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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다듬던 노인

조회 수 2748 추천 수 12 2016.03.08 17:13:46

벌써 사십여 년 전이다.


내가 동영상 게시판으로 내려가 살 때다.

사진첩에 사진 올리고 동영상 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리기 위해

우선 파일들을 모아야 했다.


동영상 게시판 구석에 앉아서 동영상을 편집해 파는 노인이 있었다.

동영상을 올리려면 편집을 해야 해서 편집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3-4분 짜리 동영상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어태키튠(ATTACKEY TUNE)한테 가서 하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편집이나 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자르고 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과감하게 빨리 자르고 붙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디졸브를 넣어 보고, 페이드아웃을 시켜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콘트라스트를 만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동영상 빨리 올리고 싶으니 어서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동영상 게시판에 다른 영상들의 추천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효과를 더 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자르고 붙일 만큼 편집해야 영상이 되지, 오징어가 재촉한다고 그린데이즈처럼 나오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동영상 올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집어 넣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다른 사람들 추천수가 올라가고 있다니까."


노인은 갑자기 베가스를 멈추더니


"다른 데 가 편집하우. 난 안 하겠소."


하며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이번 동영상 페이지는 어차피 현득환 감독의 그린데이즈 영상이 이미 추천수 폭발이니,

될 대로 되라고 체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편집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어지고 늦어진다니까. 동영상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이펙트 주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편집하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더니 숫제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태연스럽게 

유투브에서 음악을 찾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렌더링을 시작한다. 벌써 같은 영상만 스무 개가 넘었다.

저러다가는 똑같은 동영상으로 외장하드 하나가 가득 찰 것만 같다.


또 얼마 후에 렌더링이 끝난 동영상을 이리저리 앞뒤로 돌려가며 보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영상이다.


동영상 게시판 페이지를 놓치고 다음 페이지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편집을 해 가지고 뭐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완전 자기 마음대로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뻘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어딘지 모르게 헝글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에 같은 보더로서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에 USB를 꽂았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영상미가 훌륭하다고 야단이다.

집에서 무비메이커로 만든 영상들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동영상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한 장면이 너무 길면 영상을 보는 사람이 지루해 해서 중간에 나가 버릴 수가 있고, 추천이 없으며,

너무 지나친 인트로 효과들로 현란하면 주제가 돋보이지 않아서 역시 추천이 없을거라며, 이렇게 꼭 알맞은 영상은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스키장 정상 카페테리아에서 아메리카노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 헝그리보더에 접속하는 대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노인은 와 있지 않았다.

나는 헝그리보더 메인 화면에 멍하니 눈을 고정하고 앉아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을 사과 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자유게시판을 들어가 보았다.

닉네임으로 검색을 해서 노인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 그 노인은 이런 뻘글을 쓰며 지냈구나.

열심히 동영상 편집을 하다가 우연히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동영상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새롭게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남들 흉내 내기에 급급했던 내 영상들이 생각이 났다.

동영상을 편집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스마트폰 앱으로 다 되는 세상이니......

렌더링 오류가 났다고 울리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십여 년 전, 동영상 편집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IMG_5015-1.jpg


이 수많은 은성이 클론들을 어찌할까요.....  이제 누워도 환영이 보입니다............  -_-;;;;;




 




무도리

2016.03.08 17:20:00
*.62.213.75

뇐네들은 어디로 .....

clous

2016.03.08 17:34:35
*.12.157.100

어딘가에 있겠죠. ㅎㅎㅎ

돌연사

2016.03.08 17:21:06
*.83.140.166

저도 동영상 제작하는 방법 좀 나중에 돈 내고 배워야 겠어요..ㅠ

동영상 전혀 만질 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 동영상에 카페베네 엔딩송 깔아줄려다 5시간 넘게 걸림 ㅡㅡ


clous

2016.03.08 17:35:05
*.12.157.100

카페베넼ㅋㅋㅋㅋ   "꾸쥬 워 마 걸~~~"

호암

2016.03.08 17:24:58
*.108.40.136

필력 좋으십니다. 재밌게 읽고 갑니다

clous

2016.03.08 17:35:49
*.12.157.100

그냥 유치한 패러디 글인걸요... 과찬이십니다.  ^^;;

에메넴

2016.03.08 17:30:27
*.249.151.34

노안..

clous

2016.03.08 17:34:15
*.12.157.100

동안임! 훗~

에메넴

2016.03.08 17:38:18
*.249.151.34

동암과 주안의 그 어디쯤...

clous

2016.03.08 17:57:56
*.108.83.67

동암과 주안 사이는 간석역!

워니1,2호아빠

2016.03.08 17:32:09
*.101.115.253

쉬엄쉬엄 하세요

이러다 쓰러지시겠어요 ...

clous

2016.03.08 17:36:41
*.12.157.100

그래도 영상 속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꽤 흐뭇해요.  그러면서 옆에서 애들 시끄럽게 떠든다고 막 혼냄.  -_-;;;

므슈킴

2016.03.08 17:41:35
*.161.159.60

생각난김에 퇴계로에가서 스페어 하나 깍으러 가야겠습니다.

clous

2016.03.08 17:46:44
*.12.157.100

튼실한 놈으로 하나 장만하세요~~ ^^/

므슈킴

2016.03.08 17:48:26
*.161.159.60

이모빌라이져가 들어간놈으로다가 깍으려구요 ㅋㅋㅋ

가난한보더™

2016.03.08 17:52:39
*.209.50.2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

clous

2016.03.08 18:00:03
*.108.83.67

단어 몇 개 바꿨을 뿐인걸요. ㅎ

간지주세요

2016.03.08 17:53:14
*.33.181.122

방망이깍던 노인!!

clous

2016.03.08 18:01:22
*.108.83.67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요.
정말 오래 전이네요. ㄷㄷㄷ

꽃보더딸

2016.03.08 17:56:29
*.10.60.154

그 노인네를 데려오세요!!!!!

clous

2016.03.08 18:03:30
*.108.83.67

누구나 그렇게 노인네가 되어 가는거죠.
아버님도 나중엔 그런 동영상 장인이 되실겁니다. ㅋ

꽃보더딸

2016.03.08 18:05:43
*.10.60.154

네, 그래서 제가 핸디캠을 아직 구매 안하고 핸드폰으로 만족하고 있네요.

S6의 영상이 나름 괜찮은거 같아서 이걸로 2~3년 버텨 보려구요 ^^

clous

2016.03.08 18:12:29
*.108.83.67

작년까지 제가 만든 영상도 모두 전화기로 만든거예요.
이번 시즌에 액션캠이 처음으로 쓰였지만요.
전화기로도 충분합니다. ㅎ

꽃보더딸

2016.03.08 18:13:29
*.10.60.154

댓글속에 뭔지 모를 '내가 노인네가 되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ㅋㅋ

clous

2016.03.08 18:14:24
*.108.83.67

그렇게 된다니까요. ㅋㅋㅋ

꽃보더딸

2016.03.08 18:20:58
*.10.60.154

다음 시즌에 윤우 영상 부탁드릴께요. 꾸벅.. 넙쭉 ..

clous

2016.03.08 18:23:19
*.108.83.67

아빠의 사랑을 보여주셔야죠! ㅎ

꽃보더딸

2016.03.08 18:24:34
*.10.60.154

넵.. 다음 시즌엔 윤우도 멋진 영상으로 뵐께요. ==>다음 시즌 노인네 되는거 맞네요

clous

2016.03.08 18:32:32
*.108.83.67

미리 위로와 응원 드립니다. ㅎ

그믐별

2016.03.08 18:02:50
*.216.38.106

40년전이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clous

2016.03.08 18:06:05
*.108.83.67

국경을 넘어 아라싸로 밀수 다니던 시절!

mr.kim_

2016.03.08 18:05:09
*.34.177.82

ㅋㅋ역시국어선생님

clous

2016.03.08 18:13:34
*.108.83.67

뻘짓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을 뿐입니드~~ ㅎ

올시즌카빙정벅

2016.03.08 18:09:56
*.62.234.227

그런거 안 배우길 잘 했음

clous

2016.03.08 18:16:46
*.108.83.67

맞아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상만 봐도 충분한것을…

88꿈나무

2016.03.08 18:28:26
*.183.77.220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에 영상편집싸움터에서 프리미어프로랑 베가스랑 한판떠서 살아남은게 베가스인가요 ? 


(저도 뻘글)   


2005년경에 프리미어프로가 신기해서 조금 배웠는데 베가스를 하려니 사용법이 넘 차이나서 시작도 못하고 있네요.  


이젠 마냥 귀찮아서 그냥 맥북에 아이무비로 ~~~ 

clous

2016.03.08 18:32:00
*.108.83.67

맥에는 파이널컷이죠. 완전 죽여주던데요~ ㅎ

pepepo

2016.03.08 18:57:18
*.223.36.137

저 같이 장인정신 없는 놈을 반성하게 하는 글입니다.

clous

2016.03.08 19:02:06
*.108.83.67

천재가 아닌 이상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죠.
해마다 조금씩 세련되지는 작품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세요. ㅎ

밋러버

2016.03.08 19:45:39
*.36.131.82

어이쿠 정성이...ㄷㄷ
앞부분만 좀 쓰다 마실줄알았는데 (^o^)b

clous

2016.03.08 19:48:15
*.108.83.67

짧은 글이어서 다행이었답니다. ^^/

트럼펫터

2016.03.08 20:19:37
*.250.181.174

사십년 전 마징가 보려고 선반 위의 흑백 티비에 올라가 채널 돌리던 그 시절에 이미 베가스가 ㅋㅋㅋㅋㅋ


재밌으십니다...은성군을 위해 불철주야 ~


 제가 일주일에 한번씩 나팔 불어 올리면서 베가스를 돌리긴 하지만 ㅎㅎㅎ

애들 사진은 말 그대로 짜집기 실력으로 대충 낑겨넣기 권법으로 떼우고 있는 걸 노인장을 보며 반성해야겠습니다.


clous

2016.03.08 20:22:48
*.12.157.100

칠드런 오브 산체스 언제 들려주실건데요?  ㅎㅎㅎ

트럼펫터

2016.03.08 20:30:03
*.250.181.174



제가 한 사년전에 분 곡이 마침 있네요...

이것도 베가스로 편집을 한 건데...정말 다시 봐도 웃깁니다..시커먼 밤에 불고 혹시 경찰 달려올까봐 얼른 튀었습니다...

노인분의 정성스런 베가스와 비교할 때 말도 안되는 편집입니다. 그나마 유튜브에 같이 올렸는데 유튜브껀 저작권 어쩌고 해서 짤렸습니다.

척맨지오니 할아버지가 스스로 교본 만들어 따라불라고 해 놓고 따라불러서 올리니까 짜르는 건 뭔 심뽄지요 ㅋㅋㅋ


http://blog.naver.com/yeramfafa/30146609889


clous

2016.03.08 20:48:30
*.12.157.100

브라보~~~!!!  완전 멋져요!!!   


아. 지금 막 동영상 게시판에 은채 시즌 영상을 올려 놓았습니다. 

예전 동영상을 모를 때엔 저도 사진에 매달렸었는데,

생생한 동영상의 매력이 어느새 사진을 넘어섰어요.

파워카빙c

2016.03.08 21:18:13
*.46.45.199

와....글이 쑥 빨아 당기는....그런게 있어요.

clous

2016.03.08 21:21:59
*.12.157.100

원작이 너무 재미 있고,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거든요. 

파워카빙c

2016.03.08 21:24:19
*.46.45.199

교과서를 이렇게 재밌게 봤더라면 지금쯤 ...?국민핵교때 꿈 대통령...됐을려나요..ㅡㅡ;

얼러려

2016.03.09 08:09:04
*.62.3.28

아....잠간 베가스를 멈추며 에서 빵 터졌네요.....ㅋㅋㅋ

clous

2016.03.09 09:23:10
*.12.157.100

프리미어프로, 파이널컷도 후보였는데, 베가스가 발음도 그렇고 적절하다 싶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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