"오빤 내꼬야~~~기다릴 거야~!" 라고 다짐하는 듯이 말이죠.


벚꽃이 피고 질 무렵, 입대전날........

그녀와 마지막 데이트를 했습니다.

엄한 아버지 때문에 항상 집에는 열시까지 들어간다고......손잡고 자주 뛰던 그녀가....

동네 호프집에서 10시반이 되도록 제 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머리를 빡빡민 제 모습에 벌써 군바리 냄새가 날까봐 스스로 부끄러웠지만......

저는 그냥 동네 원빈 오빠 보듯이 생글생글 웃습니다.


"오빠....내일 입소하는데......혜주(가명) 이제 첫 중간고사 시작하겠네?"

생글생글 웃던 그 아이가 생글생글 웃는 그 모습으로 눈물이 주르륵 떨어집니다.

"아이 왜그래? 시험이 무서워? 괜찬아...오빠는 벌써 쌍권총 찼어..........."

그냥 폭 하고 안아주고 그녀는 저에게 다시 퐁당하고 안깁니다.

그 아이에게 두번째 이자 마지막의 뽀뽀를 해줬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바로 그 눈옆다가........달콤쌉싸름한 아기의 눈물맛에서

풋사랑의 아쉬움이 여실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손잡고 집에 데려다 주는데 아버님이 나와 계십니다.

아버님이 휴가 나오면 한우 사준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혜주(가명)을 뒤로 하고.......저는 다음날 입대를 하였습니다.


제가 자대배치를 받고 열심히 걸레질을 할때,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내용은 뻔하지만 편지의 끝에 립스틱으로 찍은 그 아이의 입술 도장이 있습니다.

첫 휴가 나오면 내 소중한 입술은 오빠야 거랍니다.


'그래...너도 화장을 하는 숙녀가 되어가는 구나......첫키스는 내가 가져갈게......'



하지만 첫 휴가때 그 아이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못만났습니다.

제가 전역을 6개월 정도 남겼을때 그 아이 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예감대로......그 녀석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었고, 거기서 멋진 남자친구를 만났던것 이었습니다.

어디서나 귀염받고 사랑받을 아이었으니까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쉬웠지만 저는 전역의 꿈에 부풀어 그렇게 맘이 아프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전역하고, 취직하고, 목동 김태희와 결혼하고, 딸하나 아들하나 낳고,

둘다 입학하고...............

엊그제 휘팍에서 야간 첫 슬로프를 타는데.........


페이스북 메세지가 왔습니다.


Jenny Shin : 혹시 예전에 천리안 스노보드의 개츠비님 맞으신가요?


개츠비 : 네. 맞습니다.


Jenny Shin : 오빠 잘지냈어요? 저 혜주(가명).......


개츠비 : 아........너무 반갑다....잘 지내니?




잠시후 장문의 문자가 왔습니다.




-------------------------------------------------------------------------------------------------------


Jenny Shin : 오빠야가 군대간 다음에 오빠를 기다리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어요.

제가 너무 못되었어요. 페북에 오빠가 그사람이 맞나 긴가민가 하다가....오빠 영문 이름이

딱 맞아서 찾게 되었어요. 저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온지 3년 되었어요.


오빠야.

사실 오빠 군대간다음에 몇달후에...오빠 친구인 성훈이 오빠의 친구랑 사귀게 되었어요.

성훈 오빠 친구도 멋졌지만 오빠만큼의 설레임과 풋풋함이 없어서 오래가지 않았어요.

3학년에 저는 유학가고 오빠는 전역했고.....영국에서 유학 마치고 미국안가고 오빠야 보러

오려고 했는데....싸이 보니까 오빤 이미 결혼을 준비하고 있더라구요.


우리 처음 만난게 성우 시즌방이었는데, 오빠랑 스노보드 타던때가 너무 좋았어요.

오빠가 꼬맹이라고 부르던 저는 아줌마는 안되었지만 며칠후면 마흔이네요.

근데 오빠야는 아저씨가 된 지금도 멋지네요. 와이프분 미인이에요. 질투나네요.

근데 애들도 이뻐서 안심이 되네요.  

스노보드 사업은 잘 되요?


저 오늘 아빠랑 휘팍에 왔다가 오빠야 지나가는거 봤어요.

저 지금 아버지랑 스키하우스 커피빈에서 있는데 아버지가 오빠야 보고싶어해요.

지금 잠깐 시간 되세요?

오랫만에 우리 셋이서 커피한잔 어때요?

안바쁘시면 뭘로 시켜놓을지 알려주세요.


----------------------------------------------------------------------------------------------------------------------------


저는 호크 상단에 있다가....

제 데크 테스트 할 경황도 없이 그냥 쐈습니다.

그 꼬맹이었던 혜주(가명)가 얼마나 컷을지.......

.훔치지 못한 그 입술은 아직도 앵두같을까?....아버님은 건강히 잘 계신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죠.


호크를 미칠듯이 활강하면서 이루어 지지 않았던 미련들이

상상속의 추억으로 승화되어 주마등 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끼어드는 검정색 패딩 초보를 피하려고

힐엣지를 빡 주었는데.......

설탕 온더 아이스반의 설질답게 새 데크인데도 엣지가 안먹히네요.


충돌하기 3미터 전까지  미끌어지다가 눈속의 아이스에 토엣지가 걸려 어깨로 고꾸라졌습니다.

와.......5미터의 파이프 벽에서 버텀으로 떨어진것보다 아프고 아직도 어깨가 칠십견

환자처럼 안올라갑니다. 허리도 아프네요.


 혹시 강서/양천구에 어깨/허리 치료 잘하는 병원 있을까요?

15분만 운전해도 미칠듯이 아픈데.......................



엮인글 :

GATSBY

2019.12.20 11:08:16
*.149.242.189

웰팍 다니다가 꽃보더들이 너무 눈부셔서 녹내장 방지차 휘팍으로 옮겼습니다.

강서,양천 구민 반갑습니다ㅎㅎㅎ

직진보딩

2019.12.23 11:26:53
*.111.239.39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조회 수
공지 [자유게시판 이용안내] [57] Rider 2017-03-14 41 178018
192103 여기저기 열심히 눈뿌리네여 [4] 생긋방긋 2019-12-03   962
192102 저도 지름인증~ file [34] 마시마로☆ 2019-12-03 61 1323
192101 뭔가 정리가될것같은데 아리송 아리송 [3] 레몽레인 2019-12-03 2 1144
192100 [위탁 훈련견 더치 훈련사에 의한 사망 사건] 국민청원에 힘을 보... [4] 뉘름값 2019-12-03 3 902
192099 12월 3일 화요일 출석부 [75] loveme 2019-12-03 10 242
192098 저의 붓아웃,,와이드 부츠의 결론 [4] 1_977318 2019-12-02   1502
192097 충돌사고가 났는데 가해자는 두바퀴 돌고 피해자는 멀쩡히 서있고 [25] 부자가될꺼야 2019-12-02 3 2814
192096 첫데크오피셜님 보세요(스텀패드관련) [2] 알파카빙 2019-12-02 5 958
192095 부츠 열성형 [2] 15호호 2019-12-02 1 572
192094 원래 예판은 이렇게나 기다려야 하나요? [15] a.k.aSai 2019-12-02 5 1323
192093 sk통신사 이신분들~ [6] 성빈. 2019-12-02   1522
192092 오투리조트 콘도 나눔 결과 file [32] 닭죽대왕 2019-12-02 40 1272
» 동호회에서 썸탔던 꽃보더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102] GATSBY 2019-12-02 28 4549
192090 대명 꿀이네요! file [27] 돈까스와김... 2019-12-02 11 2087
192089 드디어~~ file [5] 리틀 피플 2019-12-02 4 925
192088 이미겟님 보세요 [9] 라라이더 2019-12-02   865
192087 지름신고(AK457) file [14] 주봄파 2019-12-02 7 1470
192086 오늘 아침휘팍 file [10] 나링 2019-12-02 8 1522
192085 오늘 용평의 일몰 file [4] 용용 2019-12-02 5 947
192084 하이원에서 핸드폰 잃어버리신 분?? file [18] 리틀 피플 2019-12-02 15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