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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vs 일제

조회 수 4090 추천 수 0 2011.02.22 13:06:42

 

1. 사동궁,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사동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동궁(寺洞宮)은 한성 중부 관훈동 196번지에 있던 궁으로 고종의 5남 의친왕의 사저이자 친왕부(親王府)이다.

의친왕의 다섯째 따님이시자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이해경 '여사께서 '나의 아버지 의친왕' 책에 소개한 사동궁의 사진입니다.  사동궁은 왼쪽편의 양관(洋館)(서양식 건물)이 대표적인 사동궁의 모습으로 알려져 왔습니다만 한개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개의 한옥이 어우러진 엄청난 권역의 궁이었습니다.

 

의친왕 하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의친왕의 사진을 한 장 보시겠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대한제국 육군부장 복장의 의친왕 모습입니다.  1906년경 사진입니다.

 

위치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이었고, 현재의 조계사가 있는 인근 권역이었습니다.

寺洞 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말로 하면 '절골' 인데 이는 절이 있는 동네라는 말이 됩니다.

즉, 현재의 인사동 거리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종로2가)에서 관훈동 136번지(안국동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인데 현 종로2가 시작되는 곳 바로 옆이 탑골공원입니다. 탑골공원도 사실 따지고보면 고려 흥복사터에 세조 임금때 원각사를 중건했던 곳이니 그 일대가 모두 절과 관련이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동궁의 '사동(寺洞)'과 '인사동(仁寺洞)'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한자까지도 똑같지요.

 

종로의 역사 자료를 보면 갑오개혁(1894)때 '관인방(寬仁坊)'에는 대사동계 = 원동(園洞), 대사동, 승동, 탑동, 철물교계 = 대사동, 승동, 탑동계 = 대사동, '견평동(堅坪洞)'에는 어물전계 =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이문동계 = 이문동의 지명이었던 것이 1914년 4월1일 경기도 고시 제7호로 방계명(坊契名)을 동(洞)으로 개칭하면서 寬仁坊의 『인(仁)』자(字)와 대사동(大寺洞)의 『사(寺)』자(字)를 조합해서 인사동(仁寺洞)이라 하였다 는 기록이 나옵니다.  [참조 : 종로구청 : 종로의 역사소개 내용]

 

즉, 사동궁은 사동 이라는 말이 핵심이죠. 즉, 절이 있는 곳입니다.

책에 보면 사동궁이 위치했던 곳을 현재의 조계사 큰 골목에서 지금의 수도약국까지 만여평의 집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현 인사동의 길목과도 붙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만여평이라고 하는 것은 별궁과 그 사동궁의 주변 집들(궁 바로 옆에 여러 의친왕의 후실과 그 자식들 및 상궁 및 일꾼들이 머무는 집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을 포함하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동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서문. 나는 왜 대한민국을 포기했는가
1장. 피맛골 대학살
2장. 역사 강간

 

 대한민국 사용후기/J.스콧 버거슨 지음

4년 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발칙한 한국학’의 저자가 새롭게 내놓은 책이다. 더욱 날카로워진 그의 시선은 한국 사회의 폐부를 여지없이 들쑤셔 놓는다. 저자에게 이제 한국은 ‘매트릭스’다 .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모르페우스가 네오에게 준 조그만 붉은 알약을 삼키는 것과 같았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마치 네오가 붉은 알약을 먹고 눈을 뜬 것처럼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면 제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매트릭스의 세계로 통하는 플러그가 꽂힌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한국은 ‘아주 이상한 곳’이며, “길거리에 나서면 매력이나 예의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운, 차갑고 야만적인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한국의 문제점들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천박함을 매우 정확하게 드러낸다.

 

특히 자신이 직접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조선 의친왕이 기거하던 사동궁은 2004년 9월,노무현 정부가 대한민국 전역에서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한 주가 지났을 무렵, 결국 문을 닫았다. 그리고 10개월여 후 갑자기 포클레인이 들이닥쳐서는 눈 깜박할 사이에 집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그 자리엔 주차장이 들어섰다.


이 건물의 주인이 의친왕(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서울시청 문화재과까지 찾아가 그 사실을 확인했다. 1923년도 서울 중심부 지도에 문제의 건물이 실제로 의친왕의 사동궁(궁궐의 별궁)이었음이 명시돼 있었던 것.
 
저자는 “어떻게 종로구청이 그런 역사적인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고작 주차장 따위를 지을 수 있느냐”고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 팀장과 두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한동안 책상 위에 펼쳐놓은 커다란 지도만 들여다봤다. 여직원 한 사람이 거의 들리 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게 영어로 대답했다. “It’s shame(부끄 러운 일이야).”


저자는 이어 “만약에 어느 일본 기업이 도원을 사들여 그 부지 에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했더라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그 건축적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라고 날카롭 게 지적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진입니다.

의친왕께서 머무시던 사동궁을 주차장으로 만든 것을 고발한 미국인 J.스콧 버거슨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동궁을 주차장으로 만들기위해 포크레인으로 무참히 파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래사진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조선의 궁궐 '사동궁'의 현재모습 입니다.>

 

조선궁궐을 깔아뭉개고 주차장을 만드는 KOREA, 참 단한 나라다.

 

이때의 종로구청장이 바로

그 유명한 용산참사때의 한나라당 구청장 김충용 이다.

 

 

 

                                            

 

2.죽동궁

미시클럽과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죽동궁

 

순조의 장녀 명온 공주가 기거하던 죽동궁은 현재 지금은 1층에 맥도널드, 지하에 ‘미시 클럽’이 자리한 14층짜리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버티고 있다),

 

 

2.수진궁

주차장과 스타벅스가 되버린 수진궁

 

수진궁은 조선 시대에, 칠궁(七宮) 가운데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사저였던 궁. 뒤에 어려서 죽은 대군, 왕자, 옹주, 후사가 없는 후궁의 제사를 지내는 궁이었다.

종로구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수진궁터는 또 다른 주차장과 또 다른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한국의 역사파괴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종로 피맛골 철거공사중 기와-장대석 조선유물 출토
  2004-01-24 23:17:33


 

종로 ‘피맛골’ 재개발 계속한다

강병기   동아일보  2004-01-26



서울 종로구 피맛골 재개발공사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속에 문화재 조사원 같은 사람이 문화재 로 추정되는 돌을 밟고 서있는 모습이 참 어이가 없다. 주위에 출입통제 라인도 않보이고 아무렇게나 밟고들 있는 저 모습...

국보1호가 아니면 마구 파괴해도 되는가 보다.


 

피맛골을 살려주세요
박주일기자  동아일보  2003-09-17

피맛골을 살려주세요

서민 애환 서린 '600년 역사' 흔적 없이 사라져 

스포츠한국 | 입력 2009.06.01 06:49 ■ 르포티지


사라지는 피맛골
열차집·신승관 등 월급쟁이들 추억 담겨
골목 곳곳엔 점포 이전 알리는 현수막 즐비
건물 매매·세입자 보상 등 문제 아직 남아


그러나 수년 전부터 피맛골의 풍경은 일변하기 시작했다. 뉴타운 등 서울시의 재개발 붐이 이곳에도 불어 닥친 때문이다. 처음 피맛골 재개발 논의가 불거질 당시 일각에서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서울의 역사를 파묻으려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실제로 2004년 1월 피맛골 공사 현장에서는 장대석 10여 점 등 유물이 대거 발견돼 피맛골 재개발 사업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공사를 중단시킨 후 주춧돌과 적심, 도자기 조각 등 유물을 발굴했다. 그러나 이후 이곳에서 잇달아 발생한 화재 사고는 피맛골 재개발 사업을 촉진했다. 문화 유적보다 안전상의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해 재개발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서울 한옥 절반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

정석 연구위원 “8910채 헐릴 예정…양옥 위주 건축법 고쳐야”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1동 용인안길 골목마을은 한때 예쁜 한옥마을로 이름난

곳이었다. 한옥에 모여사는 사람들이 골목길을 꽃길로 가꾸면서 ‘장미골목’이
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난 96년 서울시 푸른마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최근 재개발예정지구가 됐고, 한옥들도 사라질 참이다.

 

32년 한옥사는 맛에 푹 “멀쩡한걸 왜 헐라고…눈물나요”
‘재개발열풍’ 성북구 한옥가에 사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 피터 바돌로뮤가 6일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30년

넘게 자신이 손보며 가꿔온 한옥을 살펴보고 있다.

 

멀쩡한 한옥을 왜 헐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32년. 이젠 한국인조차 잘 살지 않는 한옥에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30년 넘게

 살았다. 그런데 그가 손보고 가꿔온 정든 한옥이 헐릴 위기에 빠졌다.

1996년 '서울시 푸른마을상'을 수상한 한옥마을인 동대문구 용두1동의 용일안길

은 재개발로 인해 와해되고 있다.

 


[사회]북촌 한옥마을 ‘일그러진 보존’

ㆍ가옥 상당수 외지인이 매입 2층집으로 개조 후 땅값 상승 혜택

가회동 31번지 원주민은 10%도 안돼
“한옥의 원형이 다 망가졌다”

 

 

 

문화재 쏟아지는데…서울은 막개발중
신청사·삼청동천 공사현장서 잇따라 발굴
전문가들 “4대문안 지표조사 의무화해야”

 

“서울시, 신청사 문화재 발굴터 보존해야”
문화재전문가들 지적
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 2일 오후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 신청사 건립터의 조선시대 유적지 발굴 현장에 석축·기둥자리 등 유적과 60여개의 철제 에이치(H)빔이 뒤섞여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한양의 매장 유물은 만신창이가 될 판이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서둘러 문화유적 지도 제작에 나서 보존지역과 개발지역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4대 문안 도심만이라도 문화재조사 의무화가 필요하다. 보존이 어려울 땐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불도저식 토목공사 리더십부터 바뀌어야 할 듯하다.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
 

굴착기에 의해 허물어지는 신라시대 산성

오마이뉴스 | 입력 2008.11.01


굴착기가 고모산성을 허물고 있다.
ⓒ 이만유
신라시대 고모산성 파괴, 문경시 "합법 절차에 의해 이뤄진 사업"


▲ 1530년 전에 정교하게 쌓은 성이 보이나 이 곳을 다 허문다고 함.


▲ 굴착기가 마구 허물고 있다.

 

지난해 신라시대 대형 지하목조건축물 발굴
"오래 된 성곽 복원은 사실 안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1500년 전 질감을 지금 전혀 살릴 수 없거든요.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고모산성이 굴착기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전반부가 이미 정비된 곳이고 파헤쳐진 부분이 이번에 추진하는 사업구간이다. 그 뒤로 옛 산성의 모습이 보인다.
ⓒ 이만유

 

이런 한국인들이

숭례문이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온갖 퍼포먼스에 난리를 친다.

 

참 골때리는 민족이다. 

 
숭례문을 추모하는 천제

뉴시스 | 기사입력 2008.03.29 23:30

【서울=뉴시스】
29일
숭례문 화재 49제를 맞아 숭례문 앞에서 열린 '숭례문 참 기원제'에서 백산소도의 천제제례
중 천지인 삼신께 고하는 우리의 소망을 담은 기원문 낭독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유지현기자

 

‘숭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2.13 17:21 | 최종수정 2008.02.18 14:01

[한겨레] 숭례문

이 불에 탔다.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70살 남자가 홧김에 저지른 불로, 지난 11일

새벽 숭례문은 5시간 만에 불에 타 무너져내렸다. '숭례문 화재'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졌다.

 

숭례문이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온갖 퍼포먼스에 난리를 치던

 

한국인들아 지금은 왜 가만히 있냐?

 

 

 

 

종로의 강남화는 빠른 속도로 지속되고 있다. 종로의 풍경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풍자적인 것은 까만 대리석으로 된 기념비 같은 안내판이 많다는 점인데, 그것들은 거기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간 역사적 건축물이 있던 자리임을 보여준다. 보신각 맞은편의 화신백화점(일제 강점기, 가장 크고 유명한 한국인 소유 백화점이었지만 얼마 전에 삼성에서 지은 거대한 유리 및 철골 구조의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인사동 북서쪽 모퉁이의 죽동궁(순조의 장녀 명온 공주가 기거하던 곳인데, 지금은 1층에 맥도널드, 지하에 ‘미시 클럽’이 자리한 14층짜리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버티고 있다),

종로구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수진궁터(또 다른 주차장과 또 다른 스타벅스가 들어섰다)에 이르기까지, 종로 거리 여기저기에는 이런 기념비 수백 개가 흩어져 있다. 볼 때마다 묘비명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다행히 크기가 별로 크지가 않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노상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다닌다. 멋있지도, 맛있지도 않은 역사 따위를 누가 거들떠본단 말인가?

 - <역사 공동묘지> 중에서 

 

"한국 사회는 가장 저질스러운 고등학교다."
"한국은 버릇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매트릭스다."
"서울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암매장 당한
역사의 공동묘지다."
"한국은 천박한 민족주의가 판치는 나라다. 21세기
에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똥을 쌀 수 있나 신기하다."
 
 
vs 일본제
혈세로 복원된 일본군장교관사가 문화재가 된다?
 

[인터뷰]이종태씨,

 

“조선궁궐은 부숴지고, 일본군 관사는 복원되고”

2011년 01월 10일 (월) 17:09:57 도기천 기자 dogichen@hanmail.net

[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일본군 관사 복원 논란은 <뉴스포스트>가 최초 보도했지만 이를 포털사이트 다음(daum) 아고라에 전파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이는 대화명 ‘줄루’를 사용하는 네티즌 이종태씨다. 이씨는 하루5천~7천명, 월20여만명이 다녀가는 파워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실력자다. IT업종에 종사하며 관련 정보를 게재해 지난해부터 줄곧 다음(daum) 우수블로그에 선정됐다. 이번에는 ‘일본군 관사’ 문제를 제기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이씨가 아고라에 올린 ‘혈세로 복원된 일본군장교관사가 문화재가 된다?’는 제목의 글과 사진은 ‘일본군 복원 관사’와 관련, 서울시, 문화재청, 마포구청, SH공사 등 관계기관에 질의한 내용과 해당기관들의 무성의한(?) 답변을 싣고 있다.

내용이 소개된 지 불과 5일만에 9만건에 육박하는 조회수와 800여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일본군관사 복원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일본군 관사는 복원되고 조선궁궐은 뽀사지고(대화명:플라잉타이거)’ 등 비슷한 류의 글들도 1만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연일 올라오고 있다. ‘일본군 관사는 복원되고...’는 조선시대 왕세자 의친왕이 머물렀던 사동궁(寺洞宮)이 재개발로 부서지는 장면을 어느 외국인이 촬영한 사진을 게재하면서 일본군 관사 복원을 비판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태워버려도 시원찮을텐데, 복원이라구? 아까운 자릿세나 차지하는 흉물을 30억이라고?(klf****)” “30억이라는 돈이 언제 어떻게 쓰였으며 현금흐름이 어떻게 흐렀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되어야 한다(ektha****)”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후손들에게나 혈세 좀 쓰시지... (custom****)” “일본군 관사는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수치스런 역사입니다!(hardawa****)” “쓰라린 고통과 치욕을 당하였던 우리 선조들 피눈물나게 하는 것이 문화재청이란 곳인가!!(lcj****)”등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2500여건의 추천 중 반대는 22건에 불과하다.

<뉴스포스트>를 직접 방문한 이씨는 “하루종일 관계기관들에 문의하며 전화통을 붙잡았지만 공무원들의 무성의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개인 신분으로 뭔가를 확인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기회가 된다면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라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누가 잘못한 것이지를 따져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일본군 관사가 복원된 것을 보면서 “재개발 등 대규모 기반공사를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리는 게 부지기수인데, 일본군 장교 관사는 공원 한복판에 잘 복원돼 있는 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며 “우리것도 제대로 못챙기는 마당에 일제 잔재인 군 관사를 문화재로 등록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복원 과정도 비공개로 진행돼 다 짓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며 진행 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제기했다.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폭발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욱’하는 심정에 글을 올렸는데 하루에만 2~3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서 보듯 일본에 대해 감정은 ‘현재진행형’이며, 그만큼 우리가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 뉴스 > 정치

단독공개/ 서울 한복판 ‘일본군 관사’ 복원

 

주민들 “매일 밤 일제 망령에 공포감이…”
2010년 12월 13일 (월) 15:00:05 도기천 기자 dogichen@hanmail.net

[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서울 시내 대규모 아파트단지 입구에 일제시대 ‘일본군 장교 관사 단지’가 복원돼 논란을 빚고 있다. 또 이 일본군 관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학교가 최근 개교해 둘 사이의 연관성을 두고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복원을 추진한 문화재청과 SH공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형국이다. 해당 지자체는 이곳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뉴스포스트>가 그 경위를 심층 취재했다.

맞은편엔 일본인학교…역사성·위치 둘러싸고 논란
석연찮은 복원과정…문화재청· SH공사 책임 전가

취재 결과, 복원된 관사는 1930년대 대동아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군의 장교숙소로 확인됐다.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파크아파트 10단지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며, 소위 중위급 장교숙소 1곳과 대위급 숙소 1곳 등 모두 2개동과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장교숙소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각종 도구와 살림살이가 그대로 복원돼 있으며 현관과 거실, 3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또 마당에는 우물과 두레박, 정원 등이 당시 모습대로 복원돼 있다. 또 관사 지붕을 따로 전시해, 당시 건축 자재, 설계 구조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뒀다. 동과 동 사이에는 방공호가 복원돼 당시 전쟁 상황의 긴장을 느끼게 한다.

   

1. 1930년대 만들어진 방공호를 일본군관사 앞에 복원했다.
2. 아파트 단지 통행로변에 복원된 일본군관사옆을 중고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3. 왼쪽이 소위중위급 관사, 오른쪽이 대위급 관사. 가운데는 당시 지붕 구조를 재현했다.
4. 일본군관사 건너편에 자리잡은 일본인 학교

엮인글 :

동풍낙엽.

2011.02.22 13:36:10
*.216.142.242

아.......스압.......나중에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

꽁꽁꽁

2011.02.22 13:41:34
*.139.129.129

아.. 정말 피가 꺼꾸로 솟네...

무적골퍼

2011.02.22 14:03:45
*.41.131.144

곧 죄값을 치를거에요.

Tom

2011.02.22 16:54:56
*.170.49.253

스콧 버거슨. 이 사람 쓴 글 읽어 보면 한국을 한국 사람 보다 더 잘 알고 있더군요.

훈~!~

2011.02.22 18:09:05
*.238.78.183

아이고....이런미친...

capsule

2011.02.22 21:23:34
*.205.186.216

뭐 하루이틀일이 아니죠;;;;;; 서울에 수돗물 흘리는 냇가부터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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