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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이 사건

조회 수 1637 추천 수 2 2013.04.07 17:16:46

 

미군의 참혹한 범죄들..

홍대 할머니 성폭행 사건, 윤금이씨 사건

조한일 기자

입력 2011-10-04 10:46:39 l 수정 2011-10-04 11:01:06

지난달 24일 동두천에서 발생한 미군의 10대 여학생 성폭행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언론상에 보도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미군 범죄는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히기 일쑤다.

지난해 발생한 미군범죄는 총 377건이며, 2007년 191건 2008년 183건 2009년 306건 등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지난해의 경우 377건의 사건 중 강간사건이 11건, 강도사건이 24건, 폭력사건이 154건에 달한다. 이 중 강도, 강간 등 흉악범죄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범행이 발생했는지 일반에 알려진 사건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간간히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사건의 실상을 보면 범죄의 참혹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60대 할머니 수차례나 성폭행하고도 \'고작\' 징역 4년

2007년 1월 14일 홍익대 인근에서 주한미군이 60대의 할머니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새벽 오전 5시 30분 미2사단 소속 제로니모 라미레즈(23) 이병은 마포구 동교동의 한 주택가에서 지나가던 이모(66) 할머니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린 후 인근 공터로 끌고 가 성폭행을 가했다.

라미네즈 이병은 40여분 동안 이 할머니를 인근 주택가 골목과 주차장, 건물 안 등으로 끌고 다니며 3차례나 연쇄 성폭행을 저질렀다.
라미네즈 이병은 인근 방범초소에서 근무하다 비명을 듣고 나온 의경에 발각됐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에게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하지만 한국 경찰은 그에 대한 조사를 바로 시작하지 못했다. 라미네즈 이병이 자신은 미군이라며 미국 정부대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결국 오후 3시에 미국 정부대표가 출석하고 나서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경찰은 다음날 오전 구속영장을 청구, 발부받아 라미네즈 이병은 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한달여 후 시작된 재판에서 라미네즈 이병은 자신이 가해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술에 취해 전반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한국 검찰은 그에게 7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2개월간의 치료를 요하는 중한 상해를 입었고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나이가 어리고 전과가 없으며 송별회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점 등을 고려한다며 \'불과

' 4년형을 선고했다.

고 윤금이씨 영정

ⓒ민중의소리

92년 윤금이씨 사건, '참혹성' 이루 말할 수 없어


미군의 흉악범죄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건은 1992년 발생한 케네스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이다. 사건의 참혹성과 재판과정에서의 불평등함이 알려지면서 미군범죄에 대한 대중적인 투쟁이 촉발되게 된 사건이다.



미군(美軍)케네스 이병(二兵)의 윤(尹)금이씨 살해사건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故 윤금이


사건 일시:1992년 10월 28일 새벽 사건

발생장소: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 1/7 16호 김성출씨 댁 안쪽 첫 번째 방

피해자:윤금이(여, 당시26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가해자:케네스 리 마클 3세(당시 20세,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




<<사건개요>>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된 채 발견됐다. .
28일 오후 4시 30분경 집주인 김성출씨가 피살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였다. 발견 당시 윤씨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온 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고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또한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게다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 하얀 합성세제 가루가 사체 온몸에 뿌려져 있는 상태였고 입에는 성냥개비가 한가득 물려있는 상태였다.
사건 발생 시간은 10월 28일 새벽 1시경으로 추정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나타났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윤금이 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여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한 후 자궁에 맥주병을 두 개나 넣고 콜라병까지 반쯤 넣었으며 항문에서 직장까지 우산을 찔러 넣고 입에는 성냥개비를 한 주먹 쑤셔 넣고 온 몸에 세제를 뿌려 증거를 인멸하는 등 차마 눈드고는 볼 수 없는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범행은 자궁 안에 들어있던 맥주병의 지문 감식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끔찍한 모습뿐만 아니라 재판과정의 한미간의 불평등성도 한국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윤금이씨의 처참한 시신 사진 ,

진이 끔찍하니 심장약하신분 클릭금지

http://blog.daum.net/schultz/16877460

< 사진 : 윤금이씨를 잔악하게 학살한 인두겁 악마 미군 케네스 마클 >

<<결과>>

사건이 발생하자 의정부 경찰서 강력계 형사1부에서는 현직 형사 40명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미군측에서도 군 수사대를 출동하여 한·미합동으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윤씨의 자궁 속에서(시체 부검 중)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공식사과와 범행을 저지른 미2사단 소속 케네스 이병의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으나 범인은 끝내 구속되지 않았다.한국은 케네스 이병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1994년 5월 17일에야 비로소 신병이 한국측에 인도되어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건 발생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1993년 4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12월 16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윤씨의 유족이 미정부로부터 7천1백만원의 배상금을 수령하여 이른바 민사절차가 마무리되었다는 이유로 15년으로 감형되었다.
피고인 케네스 이병은 다시 상고하였으나 1994년 4월 29일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기각되어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1994년 5월부터 천안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그러다 2006년 8월14일 가석방돼 미8군 헌병으로 인계된 뒤 이튿날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가석방은 형기의 2/3를 마쳐야 하며 재범의 우려가 없을 정도로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한 경우에만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케네스는 수감기간동안 교도관들에게 욕설을 하고 창을 깨뜨리고 소화기를 교도관에게 분사하고 공공 물건을 파괴하고 한국 공무원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난동을 부리는 등 가석방 조건에 해당되지 못했지만 한미행정협정 제22조에는 대한민국 법원이 선고한 구금형에 복역하고 있는 경우에도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정부는 이 요청에 대하여 호의적 고려를 하도록 되어 있어 케네스 이병의 미국으로 송환을 막을 수 없었다.
가석방 결정에 대한 법무부의 해명도 “형기의 90%가 지났고, 유족에게 거액? 을 배상해 합의를 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무부는 가석방 관련 심사 회의록 내용과 가석방 결정 심사위원 공개요구에 명단은 “공개 의무가 없다”며 밝히길 거부했다.


윤금이씨 살해미군 케네스 마클 의 호화 수감생활과 교도소안 난동


케네스 마클

미군 케네스가 교도소 내에서 난동과 행패를 일삼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케네스와 더프 리차드 씨는 ( 더프는 살인 미수범이다. 그는 1993년 12월 16일 경기도 파주군에 소재한 에드워드 기지 앞에서 택시 운전기사 한창열씨의 목을 뒤에서 칼로 찔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천안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천안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들이다 이들은 공동 모의하여 19995년 5월 5일 10시 30분경 교도소 외국인 수용 사동인 제5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 날은 어린이 날이었다. 미군들은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식사와 편지의 전달이 다음 날로 늦추어진다는 이유로 교도관들에게 욕설을 하였다. 케네스는 유리로 된 커피병을 집어들어 복도의 아크릴 창을 향하여 던져 창을 깨뜨렸다. 더프는 복도에 있던 분말 소화기 1개를 교도관 박성문과 송창호에게 분사하였다. 계속하여 케네스는 복도에 있는 분말 소화기를 집어서 교도관들을 향하여 분사하였다.
그들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파괴하고 한국 공무원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마클과 더프는 공무집행 방해, 공용물건 손상의 죄명으로 추가 기소되어 1995년 1월 15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케네스 마클은 수감기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요리도 해먹을 수 있는 특수 외국인 시설에서 호화로운 교도소 생활을 하였다. 이유는 국민감정상 케네스 이병의 형집행에 대해 한국이 형집행을 고집하자 미군은 기존시설에서는 케네스를 수감생활하게 할 수 없다고 요구하여 한국교정당국이 굴복한 특별 신설 호화 교도소였다.
케네스는 한국민과 한국정부가 SOFA 개정요구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옥중에서 인터넷으로 영자 신문에 한미행정협정, 소파개정운동을 반대하는 글을 올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케네스의 인터넷까지 사용하는 호화 수감생활에 대해 거센 항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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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이 사건 살해범, 가석방뒤 美로 출국

국민일보|입력2006.10.27 21:14



동두천 미군클럽 종업원 윤금이(당시 26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케네스 마클(34)이 지난 8월14일 가석방돼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27일 "법무부 확인 결과 마클이 8월14일 가석방돼 미8군 헌병으로 인계된 뒤 이튿날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마클의 형기 만료는 2008년 2월로,실제 복역기간은 13년6개월이다. 국내 수감자는 가석방시 형 종료일까지 법무부 감호를 받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적용을 받는 미군 범죄자는 가석방시 감호권한이 미국으로 넘어간다.

마클은 미 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이던 1992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시 미군 전용 클럽에서 윤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1993년 4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마클은 같은 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된 뒤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마클은 SOFA 규정에 따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 사건 발생 1년6개월만에 한국정부로 신병이 인도돼 1994년 5월17일 천안교도소에 수감됐다.

마클은 수감 중에도 교도소에서 난동을 부리고 영자지에 SOFA 개정 반대 기고문을 게재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그는 1995년 5월5일 어린이날이란 이유로 식사시간이 늦어졌다며 교도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유리병을 던져 복도 창문을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려 다음해 1월15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0년에는 영자지 독자투고란에 "한국 시민단체들에 떠밀려 논의되는 SOFA 개정은 웃기는 일" 이라고 기고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가석방은 수감자가 범죄를 충분히 뉘우치고 재범 우려가 없다는 사회적 동의가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수감생활 중 교도관에게 난동을 부리고 영자지에 SOFA 개정 반대글을 기고한 마클을 가석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금이씨 사건

1992년 10월28일 윤씨가 동두천 기지촌 자신의 집에서 마클 이등병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윤씨의 신체 특정부위에는 맥주병과 우산대가 꽂혀 있었고 입에서는 성냥개비 등이 발견됐다. 미군 범죄 중 가장 잔인한 성범죄로,기지촌 여성문제와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각성과 SOFA 개정 운동이 불붙는 계기가 됐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이 기사 주소 http://media.daum.net/v/20061027211407965




미국에서 한국 사람이 미국 20대 여성을 저렇게 죽였는데 유족에게 7000만원 배상한다고
무기징역형이 15년 형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겠는가? 절대로 없다.

반인륜적 악마적인 살인살해 신체파기와 같은 중범죄에 배상을 한다고
어떻게 어느나라에서 형이 무기에서 15년으로 줄어들 수 있는가.
그것도 1억도 안되는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에 말이다.

누가 이런 판결을 내렸는가. 누가!
그 15년 형마저도 또 그 배상금을 이유로 들어 가석방까지 해서 미리 풀어주다니
도대체 이 나라 법조인들은 우리 국민의 인권과 법정의를 지키기 위해 있는지

아니면 미국에 봉사하고 미군범죄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윤금이 씨는 너무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이 식당 저식당 이 집 저 집 떠돌며 설거지 부엌떼기를 하며 그렇게나 고생하며 자라났다.
그래도 그렇게나 어여쁘게 자라났다. 그리고 꽃다운 스물 여섯살에 행복한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립된 쪽방에서 악마같은 미군의 폭력에 몸부림을 치며 참혹한 고통속에 죽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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