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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아닌 증거
 

 
최초 경찰조사에서 유서 저장시간 오전 5시 44분
CCTV속 노통과 경호원이 사저를 나선 시간은 5시 38분
유령이 유서작성?
 
이 사실이 보도 되고
네티즌들의 타살의혹과 CCTV 공개요구가 빗발치자
경찰은 CCTV를 공개,
그러나 날짜와 시간이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노통이 사저를 나선 시간을 47분 으로 수정해 최종수사결과 발표
 
그리고 한 때 변호사까지 하셨던
전 노무현 대통령께서 자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법적효력이 없는 컴퓨터문서에 유서를 적었을리가 있는가..
 
 
 
CCTV를 조작했다는..
 
첫번째 증거자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톨게이트 CCTV 원본 화면을 캡쳐하여 확대해 봤습니다.
 
1. 원본사진에 보면 톨게이트를 지나갈 때, 아무리 봐도
저것은 손으로 보입니다.
노대통령께서 얼마나 도움을 요청하고 싶으셨을까요..
 

 

 

 


 

 

 


 
2. 운전사 뒷좌석에 노무현 대통령이 쓰러져 계십니다.
얼마나 두렵고 아프셨을까요..
 
이 CCTV가 공개되었다가
곧바로 노통님의 피흘리는 손대신 경찰 봉으로 편집된 조작CCTV로 교체 되었습니다.
아래의 확대된 화면을 보면, 픽셀 크기가 다른 것이 보이죠?
경찰봉을 붙였다는 증거입니다.
 

 


 

 

 

 
3. 노무현 대통령님이 타신 승용차의 운전사와 外 한 사람입니다.
운전사는 흰색 옷을 입고 있고,
옆사람은 검은색 양복과 안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확대해 봤는데, 운전사의 실루엣으로 체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양산부산대병원 CCTV가 공개되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지도........
 

 


 

 

 

 

 
두번째 증거자료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
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
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
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 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
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
2009년 4월 19일 사진
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얘기..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사진9 (추가)
2009년 5월 10일 사진
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1) 사진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사진1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 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2) 사건 종료와 함께 공개된
CCTV속 마지막으로 사저를 나서는
노통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은 <회색 양복 상의>
그러나 경찰은 <점퍼>를 노통 투신증거물이라며 공개
 
 
3) 조선일보 하루 전날 미리 기사를 작성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사용된 추모 배너는
서거 전날인 2009년 5월 22일에 이미 제작 되어 있었다.(기사 또한 미리 제작)
 
-증거자료-
 

 

 

 
 
 
 
4) 추락한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 입힌 세영병원 그리고 진술번복
 
★ 1차진술- 진료과정 중 급격히 혈압이 떨어져 심폐소생 시행
★ 2차진술 - 처음 실려왔을 때 이미 호흡이 없는 의식불명 상태 바로 심폐소생 시행
 
2차진술이 사실이라면 생사가 갈릴 긴박한 시간에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며 엽기적인 고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1차 진술이 사실이라면 노통은 부영이 바위에서 투신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40m 높이에서 떨어지면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는 다발성 골절, 여러 장기의 파열, 동맥과 정맥 출형 등
급격한 쇼크로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5) 40m암벽에 투신했다는 분이
왜 각목으로 맞을 때 흔히 생긴다는
머리 꼭대기 부분의 11cm 상처가 있을까?


만약 일부러 머리를 아래쪽으로 하여 투신하였다고 해도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났으며 즉사 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 쇠파이프 등을 휘두를 때 노리는 곳..
 
 
6) 노통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것이 사실이라면
40m 절벽 아래 착지지점은 피칠갑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엉이 바위 아래서 발견된 혈흔은
<코피한방울>이 전부
즉, 부엉이 바위는 노통의 사망장소라 할 수 없다.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노통을 발견했다는 경호원의 진술은 거짓이다.
 
 
7)경호관의 거짓진술
경찰조사를 마친후, 이경호관은 정토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물으면
정토원에 들른적 없다고 진술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뉴스를 mbc가 보도를 하자
경찰은 재조사를 했다며 당초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조사결과를 다시 발표
 
노통 투신하는 뒷모습 목격했다→
정토원에 심부름 갔다오니 없었고 그 사이 투신한 것 같다→
정토원에.. 가지 않았다→
정토원에 혼자 2번 갔다(노통 심부름 1회, 노통 찾으러 1회)
 
목격자(정토원장)의 진술과 일치하는 이경호관의 새로운 알리바이가 다시 발표된 것이다.
 
 
8) 경호관이 거짓말을 한 이유가
충격, 흥분, 죄책감, 문책이 두려워서라고 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분이 죽었는데
문책이 두려웠다..?
 뭐..경호원이 직업의식도 없는 나쁜놈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놈이 엄청난 돈을 받고 노통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충분한거 아닌가?
 
충격, 흥분, 죄책감 상태에서도 목격자를 매수할 정신은 있었나 보지?
죄책감이 들었다면
경호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가 죄인이니 나를 벌해주시오, 라고 말하는게 정상 아닌가?
 
 
9) 또다른 목격자 정토원보살..
<경호원 혼자 왔을리 없는데.. 하고 밖을 내다 보니, 노통이 아래쪽으로 급히 내려가고 있었다>
경호원이 정토원 2회 방문(노통 심부름1회,노통찾으러 1회) 했다고 했으니 둘 중 하나다.
노통 심부름 갔을 때 목격된 걸까?
그건 아니다,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럼 경호원이 노통을 찾아 해메던 시간에 목격 됐다는 건데
이것도 말도 안되는게 투신 후에 홀로 죽어 가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호원과 정토원보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누구일까..?
 
 
10) 확실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수사했다면..
목격자 하나씩 나올 때마다 수차례 번복될 이유가 없다.
 
경찰은 수사의 헛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타살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에게
단순한 추측, 음해성 의혹을 사실인 양 확대 포장해 유포하지 말라고 충고 했다.
대한민국 경찰에겐 위의 사실들이 정말로 단순한 추축, 음해성 의혹인가?


사건 당일 현장조사를 하면서 증거물인
노통의 상의는 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건가?
현장에 있는 증거물을 마음데로 옮겨서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나라 경찰의 현장감식 방법인가?
 
유일하게 투신을 목격했다던
경호원의 진술이 거짓임이 들어났으니
누구도 투신 하는걸 본적 없고 목격자, 경호원 진술도 엇갈리고
수많은 증거 또한 자살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는데
법적 효력도 없는 컴퓨터 유서 하나를 내세워
수사 3시간만에 자살로 결론 내야 할 사정이라도 있나?
 
살해된 노통을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
공권력 까지 동원해 조직적 은폐를 지시할 수 있는 권력자가 살인범인 것이다.
 
 
 
<<사건의 전말>>
 
"처음 계획은 노통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버리는 것이었지"
 
하지만 부엉이 바위는 산책로가 아니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노통은 잘 가지 않았지 굉장히 위험한 곳이니까..
하지만 넌 노통을 부엉이 바위로 어떻게든 유인하려 했겠지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살아요? 라고 물으며 전망이 보고 싶다고 말했니?
니가 최초 경찰조사에서 노통이 투신하기 전에 했던 그말은
노통이 한게 아니라 경호원 니가 한거야..
노통은 봉하마을에 찾아오는 국민들에게 부엉이 바위에 대해 설명해 주시곤했지
파견 된지 하루 밖에 안된 너에게 부엉이바위에 대해 물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니가 부엉이 바위로 유인하려고 수작을 부린순간
노통은 위험을 직감하셨을꺼야
그래서 널 따돌리고 약 200m 앞에 있는 정토원으로 달아나신거지
너에게 심부름을 시켰겠지.. 노통의 심부름을 거부 할수 없던 너는
자연스럽게 행동해 노통이 시킨 무언가를 하러가다 아차 싶어 뒤돌아보니
노통이 정토원 방향으로 급히 도망치고 있었니?
운동으로 단련된 니가 가까이 따라붙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노통은 정토원 어딘가에 급히 몸을 숨겼고..
뒤따라 정토원에 들어선 너는 곧바로 정토원장과 마주쳤지 
 
정토원장은
니눈에서 무엇이 느껴졌길래 첫인사가 <무슨일 있으십니까?> 였을까?
너는 <네,대통령이 오셨습니다> 가 아닌 <아무것도 아닙니다>로 얼버무렸지
뭔가.. 나쁜 짓을할 때
<너 뭐하니?> 라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지
넌 무언가를 정토원에게 들킨거야!
그래서 니가 정토원에 간 사실을
경찰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정토원장에게 부탁해야만 했던 것이지
니가 대화하는 사이
노통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부엉이 바위 산 아래쪽으로 도망친거지
이 때 노통은 정토원 보살님께 목격되신 걸테고..
노통을 찾아내지 못한 너는
노통의 사저에 있던 유서를 맡았던 또다른 경호원에서 연락을 하지
모든 경호원이 들을 수 있는 무전이 아닌 휴대전화로..
처음부터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곧바로 한놈 한테만 전화할 이유가 없잖아?
경호할 분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조치였다고?
그럼 애당초 2인1조 경호원칙은 왜 어겼으며,
정토원 심부름 갈 땐 왜 노통을 혼자 두고 사라진거니?
<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통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 들어간거야!
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 또 한번은 놓쳤다는 전화를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컴퓨터를 끄지도 못한채 나와 버렸지
통화 내용에는 <놓쳤다..보이지 않는다>
노통이 무슨 범죄자니?
너는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
노통살해를 모의한 놈은 세놈이었어
산 아래로 도망치던 노통이 <산아래 어딘가에 다른놈>과 마주쳤던 거야
봉화산 정상에 있는 정토원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리지
니 몸이 두개가 아닌 이상 그시간에 니가 있다는 건 말이 안되거든..
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놈은 부엉이 바위 근처에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
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
쓰러진 노통의 등산화를 양쪽다 벗겼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
노통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겼니?
투신할 때 상의가 벗겨졌다구?
번지점프를 할 때 일부러 양팔을 한껏 벌려도 상의는 벗겨지는 법이 없지
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언론장악 밖에 길이 없었겠지!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너무 많아 단속할 수 있는 시간도 여건도 불가능 했던거야!
 

 
 
아직도 이사실을 알리시기 위해
이 추운날 증거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며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쉽게 묻혀지면 안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쭉빵
쭉빵잉다님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http://blog.naver.com/zlemr2000/10006762264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이렇게 의문이 많은데 3시간만에 자살로 판결하다니
말이 되질 않습니다.
 
 
-위 글은, NATE에서 퍼왔음을 알려드립니다 -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
독립운동가 노응규의 후손이며,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출생, 판사로 1년 남짓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조세 분야의 변호사로 활동 하던 중 ‘인권 변호사’가 되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통일민주당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부산과 서울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으나
민자당의 3당 합당에 반대하여 탈당하고 통추를 결성했다.
국민의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 후 국민경선제에서 ‘노풍’을 일으키며
여당 후보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이듬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을 사실상 주도하였다.
그는 정치계에 몸담는 중 영호남의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어
한국의 기존 정치집단과 충돌했고,
언론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언론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아
비주류로서의 순탄치 못한 파란많은 정치 역정의 길을 걸어야 했다.
취임 후 인권을 크게 향상시켰고 탈(脫)권위를 주장하며
권력기관 독립과 토론회에 참여하는 등 ‘대화와 토론’을 강조했다.
2004년 공선법 중립의무 및 헌법위반으로
국회로부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탄핵 소추를 당해 권한이 정지되었다.
당시 16대 국회에 탄핵을 주도했던 주류정당들은 여론역풍에 휩싸였고,
얼마 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하여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
그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청문회 스타 자리에 올랐으나 임기 중에는 그의 화법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국토균형발전을 강조하면서 행정수도이전을 계획하고, 행정도시인 세종시를 추진하였다.
이 외에 한미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퇴임 후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본산리의 봉하 마을로 귀향했다.
그러나 2009년 검찰의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 수사가 전방위 확대되면서
노무현의 측근세력들을 중점으로 시작해서 가족이 금전을 수수한 건으로 인하여
‘포괄적 뇌물죄 공범’ 혐의를 받고 수사를 받게 되었고, 검찰 소환 조사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5월 23일 자택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여 충격을 주었다.
서거후 일주일동안 전국에서 400만명의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영결식에는 추모 인파가 몰려 서울특별시청부터 서울역까지를 메웠다.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나의 소견
- 아래는 저의 추측성 글임을 밝힙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으로
 
세계의
어느 나라(미국,일본)가 피해를 보았고,
 
국내의
어느 세력과 어느 집단, 어느 언론이 피해를 보았을까요..?
(개.교/숭.파/친.파/조..보/극.수/검./군./경.계/공.원/경.도/비리세력)
 
-결론-
어느 집단의
(미국을 사랑하고 일본에게 충성하는 집단)
주도로 이루어진
과잉 충성의 강박심에 의한 미필적 고의로 일어난 포괄적·의도적 살인이라 여겨집니다.
 
자살은 절대로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일사천리로 맞물려 돌아가는 그 기이함과 쾌속함은
한반도에 가득 드리운 습기 머금은 안개의 무거운 침묵속에 가라앉아
교묘히 진실을 숨기고 있을거라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천안함사건도
이러함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졌다 보아도 무방할 것이며,
 
한반도에서의 절대 기득을 위한 몸부림으로
핵심 파워세력의 각계 각층의 공범들이 합세하여
음지에서 집행한 잔인한 정치 보복의 처형으로 보아야 하며,

몰이식으로 몰아가는 여론의 형태를 세밀하게 측정하면서
대중에게 보여질 전직 대통령의 드러난 죽음이
그 다다름이 가장 극적으로 비참해질 때 행해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 보복성 단죄로 보여집니다.
 
이는, 강대국 입김에 휘둘리는
참혹한 대한민국 현실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비극으로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와 한반도평화(위선천국)를 실현하려는
그들의 목적은 한가지일터
결국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하여 장님으로 만들거나 귀머거리로 만들고
입을 막아 시간적 흐름의 자연한 공범으로 동참시키고
손과 발을 묶어 시위의 정당성을 유린하여 절름발이 떼쟁이로 만들고
생각할 사고를 제한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리라..
 
국가경쟁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수 있는한 최대로 국고를 낭비(4대강사업 등등)하고
할 수 있는한 최대로 세금을 도둑질하여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이나라 국민들을 더더욱 특정국가나 특정계층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도둑질한 국민의 혈세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세력간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조성하여
절대적(귀족정치)인 포트폴리오를 실현하여
한반도 새질서(뉴라이트-신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이 주도하는
한반도 지배세력 장기집권의 절대적 기반을 조성한다겠죠..


엮인글 :

ㄹㄹ

2011.09.15 22:27:19
*.16.145.22

그러셨어요??? 수고하십니다.

장기탁

2011.09.16 00:48:31
*.102.24.50

일단 정권 바꾸고 봅시다. 진실은 아직 저너머에-

ROCK ★

2011.09.16 08:52:31
*.155.187.210

정권이 빨리 바뀌길 기다립니다.

누가봐도 ...타살인.....ㅠㅠ

2311

2011.09.16 10:51:23
*.213.107.138

저도 노무현대통령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위에 열거된 것들은 좀~~~ 공감은 안가네요

ㅁㄴㅇㄹ

2011.09.16 11:57:34
*.179.159.138

이런건 잘 모르겠고 전직 변호사 출신이 유서를 컴퓨터 화면에 써놨다는게 도대체가...

아무리 죽을 생각을 한 사람이라지만 그게 말이 되나?

제임스보드_832907

2011.09.16 12:55:52
*.230.135.207

바위에서 떨어졌다는 시신이 복합골절이 한 군데도 없고 혈흔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점은 자살정황과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죠. 의심가는 구석은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지금은 기억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카 퇴임이후에도 이 사건만큼은 어떻게든 은폐하려고 발악을 할 겁니다.

만일 진실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고 밝혀지면 수구꼴통들 존재기반이 송두리채 날라가 버리니까요.

지문

2011.09.16 19:23:28
*.146.232.101

자살을 믿는 애들이 있다는게 신기하다
메모광노무연이 키보드질
이걸 믿으라구? 키보드 지문은 땄냐 바표드없고

정치에관심을갖게된첫사건

2011.09.19 04:42:58
*.160.37.83

저 손사진은 정말 처음 보는 것이군요.
한나라의 기둥이었던 전 국가원수가 다치는 사건에 헬기정도가 출동 되어야 할 판에 119 출동팀 마저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국과수가 7시간이나 기다리고 경찰의 제제하에 못 들어간 것, 모든 사건의 정보를 갖고 있는 사체를 급히 화장한 점.
전 의학공부를 한 사람으로 처음에 낙사사고라고 했을 때 상흔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 느꼈습니다.
대단히 정직했기에... 그리고 친일청산을 하려 준비했기에...
그는 그리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화려한 짓 정보가 난무한 상태에서 감추어진 진실이 아무리 씁슬하더라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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