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름은 안련(安連). 1881년 웨슬리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883년 마이애미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10월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1년간 봉사하다가 이듬해 9월 인천에 도착하여 조선에 상주하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 당시 조선은 전도를 개시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교사라는 신분을 숨기고 공사관 부속의사로 재직했으며, 1884년 갑신정변 때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례금을 받음과 동시에 왕의 시의가 되었다. 이후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1885년 국립병원 설립안을 제출해 승인받아 한성 북부 재동에 왕립병원 광혜원(뒤에 제중원으로 바뀜)이 설립되는 기초를 마련했다. 개원 이듬해 병원부속 의학부가 신설되자 비밀리에 선교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동료 선교사들과 의견이 엇갈리자 1887년 선교사업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890년 해외선교부 의료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내한했다. 이후 주한 미국 공사 등으로 재직하면서 선교사업뿐 아니라 정치에도 관여했다. 특히 러일전쟁이 끝날 즈음에 조선정부는 친러반일정책을 지향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미국정부에 제출했는데, 절대 중립을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우리 정부는 조선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1905년 주한 미국 공사직에서 파면되자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