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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헝글대표 눈팅족 일카 입니다. (_ _)
어느덧 2014년이 왔네요.
이번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온도 내려가고... ^^
이제 정말 청량한 겨울향이 나는거 같아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거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저번에 이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써볼까 하는데요,
역시 이전글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글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그럼 오랜만에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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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무심코 생각없이 바라본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자글자글 주름지고 갈라진 두 손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언제부터 아버지의 손이 저렇게 까칠했었지?'
나도 모르게 그 손위에 내 손을 올려보았다.
내 손보다 작았다.
'언제 내 손은 이렇게 커졌지...'
까끌까끌한 감촉과 상반된 따뜻한 온기가
내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녀석, 갑자기 왜그래? 허허"
아버지가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보시며 되물었을때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간 교회에서
뜬금없이 내 눈물을 본 아버지는
당황스러워 하시는거 같았지만,
그래도 말 없이...
내 어깨를 감싸고 등을 두드려 주셨다.
그렇게
깨닫지 못한채로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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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정말 전원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깡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랐는데,
아마 그 당시에 우리 집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서 그랬던 듯 하다.
시골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우리는 온 동네 형, 누나들과 다 함께 어울려서
온 산을 탐험하고,
개울가에서 수영하면서 가재도 잡고,
인심좋은 아저씨네 사과밭의 사과로 주린배도 채우면서
그렇게 자랐었다.
그러다 해질녘이 되어
아이들이 하나, 둘
엄마가 저녁먹으러 가자고 부르러 오면
우리의 모임은 파해지곤 했는데,
나는 보통 마지막 아이의 엄마가 올때까지 같이 기다렸다가
그 아이가 집에 갈때 나도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늘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
가끔 1년에 3~4번 정도
예고 없이 아버지는 저 먼 서울에서 나를 보러 오셨다.
우리 마을은 굉장히 작은 마을이어서
입구에 들어오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키가 크시고 덩치도 좋은 아버지여서 그런지
나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있는 힘 껏!
정말 온힘을 다해!
아빠 - !
라고 외치며 달려가면,
아버지는 나를 번쩍 - ! 들어올려 목마를 태워주시고
손에 바리바리 싸든 선물을 주시며
우리아들 잘 있었냐고.
따뜻하게 물어보시곤 했었다.
그때 아버지의 품안에 있을때면
정말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이 하나 없는
가장 행복한 기분을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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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드디어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짐작으로 알 수 있는 것 이지만,
원래 운동을 하셨던 아버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 끝에 태권도장을 하나 차리셨는데
그게 조금 잘 되었던거 같다.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냥 미안하다고.
다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떨어져 지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친구들의 유행에 맞춰서
고가의 옷이나 신발 등을 갖고 싶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사 주셨고
나는 참 철없게도
집안 형편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그런점을 이용하다시피 가지고 싶은건 다 사달라고 한
생각없는 철부지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올라갈 무렵엔
사춘기가 조금 늦게 왔는지,
질풍노도의 시기가 왕성한 혈기들과 함께 찾아왔고
무의미한 반항과 길에 침뱉고 다니는 그런것이
그 당시엔 어이없게도 멋이라고 생각했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우리가 세상의 중심인 양 떠들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사고를 한번 친 적이 있다.
어쩌다보니 같이 운동하며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시내 뒷산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학교 녀석들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일로 우르르르 경찰서를 가게 되었고
당시의 친구 두놈과 함께
1인당 50만원 정도의 합의금을 물어주게 되었었다.
그때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떳떳하며
세상에서 가장 크신 그 모습이
나를 위해 작아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고.
속으로 찡- 한 무엇을 느꼈던 듯 하다.
아마 그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철이 든 듯 했고
그 이후로 큰 사고 없이 학창시절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아마.
알게 모르게, 아버지 마음에 대못을 박은적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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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내가 더 어렸을 적,
아버지가 시골의 할아버지 산소를 찾으시며
나를 데려가신 적이 있다.
살아 생전에 약주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며
돗자리와 조촐한 소주 한병에 오징어 한마리,
그렇게 나와 함께 산을 올라서
할아버지 산소를 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돗자리를 펴시자마자
갑자기
엉엉-
하시며 우셨다.
정말 펑펑...
우셨다.
아직은 어려서 무섭기도 하고
또 아버지가 그러시는 모습을 처음본 놀란 마음에
'아빠? 왜울어..? 울지마...'
라고 말했을때 아버지는
'아빠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 속을 너무 많이 썪여서...
그래서 우는거야...'
하셨다.
당시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이해가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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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갑자기 건강이 안좋아지셨다.
원래부터 고혈압이 좀 있으셨고,
뇌경색 초기 진단도 받으셨었는데
지금은 꾸준히 운동과 식이요법, 약도 꾸준히 드셔서
다시 많이 회복되신 듯 해서 참 다행이다.
아버지의 주름많고 거칠어진 손을 보며
내가 너무나 어리석게...
...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듯 하다.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온기.
아버지의 사랑.
언제까지나 영원히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주실것만 같았는데,
어느샌가 예전보다 작게보이는 어깨.
예전의 혈기왕성 하시던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워진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점점 불가항력으로...
내 곁에서 멀어지는거 같아 슬프고 눈물이 났다.
그와 반대로 나는 훌쩍 커 버렸다.
혼자 큰 것이 아닌데.
아버지가 그 강한손을 연약한 손으로 바꿔가며 키워주신 것인데.
차마 말로 하지 못한 힘든 시간들을 홀로 감당하시며
어디 말할 곳 하나 없이 희생하셨었는데...
나는 그동안 그걸 모르고.
그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 왔었던 듯 하다.
지금도 계속 야속하게 흐르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도 말이다.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은
무엇인가 더 중요한 것을 찾으며 흘러가고 있는 것 이겠지.
그 가운데서도
잃어버리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다시 찾고.
이젠 지켜보려 한다.
남자 녀석이라 낯뜨겁게 생각하며 그동안 별로 말하지 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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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한다고.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고.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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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전화로 이렇게 말씀드리면
술은 적당히 마셔라- 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오늘은 그냥 한번.
^^
퇴근길에 말씀드려 볼란다.
분명히 전화를 끊으시고.
한번 허허- 하고 웃으실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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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헝글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_)
바빠서 글은 자주 못 쓰고 있지만,
헝글은 모바일로 자주 눈팅하고 있는데요^^;
이게 저에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고, 활력소 로 다가오는거 같습니다.
그럼 남은 겨울도 모두
아무사고 없이 (요즘 주변에 부상자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ㅠㅠ) 안전하고 즐겁고.
또 행복하게 즐기실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다음에 또 기회 될때 돌아오겠습니다. ^^ 따뜻한 겨울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