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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라가 미친거다.

조회 수 3268 추천 수 0 2011.06.27 11:54:03

▣ 두 번째 인물은 예비역 장군 백선엽 씨.

 

 24일 KBS 1 TV에서 백선엽 다큐멘터리 1부 <전쟁이 군인을 만든다 -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다음날에는 2부 <군인의 조건 - 싸우면서 배운다>가 방송되었다. 그동안 백선엽 씨 다큐멘터리 방송을 놓고 '6.25 전쟁영웅으로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일 뿐이다. 친일 전력과는 관계없다'는 방송사 간부 측과 '백선엽 씨의 군인으로서의 시작이 만주에서 항일 독립군을 학살한 간도특설대 장교였다, 이 점을 사죄조차 하지 않은 인물을 미화해 방송할 수 있냐'는 KBS 노조와 시민단체 측이 충돌해 왔던 사안이다.

궁극적으로는 친일과 독재라는 수구 세력의 오점을 <이승만, 백선엽, 박정희>라는 인물의 재조명을 통해 세탁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비판과 의혹을 사고 있는 중이다. 방송 후 인터넷 공간에는 비난일색의 글들이 올라왔다.

'설마 나라를 잃더라도 바보처럼 굶어가면서 독립운동 하지 말고 친일세력처럼 이리저리 붙어 살아남아 후세에 부와 명예를 얻고 공영방송 다큐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되라고 애들한테 가르치라는 것이냐'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다큐멘터리 중에 백선엽 씨의 친일전력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본군 전력이 있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며 6~7초 정도 건드리고 끝난다. 독립군들을 토벌하고 강간하고 시체마저 훼손해 버렸다는 끔찍한 간도특설대 이야기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요즘 KBS를 <김비서>의 영문표기라고 부른다. 공정과 공공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의 방송이어야 할 공영방송이 누구의 비서가 되어있단 말인가.




이는 정말 단세포적인 역사인식이다. 백선엽 씨의 예를 더 들어보자.

백선엽 씨는 32살에 장군으로 전쟁을 치른 뒤 예편해 인천에서 중학교와 상업고교를 인수해 백선엽·백인엽 두 장군 형제의 이름 한자씩을 딴 <선인학원>을 설립한다. (그후 설립하는 사립학교에는 어머니 아들의 이름도 들어간다). 이후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선인학원은 온갖 비리를 이용해 엄청난 규모로 커진다. 

학교 부근 주민재산 침해, 중국인 공동묘지 침탈, 맘에 안 드는 교사는 그 자리에서 해고, 교사들은 예비군복 입고 교문 앞에서 보초근무, 말도 안 되는 학생체벌, 부정입학, 부정 편입학, 졸업장 판매, 기부금 입학…. 

한국 사학비리의 원조이자 학교에 일본 제국주의식 군사문화를 뿌리 내린 장본인이 백선엽 씨 형제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학생과 교사, 교수들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투쟁해 재단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밝혀졌고 동생 인엽 씨는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학교 비리와 학내 사태에 인천시민들이 나서 학생과 교수 편에서 투쟁을 벌였겠는가. 

결국 백선엽 씨의 일생을 보면 친일의 전력 이후 친일세력이 백 씨를 구심점으로 수구세력화했고, 독재권력의 비호로 학원재벌이 되면서 지방토호 비리의 뿌리가 되는 과정이다. 이를 영웅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야 한다고 버티는 사람들의 역사의식은 단세포 내지는 정치적 속셈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특집 다큐멘터리라고 하면서도 그가 조국과 겨레에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 사람이 역사 속에 뿌린 행위들은 훗날 무엇으로 자라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는 자신의 친일과 변절이라는 과거 행적에 대해 무어라 고백하고 회개하였는지 아무런 평가가 없다. 그저 6.25 전쟁 때 참 열심히 싸우지 않았냐 라며 시청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넌센스이자 역사의식의 빈곤이다. 

역사는 살아 있는 흐름이고 뿌리로 봐야 한다. 거기서 비롯되고 자라나는 것들, 그로 인해 앞으로 열리게 될 것들을 총체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앞으로 역사 다큐는 삼갔으면 싶다.

 

 

> 뉴스 > 정치
KBS 친일파를 영웅으로···시청자 '경악' "친일방송축하"
반발묵살하고 백선엽 "감개무량" 6.25 전쟁영웅 독무대 만들어줘 "미친거냐" "소름이 돋는다"
[0호] 2011년 06월 25일 (토)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기억납니다…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친일파 백선엽씨가 KBS에게)

 

친일파 백선엽(91)씨는 KBS 스튜디오에 와서 자신의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평양입성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KBS가 24일 밤 방송한 6·25 특집다큐 <전쟁과 군인> ‘1부 기억의 파편을 찾아서’ 편에서였다. 이번 방송을 통해 백선엽은 지난 2004년 친일파 명단에 등재된 이후 7년 만에 ‘우리들의 공영방송’ KBS를 통해 화려하게 전쟁영웅으로 부활했다. 백씨를 영웅화하지 않겠다던 KBS 제작진의 말은 이날 다큐를 보면 모두 거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철저히 백씨의 기억과 발언을 위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백씨에 의한, 백씨를 위한, 백씨의 방송이었다.

 

백선엽. 그는 일제강점기 봉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일제 패망직전까지 조선독립군과 팔로군을 잡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이른바 ‘간도특설대’ 대원으로 활약했다. 그의 이런 이력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KBS가 백씨를 전쟁영웅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수많은 독립운동단체와 후손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자 등이 절박한 심정으로 방송불가를 외쳤다. 그럼에도 KBS는 그런 ‘역사’와 원로들의 피맺힌 호소를 짓밟고, 단숨에 백씨를 영웅으로 둔갑시켰다.

 

KBS는 24일 밤 10시부터 1TV를 통해 1시간짜리 백씨 미화 다큐를 내보냈다. 첫 장면은 어두운 KBS 스튜디오로 백씨가 걸어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러면서 백씨 앞에 놓인 거대한 스크린에서 ‘6·25의 미공개 영상’이 펼쳐졌다. 영상 안엔 젊은 시절 백씨의 모습이 잡혔다. 백씨는 이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 듯했다. 그러면서 “기억나요. 다부동에서 반격할 때 사진인 것 같습니다.…저건 임진강일까. 60년 전 일인데요 그 당시의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라고 회상했다.

 

   
KBS가 지난 24일 밤 방송한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1편.
 

 

 

 

 

 

 

 

 

 

 

 

 

 

 

 

 

백씨의 친일행적에 대해 KBS는 단 10초도 할애하지 않았다. 그가 만주군관학교 입학한 뒤 일본군 장교가 됐고, 이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한마디가 끝이다. 간도특설대원이었다는 전력은 숨겼다. 그나마 눈여겨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런 소개가 있었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의 내용이다.

 

 

한국전쟁시 미군과 함께 북진하면서 백씨가 평양에 입성했을 때를 KBS는 감격적으로 묘사했다. 백씨는 “5년전 평양을 떠나 국군을 만들어 1만명과 미군 5000명 데리고 적의 수도를 탈환하는 광경입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일생의 최고의 날입니다”라고 회고했다. KBS는 “개전초기 패전을 역전시킨 한국군의 사기는 드높았다”며 “통일은 곧 올것같았고, 평온한 일상은 이미 와있는 것 같았다. 이승만이 북한 지역을 방문해 분위기 고조시켰다”고도 했다. 

또한 수세에 몰렸던 남한군이 미군의 지원을 받은 뒤 다부동 전선에서 피튀기는 전투를 벌이다 끝끝내 이 전선을 사수했고, 그 중심에 백씨가 있었다는 점도 KBS는 빼놓지 않았다. KBS는 “이 전투로 백선엽은 미군의 신뢰를 얻었다”며 “포병, 전차 등 지원했다…백선엽에 대한 미군의 신뢰는 평양공격 때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한 임진강 감악산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에 포위돼 대부분 전멸했던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의 일화도 소개됐다. KBS는 영국으로 날아가 참전군인이었던 샘 머서씨를 만나 그가 중국군에게 다리에 총을 맞았다는 기억을 들었다. 머서씨는 “당시는 지독한 전투였다. 적과 거리도 아주 가까웠다. 소총을 두 중국 병사 중 한 명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 다리를 쏘더군요. 왜 그랬는지는 몰랐다”고 전했다.

 

   
KBS가 지난 24일 밤 방송한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1편.
 

 

 

 

 

 

 

 

 

 

 

 

 

 

 

 

 

 

 

 

 

 

 

 

KBS는 철저하게 백씨의 활약과 시각에서, 또 글로스터 대대의 전멸사례처럼 연합군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조명한 꼴이 됐다. 그러다보니 한국전쟁의 참혹한 실상은 뒷전에 묻혔다. 

 

국방군사연구소가 지난 1996년 발행한 한국전쟁 피해 통계집에 따르면 공식적인 정규군 사망자만해도 한국군 전사·사망자 13만7899명, 유엔군 전사·사망자 5만7933명, 북한군 51만2000명, 중공군 14만8600명에 이른다. 여기에 학도병 및 경찰 사망자만도 1만6848명이다. 부상자와 실종 및 포로 등 피해현황을 집계하면, 남한 유엔군측이 무려 130만, 북한 중공군측은 18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집계한 민간인 피해상황은 더욱 참혹하다. 사망자 24만4663명, 학살자 12만8936명이며, 실종자는 3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민간인 피해는 계량하기조차 힘들정도로 크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미군과 남한군에 의해 사망하거나 집단학살된 민간인만 100~1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그들은 부모를 졸지에 잃고 최근까지도 ‘빨갱이’로 몰리며 ‘연좌제’의 고통속에 60년을 살아왔다. 이것이 대한민국에 실재하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진실’이다. KBS는 전쟁에 대한 알량한 몇몇 군인의 기억에 빗대 그들의 영웅담이나 늘어놓으며 한국전쟁의 이같은 실상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KBS는 또 곳곳에서 ‘백씨의 생각은 무엇일까’라며 지나치게 백씨의 기억과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백씨는 방송에서 “산천은 변하지 않은데 많은 조국의 전사가 피를 흘렸다. 조국을 지켜줬다. 피와 땀을 흘려서 얻은 국토다”라고 말했다. KBS는 “그의 기억은 다시 전장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어떤 역사의 길을 찾아야 할까”라고 했다.

 

이번 이른바 '백선엽 다큐'는 전쟁의 실상을 겸허하고 냉정하게 되짚어보기는 커녕 한 군인의 기억만을 쫓는데 그쳤다. 이런 다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자체로만 보더라도 KBS 스스로 새롭게 발굴했다는 미공개영상의 경우 미군 주변을 따라다니며 그저 전투를 하고 있다거나 백씨의 얼굴이 담긴 영상이라는 점 외엔 그다지 사료적 가치로도 평가를 받기 힘들다. 완성도 있는 다큐멘터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KBS의 공영성과 정체성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으면서 이렇게 강행한 이유를 이 다큐만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친일파 백선엽'의 전쟁영웅과 미담이라는 의미 뿐이다.

한편, 이 같은 방송을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K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엔 24일 밤부터 25일 오전까지 ‘미친 KBS’ ‘끝내 친일방송이 된 걸 축하한다’는 등 냉소와 조롱, 침통함을 담은 비난이 쏟아졌다.

배아무개는 “나라를 잃더라도 바보처럼 독립운동하지말고 친일세력처럼 간에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면서 간사하게 살아남아 후세에 추앙받는 영웅 뿐아니라,,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이런 방송을 보고 제대로 배우는 것”이라며 “나라는 팔아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방송을 타고 있는 내용이 여실히 보여준다”고 개탄했다.

 

국아무개도 “설마 공영방송에서 국민의 혈세로 독립군을 잡던 친일파를 찬양하는 프로를 민들진 않겠지 하면서 우연히 돌린 KBS에서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다니 양심도 민족혼도 아니 그 차디찬 이국에서 모든 것을 던져가면서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땀과 피를 흘리던 애국 선열들에 대한 후손으로써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자들”이라며 “6.25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국군도 욕보이는 짓”이라고 성토했다.

문아무개도 KBS에 대해 “너희가 조중동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며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공산당과 빨갱이라는 말로 국민을 속이고 독립군과 그의 후손들을 빨갱이 자손으로 매도했던 그런 놈들의 나팔수가 된 KBS. 이 친일 앞잡이의 대변자 KBS야. 과거 50년간 한것도 모자라 또 다시 이 짓을 되풀이 하냐”고 되물었다.

 

   
지난 24일 밤 KBS에서 방송된 백선엽다큐 <전쟁과 군인>편을 보고난 뒤 KBS 홈페이지에 시청자들이 올린 항의글들.
 

 

 

 

 

 

 

 

 

 

 

 

 

 

 

 

 

 

 

 

 

 

 

 

 

박아무개도 “정말 KBS 미친거 아닙니까”며 “백선엽을 완전 영웅으로 만들었더군요. 친일파, 독립군 학살자를 다 늙어서까지 설치게 하다니 그러고도 수신료 더 달라는 말이 나오나! 그 돈은 친일파들한테나 받아라”라고 비난했다.

 

유아무개는 “내부에 있는 직원 기자들은 정말 양심이 없나요”라며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통속이라고...정말 이래도 되는건가요”라고 답답해했다. 다른 유아무개는 “백선엽 건으로 친일미화 방송사가 되신 거 축하합니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비관했다.

 

백아무개는 KBS가 이번 방송으로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했다. 현행 방송법 44조 4항은 KBS가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송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백아무개는 “독립군을 잔인하게 학살한 간도특설대 출신 종일군인 백선엽 찬양날조 방송을 하는 당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한아무개는 “백선엽이 영웅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토 히로부미도 영웅이더냐”라며 “일제 시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굶어가면 싸웠던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민족의 열사들에게, 6.25 전쟁때 역시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바쳤던 어린 죽음들 앞에서 너희가 과연 백씨가 영웅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고 격분했다. 그는 이어 “백선엽은 아직 살아있다”며 “그가 이 프로를 보고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라고 침통해했다.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  

백선엽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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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이 없는 나라 이해가 가십니까?

진정한 독립이 되지 않은 대한민국

현재 부일매국노 세력 정권의 의해 후퇴되고 있습니다.

부일매국노가 또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노무현정권에서는 볼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배속돼 조선인 항일유격대 소탕작전에 종사하다 만주군 중위로 해방을 맞았죠.
간도특설대란, 1938년 12월 7일 만주국 간도성 연길현 명월구에서 조선인 위주로 창설되었고요.
주로 일본 관동군 지도하 북방경비와 치안공작, 즉 항일독립군들을 토벌했다는 것임.
백선엽은 1943년 2월 간도특설대 제9기생 군관(장교)으로 입대해 활동했습니다.
특히 자기 자서전에서도 항일독립군들을 토벌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백선엽 지리산 토벌작전때 양민 집단 동사”

6·25 61주년 앞두고‘반공 영웅화’ 논란 증폭


작전참모 지낸 고 공국진 전 준장 ‘한국전쟁사’서 증언
“아이들·부녀자들 포로수용소 갔다가 반수 이상 죽어”
“송요찬도 토끼몰이 토벌 반대”…백장군쪽 “답변 곤란

한겨레 이순혁 기자 메일보내기

» 친일 행적 논란을 빚고 있는 백선엽 백야전전투사령관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30일 전북 남원시의 정보(G-2)상황실에서 열린 참모회의에서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위한 작전지도를 가리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한국전쟁의 영웅인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친일부역 군인인가?

6·25 발발 61돌을 앞두고 백선엽(92) 장군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군 첫 4성 장군이자 참모총장을 두 번 역임한 군 원로인 백 장군을 두고 <한국방송>(KBS)이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일부에선 동상 건립에 나서지만, 이에 대해선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일방적 미화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백 장군이 주도한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이 무고한 양민들의 희생을 불러왔다는 당시 군 관계자의 증언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현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 참전자들의 구술 증언을 채록한 자료인데, 여기서 백 장군의 작전참모 출신인 예비역 장성은 당시 작전과 관련해 회한 서린 이야기를 털어놨다.

 

■ “이 양반은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라며”

1964년 발족한 전사편찬위는 <한국전쟁사> 편찬을 위해 참전자 3000여명을 대상으로 방대한 구술 채록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1965년 6월15일 한국지업㈜ 사장이었던 공국진 전 예비역 준장을 상대로 증언 청취가 이뤄졌다.

“(1군단) 작전참모로 갔습니다. 백(선엽) 장군 모시고 춘계, 1차, 2차, 3차, 4차 공세까지 겪고, 지리산으로 갔다가…. 백 대장하고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전장에서 지휘관과 작전참모는 가장 긴밀한 사이인데, 왜 헤어졌다는 것일까?

“지리산이 4개 도, 9개 군입니다. 9개 군 주민이 20만입니다. 이 양반(백 장군)은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다, 광주에 포로수용소를 지었어요. 그래서 공격 개시하면 아이들, 부녀자들을 다 적을 만들고 포로로 오는데, 트럭에 싣고 광주까지 후송하면 다 얼어 죽을 것입니다. 국내전에서 동족상잔을 하고 있는데 다소 양민과 적을 가려 취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북 땅에 가서 8로군 토벌하는 것과 무슨 다름이 있느냐 했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싸운 것입니다.”

한국전쟁중이던 1951년 말 미군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위한 사령부를 꾸리고 백선엽 당시 1군단장에게 지휘를 맡겼다. 백장군의 이름을 따 ‘백(白)야전전투사령부’로 불린 부대다. 예하에는 수도사단(사단장 송요찬)과 8사단(사단장 최영희),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등이 배치됐다. 백 장군과 의견 대립 끝에 백야사 작전참모를 그만뒀다는 공 전 장군의 증언이 이어졌다.

 

■ “사고 많았다…지금 같으면 욕 많이 먹었을 것”

“헤어져 가지고 (나는) 21연대로 갔어요. 결과가 무엇입니까? 엄동설한에 우리는 바-카 입고 히-타 해도 추운데 수많은 양민은 광주(포로수용소)에 갔다가 반수 이상 죽었어요. 백 장군 당신이 정치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성과가 늦더라도 그렇게 해야지, 이 추운 때에 광주에 갖다 놓으면 그 양반들이 두고두고 한평생 원망할 것입니다. 그 후에 내 진의를 알았어요. 사고가 많이 났어요. 전시니까 그렇지 지금 같으면 욕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당시 백 장군이 채택한 작전 이름은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 지리산을 포위해 토끼몰이를 하는 식으로 주민을 소개하고 먹을 것을 없애 고사시키는 방식이었다. 작전 성과는 좋았다. 51년 11월 시작된 토벌작전은 이듬해 초 사실상 완료됐다. 포로들과 주민들이 뒤섞여 수용된 광주포로수용소는 열악한 환경과 양민 수용으로 사회문제가 됐고,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1953년 해체됐다.

이어지는 공 전 장군의 증언. “나도 참모로서 잘못이 있지. 참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건의하면 되고, 실패를 최소한으로 국한하는 것이 참모(의 역할)인데, 그 작전의 작전참모로서 못하겠다,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중략) 송요찬도 반대했습니다. 최영희도 다 반대했습니다. 길이길이 두고 욕을 먹을 텐데….”

 

■ “일방적 비난 부당하지만, 본인 침묵도 문제”

공 전 장군의 이런 증언과 관련해 백 장군의 견해를 듣고자 했으나, 백 장군을 수행하는 관계자는 “장군님이 연로해서 그런 인터뷰가 어렵다. 답변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증언자인 공 전 장군은 몇 해 전 작고했다.

증언록의 성격상 한쪽의 주장인 만큼 모든 증언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백 장군이 책임자로서 실행했던 작전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백 장군은 과거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휘부의 지침과 달리, 말단 부대가 비행을 저지르고 허위보고로 무마하는 경우, 그것을 완전히 확인해 진위를 가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중략) 당시로서는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토벌부대의 총사령관으로서 나도 혹시라도 부하 장병의 비행으로 희생된 넋들이 있다면 그들의 명복을 빌고 싶은 심정이다.”(<실록 지리산>)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한 역사학자는 “양민학살 문제는 전쟁이라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함께 봐야 하고, 백 장군보다 더 심하게 한 지휘관도 있어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본인으로서는 (양민학살 문제나) 간도특설대 등 자신의 과거와 관련해 민감한 문제에 침묵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백선엽 씨는 32살에 장군으로 전쟁을 치른 뒤 예편해 인천에서 중학교와 상업고교를 인수해 백선엽·백인엽 두 장군 형제의 이름 한자씩을 딴 <선인학원>을 설립한다. (그후 설립하는 사립학교에는 어머니 아들의 이름도 들어간다). 이후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선인학원은 온갖 비리를 이용해 엄청난 규모로 커진다. 

학교 부근 주민재산 침해, 중국인 공동묘지 침탈, 맘에 안 드는 교사는 그 자리에서 해고, 교사들은 예비군복 입고 교문 앞에서 보초근무, 말도 안 되는 학생체벌, 부정입학, 부정 편입학, 졸업장 판매, 기부금 입학…. 

한국 사학비리의 원조이자 학교에 일본 제국주의식 군사문화를 뿌리 내린 장본인이 백선엽 씨 형제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학생과 교사, 교수들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투쟁해 재단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밝혀졌고 동생 인엽 씨는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학교 비리와 학내 사태에 인천시민들이 나서 학생과 교수 편에서 투쟁을 벌였겠는가. 

선인재단이 이 늙은이꺼~

인천대학교가 이 늙은이꺼

한나라당이 왜 사학법에 목숨거는지 알겠죠??

 

↑ 민족분단과 6.25전쟁에 관한 강의하는 백선엽 장군

 

친일매국노인 자기를 살게 해주고 출세길을 열게 해줘서 이승만을 치켜세우는 백선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명박 뒷편 왼쪽이 백선엽.죽기전에 사죄하고 죽을 생각은 전혀 없으신가

 

 이명박" 백선엽" 청와대 초청 2010.4월

이명박에게 ‘전작권 연기" 강력히 요청

 

 

경기도 제2청사 김문수와 함께 강당으로 가고 있다. 2010.4.8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손을 잡고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0-5-19

 

 

 '한국전쟁기념재단' 설립 2010-06-25

이사장 .백선엽

부이사장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 ,김인규 KBS사장

고문 .이수성, 이홍구 전 국무총리,조영길 전 국방장관

이사 .이기수 고려대 총장, 인요한 연세대 보건센터 소장 ,박영순 온누리약사복지회 회장,윤송이 엔씨소프트 부사장,배희숙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 백선엽 왈왈 ▒

 

"좌파정권 10년 햇볕정책이 안보 망쳤다"   2010.06.25

“한미정상회담 때 전작권 전환 연기될 것” 2010.06.25

“미국은 한국이라는 동맹국 지킬 것”    2010.06.22 (화

“北에 핵 보유국 지위 줘선 안돼”    2010.06.22 (화)

"천안함 사태 이용 사회혼란세력 엄단하라"    2010.05.17 (월)

"전작권 전환은 김정일 도와주는 것"    2010.04.20 (화)

"한미 동맹으로 국가 발전 이뤄"    2010.04.08 (목)

국방부, 백선엽 명예원수화 ‘일단 후퇴’    2010.03.19 (금)

성우회 “백선엽장군 친일파 포함은 무모한 행위”    2010.01.18 (월)

<style>P{margin-top:2px;margin-bottom:2px;}</style> “안보 중요성 모르는 젊은세대 아쉬워”    2009.06.24 (수)
맹정주 강남구청장, 백선엽 장군 초청 강연 개최    2009.06.22 (월)
맥아더는 한국 구한 은인"
정부, 백선엽씨 '명예원수' 추대 검토    2009.03.23 (월)
백선엽씨, 보병박물관 방문차 방미    2009.03.16 (월) 오전 1:05

  이 나라 군대를 이끌어갈 장교후보생들이 백선엽과 함깨 응원을 외치고 있다.

 

 장교후보생들이 백선엽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충남대 명예박사' 학위 받아  2010년 06월 08일 (화)

 

 

백선엽  기념물 제막식 거행    2010.03.10 (수)

 

 

 

서점에 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백선엽이 쓴책을 대대적으로 광고 하는 광고판이였습니다.

 

 
 
권총을 든 백선엽 장군(가운데)을 중심으로 병사 등이 진격하는 모습을 담은 부조.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완공돼 25일 파주시 임진각에서 제막식을 한다. [파주시청 제공]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91) 장군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비가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남북분단의 현장인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25일 제막된다. 이인재(51) 파주시장은 24일 “백선엽 장군을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파주지역 전투에 참가한 참전용사와 학도의용군 등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접경인 파주에 6·25 참전기념비를 건립했다”고 말했다.

이인재 시장
 
 기념비는 가로 13.15m·세로 9.10m·높이 4.35m 크기의 대리석 구조물로 만들어졌다. 기념비에는 가로 2.8m·세로 2.4m 크기의 전투장면을 조각한 브론즈 부조(浮彫)가 설치됐다. 부조에는 백 장군을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참전용사와 학도의용군들이 진격하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이와 함께 참전용사와 학도의용군 1347명(전사자 573명 포함)의 이름을 새긴 돌기둥 4개와 헌시·준공기도 마련됐다.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라는 구호도 새겼다.

이근배 시인은 ‘자유여, 영원한 호국의 횃불이여’란 제목의 헌시를 통해 ‘구국의 명장 백선엽 장군이 세운 무공이 겨레의 내일을 밝히고 있다’고 적었다. 기념비 제작에는 경기도비 2억원과 추진위가 모금한 성금 2300여 만원이 들었다.

 이 시장은 지난해 7월 1일 부임 직후부터 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6·25의 실상을 모르는 후대에게 안보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북한과 접경인 파주의 시장으로서 뭔가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계기였다. 그래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 기념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시장은 당초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파주시를 방문한 백 장군이 “나만이 아니라 참전용사와 학도병들이 함께 6·25전란에서 나라를 구한 것”이라고 조언해 이를 받아들였다. 지역의 진보정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도 있어 백 장군의 얼굴을 새긴 부조가 포함된 기념비를 세우기로 방향을 정했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안보에 관해서는 보수 꼴통’을 자처하며 파주지역 일각의 반대운동에 맞서온 이 시장은 “어떤 이념과 논리도 국가안보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 장군은 2010년 1월부터 1년2개월 동안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을 연재했다. 그는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 1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파주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전쟁이 나자 파주 전선을 지키기 위해 문산·파평산·봉일천·법원리·임진강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52년 32세의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전익진 기자

자유여, 영원한 호국의 횃불이여

이근배

타오르는 불길이 있다

반만년 장엄한 이 나라의 역사에

조국의 이름으로 겨레의 이름으로

목숨 바쳐 자유, 평화 지켜낸

자랑스러운 승리가 있다

저 북한 공산군의 침략으로

자손만대의 보금자리 금수강산이

한 핏줄 형제들의 피로 물들일 때

임진강에서 밀리면 서울이 무너지고

서울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위태롭다고

결사항전으로 적을 무찌르고

마침내 오늘의 조국 번영을 안겨준

파주 전투 참전용사들의

산을 뚫는 용맹과 하늘을 찌르는 나라 사랑

구국의 명장 백선엽장군이 세운 무공이

겨레의 내일을 밝히고 있다.

듣는가, 백두대간 한 허리를 감돌며 흐르는

저 임진강 끝없는 속울음의 증언을

그날 동족상잔의 불 뿜는 포화 속에서

산화해간 꽃다운 젊음들이 피로 쓴

거룩한 구국의 신화를, 지축을 흔들던

진군의 노래를,

허나 예순 해의 긴 시간을 넘어

아직도 산과 물을 철조망이 갈라놓고

내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나니

호국의 영령들이시여

이 충혼의 기념비에 길이 새겨 겨레의

영광 바치오리니

칠천만 하나 되는 조국 대한민국

억압과 굶주림에 갇힌 북녘동포들

더불어 자유, 평화의 품에 함께 사는

통일의 새날을 맞게 하소서

지구촌에 우뚝 서는 큰 나라 이루어주소서.
 
백선엽을 찬양하는 시를 지은
이근배 시인이 누구?
이근배 시인 유명 시조시인 친일행적 없었다   
 
5년전, 2006년 7월 26일 | 연합뉴스 | 미디어다음
 
주장이 나왔다. 한국시인협회 회장과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이근배 시인은 25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소설, 자유시 등 다른 문학장르의 작가로는 친일시비에 오른 이들이 많지만 당대를 풍미한 대표적 시조시인 중에는...
 

 
‘친일인사 두둔’ 시인이 쓴 의병의 노래?
 
이근배작사 부적절 논란
“노랫말도 지나치게 경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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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인글 :

길상2

2011.06.27 12:18:25
*.58.59.91

한국방송인지.? 친일방송인지.? ㅡㅡ;

과거 친일파 청산을 이루지 못한 현실이 암담하군요.. 언제까지 그들이 지배할까요.?

분명 변화가 올꺼라 믿어봅니다..

유령보드

2011.06.27 16:32:35
*.94.208.57

선인재단은 백선엽장군 동생인가 형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백선엽특집기사 인터뷰를 매주 하는 과정에서 제가 느낀 부분은
솔직히 한국전쟁당시 백선엽장군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린 빨갱이 나라가 됐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말 비리를 저지르고 부를 축적하고 싶었다면, 왜 박정희가 대통령일때 한번도 청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전쟁 당시 장군들이 막사에서 여자불러서 오입질하고, 물자 빼돌리고, 모 사단장은 중공군이 내려오자 그 수에 놀라서 기절을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미군이 백선엽장군을 호출해서 전쟁을 지휘하게 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직도 미군이 한국에 발령을 받고 가장 먼저해야 하는 일이 백선엽장군에게 인사를 드리고 해야 한다는 점...
사실 좀 안타깝더군요.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한국전쟁에 숨어있는 영웅 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슷응

2011.06.27 17:02:37
*.210.192.71

NHK-BS

길상2

2011.06.27 17:10:33
*.58.59.91

백선엽장군에 대해..잘 모르지만..

백선엽장군이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해도..전쟁에 한 일부분일 뿐일텐데요.. 그 업적으로 친일이 가려진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선엽장군이 아니였으면,, 빨갱이 나라가 됐을수도 있다니.. 이건 무순 소린가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것은 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독립운동하고, 6.25전쟁에서 목숨을 다했기때문입니다... 백선엽장군 혼자에 힘은 아니지요..그리고..친일했다는것은 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인으로서 나라를 저버린 사람인 것을 어찌 옹호 할수 있겠습니까..

시대사정이 어찌 됬건 친일은 정당화 될수 없는 것이고 한국전쟁당시 미국이 필요하여 한국에 백선엽장군을 발령하고 그에 대해 백선엽 장군은 업적을 쌓은것으로 영웅 취급하기엔 그 분의 친일 행적이 아주 큰 걸림돌이라 생각 됩니다.

사상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게 볼수 있지만..유령보드님은 다르게 생각 하시는듯하네요.

지나가다

2011.06.27 17:45:56
*.166.212.169

거참 기자까지 했다는 양반이 역사인식이 저래서야...

빨갱이??ㅋㅋ 그죠... 지금은 우파 좌파... 빨갱이 간첩.. 이러면 통하는 세상이니..

그런 원색적인 표현을 쓰겠지만...


전쟁당시만 해도 북한에 엘리트가 더 많았고..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이 더 많았던 이유는

아시요??


내가 보고 듣고 한 역사가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 거기서부터 출발해봐요..

열라빨라쑝쑝

2011.06.28 13:19:51
*.41.137.193

역사에 대해서 뭐 좀 아시는 분이신듯~ ㅎㅎ

지금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역사는 정말 구라 그 자체죠.

진실이 밝혀지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유령보드

2011.06.27 17:46:47
*.94.208.57

음.. 됐을수도 있다는 말은 무조건 됐다는 것은 아니죠...
저는 친일을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일행위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겠지만, 잘한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유령보더

2011.06.27 18:13:02
*.119.172.55

유령보드님..... 문제의 논지를 잘못 파악하시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고 있네요.

잘한건 저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저사람 잘한점은 알고있죠.


문제는 친일파 행적같은 몹쓸짓을 가려두고 영웅만들기를 하고 있는겁니다.

문제가 뭔지 아시겠죠? 잘한건 대놓고 방송에 이용하고 반공=우익 이렇게 이용하고 있고

나라팔아먹은 친일행적은 묻어두고 오리발 내밀고 있는겁니다.

6.25 동란 아니었으면 백선엽 저색히는 갈갈히 찢어 죽였어야 할 넘이란 거죠


그러니 제발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길.

리틀 피플

2011.06.27 19:00:45
*.64.111.176

씁쓸합니다.
큰 죄를 지었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죄값을 치르지 않는 이상
죄는 사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한국 경제를 크게 일으킨 박 대통령 정말 큰일했지만, 지은죄 엄청나죠.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s사 이 회장님~~~
나라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셨죠. 불법 증여, 탈세, 탈루에 배임까지....
결코 죄값을 치르기전에는 아무리 경제에 기여했다해도 용서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8855

2011.06.27 19:17:40
*.77.0.20

일때문에 지방에 갔었는데 저희 팀장이랑 저걸 보다가 팀장이 그럽디다

전쟁영웅이고 선인재단까지 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제가 한마디 했죠 저거 쓰레빠라고 그러니 니가 뭘아냐고 그럽디다

그냥 자버렸습니다.

공영방송에서 내보내면 안되는 것이 나온것이죠

이놈의 나라는 친일은 국가를 위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로 내모니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친일을 한 사람들 사형당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 아시죠?

그리고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경제니 안보니 나라 살렸다고 대대손손 잘사는 나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나라입니다

잘한건 잘했다고 박수치기전에 저사람이 있을곳에 독립운동 하셨던 분이 계셨다면 더 훌륭하게

나라를 지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Board_MAX

2011.06.27 19:32:10
*.157.8.45

ㅋㅋㅋ 잘한점이 많다는 이유로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못한점을넘어 친일, 범죄등이 다 용서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든 큰이유중 하나지요.. 명박이가 사기꾼 전과 14범임에도 불구학 대통령이 된....

CABCA

2011.06.27 19:54:53
*.43.209.6

백선엽이 토벌과 전쟁에 목맬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본인이 친일행위를 했었기 때문이겠죠...

과거를 세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친미에 기대어..친일을 세탁하는...

그냥 살아있는 쓰레기인 듯...

인천분들이시면 선인재단 비리야 뭐..다들 아시겠고..

반론해봐

2011.06.27 20:25:53
*.137.76.244

독일경제기적은 폭스바겐 과 아우토반 덕분이였다.
그런데 이 폭스바겐 과 아우토반은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런데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공과론 이란 말을 안한다.
히틀러는 민족반역자도 아닌데 말이다.

정신차리시길

2011.06.27 21:53:26
*.37.130.84

하~~ 제발 유령보드님 같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해공

2011.06.28 00:44:14
*.178.237.48

백선엽이 아마 30살때 별 달고 진짜 별들인 미국 장군들과 같이 행세하고 다녔죠.
중공군 내려오면 혼비백산 도망다니기 바빴고. 그래서 미군 사령관이 3군단을 아에 해체해 버리고
그 자리에 더 능력있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라서 결과론으로 백선엽 장군이 있는것 뿐이죠ㅡ

열라빨라쑝쑝

2011.06.28 13:18:06
*.41.137.193

유령보드님 개념 탑재 좀..ㅎㅎㅎㅎ

나라 팔아먹은 넘입니다. 결과가 뭐였든간에 나라팔아먹은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죠.
더군다나 나라를 팔아먹은 결과로 그 지위까지 올라왔다면 더욱 더...

2011.06.29 08:41:40
*.226.196.115

언젠가는 엠비씨가 전대가리 생일기념찬양방송 내보낸것처럼
역사에 기리 쪽팔릴날 올듯 ㅋㅋ 당당 피디는 을메나 쪽팔릴까...

지나가다2

2011.06.29 17:14:29
*.137.0.218

백선엽이 어떤 나라를 팔아먹었을까? 조선은 백선엽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완용이나 송병준이 팔아먹은 것을. 백선엽은 2등국민이지만 일본제국 국민으로 태어나 간도특설대에 근무할 때는 팔아먹을 나라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을.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백선엽이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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